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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거리 식민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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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거리 식민지 한국

[송기호 칼럼] 인간 광우병 관리법을 요구한다

<먹을거리(食料) 식민지 일본>이라는 책이 지난달 일본에서 나왔다. 일본의 유명 저널리스트인 아오누마 요이치로(青沼 陽一郎)는 먹을거리 자급률이 불과 39%로, 미국이나 중국에서 먹을거리를 수입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일본을 그렇게 불렀다.

그는 먹을거리 식민지에선 먹을거리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고 썼다. 그는 미국의 광우병 통제 정책의 허상을 지적하면서, 미국이 일본에게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을 요구하는 것의 심각성을 페리 제독의 일본 개국 압력에 필적하는 '재개국 요구'라 불렀다.

아오누마의 용어를 빌려서 말하자면, 우리는 지금 일본보다 더한 '먹을거리 식민지'에서 살고 있다. 적어도 일본이라면, 길이 3㎜의 소 뼈 조각까지도 수입 금지하던 광우병 안전 기준을 하루아침에 소의 뇌와 척수까지 안전하다는 것으로 바꾸는 짓은 하지 않는다.

일본은 작년 8월 상순에, 미국과 광우병 검역 기준 협의를 시작했다. 미국은 2007년 5월의 이른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광우병 위험 관리 등급 획득을 이유로 일본에 이런 협의를 요구했다. 이는 바로 미국이 한국에게 요구했던 것과 완전히 동일했다.

일본은 미국과의 협의에서 미국에 요구했다. 광우병 검역 기준을 완화해도 좋을 만큼 미국 정부가 광우병 관리를 개선했는지 미국의 광우병 위험성이 낮아졌는지 알아야 하겠다고 했다.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방대한 량의 자료를 제출받았다.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이를 분석했고, 미국에게 추가 자료를 요구했다. 애초 작년 9월말에 예정된 보고서 발간은 늦어졌다. 미국이 송아지 나이(월령) 기준 철폐를 요구하자, 일본은 안전을 증명할 미국 측 데이터가 불충분하다고 맞섰다. 일본과 미국의 협의는 결론을 내지 못하게 되었다.

일본의 완강한 자세에 미국은 좌절했다. 그러나 미국에게는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바로 한국이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작년 10월 24일에, '미국 쇠고기 수입조건 완화 교섭 정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으면서, 그 까닭을 이렇게 분석했다.

"그 배경에는 한국과의 수입 조건 협의를 우선하는 미국 측 사정이 있다고 보인다. 일본 측은 기다리는 자세이다. 조건 완화는 미국이 요청한 것으로서, 일본으로서는 급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미국은 일본보다 한국과의 협의를 우선시했을까? 왜 미국은 자신에게 훨씬 중요한 일본과의 협의 대신 한국과의 협의를 먼저 하려 했을까? 광우병이 발생하기 전인 2003년에, 미국은 일본에 37만5000t의 쇠고기를 수출했다. 이는 한국으로 수출된 것보다 무려 13만t이나 많았다.

미국의 전략은 한국을 항복시켜, 일본을 압박하는 것이었다. 물론 미국에게도 큰 위기가 있었다. 올 2월에 미국에서는 주저앉은 소 강제 도축 사건과 쇠고기 회수 사태가 발생했다. 미국의 광우병 관리 정책의 실태가 온 세계에 폭로되었다. 미국은 크게 낭패했다. 미국 농무부 장관 샤퍼는 같은 달 22일, 미국의 쇠고기 수출업자 앞에서 이렇게 좌절감을 하소연했다.

"자기들 시장을 내어 놓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이유를 찾고 있다. 그들은 우리 미국인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네는 제대로 된 고기하나 우리에게 보내지도 못하니? 우리가 검역 완화를 해야 한다고? 이제 그렇게는 못해."

설상가상, 한 차례도 외국에 나간 적이 없는 미국인이 '인간광우병(변종 크로이츠펠트-야코브병, vCJD) 의심 증세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도, 미국은 한국의 검역 기준을 완전히 발가벗겼다. 이제 더 이상 미국의 축산업자는 한국으로 수출할 별도의 작업 라인 설치에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참으로 자유롭게 되었다. 아무리 늙은 소라 하더라도, 그 갈비를 한국에 완전히 자유롭게 수출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을 항복시켜 일본을 압박하려는 미국의 전략은 완전히 성공했다.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은 지난 토요일에, 한국의 검역 기준 완화가 미국에게는 일본과의 교섭에서 큰 협상 카드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므로 만일 아오누마의 말처럼 일본이 먹을거리 식민지라면, 한국은 식료 식민지보다 못한 존재이다. 먹을거리 종주국이 큰 먹을거리 식민지를 다루는 데에 사용하는 불쏘시개 먹을거리 식민지이다.

그러한 먹을거리 식민지에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미국 사람들도 먹는데, 먹어도 돼!" 그런 먹을거리 식민지에선 국회의원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이 검역 기준을 바꾸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런 먹을거리 식민지의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싸고 질 좋은 고기가 왔습니다. 못 믿겠거든 적게 구입하세요."

나는 광우병 공포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이를 기르는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이 땅에 광우병 공황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단지 나는 법학자로서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려는 것일 뿐이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자유롭지 않다. 소의 뇌와 척수는 인간광우병의 '직접적'인 감염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먹지 말라는 보건복지부 지침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국제 기준이니 먹어도 된다는 농림부 고시대로 살 것인가의 어느 하나를 선택할 자유는 우리에게 없다.

우리는 오로지 암흑과 불확실성 속에서 농림부 고시만을 강요받는다. 설령 채식주의자라 하더라도, 우리가 직접 모든 먹을거리를 요리하지 않는 한, 식당의 국물에 들어있을 쇠고기 육수를 걸러낼 수 없다. 원산지 표시 단속반으로 투입된다는 천명의 전사들이 허깨비와 싸울 것임은 정부도 알고 있다.

우리는 광우병 위험 정보를 충분히 알고서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정부는 철저히 정보를 통제하고 있다. 미국 현지 방문 조사 결과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 스스로 핵심적 안전 기준으로 설정한 송아지 나이(월령) 판정 기준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송아지와 함께 사는 무리들의 나이 서류까지 요구하는 일본에서도 지난 2월 25일, 나이 불명의 미국산 쇠고기가 발견된 사태가 발생했다. 해당 송아지의 정확한 나이는 끝내 밝힐 수 없었다. (<요미우리신문>, 2008년 3월 1일) 이미 2006년 3월에, 미국 앨라배마에서 세 번째 광우병 소가 확인되었을 때, 미국은 한국에게 그 소의 월령을 입증할 그 어떠한 문서도 제출하지 못했었다.

내가 하려는 말은 결코 광우병 공포가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고 선택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안전하게 먹을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삶을 존엄한 삶이라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아직은 민주당이 다수당인 국회에 요구한다. 정녕 국회라면 인간광우병 위험 관리 특별법을 제정하라. 미국과의 쇠고기 검역 협상은 농림부 장관의 고시를 정하는 단계의 협상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과의 합의는 법률상 구속력이 전혀 없다. 그것은 헌법상의 조약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국 국회의 입법권은 미국과의 검역 기준 합의보다 더 우월하다.

국회는 적어도 보건복지부의 지침대로, 소의 뇌와 척수를 수입금지 대상으로 규정하라. 미국에서 소가 사육될 때부터 한국의 식탁에서 소비될 때까지를 일관하여 관리할 수 있는 통합적 안전성 체제를 규정하라. 인간 광우병 의심 판정과 부검에 이르는 방역대책을 규정하라. 국내 축산에서의 광우병 관리 정책을 규정하라.

그럴 때, 아무도 한국을 먹을거리 식민지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아오누마의 <먹을거리 식민지 일본>은 일본만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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