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 상태에 빠졌던 하중근 씨는 약 보름 뒤인 8월 1일에 숨을 거뒀다. 외관상 경찰의 날카로운 방패와 둔중한 소화기에 맞아 쓰러진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책임자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경찰은 자체 수사 결과 하중근 씨가 '넘어져 다친 것으로 보인다'라고 발표한 뒤 검찰에 조사를 넘겼을 뿐이다. 검찰은 1년째 '묵묵부답'이다.
하중근 씨가 쓰러진 지 1년째 되는 이날,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포항건설노조 파업의 올바른 해결과 건설노동자의 노동권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의 목소리는 끝으로 갈수록 날카로워졌다. 기자회견이 진행될수록 점차 거세지는 빗줄기는 여전히 그 흔한 유감 표명 하나 없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이들의 울분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1년 전과 오늘,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
"노동자를 때려죽인 경찰과 그 지휘를 한 이택순 경찰청장은 거리를 활보하고 있지만, 하중근 열사의 가족은 가슴에 피멍이 들어있다."
공동대책위원회가 지적한 '1년 전과 똑같은 상황'은 이뿐만 아니었다.
1년전 하중근 씨 사망 당시 경찰은 특별 수사본부를 설치했다. 그러나 흐지부지 수사 끝에 경찰은 검찰에 조사를 넘겼고 검찰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당시 경찰의 집회 전면불허 지침과 과잉진압을 문제삼으며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지만 아무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정부는 당시 극도로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건설 노동자에 대한 구조개선 TF 팀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 또한 소식이 없다.
반면 파업 이후 정부의 '엄단 조치' 아래 구속됐던 포항건설노조 조합원 70여 명 중 9명은 아직도 풀려나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손해배상가압류와 부상자 치료비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다. 이들을 파업에 나서게 만들었던 포스코의 다단계 하도급제 역시 계속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정부와 사측 입장만을 대변하려 하는 주요 언론의 태도 또한 1년 전과 변함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날 열린 청운동사무소 앞 기자회견에도 한두명의 기자만 참석했을 뿐이다.
"이 사회가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을까"
공동대책위원회는 "노동자들의 기본권 요구에 대한 사측과 정부의 탄압이 1년이 지난 지금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비정규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해고한 데에 항의하며 농성 중인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을 막기 위해 철문을 용접한 사측, 노동자들의 농성을 불법이라며 '엄단 대처'하겠다는 정부, 사측을 '엄호'하는 경찰의 모습이 1년 전과 같다는 것.
공대위는 기자회견문에서 "1년 전 한해에 5조9000억 원을 버는 포스코 현장에서 화장실, 식당, 탈의실도 없이 일하던 비정규 건설노동자들의 농성에 단전, 단수를 하며 도시락 반입까지 막아 나서던 포스코와 지금의 이랜드는 전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공대위는 또 "포스코에 노조 동향자료를 넘겨주며, 시장과 언론의 노조 죽이기 공동대응을 모색하는 자리를 알선하고, 포항에서 비정규 건설노동자에게 곤봉을 휘두르던 경찰은 오늘은 이랜드 농성 현장에서 이랜드 자본을 지키기 위해 서 있다"고 비판했다.
한 참석자는 "하중근 열사 문제가 아직도 미해결로 남아있는 이 사회를 사람이 살 수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없다"며 "노동 기본권을 지키라고 요구한 노동자들을 백주대낮에 때려 죽여 놓고 아무도 책임없다고 하는 정부를 우리는 두고두고 잊지 말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날부터 하중근 씨가 사망한 오는 8월 1일까지를 '1주기 추모 주간'으로 선포했다. 공대위는 지난 1월부터 전국 240여 시·군·구 경찰서 및 검찰청 앞에서 항의 집회 및 1인 시위를 진행해 왔고, 하중근 씨의 1주기인 이날도 어김없이 1인 시위를 진행했다.
공동대책위원회는 오는 21일에는 전남 여수 및 광양에서 하중근 열사 1주기 추모집회를 가질 예정이며 8월 1일에는 1주기 추도식을 가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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