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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성추행, '한 남자의 범죄'가 아닌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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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감독 성추행, '한 남자의 범죄'가 아닌 이유

[정희준의 어퍼컷⑦]스포츠계 성폭력과 그 공범들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낸 우리은행 프로농구단의 박명수 전 감독이 소속 선수 성추행으로 구속됐다. 문제는 그의 구속을 정신나간 한 남자의 범죄인지 아니면 이 땅의 여성스포츠계에 만연한 구조적인 문제로 볼 것인지를 따져 보는 것이다. 필자의 결론은 당연히 후자로 낙착됐다.

침대에서 팔베개하고 일대일 면담하자?

이번에 드러난 박 전 감독의 행각은 필자의 눈을 의심케 한다. 선수들에게 방청소를 시키고 자신의 짐을 싸게 하는 것은 물론 속옷을 빨게 하고 선수가 있는 데서 바지를 함부로 갈아 입었다. 박 전 감독의 말대로, '아버지인데', '너희를 딸같이 생각해서 그런 건데' 그게 뭐 문제냐고? 더 들어보시라. 트레이너 만나러 간다는 구실로 선수들 방이 있는 위층으로 올라가 선수들이 알몸으로 있는데 불쑥 나타나고 선수들에게 '뽀뽀'를 요구하고 1대1 면담한답시고 방문 닫아 놓고 침대에서 팔베개 하고 여기 누우라 하고. 감독은 옷을 벗은 상태에서.

그는 미국 전지훈련지 숙소에서 선수를 추행하려 했다가 여의치 않자 일단 보냈다가 다른 선수를 통해 다시 불러들여 폭행하려 했다. 그런데 피해선수는 두 번째로 불려가기 전에 동료선수에게 자신의 위급함을 알렸고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와 달라고 했다 한다. 그 선수가 두 번째로 방에 들어섰을 때 박 전 감독은 이미 옷은 다 벗고 수건으로 가리고만 있었고 피해선수의 옷을 벗겨 더듬기 시작했다. 기다리던 동료들은 그 선수가 10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방문을 두드려 피해선수를 결국 구출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겁에 질린 선수들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감독 방으로 내려간 선수는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너무 무서워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다시 올라왔다. 급박한 순간 동료들과 논의 끝에 물을 갖다 놓는 척 하기로 하고 다시 내려간 그는 문을 두드리고 '감독님 주무세요?' 하면서 또 두드렸다 한다. 방안이 조용해지자 무서워진 그는 물을 그 자리에 떨어뜨리고는 울면서 올라왔고 곧 피해선수가 올라왔다 한다.

아무 말 않던 피해선수는 다음날 그 동료와 산책을 하던 중 주차장 구석에서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동료는 다른 건 물어 보지도 않고 그랬다고 한다. "그냥 괜찮다. (넌) 잘못 없다."

박 전 감독은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었고 선수들도 이전의 일들을 알고 있었다. 다른 팀에서도 있는 일이지만 우리은행에서는 좀 더 심했다고 선수들은 증언한다.

'괜한 짓 하지 마라'?
▲ 지난 2006년 6월 2006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 우리은행 통합 챔피언 기념 리셉션에서 박명수 감독이 우승 소감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언젠가 어느 신문기자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여자선수들 정말 불쌍해." 사연인즉 감독들에게 '당한다'는 것이다. 대회출전과 전지훈련의 연속인 그들의 생활은 선수들에게 '절대지존'으로 군림하는 남자감독들의 폭력에 완전무결한 무방비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감독의 말을 거역하면 게임을 못 뛰기 십상이다. 더 무서운 건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거나 잘리는 거다. 농구와 함께 10대를 시작한 이들에게 농구 너머의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 선수들은 농구선수 외엔 친구도 없고 편의점 '알바' 한 번 해본 적 없으며 심지어 식구마저 군인 휴가 나와 만나듯 했기에 농구를 그만둔다는 것은 곧 자존의 '사망'을 의미한다.

이런 여자선수들에게 감독은 신이면서도 군주다. 특히 박명수 전 감독처럼 국가대표팀 감독도 했고 한 팀에서 19년을 있으면서 선수선발권 등 통상적 감독의 권한 외에 선수연봉책정 등 행정권과 재정권까지 거머쥔 감독에게 저항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무모한 짓이다. 그래서 이러한 사건이 여성스포츠계에 비일비재함에도 선수들은 울기만 하는 것이다.

동료 선수들과 '언니' 선수들도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옆에 있어주면서 다독이는 것 외엔 없다. 왜? 그들에겐 도움을 구할 곳이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트레이너? 코치? 구단? 연맹? 대한체육회? 아니면 기자? 아서라. 후회밖에 돌아올 것은 없다. 그런 걸 두고 '괜한 짓 했다'고 하는 것이다.

프로농구가 이 정도면…

감독에 의한 여자선수 성폭행은 곳곳에서 벌어진다.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나이도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박 전 감독의 경우 참으로 운이 없다(?)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런 거다. 예를 들어 어느날 여자팀의 모 감독이 갑자기 그만둔다. 계약 만료일도 아니고, 옮겨갈 팀을 정해 놓은 것도 아닌데 '일신상의 이유'로 사퇴한다. 그 경우 대부분 성추문 문제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이번 박 전 감독의 경우도 처음 언론에 기사화 됐을 때 '일신상의 이유,' '돌연 사퇴'로 표현됐음을 잘 아실 것이다.

이번 피해자는 프로선수다. 그리고 농구는 아마도 국내 여자스포츠 중 사회의 관심과 언론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는 종목이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관심 밖'인 스포츠의 경우는 어떨까. 사실 여자선수들의 경우 비인기종목일수록, 후보선수일수록, 초년병일수록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문제가 당연하다는 듯 이어져 올 수 있었을까. 그렇게도 빈번한 문제인데 왜 이제야 알려지게 됐는가. 여기엔 무수한 공범들이 존재한다.

공범들, 그리고 침묵의 카르텔

도대체 왜 선수도, 그 부모들도 가만히 있냐는 질문에 한 체육계 인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일을 당하고 나면 선수도, 부모도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는 거예요. '큰일 났다', '이걸 어쩌냐' 고민도 하고 화도 내긴 하지만 정작 뭘 어째야 하는지 모르는 거죠. 그리고 이게 어디 소문 내고 다닐 일도 아니잖아요."

가해자인 감독 측은 사과하고 빌고 하면서 합의를 시도한다. 특히 감독은 이 문제가 '말 못할 고민'이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그래도 아이 운동은 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면서 피해여성의 미래 진로를 인질 삼아 약간의 협박성 발언을 살짝 섞어 넣는다. 그러면 부모들도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주목하는 또 다른 공범은 바로 기자들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상당수 기자들은 이 문제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를 기사화하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침묵의 카르텔이다. 몇 년 전 농구 아닌 종목의 한 여자팀 감독의 문제가 터졌으나 이는 기사화되지 않았다. 이름 꽤나 알려진 이 감독이 선수 가족과는 합의하고 기자들은 '입막음' 했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감독 및 구단과의 '공생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황에 따라 기사화 여부를 판단한다. 좋은 기사거리를 계속 얻기 위해서는 '좋은 관계'가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구속됐던 감독이 원 소속팀으로 복귀하기도

구단과 협회도 여기에서 빠질 수 없다. 구단은 성적을 내기만 하면 구타든 폭행이든 다 넘어가 준다. 이번에 우리은행도 '개인의 일'이라며 발을 빼고 있고 문제가 된 감독을 마땅히 해고했어야 함에도 그의 사퇴를 받아준 것은 참으로 은행답지 못한 짓이었다. 피해를 당한 소속선수 보호가 아니라 폭력감독을 보호한 것이다.

협회도 이번 일을 계기로 'WKBL 핫라인'을 개설해 이러한 문제들을 뿌리뽑겠다고 한다. 장담컨대 전화 한 통 놓는 그런 방식으로 뽑힐 뿌리는 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신고자의 신분과 프라이버시는 철저하게 보장된다'고 했다던데 역시 장담컨대 절대로 보장 안 된다. 애시당초 다들 한통속이고 공범들 아니던가.

체육계는 세상의 상식이 잘 통하지 않는다. 꼭 성폭력이 아니더라도 구타든 금품비리든 감독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어느 협회든 그를 '제명'시킨 경우를 필자는 보지 못했다. 구속됐던 감독이 원 소속팀으로 복귀하기까지 하는 게 바로 스포츠다. 박 전 감독의 경우도 벌써 팀 복귀 이야기가 들리는 상황이다.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게 바로 이곳이다.

또다른 문제: 감독은 남자만!

이번 사건과 맞물린 한국스포츠의 문제는 여성지도자의 부재다. 이제까지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딴 선수의 수는 남자나 여자나 다를 게 없다. 사실 명실상부한 세계최고는 여자선수들이 더 많다. 아마추어는 특히 그렇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표팀 감독들을 한 번 보자. 남자팀은 남자감독, 여자팀도 남자감독이다. 이제까지 여성이 여자대표팀 감독을 지낸 경우는 탁구의 이에리사 감독과 농구의 박찬숙 감독 정도다. 그나마 박찬숙 감독도 작년 감독을 맡은 후 곧 물러나야 했다.

실업팀과 프로팀도 마찬가지다. 한참 거스러 올라가 1983년 여자농구 청소년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던 박신자 감독이 한때 신용보증기금의 감독을 맡았었다. 또 최근 유영주 코치가 감독이 시즌 중 물러나자 감독대행을 맡은 경우는 있지만 현재 여자감독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여자팀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이 땅은 풍수지리에 문제가 있는지 여자감독은 씨가 말랐다.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메달도 따게 해주고 상금과 연봉까지도 줄 수 있지만 생계문제를 해결할 감독 자리만큼은 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여성지도자가 전무한 상황에서 여자선수들은 남자감독들에게 휘둘리게 된다. 또 감독뿐 아니라 구단, 협회, 기자들까지 몽땅 남자로만 포진한 상황에서 자신들의 고민을 털어 놓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통로나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자선수들은 울기만 하다가 다시 코트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박찬숙 전 감독이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은 이 절박한 상황을 담고 있다. "만약 박찬숙도 안 되면 후배들에게 무슨 희망을 줄 수 있을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한 여성이 용감하게 나섰다

이번 일을 공론화시킨 젊은 선수는 참으로 보기 드문 인물이다. 솔직히 체육계엔 강고한 침묵의 카르텔이 자리잡고 있고 이 아성에 도전하는 순간 도태된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증언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은 다 숨는다. 피해 당사자는 물론 은퇴한 선수들이나 지도자들도 나서지 않는다.

문제 없다며 토론회에 나서기로 했던 기자도 당일 '이유는 묻지 말라'며 못나가겠다 하고, 기자회견에 나오기로 했던 한 감독은 "저는 아직 협회랑 관계가 좋아서" 못 나오겠다고 내빼는 게 체육계의 '남자들'이다.

인권이 몰살당한 여성스포츠계에서 이 선수는 어쩌면 여성인 스스로에게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이번 사건을 향하여 정면으로 마주섰다. 몇몇 동료들의 차가운 눈초리조차 '이해한다'고 한다. 우리는 계속 그를 홀로 내둬야 하는가. 박찬숙 전 감독은 한 사람의 구속으로 이번 사건을 종결하려는 분위기가 있다고 경계한다. 그렇게 놔둬야 하는가.

그 선수가 한 이야기가 내 머리 속에 계속 남는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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