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23일 153개국의 인권현황을 담은 '2007 국제앰네스티 연례보고서'를 발행했다. 세계 각국의 인권상황을 정리한 앰네스티의 연례보고서는 국제사회에서 가장 신뢰받는 자료 중 하나다.
이 보고서에는 두 페이지에 걸쳐 한국의 인권현황도 소개됐다. 그 요약문을 살펴보자.
"국회에서 처음으로 사형제 폐지에 대한 법안이 논의됐다. 그러나 법안이 통과되기 위한 절차는 아무것도 진척된 것이 없었다. 이주민들의 노동에 대한 법규(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 2년이 지났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고 지난해 8월 현재 18만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구금되고 추방될 위기에 놓여있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에 의한 양심수들이 있으며 936명 이상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병역의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구금돼 있다."
앰네스티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한해동안 한국에서 '진전된' 사항은 사형제 폐지와 관련된 움직임이다. 지난 2004년 유인태 열린우리당 의원이 여야 의원 175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했던 사형제 폐지 법안은 지난해 국회 내 논의는 이뤄졌지만 아직 통과되지 않고 있다.
지난 22일 법무부가 발표한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NAP)에는 앰네스티가 지적한 사형제나 국가보안법, 양심적 병역거부 등에 관한 내용 자체가 누락돼 있는 상황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들 사안을 '민감한 쟁점'이라며 "향후 5년 동안 합의 결과나 연구 결과가 나오면 추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06년 앰네스티, 평택 대추리 인권침해 주목
또 이 보고서에는 '퇴거'라는 항목으로 미군기지 확장이전 예정부지였던 경기도 평택 대추리 주민들에 관해서도 언급돼 있다.
"2006년 2월 경기도 평택 대추리 마을주민들은 미국의 군사기지 확장을 위한 퇴거에 반대했다. 대부분은 60~70세의 농민들이었다. 그들은 다른 곳의 땅을 살 수 있는 보상금은 자신들에겐 아무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또는 이웃을 잃는 것에 대한 어떤 보상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수천명의 사설 용역이 동원돼 농부들의 집을 부쉈다. 시위 도중 수많은 농민들과 활동가들은 부상을 당했고 체포됐다. 공권력은 평택에 여전히 남아 살고 있는 40가구 남짓 되는 대추리 주민들의 투쟁을 철저히 억압했다. 보도에 따르면 주민들이 축출되기 전 이뤄진 정부-주민간 협상은 위선적이었으며 농민들의 요구는 반영되지 못했다고 한다."
이 보고서에는 지난해 평택미군기지 반대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된 뒤 지난해 11월 앰네스티에 의해 양심수로 지정됐던 김지태 이장에 대해 "자신들의 삶을 지키려는 농민들의 저항권을 지키기 위해 평화집회를 주도했던 그는 보석으로 석방됐다"고 밝혔다.
"경제성장이 반비례해 악화되는 인권…평택은 대표적 사례"
앰네스티 한국지부 고은태 지부장은 "한국은 현재 UN 인권이사회 이사국이며 UN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라며 "한국은 단순히 인권침해를 막는 것 외에 세계적으로 지도적인 국가로서 기능해주길 바라는 바람이 보고서에 반영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앰네스티가 지속적으로 한국에 사형제 폐지를 요구했던 이유는 사형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이 사형제를 폐지하는 것은 이웃나라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라며 "상식적으로 절반이 넘는 국회의원이 찬성하고 있는 법안이라면 통과돼야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계류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에서 굉장히 빠른 경제성장이 이뤄지고 있지만 그 결과로 오히려 인권이 악화되는 결과가 초래되고 있다"며 "앰네스티가 꼽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개발이라는 이유로 거주민들을 내모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나 자신이 앰네스티 활동을 시작했던 시기는 1982년이었고 그때는 누구나 인정할 정도로 한국 내 인권 상황은 심각하고 긴박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국제사회에서 달라진 한국의 위상만큼 정부와 사회가 국내 인권의 향상에도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심수 김성환 위원장, 내년 보고서에 포함될 듯
한편 지난 2월 국제앰네스티에 의해 양심수로 선정된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에 관한 내용은 이번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다. 앰네스티 한국지부측은 "김성환 위원장에 대한 조사가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구체적인 대처계획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포함되지 못했다"며 "내년 보고서에는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앰네스티 양심수인 김성환 위원장은 지난 2001년 삼성의 해고자들과 함께 삼성일반노조를 만들어 삼성과의 싸움에 나선 뒤 '삼성재벌 노동자 탄압백서'를 만들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다시 실형 5개월을 선고받아 현재 서울 영등포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공포를 이용한 정치', 그 선도국은 미국" "185개국이 여성차별철폐협약에 비준했다. 9개국이 서명하지 않았다. 1개국은 서명했으나 비준하지 않았다. 그 국가는 미국이다. 3명의 여성 중 1명이 평생동안 남자친구 또는 남편으로부터 학대당한다. 살해당한 여성의 50%가 현재 혹은 전 남자친구나 남편으로부터 살해당했다. 분쟁으로 인한 사상자의 70%는 전투를 벌이는 당사자가 아닌 여성과 아이들이다. 125만명의 사람들이 무기거래 통제를 요구하는 서명에 동참했고 153개 정부가 국제무기거래조약 설립 제안을 지지했다. 24개국은 기권했고 한 개 국가만 이 조약에 반대했는데, 그 국가는 미국이다. 128개국은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69개국만 여전히 사형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필리핀은 2006년 모든 범죄에 대한 사형을 폐지한 99번째 국가가 됐다." 국제앰네스티는 연례보고서에서 2006년 한해동안 벌어진 전세계 주요 인권침해를 이처럼 숫자로 정리해 표현했다. 특히 앰네스티가 정한 이번 보고서의 주제는 '공포를 이용한 정치'였다. 앰네스티는 "이는 전세계적으로 지도자들은 대중들로 하여금 공포심을 갖도록 고의적으로 선동하고 조작하는 것을 말한다"며 "이를 통해 국가는 인권을 침해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견고히 하며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법안을 도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앰네스티는 "대중들은 대부분 신체의 안전, 실직 등과 같은 현실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지만 몇몇 정치인들은 인권을 침해하는 전략과 법, 정책들을 독려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이러한 공포를 이용하고 있다"며 대표적인 인권침해의 온상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 아이린 칸 사무총장은 이날 보고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과 '특별인도조치'만큼 인권침해의 세계화를 잘 묘사하는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많은 국가에서 '공포'을 조장하는 정치적 안건이 차별을 가속화하고, '그들'과 '우리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간의 간격을 넓히고, 소외된 이들을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로 방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인류생존의 위협이 되는 지구온난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협력을 기반한 전지구적 행동이 요구되듯, 인권이라는 빙산이 녹아 인류를 위협하는 인권유린도 오직 전지구적 연대와 국제법 존중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앰네스티 보고서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앰네스티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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