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이후 3년 만에 치러진 남북노동자통일대회였다. 남측에서는 처음이었다. 나흘 간의 시간을 사진으로 돌아본다.
"북측 대표단도 안 오는데 우리끼리 인사라도…"
60여 명의 북측 대표단과 양대 노총 임원 및 조합원들은 만찬, 상봉모임, 축구대회, 축하공연 등을 함께 했다.
이번 대회는 지난해 9월 이후 완전히 틀어진 양대 노총의 첫 공동행사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남북 간 만남도 중요했지만 양대 노총 사이의 화합도 큰 의미가 있었다.
4월 30일 오전 10시로 예정됐던 남북노동자대표 상봉모임은 실무협의 마무리 문제로 북측 대표단의 입장이 늦어지는 바람에 10시 40분에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에 즉석에서 양대 노총 간 인사와 소개가 이어졌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북측 대표단에는 총 7명의 기자단이 포함돼 있다. 이들은 왼팔에 '기자'라는 글자 사이로 단일기가 그려진 완장을 차고 행사장 곳곳을 뛰어다녔다.
"찾아준 이는 떠났지만 땅 속의 이는 남았다"
북측 대표단은 나흘 동안 두 번에 걸쳐 남측 선혈들이 묻힌 묘역을 방문했다. 4월 30일 오전에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항거하다 목숨을 잃은 이들이 안장된 마산 3.15 국립묘지를, 노동절인 1일 당일에는 아침 일찍 김주익, 배달호 등 한반도 남쪽의 노동자들이 묻힌 경남 양산의 솥발산 노동열사 묘역을 찾았다.
북측 대표단이 나타는 곳이면 어디든 등장하는 환영인파
이번 대회는 지난해 6월 광주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 이후 1년 여 만에 남쪽에서 열린 민족공동행사였다. 그런 만큼 공식 '주인공'은 노동자들이었지만 창원 곳곳은 각지에서 모인 통일단체 및 청년들의 축제의 장과 같았다.
"에잇, 어느새 공이 지나갔네"
또 '축구'라는 대중적 스포츠는 창원 시민들의 관심을 끌기에도 충분했다. 남북 선수단은 4월 30일과 5월 1일 잇따라 경기를 펼쳤다.
남북대결에서 이긴 북측 축구 선수단의 감독은 "승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선수들만큼은 양보가 없었다. 공을 차지하기 위한 몸싸움 역시 곳곳에서 벌어졌다. 물론 넘어지는 선수가 있으면 서로 일으켜주기에 바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남북의 노동자들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2일 오전 헤어졌다. 내년 노동절에도 이들이 한 자리에서 노동자의 날을 축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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