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탈한 쿠바 의사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이런 반응은 의료법 개정에 반발하는 의료계의 집단휴진에 대한 시민들의 냉소와 맞물리며 더욱 증폭됐다.
하지만 이와 상반되는 반응도 만만치 않았다. "쿠바를 너무 미화했다"거나 "쿠바는 사회 경제적 여건, 체제가 전혀 달라서 한국이 시사점을 얻기는 무리다"는 등의 반응이었다.
쿠바 의료 기행을 연재한 홍조 씨 역시 이런 지적에 공감했다. 쿠바와 한국은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 있지만, 사회·역사적 기반도 아주 다르다는 것. 그리고 쿠바의 사례 역시 수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종의 공무원인 쿠바 의사들은 환자에게 종종 '촌지'를 받는다. 또 국가의 통제가 엄격한 사회가 흔히 그렇듯 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섬세한 배려가 적다.
쿠바 의료 기행 마지막 회를 싣는다. 이 글에서 홍조 씨는 "쿠바는 '지상낙원'이 아니다"고 이야기했다. '책과 논문을 통해 접한 쿠바'와 '직접 가서 본 쿠바'의 차이다. 하지만 수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홍조 씨는 쿠바 의료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는 편이다.
약자가 소외되지 않는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쿠바인들의 노력은 아직 꺾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꿈과 노력은 단지 쿠바인들만의 것이 아니다. 소외와 억압이 있는 사회라면 어디서나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지구 반대 편 나라의 이야기를 3주에 걸쳐 소개한 이유이기도 하다. <편집자>
건강은 의료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건강불평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건강불평등'은 빈곤한 사람이 건강을 더 많이 해칠 수 있다는 빈곤의 문제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을 받은 정도에 따라서도 건강의 정도는 평등하지 않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보다 적게 받은 사람들이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더 높다.
안정된 직장에서 생활하는 사람보다 실업의 위험에 노출된 사람들의 건강이 더 나쁠 확률이 높다. 성소수자라는 이유, 장애인이라는 현실, 이주노동자라는 상황이 더 많은 환자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적절한 교육과 안정된 고용, 경제적 안정도 건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라는 이유로 발생 가능한 차별적 대우도 한 사람의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한 사회의 건강정책의 방향은 비단 의료정책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쿠바의 장애인·노인·임산부를 위한 의료체계를 살펴보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쿠바 사회의 접근을 살펴보고, 더불어 쿠바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점심도 먹고, 치료도 받고
올드 아바나(아바나 비에하. 아바나 구 시가지)에 있는 노인재활센터의 노인들은 대부분 밝은 표정으로 낯선 동양인을 맞아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장애나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방문한 센터는 입원 없이 아침에서 저녁까지만 환자들을 돌보는 '낮병원(day-care)' 형태로 아침에 노인들이 와서 저녁까지 머물다가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이곳은 재활센터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국내의 OOO요양병원 등과 같은 재활시설과는 다른 점이 있다. 이곳의 주된 기능은 의료서비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점심 식사만 하러 오는 노인들도 있고, 장애를 가진 노인들이 쉬러 오기도 한다. 이곳의 노인들은 간단한 작업을 통해 만든 물건을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한다. 노인들은 이곳에서 의료서비스를 비롯해 다양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쿠바도 노령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질병을 가진 노인뿐만 아니라 건강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노인하우스'라고 불리는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의 '경로당'이라고 보면 적당할 듯하지만, 노인하우스는 건강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정기 진찰도 실시한다. 부양해줄 가족이 없는 노인들에게만 기초생활보장과 의료급여 혜택을 주는 우리 사회와는 다르다.
부양해줄 가족이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학적 치료의 필요 여부가 노인들에게 접근하는 기준이다.
저체중 출생아가 왜 적은가 했더니…
쿠바에서 방문한 산전관리센터에는 50여 명의 산모가 입원해 있었다. 고혈압, 당뇨, 빈혈 등의 질병을 가진 산모와 낮은 연령 혹은 고령의 산모들이 주로 있었고, 빈곤층의 경우 산모의 영양 상태를 고려해 우선적으로 입원시킨다고 한다.
쿠바에서 영유아 사망률이나 저체중 출생아의 비율이 낮은 이유가 바로 이러한 산전관리 체계에 있지 않을까. 쿠바도 전통적으로는 '산파(비전문가)'에 의한 출산이 주를 이루는 국가였다.
하지만 이로 인해 영유아 사망률이 급증하게 되었고, 혁명 후 출산은 대부분 전문가에 의해 이뤄지도록 체계를 바꿨다. 모든 진료와 처치는 무료로 제공되고 각 군마다 이와 같은 형태의 산전관리센터가 있다.
가난하거나 미혼모라도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돌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둔 것이다.
장애인 재활과 교육은 사회적 책임
장애아동재활센터도 사회통합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방문한 장애아동재활센터는 해당 군의 중증장애아동 전체(40명)를 포괄하고 있었다.
교육은 물론 의학적 재활프로그램도 갖추고 있었고 인근 유기농장에서 작업 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되어 있다. 쿠바 사회는 여전히 가족에 의한 아이들의 부양이 일반적이어서, 실제 재활센터 내에 장애아동의 부모가 직원으로 일하는 경우도 있다.
가족이 없는 장애아동의 경우에는 별도의 시설이 따로 운영되고 있었다. 또 5년 전부터는 장애아동의 어머니에게 이전 급여의 100%를 보장해 주면서 장애아동의 재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까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우리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령 뇌성마비 장애인은 지적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쿠바 사회에서도 역시 일반적이었다.
장애인 자립생활에 대한 실천적 노력도 부족해 보였다. 차이를 긍정하고 비장애인에 의존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정신적·신체적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려는 고민이 적었다.
북유럽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교육받는 환경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기에 효율적인 방법인지, 아니면 장애의 특수성을 고려해 장애인 전문교육기관을 선택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도 부족해 보였다.
쿠바는 자연스럽게 장애인/비장애인의 학교를 구분해 두고 있었고, 사회적 편견의 해소는 단지 언론매체를 통한 홍보에 국한돼 있었다.
쿠바의 한계, 남은 문제들
쿠바 사회는 사회적 약자의 건강과 사회적 안정을 위한 기본적인 틀은 마련해 두고 있지만 체계의 외형을 갖추는데 많은 노력을 쏟은 나머지 당사자들의 구체적 삶의 요구까지 고려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했다.
임산부의 산전관리에는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었지만, 이러한 잘 갖추어진 산전관리 체계가 쿠바의 높은 낙태율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출산방식에 대한 산모와 가족의 선택권도 없다. 영유아 사망률과 모성 사망률의 감소를 위해 정부에서는 전문가에 의한 출산을 강제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식이 주로 실행되고 있다.
서구사회에서 증가하는 제왕절개율의 빈도와 이와 관련된 이론적 근거를 무비판적으로 따라갈 가능성도 있다. 장애인 정책에서도 비슷한 문제들이 발견된다.
앞서 언급한 장애인 교육 문제뿐만 아니라 장애인을 돌볼 의무를 지나치게 가족에게 집중하는 경향도 문제다. 물론 쿠바의 가족 사회가 아직 전통적으로 3세대가 모두 어울려 사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비장애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립생활을 하길 원하는 장애인들의 요구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그뿐만 아니다. 현재 쿠바의 경제 이면에는 암시장이 있다. 경제위기 이후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암시장은 쿠바 경제를 왜곡시키는 주역으로 등장했다.
공장에서 생산한 물건들을 노동자들이 나눠가지고 몰래 내다 팔기도 한다. 또한 미국에 있는 친인척들로부터 들여오는 달러는 쿠바의 통화 정책을 왜곡시키고 있고 미국에서 들어온 물건들을 암시장에서 불법적으로 거래하기도 한다.
의료 서비스 영역 역시 마찬가지다. 어려운 경제적 사정 때문인지 의사들은 환자들로부터 '촌지'를 받는다. '촌지'를 주는 환자들의 수술을 우선해 주기도 한다. 암시장을 통해 미국에서 들여온 의약품의 매매가 이뤄지기도 한다.
쿠바 혁명은 현재진행형
쿠바는 튼튼한 1차의료 체계를 중심으로 한 무상의료 사회다. 국가 주도 하에 사회주의적 의료체계를 만들어 내기 위한 오랜 노력의 결과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들이 스스로 고민을 모아내는 노력은 오히려 부족해 보인다. 물론 마을 주민들과 정치적 문제까지 함께 토론하고 결정하려는 민주적 과정에 대한 노력은 있다.
하지만 국가의 통제 속에 이루어진 사회주의 혁명의 과정은 다양한 이견들과 소수의 목소리들을 모두 포용하지는 못했다. 동서를 양분하는 이념대립은 사회를 더욱 경직시켰을 테고, 미국의 오랜 경제봉쇄와 군사적 위협도 한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아 있는 문제를 덮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재 쿠바가 이룩한 성과는 훌륭하지만 갈 길은 아직도 멀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만이 유일한 승자라고 자처하는 세계적인 상황에서 쿠바의 실험은 변화의 '시작'을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그 '시작'은 매우 소중한 계기이자 가치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단지 쿠바 민중들만의 과제가 아니라 '또다른 세계'를 꿈꾸는 모든 이들의 몫일 것이다.
쿠바의 의료와 한국의 의료를 단선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쿠바와 한국의 사회·역사적 기반이 다르기 때문이다. 쿠바의 장점을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시각으로 쿠바의 의료제도를 함부로 재단할 수도 없는 이유다.
물론 쿠바 사회의 긍정성에 취해 찬양 일변도의 태도를 취하는 것도 위험하다. 또한 쿠바 사회의 이면에 있는 이중경제, 암시장, 관광산업의 문제를 들어 비난만 해서도 안 된다.
쿠바로 향하기 전, 쿠바와 관련된 몇몇 논문들과 책을 읽었다. 하지만 논문들과 책을 통해 만난 쿠바와 직접 가서 확인한 쿠바의 모습이 꼭 같지만은 않았다.
시가지에 넘쳐나리라 생각했던 도시 농업은 아바나 외곽으로 나가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었고, 유기농의 비율은 여전히 전체 농업의 20%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생태국가'라고도 불리지만, 1950년대에 나온 오래된 자동차들은 거리를 매연으로 가득 채우고 있고 공기정화장치도 없는 공장 굴뚝에서는 쉴 새 없이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쿠바는 '지상 낙원'이 아니다. 이 세상 어디엔들 '지상 낙원'이 있을 수 있을까. 쿠바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수 있다.
하지만 쿠바 사회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함께 보면서 나는 점점 쿠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나열할 자신감을 잃어갔다.
'한 움큼'의 자원을 가지고 이렇게나 노력하고 있는 쿠바 사람들의 모습에 감동했고, 그들에게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더 많은 고민을 왜 하지 않느냐고 질문할 만큼 우리 사회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쿠바 민중들의 혁명은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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