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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쿠바 의사들이 유난히 착해서라고요?"

가난한 이들의 의료 선진국, 쿠바를 가다 <2>

동네 병원의 '집단 휴진' 사태가 시작됐다. 21일 오후 2시 정부 과천청사 앞에서 열리는 의료법 개정 반대 궐기대회 때문이다. 집회 참석을 위해 5만여 명의 의료인들이 병원을 비웠다.

이날 집회는 대한의사협회와 치과의사협회, 한의사협회, 한국간호조무사협회가 공동으로 준비했다. 평소 '앙숙' 관계였던 의사 단체와 한의사 단체의 명칭이 나란히 있는 게 눈길을 끈다.

이런 이례적인 공동 행동을 가능했던 것은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인식이 같기 때문이다. 투약을 진료행위로 명시하지 않았고, 간호사의 업무에 '진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등 의료인 고유의 권한인 '진료권'이 침해당할 수 있다는 게 이번 투쟁에 나선 의료인들의 판단이다. (☞관련기사 보기 : 이번엔 '의료법 대란'…의사들 '반발' 속내는?)

하지만 이들의 집단행동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과거 벌어진 비슷한 집단행동이 대부분 그들이 내세운 명분과 달리 의료인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정부도 의료계의 집단행동을 그냥 지켜보지만은 않겠다는 태세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사협회 등에 집회와 집단휴진을 하지 말 것을 거듭 요청했으나 거절했다"면서 "일단 지방자치단체별로 행정조치를 결정토록 하되, 추후 휴진이 계속되거나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될 경우 정부 차원의 행정 조치를 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21일 집회를 주도하는 세력이 주로 '진료권 침해'를 주로 문제삼고 있는 탓에 잘 부각되지 않고 있는 쟁점이 있다. 의료계 주류와 다소 거리를 두고 있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등 보건의료단체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시민의 건강'을 목적으로 삼아야 할 의료 행위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시장원리 만을 강조하여 사회 경제적 약자의 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다고 비판해 왔다. 의사협회 등이 평소 주장해 온 것과 달리 이번 개정안이 공공성보다 시장원리를 우선하는 미국식 의료 체계를 지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의협 등은 이번 개정안에서 △의료법인의 인수·합병(M&A) △민간보험회사의 환자·병원 간 중계 허용 △민간보험회사와 병원 간 직접 계약 허용 △민간보험회사와 병원 간 환자 진료 정보 공유 등이 허용될 경우, '의료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가난한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의료 혜택이 점점 줄어들게 되리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미국식 의료체계와 다른 방식으로 의료 혜택을 제공하는 사회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공공의료가 발달한 유럽국가들, '무상의료'를 표방하고 있는 쿠바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주 소개한 쿠바 의료 현장 방문기(쿠바에서 진행된 '기적의 작전'), 두 번째 글을 싣는다.

쿠바는 "누구나 거의 무료로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나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너무 이상적이라 실감이 나지 않는다. 쿠바 의사들이 이윤을 싫어하는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아마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부작용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말도 종종 나온다.

하지만 직접 쿠바를 다녀온 의사 홍조 씨는 "우리가 쿠바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정책과 문화의 차이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한국 의료계가 지나치게 '미국식' 의료 체계만 모방하려 하는 데에서 빚어진 착각이라는 것이다. 그는 "죽을 사람도 살려내는 첨단 의술을 가능케 하지만, 정작 쉽게 살릴 수 있는 가난한 사람은 죽게 만드는 것이 미국식 의료체계"라며 "적은 비용으로 높은 보건 수준을 고르게 유지해 온 쿠바의 사례를 편견 없이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홍조 씨가 완전한 '공짜' 의료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사회적 비용을 '건강'에 투자하고, 소득의 많고 적음을 구분하지 않고 의료혜택을 나누려는 정책적 전환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다음은 홍조 씨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공짜' 의료, 쿠바에서 '도덕적 해이'를 찾아보자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료급여환자에게도 본인부담금을 내도록 하겠단다. 무료로 병원을 이용하는 의료급여 환자들의 대부분이 하루에도 수십 개의 병원을 방문하고, 수백 알의 약을 처방받아서란다.

'도덕적으로 해이'해서 '무료혜택을 남용'하는 의료급여 환자들이 보건의료 재정을 악화시키는 주범이라고 낙인 찍고 있다.
(☞관련기사 : 인권위 반대 의견 뭉갠 '유시민式 의료급여 개혁'
"유시민 장관, 네크라소프의 시를 기억합니까"
유시민, '빈곤층에 의료비 소액부담 부과' 강행
'환자가 문제인가, 병원이 문제인가?'…논란 확산
"유시민 장관, 당신의 기회주의가 슬픕니다" - '의료급여제도에 대한 국민보고서'를 읽고 )

같은 질문을 쿠바의 종합진료소에서 일하는 의사에게 던졌다.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무료라는 점을 악용해서 병원을 지나치게 많이 이용하지는 않나요?"

질문을 받은 의사는 한참을 고민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해서 다시 물었다. "한국에서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의료비를 무료로 제공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 사람들의 의료남용이 심각하다고, 나라에서는 돈을 부담시키겠다고 했답니다."

한참을 고민하더니 답한다. "아…. 쿠바에서, 아픈 사람은 의사를 찾아옵니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은 병원을 찾지 않아요. 저희는 모든 진료를 무료로 해주니까요." 무료이기 때문에 도덕적 해이가 심각하지 않다는 다소 생뚱맞은 대답을 듣고 말았다. 무엇이 이런 대답을 만들어 내는지, 쿠바의 보건의료 현실을 천천히 찾아가 보자.
▲ 왼쪽 사진은 아바나 구시가지에 있는 가정의사 진료소, 오른쪽 사진은 아바나 구시가지에 있는 종합진료소 모습. ⓒ홍조

보건의료 체계의 변화 : 1959년, 1990년 그리고

1959년은 쿠바가 혁명에 성공한 해다. 혁명 전 쿠바의료는 소수의 특권층을 위한 사적 의료체계, 국민 20% 정도를 포함하는 사회보험체계(우리의 건강보험처럼), 빈곤층을 포함하는 공공부조체계(우리의 의료급여처럼)로 구성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빈곤층은 낮은 질과 궁핍한 보건재정으로 혜택을 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혁명 후 상황은 급변한다.

혁명 후 쿠바의 국가보건 시스템은 '통합성, 평등한 접근성, 정부 주도'의 슬로건으로 집약된다. 대부분의 민간병원과 제약회사는 국유화되었고, 전국은 14개의 주와 169개의 시 단위의 건강지역으로 나뉘었다. 의사들의 손길이 닿지 않던 외딴 마을까지 다가가는 의료정책으로 재편된 것이다. 특히 의학교육을 집중 육성했다. 혁명 후 체제에 반대하는 3000명 이상의 의사들과 의대 교수들이 미국으로 떠났다. 결국 쿠바는 새로운 토양에서 새로운 의사들을 교육시켜야 했다.

1990년 갑작스런 소련의 붕괴와 동구권의 몰락은 쿠바의 상황을 참혹하게 만들었다. 석유, 음식, 기본적인 의약품은 미국의 강력한 경제봉쇄로 부족했다. 엑스레이와 실험실 진단 장비들뿐만 아니라, 소독약, 구급차, 심지어 의과대학 교과서도 수입이 중단된다. 국민들이 쓸 비누도 부족해서 사라진 질병들이 다시 창궐했다. 결핵환자가 늘어나고, 감염성 설사 환자들도 늘어났다. 필수 영양소 섭취가 부족하여 굶주려 죽는 사람도 늘어났다.

쿠바정부는 이 상황을 타개할 때까지를 '특별시기(special period)'로 선포한다. 그리고 전 국민들에게 함께 국난을 극복하자고 호소했다. 한국 역시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 비슷한 호소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호소 속에서 진행된 '금 모으기 운동'은 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허리띠를 졸라맸던 사람들의 빈곤은 더 심해졌는데 몇몇 재벌은 더 비대해졌다.

하지만 쿠바에서 진행된 국난 극복 노력은 달랐다. 육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도 남아 있는 우유를 아이들과 임산부에게 먼저 나눠주도록 했다. 미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군사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국방비 예산을 덜어내고 사회보장 예산지출을 늘렸다. 담배, 커피 중심의 획일적 농업에서 자급자족형 농업으로 변화를 시도했다. 다시 관광산업도 확장했다. 그리고 소련 중심의 대외무역에서 벗어나 다른 국가와의 무역을 시도했다. 부족했던 의료장비는 프랑스, 캐나다 등의 국가를 통해 들여왔다. 정부예산은 지속적으로 삭감되었지만, 교육과 의료의 예산은 그 삭감 폭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의사 선생님은 어디에 계세요?

아바나 인근마을의 가정집을 방문했다. 집 앞 거리에서 잠시 쉬던 중, 함께 있던 쿠바사람에게 의사 선생님은 어디에 사시는지 물었다. "바로, 저기 자전거 내리는 분이에요"라며 집 앞을 가리켰다.

청바지에 간단한 셔츠 차림의 의사는 집 주위를 살피다가 우리에게 눈인사를 했다. 딱! 인상 좋은 이웃 아저씨 같았다. 이 분과 같은 가정의사는 쿠바의사의 47% 정도를 차지한다. 아침에 진료를 시작하면 점심 때까지 보통 20여 명의 환자들을 진료한다. 오후에는 5~6곳의 집에 방문 진료를 간다. 쿠바에서 의사 1명이 만나는 지역주민은 160명 정도인데, 이는 도시와 시골을 모두 합친 통계라서 실제 시골의 경우 120명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가 의사 1인당 국민수가 630여 명이고, 미국도 390명인 것에 비하면 큰 차이다.

이 아저씨는 진료만 하지 않는다.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사소한 생활까지 다 알고 있다. 이 집에 가족은 몇 명이고, 하수도 시설은 어떤지, 소득원이 무엇이고, 소득은 어느 정도인지…. 적은 환자를 대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 사람의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경제적 궁핍이 원인일 수도 있고, 깨끗하지 못한 환경일 수도 있다. 작업환경도 중요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영향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아픈 사람의 '몸'만 봐서는 안 된다. 환자의 사회적/경제적 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쿠바 가정의사들의 경우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아바나 인근 마을에서 만난 의사 아저씨의 활동이 쿠바의 예방 중심 의학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몸이 아프고 나서야 병원을 찾는 치료 중심 의학이 아니라, 몸이 건강할 때부터 가정의사의 관리가 이뤄지는 것이다.

쿠바의 보건지표가 선진국 수준인 이유가 바로 가정의들을 중심으로 한 1차의료의 성과에 있다(아래표 참조).

한 나라의 보건의료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 흔히 쓰이는 것이 영아사망률과 기대수명이다. 표에서 보는 것처럼 쿠바의 기대수명과 영아 사망률은 선진국 수준이다. 비록 모성 사망률이 아직 높은 수치를 보이지만, 이 것도 멕시코 등의 인접 남미국가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또한 쿠바의료의 중요한 특징은 국가 주도형 의료라는 점이다. 1차의료 중심의 가정의사가 포괄하는 인구가 전체 국민의 99.2%를 이미 넘어 섰고, 국가가 아픈 사람들의 급여를 비롯한 생활을 보장해 준다. 역시 국가 주도형 의료이지만 대기환자의 숫자가 넘쳐나는 영국과도 다르다. 쿠바 가정의 진료소의 대기환자는 4명 이내이고 대기시간도 15분 안팎이다.

우리나라에는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을 찾기 보다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의료급여 환자들이 많다. 그럼에도 그들을 "도덕적 해이"의 주범으로 몰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1차 의료체계 안으로 포함하려는 쿠바정부의 예방중심 의료시스템이 아쉬운 현실이다.

"'무상'의료, 너무 이상적이잖아!"

쿠바의 모든 병원에서 이뤄지는 진료와 처치는 무료다. 미국의 경제봉쇄 이 후에 의약품의 공급이 부족해서 약을 구입할 때에는 일정 정도의 금액을 지불한다. 하지만, 노인이나 장애인들은 이마저도 무료다. 그리고 약값이 많이 들어가는 만성질환이나 중증질환자에게도 무료로 약을 공급한다.

어려운 국가 상황에서도 약자에 대한 보호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무상의료에 대한 다양한 실현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본다. '무상의료가 되기야 하면 좋지만, 이렇게 경제도 어려운데, 너무 이상적이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6분의 1이고, 1인당 보건의료 지출비가 우리의 절반인 쿠바도 하는 일을 우리는 못하고 있다.(아래표 참조)

쿠바는 경제봉쇄 시기에 대부분의 예산을 삭감하면서도 교육과 의료 등 사회복지관련 예산은 그 폭을 적게 했다. 심지어, 미국과 군사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도, 국방부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보건의료 지출을 늘렸다.

우리나라 국회에서 국방부 예산을 삭감하고, 사회보장예산을 올리자고 주장하면, 곧바로 휴전선 넘어 있는 북한과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를 문제 삼을 것이다.

하지만 보건의료 지출비율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점은 '나누는' 문제다. 쿠바는 미국에 비해 적은 돈을 보건의료 분야에 지출하고 있다. 하지만 보건지표의 수준은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

흔히들, 미국은 죽을 사람도 살릴 수 있도록 빠르게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는 나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신의료기술은 '돈 많은' 사람들만 접할 수 있다. 살릴 수 있는 가난한 사람은 죽이는 의료, 그것이 우리나라가 그토록 쫓아가는 '미국식'의료인 셈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사회가 어떤 가치를 우선에 두고 정책을 결정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공짜'의료는 이상적이지 않다. 적절한 돈을 '건강'에 투자하고, 소득의 많고 적음을 구분하지 않고 의료혜택을 나누려는 정책적 변환이 필요할 뿐이다.

쿠바 의사들은 게으르다그래서?

쿠바 의사들의 게으름을 지적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나라 의료처럼 민간 중심이 아니라, 공무원 신분인 의사들이 치료에 태만할 것이라는 이유다. 맞다. 쿠바 의사들의 태업(怠業)은 사실이다.

물론 대부분의 의사들은 적은 임금(생산직 노동자의 절반 정도)과 24시간 당직을 서는 등 높은 노동강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시골 가정의사들의 게으름은 드물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게으름을 피우는 가정의사들, 그/녀들은 매일같이 20여 명의 환자를 오전에 본다. 오후에는 5~6곳의 가정집을 방문한다. 120여 명의 지역주민 전체를 관리하는 데에 계산상으로는 1주일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녀들이 만나는 지역주민의 건강수준은 높다.

우리나라의 잘 되는 개인병원을 찾아가면,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1분 남짓이다. 1분마다 다른 환자를 대할 만큼 의사들은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국민들의 병원에 대한 불만족은 여전하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수익에 구애받지 않으며, 쉬엄쉬엄 환자의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을 살펴볼 여유가 바로 '태업'의 또 다른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쿠바 사람들이 아프면, 가까운 곳에서 의사를 찾을 수 있다. 다음 편에서 다룰 예정이지만, 굳이 아프지 않더라도 나이가 들면 쉴 수 있는 노인하우스 있고, 장애가 있으면 재활과 교육을 받을 센터가 곳곳에 있다.

물론 모든 시설의 이용은 무료다. 이런 쿠바 사람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질문하는 것은 지나치게 한국적 발상이다. 자신이 아플 때, 찾아갈 곳이 충분히 많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의료혜택을 '남용'할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 의료급여 환자가 아프면, 자신을 찾아 든 질병'만 걱정하게 되지 않는다. 혹시나 큰 병이면 돈이 많이 들지 않을까 두려워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쿠바보다 덜 착해서 의료 쇼핑을 하는 게 아니다.

그러면, 하루하루 벌면서 살기 힘든 지금의 삶이 더 힘들어지지는 않을까, 내가 아파서 가족들에게 부담을 주지는 않을까, 혹여 나쁜 병에 걸려 친구들이 나를 멀리하면 어쩌나…. 이런저런 두려움들이 그들로 하여금 무료진료를 남용하게끔 할 수도 있다.

나빠지기 전에 좋은 약 한 알이라도 더 먹고 싶어 하루에도 수십 개의 병원을 찾을 수도 있다. 소위 말하는 '의료 쇼핑'이다. 하지만 환자들의 두려움을 해결할 생각은 않고, 무조건 의료급여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의료남용을 하고 있는 의료급여 환자의 비율이 전체 급여환자의 얼마나 된단 말인가.

그나마 있는 사회안전망에서 그/녀들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가난'을 해결해줘야 한다. 또한 쿠바에서처럼, 사회가 구성원 한 명 한 명에게 아파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신뢰'를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공짜라서 환자들이 도덕적으로 해이하지 않고, 의사 숫자가 많아서 게으름을 피우는 나라, 쿠바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착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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