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대추리에 남을 '평화의 마음'들을 어떡하죠?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대추리에 남을 '평화의 마음'들을 어떡하죠?

[기고]대추리 '평화문화예술작품'들의 운명을 묻다

미군기지 확장이전 예정부지인 경기도 평택 대추리와 도두리. 지난 2월 이뤄진 주민-정부 간 이주 합의에 따르면 주민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오는 3월 말까지 이 마을을 떠나야 한다. 주민들은 임대주택으로 옮겼다가 2008년 10월 경 근처 노와리에 건설되는 공동이주단지로 다시 이주할 예정이다. 지난 2003년 미군기지 이전 발표 이후 3년이 넘게 자신들의 땅과 마을을 지키려 싸워 왔던 고령의 주민들은 가슴이 먹먹할 따름이다.

그간 주민들과 함께 투쟁해 왔던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문화예술인들은 이주 문제도 중요하지만 대추리에 남아 있는 문화예술작품들에 대한 대책 마련 또한 시급하다고 말한다. 지난 3년간 주민과 예술인들이 함께 만들어 왔던 작품들은 이제 '평화예술마을'이라는 별칭이 붙은 대추리 곳곳에 남아 있다. 이것들이 파괴되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아직 정부와 국방부로부터는 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없는 상태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인 송경동 시인이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왔다. 그는 "수많은 평화애호 세력들이 3년여에 걸쳐 함께 참여해 왔던 대추리 투쟁과 그 공간에 대한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보다 많은 이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문화예술인들은 오는 24일 오후 4시 대추리 농협창고에서 '대추리·도두리 헌정 반전평화 시산문선 <그곳에 마을이 있었다> 출판 기념 및 헌정식'에 참여해, 이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날은 935일째 마지막 평화 촛불문화제가 있는 날이다. <편집자>

대추리에 남겨진 외로운 '평화의 마음'들을 어떡하지요?

지난 3년여 동안 팽성읍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은 평택 미군기지 이전확장에 반대하며 싸워 왔습니다. 그러나 토지 강제수용에 이어, 대추리·도두리 일대를 준군사지역으로 설정하고, 농토에 철책을 설치하는 등, 준계엄지역에 가까운 압박을 가해 온 국방부와 정부의 강경한 대처에 급기야 힘을 잃고 이번 3월 말과 4월 초순까지 공동이주를 해가기로 결정된 상태입니다.

누가 가라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곳으로 갔다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은 그간 미군기지에 밀려 세 번의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맨손으로 바다를 메워, 농토를 만들었고,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평화롭게 살고 싶은 그들의 염원은 산산조각이 나 이제 다시 칠십 노구를 이끌고 낯선 곳으로 향해야 합니다. 그들의 축 처진 어깨 위에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이 바위덩어리처럼 얹혀 있음을 봅니다. 그들에게 평화를 안겨주기 위해, 늘 긴장의 먹구름이 감도는 한반도에 평화의 지대를 넓히기 위해, 그간, 3년여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평택지킴이 등으로 함께 해 왔습니다.

그 사람들 중 주요한 이들이 '들사람들'로 알려진 문화예술인들이었습니다. 노래의 한 구절처럼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음"에도 자발적으로 대추리, 도두리로 그들은 몰려 들었습니다. 장구와 북과 기타를 들고 왔고, 시인 소설가들은 펜을 들고 왔습니다. 미술인들과 만화가들이 붓을 들고 왔습니다. 굿패가 들어왔고, 시대의 춤꾼들이 들어 왔습니다. 반기는 이 하나 없어도, 누가 차비 한 푼 건네주지 않아도, 그들은 빈들에서 서서 그 땅의 평화를 기원하는 수많은 의식들을 치렀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마을이 세계 어디에 있었을까?

어느 틈에 마을은 평화문화예술마을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습니다. 황새울 벌판을 지키기 위해 '들지킴이(문무인상)'과 '미사일 솟대' 등이 들어 왔습니다. 대추분교를 지키기 위해 '전봉준 상'이 들어 왔습니다. 대추분교 유리창엔 주민들의 초상이 그려졌습니다. 농협창고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들도깨비'가 그려졌습니다. 마을 초입에는 '솔부엉이'와 인천의 '기차길 옆 공부방' 어린이들이 들어와 그린 '평화 염원벽'이 그려졌습니다. 빈 마을 벽에는 시인들이 들어와 벽시를 적고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삶을 그린 '가족'이 그려지고, 수많은 대추리, 도두리 농민들의 형상들이 아로새겨 졌습니다. 빈 벽에는 시인들이 시를 적고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만화가들이 들어와 벽화 작업에 동참했습니다.
▲ <들지킴이(문무인상)> / 장르 : 설치 (대나무) / 위치 : 도두리 들판 (대추리에서 도두 2리로 향하는 길) / 작가 : 최평곤 ⓒ들사람들

▲ <대추리 사람들> / 장르 : 벽화 / 위치 : 대추분교 / 작가 : 김성수 외 성남민예총시각매체위원회 10명, 이윤엽 외 수원 민족미술인협회 10명, 기타 등 총 30여명 / 작업일시 : 2006년 2월 / 비고 : 2006년 5월 4일, 대추분교와 함께 파괴됨. ⓒ들사람들

▲ <가족> / 장르 : 벽화 /위치 : 담배가게 건물 측면 / 작가 : 이윤엽 / 작업일시 : 2006년 2~3월ⓒ들사람들

모든 게 삶이었고 예술이었습니다. 대추리, 도두리엔 싸움과 갈등만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선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던 각종 문화의 향연이 벌어졌습니다. 삶과 일과 노동과 대지가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합일되어 내뿜는 그 건강한 삶의 향기에 우리는 어떤 꽃내음에 취한 것보다 더한 문화적 중독을 느꼈습니다.

밤마다 어둔 시대를 밝히는 평화의 촛불이 켜졌고, 날마다 춤과 연극과 풍물과 굿과 퍼포먼스와 노래가 울려 퍼졌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이 세계 어느 나라에 있었을까요. 너무도 영민하고 눈이 초롱한 별빛 같은 청년들이 아예 마을로 이사 들어와 농사일을 돕고 배워 나갔습니다. 국가가 내쫒지 않았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수많은 인류의 바램인 진정한 공동체의 문화와 가치를 실험하고, 만들어가는 새로운 인류의 일꾼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기성 언론들과 정부는 전쟁기지를 빨리 세워야 한다는 미명 아래 평택을 갈등과 공포가 있는 곳으로 주로 그려댔지만 실상 이렇게 대추리·도두리에서 일어났던 일은 그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평화의 공동체, 연대의 공동체, 나눔의 공동체, 사랑의 공동체에 대한 실험이었고, 그 에너지로 충만한 기쁨의 공동체였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진정한 삶의 소통과 교류, 연대와 협력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마치 지난 광주 5.18 도청 광장 앞에서 피어난 진정한 인간의 온기가 무엇인가를 배웠던 것처럼요.
▲ <'06 조국의 산하 - 깃발탑> / 장르 : 설치 / 위치 : 대추리 평화예술동산 / 작가 : 민족미술인협회 / 작업일시 : 2006년 4월ⓒ들사람들

▲ <우리들의 그리움은> / 장르 : 벽시 / 위치 : 마을 벽 / 작가 : 정희성 시, 류연복 쓰고 그림. / 작업일시 : 2006년 4월 / 작가약력 : 정희성 시인. 1945년 경남 창원 출생. 1970년 동아일보로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답청』『저문 강에 삽을 씻고』『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등이 있다. 1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았다. ⓒ들사람들

▲ <들꽃 1차 작업> / 장르 : 벽화 만화 / 위치 : 대추분교에서 영농단으로 향하는 길 / 작가 : 노동만화네트워크 '들꽃' / 작업일시 : 2006년 3월 / 비고 : 2006년 9월 13일, 빈집 강제철거 때 파괴됨. ⓒ들사람들

평화의 창조력은 '야만의 잔해' 위에 다시 꽃을 피웠지만…

그런데 정부와 국방부는 다른 무엇이 아닌 이것을 파괴하고자 했습니다. 빼앗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빼앗기면 안 된다 했습니다. 그런 평화의 마음이 갖는 창조력은 무서웠습니다. 국방부가 무참히도 무너뜨려버린 대추초교의 잔해는 다시 야만을 증거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설치미술품으로 태어났습니다. 대추초교를 대신해 버려진 공터가 어느 틈에 평화예술 동산으로 태어났습니다. 무슨 회의를 통해서 한 것도 아니고, 누가 돈을 내서 만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 '평화'가 깨어지면 안된다는 마음을 가진 어떤 이가 먼저 나서면, 어느 곳에선가 꿈의 정령들처럼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멀리 김해에서 잔디와 야생초들이 올라오고, 또 어디에서 나무가 올라오고, 옥잠화가 올라 왔습니다. 부서지고 내쫒겨진 사람들의 빈집에 굴러다니던 농짝문이, 서랍이, 어떤 생의 기억일지 모를 빛바랜 사진들이 모여 '마을 역사관'을 이루었습니다. 어떤 예술품들이 그런 진한 향기를 내뿜을 수 있을까요.
▲ <황새울 솟대> / 장르 : 설치 / 위치 : 대추분교 잔해 터 / 작가 : 최병수 / 작업일시 : 2006년 6월 ⓒ들사람들

▲ <대추리 사람들> / 장르 : (대추리 마을 역사관) / 위치 : 농협창고 앞 집 / 작가 : 이윤엽, 찬타 등ⓒ들사람들

그런데 이제 그곳에서 주민들이 쫓겨난다고 합니다. 합의라고 하지만 거대한 국가권력과, 그 뒤에 도사린 더 거대한 권력, 더 호전적이고 광폭한 권력, 미국의 힘에 맞서 육순의 칠순의 마을 주민들이 버틸 수 있는 힘의 한계는 분명합니다. 그들은 다시 쫓겨나는 것입니다. 저만치 뒤에 남아 '엄마, 아빠'하고 부르듯 가녀리게 서 있는 '평화'를 남겨두고 그들은 비통한 가슴을 누르며 쫓겨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평화'들은 외롭게 무너져가야 하는 걸까?

쫓겨나는 주민들을 배웅하며 외롭게 서 있는 '평화'들 속에 우리 문화예술인들이 작업해 온 수많은 벽시와 벽화, 설치미술품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의 운명은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가난하고 따뜻한 예술가들의 손을 통해 곱게 태어난 그들의 몸을 살륙할 손은 과연 어떤 것들일까요. 포크레인의 차가운 삽날?

기중기로 들어 때리는 뭉툭하고 둔중한 해머, 여의도에서 농민들의 머리를 찍고, 비정규직 건설노동자였던 고 하중근 씨의 머리를 박살냈을 그런 폭력 앞에서 이제 우리의 '평화'들은 외롭게 무너져가야 하는 걸까요. 다시는 이런 전쟁과 야만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는 태어나지 않고 싶다는 절규가 벌써부터 들리는 듯합니다.

우리 사회의 건강함을 지켜나가는 힘은 물론 국가권력과 자본에게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오늘도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힘써 일하는 양심적인 시민사회에서 나오지 않는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그런 건강한 시민들이 대추리의 마지막을 함께 보아주기를 바랍니다. 대추리에서 우리가 소중히 보듬어 내 와야 할 것과 보존되어야 할 것들이 어떤 마음이며, 어떤 물상들인지를 판단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파랑새> / 장르 : 설치 (대나무) / 위치 : 대추리 평화예술동산 / 작가 : 최평곤 / 작업일시 : 2006년 4월 ⓒ들사람들

▲ <대추리 아메리카 2> / 장르 : 설치
/ 위치 : 황새울 영농단 사거리쪽 들판 앞 / 작가 : 최병수 / 작업일시 : 2006년 5월 ⓒ들사람들

시민 여러분! 대답해 주세요

굳이 거론치 않더라도, 문화예술품은 그 시대의 음과 양을 골고루 다룹니다. 갈등과 화해의 현장을 모두 담습니다. 우리는 헌법을 통해서 이런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과거 사회 갈등의 시기에 불법으로 취급당했던 작품들이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 등 유수한 기관들에 의해 중요한 현대사의 문화예술 자료로 전시 보관되고 있습니다. 전쟁 시기에도 문화예술품들은 함부로 파괴되지 않습니다.

우리 문화예술인들은 무엇보다 주민들의 새 터전으로 그 '평화'의 마음들이 함께 옮겨지기를 바랍니다. 물론 포크레인 삽날에 무너져 내려도 좋습니다. 그런 죽음까지를 우리는 기억할 테니까요. 그런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 우리 후세들에게 물려질 것이니까요. 그런 무너져 내린 아픔이 우릴 또 어딘가에 서 있게 만들테니까요.

정녕, 이 '평화'의 마음들을 이 국가와 국방부는 어떻게 할 셈이지요? 시민 여러분! 정녕, 이 '평화'의 마음들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대답해 주세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