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평화와 야만, 이 모두를 기억하기 위해'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평화와 야만, 이 모두를 기억하기 위해'

[르포] 평택 대추리 마지막 대보름 잔치

"같이 싸워준 사회단체들, 실망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금 이 고장을 떠나야 된다는 결론을 내고 난 다음, 주민들 가슴도 무너졌다. 그러나 우리는 이곳을 떠나더라도 대추리의 이름은 그대로 짊어지고 간다. 대추리 명칭도 그대로 갈 것이고, 주민들은 그곳에서도 함께 뭉쳐 평화운동을 펼칠 것이다."

지난 주말 경기도 평택 대추리에선 마지막 대보름맞이 행사가 열렸다. 3일과 4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이번 행사에 그간 사회단체 소속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투쟁을 함께 해 온 일명 '평택 지킴이'들과 마을 주민이 한자리에 모였다. 3일 저녁 열린 914일째 주민 촛불문화제에서 마을주민인 방승률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마이크를 잡는다며 지킴이들에게 말했다.

"900일이 넘도록, 우리가 그간 투쟁해 온 목적을 끝내 달성하지 못하고 정부에 손을 든 이 시점까지 잊지 않고 찾아줘서 고맙다. 지킴이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너무나 잘 안다.

주민들이 그토록 단합하고 버텨 왔지만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재기불능이었다. 정부와 협상하자, 대신 우리 지역에 와서 혹독한 공권력과 싸우다가 투옥되고, 벌금을 내게 된 사람들을 살려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더라도, 우리를 위해 투쟁해준 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길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방 할아버지는 마을주민들이 정부와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 2월 13일, 대추리 주민들은 정부와 이주에 합의했다. 이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오는 3월 말까지 마을을 비워야 한다. 미군기지 확장이전을 반대하며 4년간 자신들의 마을과 논밭을 지키기 위해 싸워 오던 주민들의 복잡한 심정은 마을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씨앗을 심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렇게 이제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우리는 쫓겨나니 어떡 하누."

3일 오후 하나둘씩 지킴이들이 마을로 들어오자 이를 보던 한 주민은 씁쓸한 듯 말했다. 30명 남짓 모인 지킴이들은 이날 오브제(Objet) 꾸미기, 완두콩 심기 등 여러가지 활동을 진행했다.

"씨앗을 심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작년 9월 대추리에 들어와 텃밭에다 채소를 심고, 그 싹이 자라는 걸 보는 와중에 빈집철거가 진행됐다. 내가 심은 채소가 있는 텃밭에 전경들이 군홧발로 밟고 다니는 걸 보니까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심어본 사람은 절대 그렇게 못한다. 얼마나 그들이 무감각하고 폭력적인지 느꼈다. 오늘 온 지킴이들에게 씨앗을 심으라고 하는 것도 그런 마음을 갖고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7월부터 대추리에 들어와 살고 있는 조약골 씨는 완두콩 심기 행사를 열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함께 작업을 하고 있던 재미교포와 외국인들 역시 대부분 처음 경험해보는 '농사일'이었다.

완두콩을 심는 밭 바로 옆에서는 마늘밭에 덮어뒀던 볏짚을 거두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지난 겨울 심어놓은 마늘에 싹이 난 모습을 보던 지킴이들은 연신 "신기하다"며 탄성을 질렀다.
▲ 완두콩을 심고 있는 평택 지킴이들 ⓒ마리아

▲ 볏짚 사이로 돋아난 마늘싹 ⓒ프레시안

"버려진 물건들 보며 다시 한번 안타까웠다"

오브제 활동에 참가한 지킴이들은 한 시간 남짓 마을을 산책하며 폐품과 마른 가지 등을 모았다. 프로그램을 맡았던 지킴이 전진경 씨는 "생각보다 작품들이 잘된 것 같다"며 웃었다.

"이 마을에 있는 버려진 물건, 폐허가 된 잔재들을 가지고 미술 활동을 해볼 생각을 했다. 대추리라는 상황적 특성이 있지 않나. 물건과 잔재를 모아서 의미를 담아 무언가를 만들면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 제안했다. 작품을 만들 때보다 주우러 다니며 마을을 한번 더 둘러봤던 시간이 더 의미가 컸다. 씁쓸해지기도 하고, 안타까워지기도 하고…."
▲ 대추리 마을 곳곳에는 지난해 9월 빈집철거 당시 부서진 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프레시안

▲ 마을에 남은 잔재를 이용해 만든 작품들. 파즈(Paz)란 스페인어로 '평화'라는 뜻이다. ⓒ프레시안


▲ 촛불문화제가 끝난 뒤 평택 지킴이들은 대추분교 운동장에 미리 쌓아둔 장작에 불을 붙였다. 하루 앞당긴 대보름 맞이 달집태우기였다. 지킴이들과 마을 아이들은 커다란 원을 그리며 강강수월래를 했다. 주민들은 먼 발치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프레시안

"사진으로라도 남기기 위해"

다음날 아침, 지신밟기에 앞서 노순택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의 단체사진 촬영시간이 있었다. 대추리와 도두리를 기록한 사진으로 잘 알려진 노 작가는 이날 하루종일 주민들의 전담 촬영기사를 맡았다.

"표정 너무 무서우니까, 좀 웃으세요. 만세 한번 해볼까요?"

어색해하는 주민들 앞에서 평택 지역에서 온 풍물패 단원들, 그리고 지킴이들이 한껏 흥겨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제 마을의 상징이 된 파랑새, 그리고 넓게 펼쳐진 논이 배경이 됐다.
▲ 이제는 미군기지가 될 자신들의 논밭을 뒤로 하고 단체사진을 찍은 대추리 주민과 지킴이들 ⓒ프레시안

"아쉬움, 답답함, 분노…모두 잊지 못할 것"

단체사진 촬영 이후 노인회관을 시작으로 마을에 남아 있는 40여 가구를 방문해 복을 기원하는 지신밟기가 시작됐다. 한껏 가라앉은 분위기는 아침부터 내리는 비 때문만은 아닌 듯 했다.
▲ 지신밟기를 하고 있는 풍물패. 이날 유독 많은 카메라와 캠코더가 지신밟기 행렬을 쫓았다. ⓒ프레시안

"이 마을 때문에 내가 미칠 것 같아. 어이구."

전북 익산에서 미사를 끝내고 점심 무렵 도착한 문정현 신부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지신밟기 분위기가 예년과 달리 흥이 나지 않는다며 긴 한숨을 쉬었다. 지난 2004년부터 대추리 주민들과 함께 봄을 맞았던 문 신부였다. 이날 그는 디지털 캠코더를 손에 들고 지신밟기 행렬을 좇으며 마지막 대보름 잔치를 기록했다.

대추분교에 살다가 지난 5월 행정대집행 때 가장 먼저 마을에서 쫓겨났다던 이날 지신밟기의 상쇠 송영민 씨 역시 "분위기가 예전과 같을 수 있겠냐"고 안타까워했다. 대추분교에서 '평택 두레 풍물 보존회'를 이끌며 악기를 가르치던 그는 당시 자신의 집이기도 했던 대추분교를 부수는 경찰에 항의하다가 두 달간 구치소에 갇혔다고 한다. 그는 주민들이 이주해가는 마을에 다시 풍물학교를 열 것이라고 말했다.
▲ 마을 주민들은 "이 땅에 평화 깃들게 해주소", "아들 장가가게 해주소"라며 소원을 빌었다. ⓒ프레시안

이날 모인 평택 지킴이들은 오는 3월 한달간 평택의 상황을 알리고 미군기지 이전의 부당성을 지적하기 위한 행동을 계속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피스몹 등 적은 인원으로도 할 수 있는 행동들이 제안됐다.

한편 이들은 오는 3월 말 경 '대추리를 잊지 말자'는 주제로 또 한번의 지킴이 행사를 연다. 아직 대추리 들판에 남아 있는 볍씨들을 모아 다른 곳에 옮겨 심는 등 대추리의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행사를 열 예정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