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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김명호 교수에 공감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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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나는 왜 김명호 교수에 공감했나"

<기고>시민의 눈으로 본 석궁사건과 그 이후

최근 발생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석궁사건'은 현직 부장 판사가 소송당사자로부터 피습을 당한 '초유의 사태'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지만, 누리꾼 등을 중심으로 피습사건의 가해자인 김 전 교수에 대한 동정론이 지배적이라는 점은 더 큰 충격이었다.

김 전 교수를 재임용에서 탈락시킨 대학 당국의 결정과 이를 법적으로 정당하다고 판단한 사법부의 결정에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같은 의문은 초기엔 누리꾼들을 중심으로 인터넷을 통해 확산됐지만, 이제는 전국교수노동조합,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학술단체협의회 등 학술단체들의 성명서를 통해서도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석궁사건' 자체를 옹호할 수는 없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학, 학회, 교육부, 사법기관 등에 만연한 집단 이기주의와 보신주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시민'들은 대학과 법원의 결정에 승복할 수 없었나. 집단화된 대중들의 성급함이나 우매함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곰곰이 되짚어야 할 문제다. 소설가 김곰치 씨가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를 지적하는 글을 보내와 소개한다. <편집자>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서울고등법원 박홍우 부장판사를 향해 석궁의 화살을 쏜 것은 1월 15일 저녁의 일이다.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던 중 석궁에서 화살이 발사됐다'가 더 정확한 사건의 설명일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사건으로부터 열흘이 넘게 지났다.

처음에 '엽기적인 사건이 발생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사건 발생 이틀 만에 이정렬 주심판사가 법원 내부통신망에 재판 과정을 소상히 알리는 글을 올렸고, 그 글의 전문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휴직을 하고 미국에 있을 때 김 교수 사건을 이미 알았고 귀국 후 고등법원으로 발령이 나며 우연히 사건을 맡게 된 개인적인 소회를 밝히는 것으로 시작되는 그의 글은 나름대로 무척 귀한 고백이라고 생각된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딱딱한 법률언어가 아니라 안타까움과 답답함, 분통과 착잡함이 담긴 '인간의 말'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김명호 교수의 석궁 사건에서 사법부 사람들도 충격을 받았고, 또 무엇보다 명백한 범법행위를 저지른 김 교수를 두고 시중의 여론이 압도적으로 동정하는 것에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담당 재판의 주심판사로서 느꼈을 인간적인 곤혹스러움이 공감되지 않는 바도 아니었다.

날짜가 틀려 소송을 기각시킬 수도 있었다고요?

그러나 내가 박홍우 재판부와 더 나아가 사법부의 현실 전체에 대해 의문에 빠져든 것은 어쩌면 그 글 때문인지 모른다. 예를 들어 그 글에는 '재판 중에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라고 털어놓으며 갑자기 김 교수가 언제 재임용에서 탈락했는지, 그 정확한 날짜를 따지는 대목이 나온다. 1996년 3월 1일이냐, 2월 29일 또는 3월 4일이냐. 즉 김 교수의 '청구취지' 문서에 재임용거부 날짜가 틀려 있다는 것이고, 이 판사는 이 사실을 근거로 소송을 종결시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판결문 작성에 고심하던 주심판사는 "웃음이 나올 만한 상황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 판사는 "원고가 느꼈을 억울함과 받았을 고통을 감안해 청구취지 문서의 날짜가 틀린 것을 '다툼 없는 사실'이란 간단한 표현으로 정리해 원고에게 갈 불이익을 막아줬다"고 밝혔다.

주심판사가 공개한 이 에피소드는 김 교수를 재판부가 나름대로 배려했다는 주장의 한 사례로 보인다. 그러나 고작 이것이 재판부가 원고에게 보인 대표적인 배려라고 한다면, 이 에피소드는 박홍우 재판부가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나 홀로 소송'에 나선 원고를 얼마나 냉담하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짐작하게 하는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날짜 하나가 잘못된 채 소송이 제기됐다고 김 교수의 청구를 기각해버릴 수 있었고, 또 판결문 작성에 신경이 곤두선 상황에서 그런 유혹마저 느꼈다는 것으로도 읽히는 것이다. 이번 김명호 교수 재판에서는 그러지 않았지만, 법관 1인당 맡는 사건 수가 하루 평균 3~4건에 이를 정도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여러 골치 아픈 소송을 두고, 특히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도 못하고 피곤하고 귀찮기만 한 소송의 경우, 어쩌면 이런 단순한 법리의 문제로 당사자의 인생이 걸린 소송을 기각시켜버린 일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을까? 특히 변호사 없는 '나 홀로 소송'의 경우 더 그런 유혹을 받지 않을까? 나의 일방적인 의심이길 바란다.

석궁사건 후 나타난 제자들의 안타까운 증언

주심판사는 여러 인터뷰에서 기자들이 판결문을 읽지도 않고 기사를 썼다고 원망하기까지 했다. 박홍우 재판부의 판결문을 읽어보면, 김 교수라는 존재를 '학자'와 '교육자'로 가르고, 교육자의 측면을 '쟁점'으로 따졌다.

판결문에 등장한 많은 사례와 증언들만 접하면, 김 교수가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의 복잡성을 경험한 대개의 성인이라면, 재판부가 인정한 김 교수의 비상식적인 발언 몇 가지는 '막걸리 보안법' 수준의 증거에 불과함을 알 것이다.

교육자의 측면이 정당한 쟁점이 됐다고 하더라도 석궁피습 사건이 발생한 후 비로소 나타난 김 교수의 다른 제자들의 증언을 듣노라면, 교육자적 자질을 따진 이번의 판결문은 설득력을 잃는다. "교육자로서도 김명호 선생님은 훌륭하게 처신했다." 이것이 새로 나타난 김남식, 박민정, 현종석, 박한일 씨 등 당시 제자들이 하는 안타까운 증언이다.

주심판사는 "재판부는 대리인이 선임되어 있지 않는 당사자에 대해 법률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당사자에 대한 후견적 입장을 견지하여 왔다"고 하고, "원고는 법정에서 그다지 조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리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로선 믿기 힘들다. 김 교수의 개인 홈페이지에서 1인 시위 일지를 읽노라면, 그는 법정에서 재판부와 사사건건 팽팽하게 다툰다. 특히 변론 녹음을 둘러싼 신랄한 설전은 재판부와 김 교수 사이에 형성된 감정적 관계에 대해 많은 것을 짐작케 한다.

김명호 교수의 1인 시위 일지는 어떤 의미에서 무척 놀라운 텍스트다. 특히 내가 깜짝 놀란 것은 재판 과정 내내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그의 당당한 태도다. 그는 감히 재판장에게 "이 사건의 쟁점은 파악하셨습니까"라고 공격적으로 묻기까지 한다.

'사회에서 불의한 일이 생겨 해결이 안 될 때, 재판부에 옳은 판결을 구하는 것은 국민의 당연한 권리다'라는 신념이 있지 않고서는 그의 당당함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너무나도 옳은 신념이지만, 이것을 현실에서 거의 본 적이 없어 그의 1인 시위 일지 속의 재판 속기록은 마치 '시민 불복종'의 고전적인 한 사례를 보는 것 같은 신선한 감동을 준다.(재판부는 녹음 신청을 허용하지 않았다. 속기록은 김 교수의 메모와 기억에 의한 것이다.)

우리는 권력과 자본에 너무 주눅 든 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재판 과정에서 보여준 김 교수의 태도는 오히려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서운 국민이 되지 않고서는 현실의 유의미한 변화는 불가능하다. 배심제 등 미국 민주주의 제도가 시민 불복종, 시민 저항에 기인한 것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이같은 주장을 증명해 준다.

개개인이 '무서운 국민' 돼야 현실의 변화가 가능하다

박홍우 부장판사도 아이들의 한 아버지일 테고, 누군가의 귀한 자식일 텐데, 평온한 퇴근길에 정신이 나간 듯한 괴한이 되어 불쑥 나타난 담당 재판의 원고를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그리고 배에 화살까지 맞았다. 박 판사는 그야말로 피 튀기는 무시무시한 봉변을 당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는 그가 별로 측은하게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화살 맞은 상처가 잘 아물고 있다 해서 걱정이 되지 않는 탓이겠지만, '최후의 국민저항권을 행사했다'는 김 교수의 안타까운 주장에 자꾸만 온 마음으로 슬퍼진다. 그날 저녁 그 현장의 단순한 행동만 따지면 김 교수가 범죄를 저지른 것이 분명하지만, 현장의 단순한 행동 하나만 따지는 법적 어리석음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자유롭다.

김 교수의 제자들이 새로운 증언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김 교수의 재임용거부 사건은 석궁 사건과는 별개로 대법원에서나 국회의원의 진상조사로 다시 진실을 규명해야 하지 않을까. 현실 사법부와 교육계의 해묵은 문제를 노출시키며 건강한 개혁의 에너지가 몰려들 것이다. 법지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법정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소통 가능한 인간의 말들이 오가며 보다 폭넓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사건의 인과를 따지는, 그야말로 사람이 주인이 되는 재판의 제도적 개선도 이참에 힘껏 도모할 일이다.

재임용 탈락으로 10년 이상의 세월이 허공에 날아갔지만, 김명호 교수가 '엄정한' 재판 속에서 명예회복을 하고 인생의 남은 시간을 수학자로서 꽃피우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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