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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석궁사건'에서 7년 전 기억을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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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명호 석궁사건'에서 7년 전 기억을 떠올리다

[기고] 前 서울대 김민수 대책위 활동가의 시각

최근 '석궁 테러'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범행을 저지른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를 옹호할 수는 없다. 그런데 김 前교수를 동정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그동안 사법부가 힘 있는 이들의 편만 들어 왔다는 인식이 팽배한 까닭이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교수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 前교수의 항소심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김 前교수의 '학자적 자질'은 인정했다. 문제가 된 것은 '교육자로서의 자질'. 재판부는 이와 관련하여 "'학생의 교수·연구 및 생활지도에 대한 능력과 실적, 교육관계법령의 준수 및 기타 교원으로서의 품위유지'라는 기준에는 현저하게 미달된다"며 "원고(김 前교수)가 재임용 기준에 적합하지 아니하다고 판단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온라인 상의 여론만 놓고 보면 이런 판결에 수긍하지 않는 쪽이 훨씬 우세하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주요한 이유지만 '교육자로서의 자질 미달'이 교수 재임용 탈락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반발도 섞여 있다. 대학 교수에게 '학자적 자질'외의 자질을 다른 전문직 종사자보다 굳이 더 엄격하게 요구해야 할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다. 교수가 가르치는 대상인 대학생들은 대부분 민법 상 성인이며, 초중등 교사와 달리 교수가 생활지도의 책임까지 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반발은 과거 성희롱이나 연구비 유용 등 현행 법에도 어긋나는 행동을 한 이들이 대학의 교단을 지킨 선례들 때문에 더욱 힘을 받았다. 설령 김 前교수의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것이 교수 직을 박탈해야 할 수준이라도 애당초 그가 학교 당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았더라면 문제가 되지 않았으리라는 판단이 만만치 않게 상존하고 있다. 결국 '교육자적 자질'이란 척도가 편의적으로 사용되고 있지 않느냐는 지적인 것이다.

그러나 김 前교수가 '교육자'인 이상 "교육자적 자질이 부족하다"는 법원의 판결을 가볍게 무시할 수도 없다. 논란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이런 시점에 과거 서울대에서 발생한 김민수 교수 재임용 탈락 사건을 떠올린 이가 있다. 현재 고려대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며,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재학 시절 '김민수 교수 원직복직을 위한 학생 대책위원회' 활동을 했던 조남운 씨다. 조 씨는 김 前교수 사건과 과거 김민수 교수 사건이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닮은 점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서울대 디자인 학부 김민수 교수의 경우, 학교 당국은 1999년 '연구실적 부실'을 이유로 재임용 탈락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그가 과거 선배 교수들을 비판적으로 언급한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더라도 재임용에서 탈락했으리라고 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재임용 탈락에 공식적인 이유와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김명호 前교수 역시 법원이 판시한 교수 재임용 부적격 사유는 '교육자적 자질 미달'이었지만 김 前교수가 1995년 성균관대 입시 본고사 문제의 오류를 지적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재임용에서 탈락했으리라고 보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승소하여 원직복직에 성공한 김민수 교수와 재판부가 '교육자적 자질'을 부정해서 복직에 필요한 법적 정당성을 얻지 못 한 김 前교수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다.

이런 여러가지 공통점과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7년 전 서울대에서 벌어진 김민수 교수 사건, 그리고 사건 당시 주변 사람들이 보였던 다양한 반응은 지금 김 前교수 사건을 놓고 벌어지는 논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이런 이유로 18일 언론을 통해 공개된 판결문(관련기사 보기: [판결문 전문]"학문 A등급 받아도 교육자로는 부적격")을 접한 조 씨가 보낸 글을 소개한다. <편집자>

내가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한 1998년이었다. 그 해 여름 내가 다니던 대학의 한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사건이 있었다. 석연치 않은 이유였는지 그 교수가 속한 미술대학 학생회가 학교 곳곳에 대자보를 붙이고 플래카드를 걸었다.

하지만 나는 별 관심없이 지나쳤다. 그리고 반년이 지났다. 미대 학생회의 대자보들은 어느새 사라졌고,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그 사건은 사라지는 듯 했다. 다만 어디에선가 그 교수가 계속 강의를 하고 있다는 말만 얼핏 들었던 것 같다.

연극 공연 준비하며 접한 김민수 교수 사건

당시 나는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1999년 봄 공연을 준비하는 자리에서 한 선배가 그 교수의 사건을 소재로 연극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그 연극의 대본을 쓰는 일이 내게 맡겨졌다.

이것이 내가 '김민수 교수 원직복직을 위한 학생 대책위원회'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였다. 당시에는 몰랐다. 교수 재임용 문제에 내가 그토록 오랜 시간을 쏟게 되리라는 것을. 그때부터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까지 학생 대책위원회, 그리고 김민수 교수와 함께 싸웠다. 다시 6년이 지난 2005년, 대학원생이 된 나는 김민수 교수가 원직복직됐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서울대 산업디자인과 재직 중 '연구실적 부실'이라는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미술대학의 원로교수를 비판적으로 언급한 인용이 포함된 논문이 학술대회 발표문에서 갑자기 삭제된 후 소속 학과 교수들과 관계가 악화된 것이 원인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반발 여론이 일었지만 미술대학의 원로 교수들, 그리고 대학당국은 개의치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반발도 거의 수그러들었다.

소속 단과대학도 다르고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이던 김민수 교수의 재임용 탈락 문제에 내가 뛰어든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싸움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

유신정권 시절 만들어진 재임용 제도, 입맛에 안 맞는 교수 거르는 필터

대학의 교수 직위는 종신 고용제로 운영된다. 즉 한 번 정교수가 되면 정년이 될 때까지 대학 당국이 해임할 수 없다. 이런 전통은 학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다. 학내 연구자가 학교 당국이 원하지 않는 연구를 하더라도 함부로 압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아예 종신 고용을 못박는 것이다.

하지만 정교수가 되려면 교수들은 수년 간 몇 단계의 심사과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조교수 기간을 거친다. 그리고 조교수는 '재임용 심사'를 통해 계약을 연장한다. 즉 일종의 비정규 고용 상태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재임용 심사에서 연구실적을 채웠음에도 탈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김민수 교수는 서울대 역사상 연구실적을 채웠음에도 탈락한 최초의 사례였다.

재임용 제도는 유신정권 시절 만들어졌다. 이 재임용 제도라는 필터를 통해 학교당국이나 권력을 쥔 교수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교수들은 걸러져 나오게 된다. 억울하게 재임용에서 탈락한 경우 피해자들은 소송을 하기 마련이다.

재임용제도가 생긴 이래 수십 건의 부당한 재임용 탈락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판례는 전부 학교의 재임용 심사 내용은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승소도 패소도 아닌 것이었지만, 사실상 패소나 다름없었다.

나는 '김민수 교수 원직복직을 위한 학생대책위원회'의 일원으로 활동했지만, 법적으로 승리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자신할 수 없었다.

김명호 사건에서 김민수를 떠올리다

그런데 2005년 1월 교수 재임용 제도에 대한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내려졌다. 학교의 재임용 심사 내용은 사법적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같은해 법원은 김민수 교수에 대해서도 원직 복직 판결을 내렸다.

2005년 헌재 판결, 김 교수의 승소 등을 거치며 나는 억울한 재임용 탈락을 낳은 대학가의 관행에 이제 제동이 걸리겠구나 하며 안도했다.

그런데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소위 '석궁 테러' 사건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전 성균관대 수학과 김명호 교수가 현직 판사에게 석궁을 발사해 살인미수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이다.

문제의 발단이 된 것으로 알려진 수학 문제의 전제가 틀렸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성균관대 당국조차 사실상 인정했다고 보아야 한다. 전제가 틀렸다는 지적이 나온 뒤 대학 측이 제시한 '수정 답안'의 요지는 전제가 틀렸으므로 전제에 해당하는 진리집합은 공집합이고, 따라서 준 명제는 참이라는 것이다. 전제가 틀렸다는 지적을 임기응변으로 덮어버린 셈이다.

문제의 전제가 잘못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학계도 동의했다. 이런 자명한 사실을 인정하기 위해 수학계의 석학까지 동원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자연계열 고교생이라면 쉽게 그 문제의 전제가 틀렸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명호 교수가 본고사 문제의 오류를 총장에게 보고하고 나서 며칠 뒤 수학과 교수들은 김교수에 대한 징계요구서를 제출했는데, 그 근거가 '해교행위'와 '논문 부적격'이었다고 한다.

틀린 문제를 지적하고 그 문제를 만점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재학생 본교진학 방해', '입학시험 채점시 배타적 태도', '공개적인 타교수 비방'(인용부분은 징계사유로 수학과 교수들이 지적한 사항이라고 한다)으로 받아들여진 모양이다. 누가 보아도 보복적 인사조치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결국 고등학생도 파악할 수 있는 자명한 사실을 지적한 김명호 교수는 이후 부교수 승진평가에서 두 차례 부적격 판정을 받고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

'찍힌 교수'를 내쫒는 전형적인 과정…주위의 침묵도 닮은꼴

이런 과정은 김민수 교수가 재임용에서 탈락할 때와 너무나 흡사하다. 당시 선배 교수에 대한 비판적 내용이 각주로 간접 인용된 것이 문제시되면서 김 교수의 논문이 학술대회에서 사전통고도 없이 누락하는 사건이 터졌다. 이어서 1997년 서울대 산업디자인과가 실기 중심학과로 개편됐다. (김민수 교수는 디자인 이론 전공 교수였다). 그리고 김 교수는 '연구실적 부실'이라는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알고 보니 이 모든 과정이 재임용 심사 제도를 이용해 '찍힌 교수'를 배제하는 전형적인 과정이었다.

닮은 점은 또 있다. 주위 사람들의 침묵이 그것이다. '김민수 교수 원직복직을 위한 학생대책위원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정작 당사자라고 할 수 있었던 미대 당국과 산업디자인과 학생들은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관심도 없어 보였다는 것이다. 재임용 탈락 이후 일정한 시간이 지난 탓이었겠지만 미대는 완전한 침묵 그 자체였다.

당시 유일한 공식적인 반응은 (재임용을 거부한) 학교의 의사를 지지한다는 미대 대학원생들의 연서였다. 그 후 아무도 그 사건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물어보려 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 김민수 교수의 재임용 탈락 당시 재학 중이던 학생들이 졸업하고 나니, 미대 학생들은 그 사건에 대해 아예 내용도 잘 모르게 됐다.

미대 학생이 학생대책위원회와 함께하게 된 것은 사건이 발생하고 3년 뒤였다. 그것도 사건 당시 재학 중이지 않았던 학생들뿐이었다. 그나마 김민수 교수가 재직했던 산업디자인과 학생은 거의 없었다. (산업디자인과 학생회장이었던 두 학생과 익명으로 지지 성명서를 제출한 한 학생만이 계속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동했다.)

왜 사건의 핵심에 있는 사람들은 침묵하게 되는가? 그것은 그 사건에 대해 침묵하지 않으면 김민수 교수처럼 도태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다.

재임용 심사를 통한 조교수의 계약 연장 여부는 대학 당국과 현재 재직중인 해당 학과 교수들이 판단한다. 이런 구조 때문에 재임용 심사를 받아야 하는 교수들은 판단권자의 판단이나 행동에 문제가 있더라도 비판을 할 수 없다. 미대의 침묵은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결국 김민수 교수의 원직복직을 가능하게 했던 힘은 미대 밖에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필요할 때만 제기되는 인간성 문제

18일 언론에서 김명호 전 교수 사건에 대한 판결문을 접했다. 이 내용을 보니 당시 김 전 교수가 지적했던 문제는 정당한 것이었고, 학교가 보복성 인사를 단행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말과 행동, 업무처리방식, 제자로부터의 평판이 좋지 않아 재임용 결정이 타당하다고 판결한 모양이다.

김명호 교수 당사자를 아는 사람도 아니고 성격이 어떤지는 더욱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상식적으로만 생각해봐도 정당한 문제 제기에 대한 보복성 인사를 학교가 단행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문제가 되는 것 아닌가? 백번 양보해서 김명호 교수가 인간적인 결함이 심각하다 하더라도 입시 수학문제 사건 이후의 보복성 징계와 연구실적 재평가(흠잡을 데 없다고 평가받은 논문이 그 사건 이후에 같은 평가자에게 부적격 판정을 받게 된다)는 문제시 되어야 하며 무효화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이런 인성 문제가 제기되는 것 조차 김민수 교수 때와 너무나 흡사하다. 김민수 교수가 재임용에 탈락되고 한동안 미대 안팎에서는 김민수 교수의 '인성'에 관한 문제들, 교육자로서의 자질 문제들이 비공식적으로 흘러나왔다. 언제나 이런 인성에 관한 잣대는 필요할 때만 매우 정교하게 들이밀어진다.

대학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학과마다 한두 명쯤은 교육자로서의 자질과 인성이 의심되는 교수들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아무도 그들에게는 김민수 교수나 김명호 전 교수에게 적용된 잣대를 들이대지 못한다. 심지어 서울대 신정휴 교수의 경우처럼 법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성희롱 교수의 연구권, 교수권도 보장해 줄 정도로 관대한 것이 한국 교수사회다. 그런데 대학당국은 수학문제가 잘못 출제되었다고 말한 교수에게는 재임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성과 교육자적 자질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전제부터 잘못된 사회, 우리의 삶은 과연 진실인가

결국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나서야 나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눈을 뜨게 됐다. 폭력에 대해서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가 12년 전에 성균관대 당국과 수학과 교수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배제되었던 그 사건에까지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교육당국이 대학 측의 재임용 심사에 대한 전횡을 적절히 규제했더라면, 사법부가 2005년 헌재 판결의 취지에 걸맞는 판결을 내렸더라면 없었을 사건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교수의 임용에 관한 제도는 학문의 자유를 위해 설계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학문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 김명호 전 교수 사건의 발단이 된 1995년 성균관대 본고사 문제와 닮았다. 전제부터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전제에 바탕한 제도를 따라 살아간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과연 '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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