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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사는 경제대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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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사는 경제대국 대한민국"

[화제의 책] 홍성태의 <현대 한국사회의 문화적 형성>

OECD 가입 10주년을 맞은 한국은 이제 경제 규모상으로는 세계 10위권에 드는 국가가 됐다. 경제대국이란 말이 손색없어 보인다. 그러나 막상 한국에 살고 있는 이들이 체감하는 한국 사회 현실은 '선진국'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상지대 홍성태 교수(참여연대 정책위원장)는 이런 한국을 '기형국가'라고 표현했다. 황우석 사태, 월드컵, 학벌사회의 문제 등 1998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쓴 글 중 일부를 엮어낸 <현대 한국 사회의 문화적 형성>(현실문화연구 펴냄)은 이런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그는 '기형국가' 한국의 문제를 무엇이라고 보고 있을까?

"양극화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잘못 쓴 탓"

"쥐어짜기식 경제성장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이제 한국은 이런 식의 경제성장으로는 선진국가를 이룩하기 어려운 분기점에 직면해 있다."
▲ ⓒ프레시안

지난달 31일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홍성태 교수는 박정희식 경제개발은 이제 한국의 발전에 통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오히려 경제성장은 '고용 없는 성장' 단계에 접어든 한국이 선진국가로 가기 위한 작은 변수일 뿐이라는 것이다.

홍 교수는 현재 한국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은 '문화'라고 말했다. 그가 여기서 말하는 문화란 여가나 예술행위의 수준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이자 의식수준을 아우르는 '삶의 질'이다.

"어떤 사람들은 박정희식 독재가 경제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경제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독재정치는 사회에서 통하지 않게 된다. 경제성장이 사람들의 생활과 의식을 자유주의적 성향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박정희 정권은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사람들의 자유를 계속 억눌렀다. 그에 대한 사람들의 거센 저항은 필연적이었다."

따라서 그는 현 정권의 인기 추락과 열린우리당 참패가 경제성장에 따른 사회문화적 변화를 못 읽어낸 데 원인이 있다고 봤다.

"한국이 아직 가난한 나라일까? 열린우리당이 선거에서 줄줄이 참패한 요인이 정말 경제를 못 살렸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열린우리당이 해야 될 일을 안 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일은 박정희식 고도성장이 아니라 질적으로 수준 높은 사회를 만드는 일, 다시 말해 실질적 선진화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잘못 쓰고 있어서 양극화가 심화된 것이다. 또 이제껏 추진해 왔던 민주화를 더욱 진척시켜야 했다. '노풍'과 '월드컵'은 한국이 다양한 의견들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민주화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러나 현 정권은 이를 경험하고서도 스스로에게 부여된 역사적 과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참패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린 대가다."


"토목공사 정책은 '삶의 질'을 이중으로 훼손한다"
▲ ⓒ프레시안

홍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한나라당이 얻고 있는 인기가 '역사적이고 시대적인 요구'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것은 착각이라고 꼬집었다.

"한나라당이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실패한 여당에 대해 '비판' 때문이지 정책 때문이 아니다. 지난번 지방선거에 나왔던 거의 대부분의 한나라당 후보들은 공통적으로 토목공사를 통해 지역경제를 부흥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대선 주자로 나서고 있는 현 한나라당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토목공사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방식이 아니다.

토목공사는 이중적으로 삶의 질을 직접 훼손한다. 환경파괴로 인해 '삶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불필요한 사업에 돈을 쓰다 보니 복지는 더 형편없게 된다. '삶의 질' 문제가 절실한 한국에서 성공하기 힘든 정책이다.

일례로 한나라당 대권주자 중 한 사람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주장하는 경부운하를 짓는다고 일자리가 늘어날까? 턱도 없는 소리다. 막대한 돈을 투자하는 토목공사에서 이득을 보는 이들은 인구 중 1%밖에 되지 않는 개발업자와 투기꾼들뿐이다. 속이 드러나 보이는 정략적 판단이다."




홍 교수의 말에 따르면 현재 국민들 원하는 것은 경제수준에 걸 맞는 성숙한 정치와 정책이다. 하지만 지난 몇 번의 재보궐 선거에서 개발 공약을 앞세운 보수주의 세력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역시 그는 '삶의 질'의 관점에서 설명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아직 척박한 문화라는 것을 보여준다. 양극화와 생태위기로 대표되는 한국의 척박한 문화가 곧 정치에 투영되고 있다."

"젊은 보수주의는 인권의 문제"

그는 한발 더 나아가 현재 한국의 보수주의는 기성세대의 '시대착오적 발상'과 젊은 층의 '인권 문제'가 맞물려 있는 문제라고 진단했다.

"세대적 차이에 주목해야 된다. 20~30대의 보수주의는 기존 한국의 지배적인 '정치적 보수주의'와 다르다. 민주주의를 유보하거나 억압할 수 있다는 독재적 성격을 지닌 한나라당의 보수주의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새롭게 나타나는 '젊은 보수주의'는 그들과 달리 민주주의를 거부하지 않는다.

젊은 보수주의는 일상적 삶에서 보수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들은 경제적인 면에서 성장과 안전을 희구한다. 왜? 신자유주의적인 경쟁과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면서 실업이 악화되고 복지는 엉망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행태다. 요즘 젊은이들이 현실에 영합했다거나 한나라당이 '젊은이들이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착각이다.

난 젊은 보수주의는 인권의 문제라고 본다. 젊은이들에게 좀 더 안정적인 길을 제공해줘야 한다. 그렇다고 성장제일주의가 해법일까?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에 그것은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홍 교수가 제시하는 '선진국가'가 되기 위한 길은 어떤 것일까? 그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현상들을 엮고 있는 구조를 주목하라고 지적했다. 그 구조란 그가 이 책의 제목으로 내건 '문화적 형성'이란 말과 동의어이기도 하다.

"구조적인 변화가 절실하다. '삶의 질'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기존의 성장주의를 극복하고, 일반적인 복지를 확충하고, 토건국가를 해체시키는 것이 내가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장기적인 목표다. '삶의 질'이라는 개념이 들어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는 형식적인 논리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성장이냐 분배냐를 떠나서 생태와 복지확충으로 나아가는 구조적 개혁, 시대적 요구는 한나라당조차도 거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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