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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청계천은 거대한 '시멘트 연못'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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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청계천은 거대한 '시멘트 연못'일 뿐"

[청계천 바로보기 2] '이명박식 신개발주의'와 청계천의 불행

청계천에 관한 보도로 거의 모든 언론이 야단법석이다. 그럴 법도 하다. 도심에 이런 열린 공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시가 진작부터 다양한 홍보물들로 서울을 도배하다시피 했는데 이제 언론들마저 나서서 서울시의 주장을 대대적으로 선전해주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과연 이래도 좋은 것인가? 이런 식으로 청계천은 '이명박 대세론'의 희생물이 되고 마는 것인가?

***"가난한 사람들의 '피'가 흐르는 청계천"**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말미암아 두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2년 9월에 60대 노점상이 자살했고, 다시 2004년 4월에 50대 공구상이 자살했다. 청계천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사람 목숨보다 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목숨을 끊은 두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은 왜 자살했는가? 무엇이 그들을 자살로 몰고 갔는가?

죽은 두 사람이야말로 청계천의 사람들이었다. 열심히 사는 가난한 사람. 그러나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 사업은 이런 사람들을 위한 사업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이명박 시장에게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라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던 것이다. 그들은 목숨으로 이명박 시장의 '불크레인' 정책에 항거했던 것이다.

<사진1> 청계천 옛 풍경

이렇듯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며 이루어진 사업이기에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 사업은 더욱 더 올바로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 사업에 '복원'은 없었다. 그것은 '복원'을 빙자한 '개발'이었고 '파괴'였다. 600년 역사를 간직한 둑이 하루아침에 없어져 버렸고, 어렵사리 남아 있던 영조 때의 호안석축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이명박 시장이 누차 원형복원을 호언했던 광통교의 유구조차 600년 동안 지켜왔던 자리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막무가내로 쫓아내고 지주와 개발업자들에게 막대한 불로소득을 안겨주는 거대한 파괴적 개발사업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벌써 돈 썩는 내가 진동해서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 사업을 지휘했던 양윤재 부시장은 감옥에서 청계천 물길이 열리는 '쇼'를 보게 됐다.

***"청계천은 거대한 '시멘트 연못'일 뿐"**

어처구니없게도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 사업 때문에 이제 청계천의 어디서도 청계천의 오랜 역사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오직 이명박 시장의 천박한 신개발주의가 요란하게 자기 자랑하는 볼썽사나운 꼴만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명박 시장의 신개발주의는 역사와 자연의 복원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박정희의 구개발주의와 구분된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몰아내고 지주와 개발업자의 막대한 불로소득을 추구한다는 점, 역사와 자연의 복원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역사와 자연을 뭉개는 개발을 강행한다는 점,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청계천을 이용한다는 점, 시민과 전문가의 의견에 귀를 막는다는 점, '들러리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 등에서 이명박 시장의 신개발주의는 구개발주의와 다르지 않다.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원 사업은 이 사실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이다.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에 물이 흐르니 잉어가 찾아오고 오리가 찾아든다면서 자랑한다. 청계천에 깨끗한 물이 흐르게 되어 청계천이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계천 개발 사업의 완공식에 '청계천 새물맞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청계천에 새물이 흐르게 된 것을 축하하는 행사라는 뜻이다. 나는 이명박 시장과 서울시의 잉어 타령, 오리 타령을 보면서 미국 의회의 앞마당을 떠올렸다. 시멘트와 돌로 포장된 그 넓은 마당 복판에 커다란 시멘트 분수 연못이 있다. 그곳에서는 오리는 물론이고 갈매기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곳을 생태적으로 살아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사진2> 청계천 옹벽

시멘트 연못에서도 얼마든지 잉어를 기를 수 있고, 그곳에도 얼마든지 오리가 찾아들 수 있다. 그러나 시멘트 연못은 시멘트 연못일 뿐이다.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은 본질적으로 시멘트 옹벽에 갇힌 시멘트 수로이다. 조경업자들이 열심히 풀을 기르고 옮겨 심어서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시멘트 옹벽 사이에 여러 풀들을 심어서 옹벽을 그럴 듯하게 치장하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다. 그저 돈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청계천을 예전과 같은 생명의 텃밭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생태적 재생은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 조건을 만들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청계천의 진정한 생태적 재생은 결코 이명박 시장의 임기 내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청계천으로 흘러드는 각종 지류들을 되살리는 것과 원래 청계천을 이루고 있던 둑이며 둔치며 바닥들을 되살려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파괴된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서로 연결된 넓은 지역의 복원을 추구해야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거대한 시멘트 옹벽과 인공 둔치와 비닐 바닥이 설치된 청계천은 '복원'된 것이 아니라 '파괴'된 것이다. 그런 곳에 한강물을 흐르게 해서 청계천이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본래의 흙과 물을 살리지 않고 어떻게 청계천이 살아났다고 할 수 있는가? 오리가 청계천인가?

***"이명박의 '신개발주의'는 박정희의 '구개발주의'보다 더 큰 문제"**

이명박 시장은 '새물맞이'를 외치고 있다. 도대체 이명박 시장이 주장하는 '새물'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한강물이다. 전기 모터를 돌려서 멀리 있는 한강물을 거꾸로 퍼 올려 청계천으로 다시 내려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반역사적이며 반자연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것이야말로 이명박식 청계천 복원 사업의 파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라고 할 만하다.

애초에 태조 이성계가 서울을 조선의 도읍으로 정할 때 청계천이 한강과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런데 이제 한강물을 퍼 올려 청계천으로 내려 보내니 이것은 그 자체로 청계천의 역사를 크게 훼손하는 것이며, 또한 한강물을 퍼 올리기 위해 매년 몇 억 원의 전기세를 내가며 막대한 전력을 써야 하니 생태적 전환의 요청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다. 청계천에 청계천의 물이 아니라 한강물을 억지로 퍼 올려 흘려보내면서 '새물'이라고 주장하고, 청계천이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역사문화분과의 의견을 완전히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자연환경분과의 지적도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에 참여한 시민단체의 대표들과 중요 전문가들은 이런 이명박 시장의 문제에 항의해서 2004년 9월 16일 결국 시민위원직을 사퇴했다.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를 구성해서 그 의견을 좇아 올바른 청계천 복원 사업을 하겠다는 것은 이명박 시장의 공약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 그는 시민의 대표기구로 만들어진 시민위원회의 뜻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이명박 시장의 잘못은 청계천 복원 사업을 빙자해서 청계천 개발 사업을 벌였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잘못된 것을 올바른 것으로 알게 하는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역사와 자연을 파괴하기는 쉬워도 되살리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복원보다도 보존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시장은 복원을 내걸고 개발을 했을 뿐만 아니라 어렵게 보존되어 있던 유적과 유구들조차 심각하게 파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원을 이루었다는 그의 주장은 수많은 매체들을 통해 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그 결과 역사와 자연을 파괴하고 쉽게 되살릴 수 있다는 반(反)역사적, 반(反)생태적 태도가 널리 조장되고 있다. 파괴는 파괴의식을 낳는다. 이명박 시장의 잘못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크다.

이 점에서 이명박식 신개발주의는 박정희식 구개발주의보다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구개발주의는 자연을 파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 문제는 명백하게 드러났다. 그러나 신개발주의는 쉽게 되살릴 수 있다고 주장하며 구개발주의보다 더 심하게 파괴한다.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개발 사업은 그 생생한 증거이다.

<사진3> 시민단체

***"'용꿈' 때문에 청계천 역사 유적 밀어버린 이명박 시장"**

그런데 이명박 시장은 어떻게 해서 신개발주의의 기수가 되었을까? 무엇보다 명백히 확인할 수 있는 이유는 역사와 자연에 대한 그의 천박한 의식이다. 그는 2004년 봄에 <미디어 다음>과 가진 인터뷰에서 "수표교와 광통교를 빼고는 청계천에 무슨 역사 유적이 있느냐"는 놀랄 만한 발언을 했다. 그를 비판하는 박경리 선생의 글에 대해서는 "누가 대신 써 준 것"이라는 망발마저 내뱉었다. 한마디로 '무지'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이런 발언들에서 우리는 그가 청계천 개발을 청계천 복원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그는 개발독재 시대를 대표하는 개발업자인 것이다. 아무리 역사와 자연을 외쳐도 그는 박정희나 정주영으로 대표되는 낡은 시대의 인물이지 결코 새로운 시대의 인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만으로 이명박 시장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잘못일 것이다. 실질적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이명박 시장이 청계천 개발 사업을 대통령에 도전하기 위한 정치적 발판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청계천 개발 사업의 일정 자체가 그 좋은 증거이다. 이명박 시장은 취임 1주년을 맞아 청계천 개발 사업을 시작하도록 했으며, 퇴임을 10개월 정도 남겨둔 시점에서 완공되도록 했다. 이런 식의 시한을 정해두고 역사 유적의 복원을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일 뿐더러 2년의 시간은 600년 역사를 간직한 거대한 역사유적 청계천의 복원에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이명박 시장에게는 청계천의 복원이 아니라 청계천의 이용이 더 중요했다. '청계천에서 청와대로'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거니와 이명박 시장은 나름대로 시대의 흐름을 포착한 청계천 개발 사업을 최대한 이용해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에 사로잡혀 있다.

<사진4> 벽화 설명하는 이명박

누가 무슨 꿈을 꾸건 그의 자유다. 그러나 그 꿈 때문에 서울을 대표하는 역사유적이 완전히 없어진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누구도 자신의 꿈을 위해 서울의 역사유적을 없앨 권리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 '염불보다 잿밥'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욕심이 많은 것을 비판하는 말인 동시에 욕심이 앞서서 뜻을 그르치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말이야말로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개발 사업에 딱 들어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청계천 개발 사업을 제안한 이희덕, 노수홍 교수를 비롯해서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에 참여했던 대다수 전문가들과 시민단체의 대표들은 이명박 시장에게 뜻을 이루려면 올바른 청계천 복원을 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충고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충고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사람인가 하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청계천 개발 사업은 이명박 시장의 '거대한 족쇄'가 될 것"**

이명박 시장의 신개발주의로 청계천은 그 역사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복개 구조물과 고가도로에서는 해방되었으나 청계천의 불행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 복원을 공약한 시장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파괴이기에 어쩌면 청계천은 지금 더 불행할지도 모른다.

이명박 시장은 최근에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문화 시장'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참 이상한 사람이다. 역사유적 청계천을 현대식 수로 공원으로 개발하고, 그 주변 지역을 테헤란로와 같은 초고층 지역으로 개발하고자 하고, 심지어 '경부운하'라는 끔찍한 생태파괴 사업을 꿈꾸는 사람이 어떻게 '문화 시장'을 꿈꾸는가? 보호종인 맹꽁이의 서식지를 밀어 없애고 시민사회에서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거대한 '오페라 하우스'를 지으면 '문화시장'이 되는가? 그는 '불도저 시장'으로 악명 높은 김현옥보다 더욱 더 거대한 개발사업을 밀어붙인 '불크레인 시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금 이명박 시장은 청계천 개발 사업을 노둣돌로 여기고 그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그러나 복원사업을 빙자한 개발 사업은 결코 노둣돌이 될 수 없다. 그것은 그의 거대한 족쇄가 될 것이다. 역사에서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는 결코 통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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