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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은 스스로 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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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은 스스로 낫는다

김철의 '몸살림 이야기'〈69〉두뇌 ④

두뇌가 중심인가: 잘못된 가설
  
  현대의학에서는 두뇌를 동물의 신경계를 통합하는 최고의 중추(中樞)라고 본다. 그러면 이런 사실이 증명된 적이 있는가? 안타깝지만 증명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실은 그렇게 생각하고 가정하고 있는 것인데, 그러한 생각과 가정을 기정사실화하고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전에 문화 성향에 대해서 한번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서양의 모더니즘 문화의 산물일 뿐이다.
  
  그리스 시대에는 제우스신을 중심으로 많은 신이 있다고 믿었다. 이들 신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믿고 신전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 현대의학은 이와 똑같이 신화를 바탕으로 해서 성립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고대 시대가 아니라 근대 시대에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내고 그것에 대한 믿음에 의지해서 성립되고 있다는 것 정도가 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현대의학은 일종의 이데올로기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스스로 이데올로기라 하지 않고 있고 사람들도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데올로기로 인정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현대의학은 자신을 '자연과학적 의학'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거의 전체가 이런 가정을 전제로 해서 성립돼 있다. 자연과학, 간단하게 줄여서 과학이란 자연현상을 연구의 대상으로 하는 과학이다. 인간의 몸도 자연의 산물이므로 당연히 자연과학의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 분명히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사회적 현상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자연에서 진화한 존재로서 자연현상을 보이고 있다. 생명체로서 자연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과학적인 연구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자연과학적인 연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자연과학으로 성립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가설로 내세우고 있는 전제가 입증돼야 한다는 것이다. 입증되지 않은 가설을 전제로 학설을 전개시키면 그 학설 전체가 위태로워지지 않을 수 없다. 가설이 허물어지면 학설 전체가 무너지는 것이다. 관찰을 통해서든 실험을 통해서든 가설은 진리=사실임이 입증돼야 한다. 뉴턴 이래 과학은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입증함으로써 가설을 '법칙' 내지는 '원리' 로 승격시켰다. 그 법칙 내지는 원리로부터 또 다른 법칙 또는 원리가 도출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자연과학은 '확실한 지식'으로서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그러나 현대의학은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입증하지도 않고 그로부터 또 다른 원리를, 그리고 그로부터 또 다른 원리를 도출해 냈다. 현재 현대의학의 방대한 체계는 이렇게 입증되지 않은 가설에 의존해서 세워져 있다. 현대의학은 자신이 세운 가설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브레이크 없는 벤츠'처럼 무작정 질주하고 있다. 가설은 일정한 방향을 가리키게 돼 있는데, 그것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사람에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구부하지 못하고 그냥 무작정 가고 있다.
  
  그 결과가 줄기세포 연구이다. 우리 몸의 기관이 망가지는 원인을 연구하지 않고 약과 수술에만 의존하다가, 이제는 이미 망가져 버린 기관을 갈아 끼워 주겠다는 것이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목적이다. 완전히 망가지기 전에 왜 망가지게 되는지 원인을 알면 망가지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인데, 현대의학에서는 발병의 원인은 캐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원인을 캐고 나서도 원인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약과 수술의 방향으로만 간다.
  
  현대의학에서 막연하게 늘 강조하면서 금하는 것이 '술, 담배, 스트레스, 짜거나 기름진 음식'이다. 이런 것만 금하면 건강해지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이런 것 안 하면 병이 덜 진행될 수는 있겠지만, 병이 안 나는 것도 아니고 또한 낫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것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희생양을 찾고 있을 뿐이다. 물론 담배가 사람에게 이로운 것은 아니지만, 금연 열풍은 현대의학의 무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해프닝이다. 원인을 모르니까 모든 책임을 이쪽으로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학이 원인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못 고치는 병에 대한 변명이 이런 것들인 것이다.
  
  전에 한번 현대의학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에 나머지 단추도 모두 잘못 끼고 말았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이 첫 단추가 잘못된 가설이다. 잘못된 가설을 전제로 현대의학의 체계는 이루어져 있다. 이 첫 단추는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전에 했던 얘기를 총 정리하는 수준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두뇌가 중추신경계의 중심이라는 가설은 모더니즘 '이성의 시대'에 나온 조그마한 잘못된 가설에 지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은 큰 잘못된 가설이 현대의학의 기초에 깔려 있다.
  
  첫째는 주체(나)와 객체(남)의 철학에 기초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생각하는 존재에게는 생각하는 대상이 있게 마련이다)로 규정한 데카르트 이래 유럽대륙의 합리론자들에게 기본적인 사고방식이었다. 병은 객체인 병원체가 침입해서 주체인 내 몸을 공격하기 때문에 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에 따르는 것이다. 감염성질환에 대해서는 이 이론이 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잘 들어맞는 편이다. 이런 방법론은 인류를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 결과 인류의 평균수명은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문제는 병이 병원체에 의해 생긴 것이 아닐 때이다. 현대의학도 이애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병을 감염성질환과 비감염성질환으로 나누어서 본다. 병원체가 침입해서 공격하지 않아도 병이 날 수 있는데, 그러한 병을 비감염성질환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비감염성질환에 대해서 현대의학은 안개 속을 가고 있는 것처럼 헤매고 있다. 비감염성질환에 대해서는 제대로 원인을 밝힌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뼈대가 틀어져 근육이 굳고 신경이 약해져 병이 난다는 아주 단순한 원리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엉뚱한 약이나 먹이고 또한 엉뚱한 수술이나 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보면 비감염성을 감염성으로 치환해서 보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염증은 실은 대개가 비감염성인데, 대개 감염성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더구나 감염성이 아닌 것을 감염성으로 치환하기 위해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이상한 개념까지 만들어 냈다. 자기가 자기를 공격한다고 하는 것이 자가면역질환이다. 주체여야 할 자신이 객체로 돌변해 그 객체가 주체인 자기를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원인은 모른다고 한다. 원인을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되는 것인데, 원인을 모른다고 하면 권위가 서지 않으니까 자가면역질환이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자가면역질환의 원인은 모른다고 하니 결국은 원인을 모르는 것이다. 그래도 자가면역의 원인은 몰라도 어쨌든 자가면역이 일어나니까 면역기능을 살려 주는 자가면역 '치료'를 한다.
  
  이런 경우에도 우연히 들어맞을 수는 있다. 예컨대 레체트라는 사람이 발견해서 레체트씨병이라고 불리는 증상은 등이 구부러져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겨서 발생한다. 이런 경우는 면역체계를 살리는 치료를 하면 좋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뇨나 류머티스관절염처럼 면역체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병은 면역체계를 강화시킨다고 해서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다. 각기 원인이 따로 있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한다.
  
  현대의학의 연구자들은 자가면역질환의 메뉴에 하나씩 하나씩 종류를 늘려 가고 있다. 2년 전에 영국의 한 의학자는 당뇨병을 자가면역질환의 메뉴에 등록시켰다. 췌장에서 인슐린이 덜 생산돼서 일어나는 당뇨병도 자기가 자기를 공격하기 때문에 나는 병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 의학자는 이제 수년 내에 당뇨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 나올 것이라고 자신 있게 주장했다. 내분비계통에 이상이 생겨 활액이 덜 생산돼서 나타나는 류머티스관절염(이름도 이상하게 만들었다)은 오래 전에 자자면역질환에 등재됐다.
  
  둘째는 여기가 아프면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기계론(機械論)적 세계관에 따라 대증요법(對症療法)을 중심으로 삼고 있다는 데 있다. 몸 전체를 하나로 보지 못하고 갈가리 찢어서 부위별로 보고 있는 것이다. 기계가 잘 안 돌아갈 때에는 원인이 있는데, 대개는 고장나 있는 그 분만 고쳐 주면 기계는 잘 돌아간다. 사람을 이런 기계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돼지고기나 소고기처럼 사람을 부위별로 나누어서 보고 있는 것이다.
  
  몸이 잘못되는 것은 고관절이 틀어져 몸이 균형을 잃었기 때문인데, 고관절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은 등심, 안심, 삼겹살, 목살 하는 식으로 부위별로 나누어 사람의 몸을 수십 개로 쪼개서 보고 있다. 현재도 더욱더 부위별로 세분화하고 있는 중이니,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몸 부위 하나에 한 과가 생길지로 모를 정도이다. 우리 몸의 주춧돌인 고관절이 틀어져서 생기는 병을 그 부위를 '치료'했다고 해서 건강해질 리가 없다.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건강은 몸의 어떤 부위에서도 통증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특정한 부위에서 통증이 사라지게 하는 것이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치료'이다.
  
  몸을 전체로서 하나로 보지 않고서 하는 치료는 당장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데는 성공한다. 요실금이 있는 여자를 수술하면 1년 정도는 증세가 없어진다. 그러나 반드시 재발한다. 치골이 안으로 말려 있고 엉치등뼈가 떠 있어서 생긴 요실금에 대해 수술을 하니 그렇게 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코를 심하게 고는 사람도 수술을 하는데, 보통은 3~6개월 정도 괜찮고, 기껏해야 1년을 넘기지 못한다. 등이 굽어서 목까지 굽어 있기 때문에 코를 곯는 것이니, 수술을 해서 당장 소리가 나지 않게는 할 수 있겠지만 그게 근본적으로 나을 리가 없다.
  
  셋째는 약과 수술이 건강을 보장해 준다는 가설이다. 정말로 어이가 없는 발상이다. 이러한 발상 때문에 현대의학은 과학이 되지 못하고 신화의 세계에서 안개 속을 헤매며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약과 수술이라는 거의 불투명할 정도로 짙은 색깔의 색안경을 끼고 사람의 몸을 보고 있으니 몸이 온전하게 보일 리가 없다. 사람이 아프면 왜 아픈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어떤 약을 쓸까, 어떤 수술을 할까만을 고심하니 왼다리가 가려운데 오른다리를 긁어 주고는 다 됐다고 하는 형국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누차 하는 얘기이지만 췌장에서 인슐린을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뇨 증세가 온다는 것까지 밝혔으면, 그 다음에는 왜 췌장에서 인슐린이 제대로 생산되지 않는지 밝혀야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바로 약으로 들어간다. 인슐린을 만들어서 약으로 먹인다. 약을 통해서 몸을 보기 때문에 이런 웃기지도 않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이 약과 수술이라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색안경을 벗어 버리면 정말로 좋은 방안이 나올 텐데, 이 집착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전회에 퇴행성관절염 얘기를 조금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원인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원인을 모르면서 수술을 하거나 심하면 아예 무릎을 통째로 인공관절로 갈아 끼워 주라고 한다. 원인을 모르면 아예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상식이다.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나 수술을 중심으로 생각하니 수술하는 방법 외에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상식을 깨고 원인도 모르면서 수술을 한다. 그리고는 인공관절을 만들어서 갈아 끼워 줄 만큼 현대의학의 체계는 '과학적'이라고 자부심을 갖는다.
  
  넷째로 이로부터 파생하는 것이 원인은 몰라도 치료는 할 수 있다는 가설이다. 현대의학에서 널리 읽히고 있는 <머크 매뉴얼>을 보면 입을 딱 벌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증상 및 징후가 나오고는 바로 진단 및 치료로 들어간다. 이런 증상과 징후에 대해서는 이렇게 진단하고 치료하라는 것이다.
  
  어쩌다가 원인에 대해 써 놓은 항목도 있는데, 써 놓은 원인이라는 것도 저번에 치매를 다룰 때 보았던 것처럼 고관절이 틀어지고 등이 굽고 목이 굳어 치매와 함께 나타나는 질환을 치매의 원인으로 보고 있는 정도이다. 고혈압으로 인해 뇌졸중이 일어난다는 것도, 당뇨로 인해 또는 비만으로 인해 이러저러한 합병증이 나타난다는 합병증의 신화도 이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갑상선에 이상이 나타날 때 함께 나타날 수 있는 질환을 원인으로 써 놓고 있다.
  
  원인은 몰라도 치료는 한다. 이 정도가 현대의학이 출발한 지점이고, 또한 지금 도달해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출발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변함없이 고수하고 있는 가설이다. 그리고 그 가설을 가설이 아니라 원리, 진리로 굳게 믿고 보듬고 안고 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을 텐데, 이런 방법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지배적인 방법으로 통용되고 있다. 그것도 '과학적인 의학'이라는 최상의 수식어를 가지고 말이다.
  
  다섯째는 병의 원인과 치료를 확률적으로 본다는 것이다. 하이델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인간의 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다. 원인을 모르고 약과 수술에 의존하니까 다수, 그것도 수십 내지는 수백 가지가 병의 원인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인데, 이를 인간의 몸에는 불확정성의 원리가 적용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병에 이 약을 먹으면 나을 확률이 몇 퍼센트, 또 저 약을 먹으면 나을 확률이 몇 퍼센트 하는 식으로 확률게임을 하고 있다. 어깨가 아픈 것은 어깨가 앞으로 틀어지거나 처져 있기 때문이다. 혈압이 높거나 낮은 것은 등이 굽어 심장으로 연결되는 자율신경이 약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태성 고혈압은 원인은 모르지만 유전적 요인, 나이를 먹을수록, 짠 음식을 먹을수록 생긴다고 한다. 이차성은 신장이나 혈관의 이상, 당뇨병, 드물게는 부신 종양 등으로 혈압이 높아진다고 한다. 단순하게 등이 굽어 신경이 약해져 있는 것을 가지고 원인을 무지무지하게 많이도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병이 나는 원인은 단순하다. 원인을 모르면 모른다고 시인하면 되는 것인데,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현대의학의 체면상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원인을 모르는 병에 대해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이름을 붙여 도피처를 갖듯이 마찬가지로 불확정성 원리라는 현대 물리학 최고의 이론을 도피처로 이용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증명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라고 하는 정도이다. 소립자의 미시 세계에 적용되는 원리가 어떻게 해서 인간의 몸에 적용되는지 입증을 해야 하는데, 그냥 갖다 둘러대고는 이미 진리로 확정된 것처럼 밀어붙인다. 기껏 하는 얘기가 자연과학 방법론의 발전과정에서 가장 발전된 이론이 하이델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라는 것이다. 가장 발전된 과학 이론에 토대를 두고 있으니까 내가 가장 발전된 과학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방법론적으로 실증을 하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는 식으로 넘어가 놓고는 스스로 과학이라고 자부한다. 이런 것이 과학이라면 과학은 모두 부정돼야 할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현대의학은 과학을 부정하고 있다. 방법론 자체가 과학하고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과학을 부정하고 있으면서도, 바로 과학을 부정한 그 지점에서 과학이 발전함으로써 이루어 놓은 첨단의 도구를 이용하면서 이것이 과학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전에도 한번 얘기했지만 무당이 북과 장구, 바라의 소리를 CD로 녹음해 놓고 굿을 한다고 해서 무당의 굿이 과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요새는 점쟁이도 컴퓨터를 가지고 점을 치는데, 점쟁이가 컴퓨터를 가지고 점을 친다고 해서 점쟁이가 과학적인 점쟁이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방법론 자체가 과학적으로 이루어져야 과학이 되는 것이다.
  
  현대의학은 이렇게 불확실한,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잘못된 가설을 전제로 깔고 있다. 입으로 호 불어도 꺼져 버릴 촛불만큼 취약한 가설을 가지고 진리로 자부하면서 세계에서 유일한 과학적인 의학으로 자타가 공인을 하고 있다. 필자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렇게 허약한 방법론적 기초를 가지고도 이렇게 전 세계에 통용되는 체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현대의학은 실용주의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다. 자기의 방법으로 안 되는 부분은 다른 방법으로 하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문을 열어 놓고 있다. 대체의학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자신이 의학의 본류이지만 실제로 잘 안 되는 부분은 다른 방법, 다른 체계를 이용하게 하면서 대체의학(실은 대체의학이 아니라 보완의학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alternative를 '대체'로 번역하고 있으나, 사용하고 있는 의미상으로 보면 대체의학이 아니다. 독자적인 체계를 가진 의학이지만 보완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이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다른 방법을 가진 의학체계에 대해서도 의료보험을 적용하게 함으로써 합법적인 의료체계 내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현대의학은 너무나 배타적이다. 현대의학의 방법 말고는 그 어느 것도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위에서 본 대로 방법론적 기초가 너무나 허약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실은 외면하고 나 아니면 안 된다고 오불관언(吾不關焉)하는 것이 우리나라 현대의학의 특징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 항생제를 많이 먹인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항생제는 많이 먹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항생제를 많이 먹으면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이제 자기가 할 일은 없다고 느끼고는 스스로를 퇴화시킨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를 살려 스스로 건강하게 살게 해야 한다고 생각는 것이 인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반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 할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간섭하지 말라고 한다. 기본적인 상식을 어기고 있으면서도 전문가의 영역에 참견하지 말라는 것이다. 전문가는 기본적인 상식을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수술도 너무 무차별적으로 권한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수술은 마지막 방법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한다. 세 사람의 의사가 상의를 해서 세 사람이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판단될 때 수술을 권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허리만 아파도 내일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식으로 겁을 준다. 내일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는데, 겁을 먹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에 염증이 조금 생겨서 병원에 가도 이 새로 해 박지 않으면 큰일이 난다고 한다. 큰일 날 일 전혀 없는데도 호들갑을 떤다. 이런 사례 때문에 병원에 가기를 꺼려하는 사람도 많다. 수술 안하면, 이 새로 해 박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소리 듣기 싫어 아파도 참으면서 그냥 지내는 사람도 많은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약개방을 할 때 그래도 적절한 선에서 합리적으로 치료를 하는 외국 의료업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이 WTO체제 하에서는 시간을 늦출 수는 있겠지만, 모든 것이 개방되지 않을 수 없게 돼 있다. 의약개방 역시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스스로 과도하지 않게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 내에서 페어플레이를 해야 한다. 스스로 바로잡지 못하면 그로 인해 입을 손해는 다른 사람한테도 가지만 자기 자신에게도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 중추신경계의 중심이 두뇌라는 잘못된 가설에 대해 한 번 더 검토해 보자. 이 가설 자체가 모더니즘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앞에서 얘기한 바 있다. 이 입증된 적이 없는 가설은 이 가설에 입각해 이론을 전개시켜 나갈 때 이후 더 큰 오류를 낳게 된다. 이 중심적인 기관 자체의 원인에 의해 이상이 생긴다는 가설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 잘못된 가설 때문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도 두뇌에 이상이 생긴 것이라고 본다. 현대의학에서는 정신질환은 사람의 사고, 감정, 행동 같은 것에 영향을 미치는 병적인 정신의 상태를 말하는데, 정신기능에 장애가 온 상태를 총칭한다고 한다. 두뇌에 문제가 생겨 신경전달물질이 생성되지 않거나 종양이 생기거나 뇌압이 높아지거나 혈관이 터지거나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대책은 역시 원인을 파헤치지 않고 약과 수술을 능사로 아는 현대의학답게 내놓는다.
  
  약을 중심으로 보는 현대의학은 신경전달물질이 생산되지 않는다고 해서 인공적으로 만든 이 물질을 보충해 준다. 혈압이 높다고 혈압을 떨어뜨리는 화학물질을 만들어서 약으로 먹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 수치가 높다고 해서 인슐린이라는 화학물질을 만들어서 보충해 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방법이 신경전달물질에도 적용된다. 왜 잘 생산되던 이런 물질들이 어느 시점부터 덜 생산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 현대의학은 인슐린이 췌장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경전달물질도 종류에 따라 두뇌의 어떤 부위에서 만들어지는지 대체로 밝혀 놓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부위에서 신경전달물질이 덜 생산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서 약으로 먹이는 데에만 열을 올린다.
  
  신경전달물질이 덜 생산되는 것도 역시 흉수와 뇌수가 잘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원인(遠因) 역시 고관절이 틀어져 몸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등이 굽고 등이 굽어 목도 굽었기 때문이다. 굽으면 근육이 굳는다. 근육이 굳으면 근육을 지나가는 신경이 약해진다. 신경이 약해지면 두뇌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기능이 떨어진다. 췌장으로 가는 신경이 약해져 인슐린이 덜 생산되듯이 두뇌로 가는 신경이 약해지면 신경전달물질이 덜 생산되게 되는 것이다.
  
  신경이 약해져 있으면 신경을 회복시켜야 한다. 몸살림운동의 방법은 약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약해진 신경을 살리는 것이다. 굳어 있는 목의 근육이 풀리면 신경은 트이게 된다. 근래에 신경이 약해진 사람은 신경이 트이는 데 긴 시간을 요하지 않는다. 너무 오랫동안 신경이 약해져 거의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돼 있는 목에서 두뇌로 가는 신경이 꺼져 있다. 이 신경을 눌러 보면 신경이 살아 있는 사람은 탄력이 있는데, 신경이 거의 죽어 있는 사람은 누르면 푹 거진다. 이런 사람은 신경이 트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스스로 풀어야 한다.
  
  약에 의존해서 엄습해 오는 불안감을 잊어버리려고 하면 정신질환의 고리는 끊으려야 끊을 수가 없다. 정신질환에 사용되는 약도 다른 약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망가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약에 의존할수록 자연치유력이 떨어진다. 정신질환에도 이는 똑같이 적용된다. 처음부터 약을 먹지 않거나 약을 끊으면 이 병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이 병과 함께 약을 끌어안고 살아야 한다.
  
  치매든 뇌졸중이든 무슨 정신병이든 모두 목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오는 증세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목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등이 굽었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고개를 들고 살아야 온갖 정신적인 질환에 시달리지 않고 살 수 있다. 매일 고개를 들고 도리도리 운동만 열심히 하면 정신질환은 찾아오지 않는다. 도리도리 운동은 목의 근육을 풀어 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한번 자신의 목 근육을 직접 만져 보면 필자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고개를 숙이고 목 근육을 만져 보자. 목이 1자가 되면서 근육이 뻣뻣하게 굳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고개를 들고 목 근육을 만져 보자. 근육이 부드럽게 풀려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것이다. 고개를 들고 살면 목 근육이 풀리고, 고개를 숙이고 살면 목 근육이 굳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등이 굽으면 아무리 고개를 들려고 해도 잘 들어지지가 않는다. 등을 펴야 고개가 들리는 것이다. 그리고 고관절이 틀어져 있으면 등을 펴려고 해도 펴지지가 않는다. 고관절이 틀어지면 허리가 굽기 때문이다. 허리가 굽으면 등도 함께 굽는다. 고관절이 틀어지면 아무리 허리를 세우려고 해도 세워지지 않는다. 필자가 매일 고관절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이라는 것도 고관절이 틀어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거의 모든 병이 고관절이 틀어져서 오는 것이니 어찌 매일 고관절 타령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뇌종양에 대해서는 전회에 얘기를 했고, 뇌혈관이 터졌다고 수술을 하기도 한다. 역시 현대의학다운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하든 수술할 것만 궁리하는 현대의학은 억지로 수술할 기회를 만들어서 수술을 한다. 뇌혈관이 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우리 몸에서 어혈은 어디에나 생길 수 있다. 혈관이 터지면 어혈은 생긴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우리 몸이 알아서 어혈을 없애 주기 때문이다. 혈관이 터지면 알아서 스스로 복구를 하고, 또 알아서 어혈을 제거한다. 두뇌도 마찬가지이다.
  
  터진 혈관 때문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 등과 목이 굽어서 문제가 생긴 것인데, 엉뚱하게 뚜껑을 열고 수술을 한다. 이런 수술은 잘해 보아야 본전이다. 뚜껑을 여닫는 수술을 하다가 잘못해서 신경을 건드려 끊게 되면 심각한 장애가 오기 때문이다. 잘해야 본전인 수술을 현대의학은 나서서 권장하고 있다.
  
  뇌압이 높아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병원에서는 섭씨 5도 정도의 물을 준비해 놓고 있다가 뇌압이 높아진 사람이 오면 머리를 이 물에 담근다. 섭씨 5도이면 굉장히 찬 물이다. 찬물에 머리를 담그면 뇌압은 금방 내려간다. 뇌압 역시 신경이 약해져서 오는 현상일 뿐이고, 이로 인해 뇌에 큰 이상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등과 목을 펴면 저절로 사라지는 현상이다. 약을 먹이고 수술하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뇌 또한 중추신경계의 일부이다. 외부에서 물리적인 충격을 받으면 손상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내부에서 문제가 생기지는 않는다. 그리고 내부에서 일어난 현상은 내부에서 처리할 수 있게 돼 있다. 인간은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두뇌를 중추신경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잘못된 가설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잘못된 가설에서 벗어나야 사람의 몸을 온전히 볼 수 있다.
  
  모더니즘의 시대에 인류를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준 현대의학은 이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주체·객체의 관계로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은 어디에나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병원체로 인한 질환에는 잘 들어맞지만 다른 질환에 대해서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또한 입증되지 않은 가설을 대량으로 생산해 내고 있는 현대의학은 이제 자신이 어떤 토대 위에 서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구름을 타고 다니면서 장풍을 쏘아 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잘 성찰해 보아야 한다. 구름 위에서 장풍을 쏘고 있으면서 과학이라고 자부해서는 안 된다. 정말로 과학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통증에서만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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