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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워라! 그게 국민들 사랑 받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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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워라! 그게 국민들 사랑 받는 길이다

[기자의 눈] 이용훈 대법원장 발언 파문을 보면서

지금은 그 논란 자체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지난해 9월 검찰과 경찰은 수사권을 놓고 한창 싸움을 벌였다. 논란의 일선에 선 주역들은 연일 상대발을 향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자신이 수사의 주체가 돼야 하는 당위성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견제론'과 '인권론' 등 논리적 설명을 전파하는 데에도 열을 올렸다. 검·경 모두 이론싸움에서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 공부도 많이 했다.

검찰은 검찰 나름대로 행정기관인 경찰보다 준사법기관으로 독립기구인 검찰이 경찰을 지휘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경찰은 검찰이 권력화되고 있다면서 경찰이 검찰을 견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양 기관 모두 인권준칙을 만드는가 하면 조사실을 개조하는 등 인권 경쟁도 치열했다. 이를 두고 법조계 주변에서는 "이렇게 둘이 계속 싸우다 보면 검찰과 경찰의 조사실이 모두 호텔방처럼 변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개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오는가 하면 "요즘 검경의 발표는 무슨 인권단체 기자회견 발언 같다"는 '농담 반, 칭찬 반'의 지적도 있었다.

이용훈 대법원장 "법원은 몸통, 검찰·변호사는 바퀴"

최근 '법조 3륜(輪)'이라 불리는 법원-검찰-변호사들의 신경전 기류가 심상치 않다. 먼저 화두를 던진 쪽은 이용훈 대법원장이다. 이 대법원장은 최근 취임 1주년을 맞아 전국 법원을 순시하는 과정에서 검찰과 변호사들을 향해 거침없는 발언들을 쏟아냈다.

검찰을 향해 "검사들이 사무실에서, 밀실에서 비공개 진술을 받아놓은 조서를 어떻게 공개된 법정에서 나온 진술보다 우위에 두느냐"(13일 광주), "검찰 수사기록을 던져버려야 한다", "재판정에서 검사들은 수사기록만 던져놓고 유죄 입증을 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19일 대전)고 말해 검찰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변호사들이 발끈하기도 했다. 이 대법원장은 "왜 법조 3륜이라고 말하느냐. 법원이 몸통이고 검찰이나 변호사는 바퀴다"(12일 순천), "입법, 행정, 사법을 국가를 움직이는 세 바퀴라고 하면 이해가 되지만 어떻게 (법원을) 검찰하고 변호사회하고 동렬에 놓을 수 있느냐", "변호사들이 제출하는 서류라는 것이 상대방을 속이려고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서류를 근거로 재판을 하는 것이 옳으냐"(13일 광주)고 말했다. 이에 변협도 21일 임시 상임이사회를 열어 이 대법원장에게 항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 이용훈 대법원장의 최근 발언으로 법조계가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왼쪽부터 이용훈 대법원장, 정상명 검찰총장, 천기흥 변협회장.

'권력의 시녀'에서 '정치의 전단자'로 무임승차?

법원장의 다소 '과격했다' 싶을 정도의 발언들은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검찰과 변협 모두 비상이 걸려 수뇌부 회의를 거친 뒤 유감과 항의의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법조계에서는 "법조 3륜이 삐걱거려 국민들에게 피해가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의 싸움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흥미진진하다. 아니, 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흥미롭다기보다는 평소 쳐다보기조차 어려운 이 '높은 분'들의 전례없는 다툼과 논란이 어떤 경로를 거쳐 어떤 결말을 맺는지 숨 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길거리에 뿌려진 수많은 피로 형식적이나마 정치적 민주화를 이룩했다. '개혁'은 90년대부터 줄곧 사회의 주요 화두였다. 그러나 사법부는 이런 개혁의 회오리에서 언제나 한발 비켜 서 있었다. 사법의 영역은 정치의 영역과 구분된다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 시민들의 시선도 다급한 정치적 현안을 넘어서서 고매한 사법 분야까지 이르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 결과는? 사법부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시류에 편승해 오지 않았나. 늘 "알아서 하겠다"고 했지만 사법개혁을 위해 과연 무엇을 알아서 했는지 의문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정치가 만신창이가 되는 동안 사법부가 권력의 핵으로 급부상한 게 최근의 현실이다. 한 헌법학자는 이를 두고 '법치의 실현. 합리적 사회로의 이행'으로 해석하기도 했지만, 이제 사법부는 '정치로부터의 독립'의 수준을 넘어 '정치를 좌지우지 하는 전단자(專斷者)'의 위치에까지 이른 감이 있다. 그런 위상의 변화가 옳으냐 그르냐의 차원과는 별개로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권력에 굴종하던 사람들이 언제 이렇게 바뀌었지' 하는 일반인들의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에 뭐라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게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 사법부가 과거 어떤 곳이던가. 수사·정보기관이 모진 고문을 통해 자백을 받아오면 검찰은 그대로 조서를 꾸며 기소하고, 판사는 기소문을 그대로 배껴 판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재판정에서 운동가가 울려퍼지고 피고석과 방청석으로부터 검사석 또는 판사석으로 신발이 날아가는 일은, 바람직하지는 않아도 최소한 자연스러운 일이기는 했다. 이랬던 사법부가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사회 발전의 과실을 따먹겠은 것은 아닌가.

이들이 언제 싸워봤나. 싸우려면 제대로 싸워라

검·경의 수사권 다툼이 어느새 슬그머니 사라진 모습에 이를 관심있게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며 실망이 컸다. 이번에는 법원-검찰-변호사가 다툴 모양이다. 인간은 경험과 학습에 의해 배우는 동물이다 보니, 이에 대해서도 "조금 그러는 척 하다가 개고기 안주에 폭탄주 몇 잔 돌리고 말겠지" 하고 냉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싸우려면 제대로 싸워햐 한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빈틈 없는 논리도 세워야 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이 싸움의 심판자가 시민들이라는 것이다. 시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한 쪽은 이 싸움에서 패하고 말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민들도 이 싸움이 '공개적이면서도 품격 있는 열전'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부추겨야 한다. 관전자가 없는 싸움은 시시해지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이른바 법조 3륜의 체질과 행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시민들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것이 사법부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굴레와 '오만한 권력'의 오명에서 벗어나 국민의 사랑을 받는 첫 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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