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은 있었지만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던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6일 오후 파행됐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전 후보자에 대한 지명절차의 적법성을 따지며 "제대로 된 법적 절차를 밟지 않는 이상 청문회 자체가 무효"라며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
한나라 "헌법재판관 임명부터 해야"
인사청문특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날 오후 인사청문회 정회를 요청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헌법재판관 중에서 헌재 소장을 임명토록 한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며 전효숙 씨의 소장 지명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현행 헌법에는 "헌재 소장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 헌법재판관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다.
한나라당의 논리는 전 후보자가 헌법재판관을 사퇴한 민간인 신분인 만큼 우선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치고 법사위 청문회 절차를 거친 뒤에야 헌재소장 지명과 청문회가 가능하다는 것.
김정훈 의원은 "대통령의 추천자에 대한 청문회는 법사위에서 하게 돼 있다"며 "법사위(청문회)를 거쳐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된 다음에 (헌재소장 인사청문특위로) 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대통령이 전 후보자에 대한 헌법재판관 지명 및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를 동시에 요청할 경우, 우선 법사위의 헌법재판관 인사청문 절차를 거친 뒤 인사청문특위의 헌재소장 임명동의 절차를 거치는 과정이 충족돼야 한다는 게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엄호성 의원도 "사표를 내고 민간인 신분이 된 순간 헌재소장 후보자 지위는 상실된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청문회를 진행하는 것은 인사청문회법마저 위배하는 절차상의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청문회를 계속하면 나중에 청문결과에 대한 법적 다툼이 생길 수 있는 만큼 확실한 근거를 마련한 후에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전 후보자가 헌법재판관 신분을 그대로 유지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텐데, 임기를 3년 더 연장하려고 청와대의 요청을 받아들여 사퇴를 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조순형 의원도 "전 후보자가 헌재 재판관을 사퇴했다면 헌법재판관으로 재임명한 뒤 국회에 동의 요청을 하는 것이 정당한 절차"라고 동조했다.
우리당 "청문회 두 번 치르자는 말이냐"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청문위원들도 기자회견을 열어 "헌재소장을 임명한 함의는 헌법재판관에 대한 임명까지 포함된다"고 반박했다. 우리당 의원들은 "한나라당이 법률적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으면 인사청문특위 구성 자체를 거부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 뒤늦게 정치공세로 청문회를 파행시키고 있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최재천 의원은 "대(大)는 소(小)를 포함한다. 법률적으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간인을 소장으로 임명할 때 헌법재판관 겸 소장으로 임명하지 않고 곧바로 소장으로 임명하는 것이 관례"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최 의원은 "민간인에 대해 동시임명을 요구하면 청문회를 두 번 치러야 하는 문제가 있다"며 "김용준, 윤영철 전 헌재소장의 경우도 소장에 대한 임명동의만 요청했다"고 반박했다.
우윤근 의원도 "과거 헌법재판소장 임명 당시 재판관과 헌재 소장을 겸한 인사청문회를 한번만 개최했었다"면서 "한나라당은 인사청문회법의 입법 취지를 무시하고 형식적인 법논리에 근거해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한나라당 주호영 의원은 "과거에는 헌재 소장 임명에 재판관 의미까지 포함됐고 인사청문회 과정이 없었지만, 지난해 인사청문회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헌법재판관 임명이 생략된 헌재소장 청문회는 법적으로 성립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주 의원은 "청와대가 일을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며 "절차상 잘못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고 강조했다.
법리 논쟁으로 인사청문회가 파행되기는 이번이 처음. 우리당은 "한나라당 의원들을 설득해 다시 청문회를 속개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제대로 된 법 절차를 밟지 않으면 청문회에 참여할 수 없다"고 완강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청문회 속개 여부가 불투명해졌으며, 8일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을 처리하려던 일정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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