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윌리엄 팰런 사령관은 미 하원 세출위원회 보고에서 한국 정부가 용산기지 이전 등 주한미군 재배치를 포함한 안보정책구상(PSI)의 일환으로 총 68억 달러(약 6조6640억 원)의 인프라 비용을 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월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밝힌 미군기지 이전 비용 50억~55억 달러보다 최소 13억 달러 더 증액된 것으로 미군기지 이전 비용은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에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박정은 팀장이 긴급기고를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박정은 팀장은 기고에서 미국의 전세계 26개 동맹국 중 한국이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돈을 미군에 지원하고 있으며 이는 지나치게 과도한 금액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박 팀장은 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해 줌으로써 주한미군의 지위와 역할이 한반도 방위를 넘어섰다며 이에 따라 우리가 주한미군의 주둔비용을 분담할 필요성도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편집자〉
지난 1월 19일 한미 양국은 첫 한미 외무장관 전략대화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 이번 합의를 통해 주한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규정하고 있는 한반도 방어를 넘어 동북아를 포함해 전세계로 투사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이것은 주한미군이 한반도 이외 지역을 드나들면서 이라크는 물론 중국ㆍ북한에 대한 군사적 개입까지 가능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지난 8일 윌리엄 팰런 미 태평양군 사령관의 미 하원 세출위원회 청문회에서의 발언에서도 확인되듯 미국은 대북방어를 이유로 존재해 왔던 한미동맹을 중국을 견제할 한ㆍ미ㆍ일 3각 지역동맹 체제로 전환시키려 하고 있다.
이는 주한미군의 주둔근거가 더 이상 대북억지력에 있지 않다는 것으로, 대북방어를 이유로 한국이 주한미군에게 제공하고 있는 주한미군 주둔경비 지원금(방위비 분담금) 협정을 존속시킬 이유도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난 7일 미 의회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버웰 벨 주한미군 사령관은 "한국의 적절한 방위비 분담이 동맹의 징표"라고 말하면서 올해 예정된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한국의 분담금 증액을 압박할 것임을 예고하고 나섰다.
주한미군 주둔 경비를 지원할 근거가 없어진 마당에 '동맹의 징표' 운운하며 비용부담을 강요하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미국이 한국을 동맹국가로 보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미국이 '동맹의 징표'가 아니라 '예속의 징표'로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근거 없는 방위비 분담금 협정**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체결된 소파(SOFA)협정 제5조는 주한미군이 사용하는 공항이나 항만 등의 시설, 구역 및 통행권과 관련된 경비를 제외하고는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 경비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1980년대 미국이 자국의 재정악화를 이유로 주둔비용 분담을 요청하면서 91년 한시적인 SOFA 특별협정(방위비 분담협정)이 체결되었고 지금까지 한미 당국 간에 5차례의 협정이 맺어졌다. 분담금 규모는 점진적으로 증액되어 오다가 96년부터는 3년 동안 매년 10% 증액되는 등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표1〉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국방비 전체규모에서 방위비 분담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91년 1.12%에서 2004년도에는 3.69%로 증가했다. 이같은 방위비 분담금 증액은 국방비 부담을 가중시켜 왔는데, 국회 예산정책처(2004)에 따르면 91년부터 2003년까지 국방비 증가율은 135%인데 반해 같은 기간 중 방위비 분담금 증가율은 686%에 달한다.
최근 미 국방부가 내놓은 보고서(2004 공동방위 동맹기여도 통계표)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2002년 주한미군 주둔경비의 40%를 부담했다. 한국은 정부 예산 직접경비로 4억8600만 달러에 임대료와 조세특례 등을 통한 간접경비로 3억56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이는 미국의 전세계 26개 동맹국 중 일본에 이어 2번째 많은 경비 지출 규모다. 더욱이 이 수치는 한국이 제공하는 토지공여 등의 간접비용을 매우 낮게 평가한 것이어서 실제 규모는 더 크리라 예상된다.
***지금까지의 비용부담도 과도했다**
우리나라는 경제적 능력에 비해 일본이나 독일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주한미군 주둔경비를 지원해 왔다. 아래 표는 2001년 당시 독일과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병력이 각각 7만 명, 4만 명으로 주한미군(3만 7000명)보다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더 과중한 분담금을 지불했음을 보여준다.
〈표2〉
방위비 분담이 국방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등 과도하게 증액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정부는 2005년부터 방위비 분담 협상 부처를 국방부에서 외교통상부로 이관시켰다. 그리고 지난 해 협상 결과 분담금은 2년 동안 2004년 7469억 원 대비 8.9% 감액된 6804억 원으로 결정됐다.
지난 해 정부는 이러한 협상 결과를 두고 분담금 규모를 감액시켰다는 것을 무척이나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의 애초 목표가 2004년 대비 최소 10% 이상 감액하고, 미군 감축과 기지 재배치 등을 고려해 1년간의 단기협정을 체결하는 것이었다는 점에 비춰 보면, 결코 성과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못된다. 2004년 주한미군 5000명이 감축된 데 이어 2005년에 3000명이 감축되는 것도 제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지난 한미동맹 재편 협상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논의되어 왔다는 점에서 주한미군의 역할변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그 자체로 부실한 협상이다. 게다가 정부는 천문학적인 미군기지 재배치 비용을 부담할 예정이고 이미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을 통해 미국의 전쟁을 지원하는 데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미군기지 이전비용에 포함된 방위비 분담금, 주한미군의 쌈짓돈인가?**
또한 한국과 미국은 현재 추산되고 있는 미군기지 이전비용에 대해서 서로 다르게 말하고 있다. 심지어는 한국 정부 내에서조차도 제각각 다른 수치들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와 미국이 밝혀 온 미군기지이전비용은 다음과 같이 지속적으로 증액돼 왔다.
△ 2004년 한국 국방부, "용산기지 이전비용으로 총 30~40억 달러 소요될 것"
△ 2005년 한국 국방부, "용산기지를 비롯한 미 2사단의 오산·평택으로의 재배치, 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른 기지통합에 대략 53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
△ 2005년 라포트 전 주한미군사령관, "미군기지 이전비용으로 80억 달러 소요될 것, 미국 부담은 6%에 불과, 한국은 59억 2000만 달러 부담할 것"이라고 미 의회 보고
△ 2006년 2월 이종석 통일부 장관, "용산기지 이전비용이 50억~55억 달러 정도 될 것"으로 판단
△ 2006년 3월 윌리엄 팰런 미 태평양군 사령관, "한국정부가 용산기지 이전 등 주한미군 재배치를 포함한 안보정책구상(SPI)의 일환으로 모두 68억달러 비용을 대기로 했다"고 미 의회 보고
△ 2006년 3월 한국 국방부, "미국 쪽이 용산기지이전 및 2사단, 연합토지관리계획(LPP)의 비용 50억~55억 달러에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중 미군기지 이전비용으로 전용할 수 있는 금액 16억8천만달러(2004~2008)를 포함시켜 계산한 것"으로 추정
이를 보면 용산기지 이전비용이 별다른 이유 없이 점차 증액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용산기지 이전비용만 50억~55억 달러로 추산하고 있는 것과 달리 국방부는 용산기지 이전을 포함한 미군기지이전비용으로 50억~55억 달러를 예상하고 있다. 이같은 한국 정부의 오락가락한 예산판단은 정부 당국의 발표를 전혀 신뢰할 수 없게 한다.
또한 그 동안 국방부는 방위비분담금이 미군기지 이전비용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혀 왔으나, 이러한 주장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팰런 태평양군 사령관의 발언뿐만 아니라 지난 2004년 미 일반회계국(GAO) 보고서 역시 미군재배치 비용에 방위비 분담금을 포함하고 있었다는 사실로 미뤄볼 때 한국 국방부의 주장과는 다르게 방위비 분담금이 미군기지 재배치 비용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방위비 분담금과 무관하다는 국방부의 주장은 미군기지 이전에 대한 한국 측의 과도한 비용부담에 대한 비난을 피하고자 하는 속셈으로 보인다. 실제 국방부는 국민 세금에서 지불되는 방위비 분담금을 "미국에게 준 돈이니 미국예산"이라는 상식 밖의 주장을 펴고 있는데, 미군기지 재배치 비용에 대한 한국과 미국 측의 부담률이 아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도 정부가 이러한 논리를 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협정 상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의 전체 운영유지 비용 중 크게 인건비ㆍ군사건설비ㆍ연합방위력증강사업(CDIP)ㆍ군수지원의 4개 분야에 지원되도록 되어 있지만 정부가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 동안 정부는 미국 측으로부터 항목별 액수나 산출근거 등 신뢰성 있는 구체적인 내역을 제공받지 못했다. 심지어는 한미 간 연도별 분담률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렇듯 비상식적인 방위비 분담 협상이 이뤄진 가장 큰 이유는 협상 주체들의 맹목적인 대미의존 의식과 여기에서 기인하는 무책임하고 안일한 협상태도 때문이다. 국방부의 이러한 협상자세에 대해 국회도 지적한 바 있다. 2004년 분담금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국방부가 확정되지도 않은 분담금을 2005년 국방부 예산(6983억 원)에 미리 편성하는 바람에 스스로 대미 협상력 저하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문제투성의 분담금 협상이지만 미국측의 비용증액 압박은 앞으로 더욱 커질 듯하다. 미 국방부는 향후 해외 미군 주둔비용을 동맹국이 50%를 부담하도록 한다는 목표를 밝히고 있다. 또한 지난 2001년 미 의회가 한국의 분담률을 일본 수준인 75% 이상으로 끌어올릴 것을 권고한 바 있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올리기 위한 미국의 압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 역할변경에도 불구, 지원 계속되어야 하나**
국방부는 방위비 분담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주한미군은 전쟁 억제전력으로서, 유사시 미 증원전력의 인계철선으로서 한국의 방어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국의 안보 부담을 경감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주한미군에 대한 적정수준의 방위비 분담은 한국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투자로 볼 수 있다" (국방부 사이트)
그러나 국방부의 이러한 논리는 전혀 타당하지 않다. 정부가 합의해 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반도 내 전쟁억지력이라는 역할에서 벗어나 동북아를 비롯한 지역분쟁에 신속하게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잘 알려진 대로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확실한 위협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 해외주둔 미군의 재배치(GPR)와 군사변환 등을 추진하고 있다. 미군기지의 평택 등 한강이남 지역으로의 통합 이전이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 스트라이커 부대로의 전환 등도 이러한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한반도 안보를 보장하기보다는 새로운 분쟁과 갈등을 불러올 가능성이 훨씬 높다. 더욱이 지난 1월 19일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로 주한미군이 병력의 유연성뿐만 아니라 장비와 기지의 유연성까지 확보함에 따라 한반도는 미국의 군사행동을 지원하는 병참기지, 발진기지로 활용될 소지도 크다.
주한미군 스스로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한 '인계철선'임을 인정한 적도 없지만, 이러한 변화들은 그러한 역할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더 이상 한반도 방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주한미군에게, 그것도 새로운 불안과 위협을 불러오고 있는 주한미군에게 주둔경비를 지원하는 것은 '방위비 분담'이 아니다.
그 동안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 관련하여 수많은 논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협정폐기에 대한 요구가 전면화 되지 않았던 것은 주한미군이 한반도 안보에 기여한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달라진 주한미군의 역할과 성격변화는 방위비 분담금 협정이 존재해야 할 이유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 '평화국가'를 지향하는 정부라면 선제군사행동조차 배제하지 않고 있는 미국의 세계군사전략을 지원하고자 국민들 부담을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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