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걱정스럽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획일주의가 압도할 때 인간은 언제나 부끄러운 역사를 남겼다."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청와대 소식지인 <청와대브리핑>에 기고한 '줄기세포 언론보도에 대한 여론을 보며'라는 글에서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연구를 둘러싼 윤리 논란과 이 논란을 증폭시킨 MBC <PD수첩>에 대한 여론의 '뭇매'에 대한 자신의 단상을 밝혔다.
지난달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 직접 참석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거듭 약속하는 등 황 교수의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온 노 대통령의 이같은 입장 표명은 그간 청와대가 지켜온 '침묵'을 깬 것이다.
노 대통령의 이런 뜻밖의 기고는 특히 박기영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의 거취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박기영 보좌관은 황 교수의 연구에 대해 생명윤리 문제에 관한 자문을 해주었다는 이유로 지난 2004년에 <사이언스> 게재 논문의 공저자로 이름이 올랐다.
민주노동당, 보건의료단체연합, 녹색연합, 시민과학센터, 참여연대 등은 이번에 윤리 논란이 촉발된 뒤에 박기영 보좌관의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해왔다.
그러나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노 대통령의 글은 그 문제(박기영 보좌관의 거취)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노 대통령은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서 "생명윤리에 관한 여러 논란이 이 같은 훌륭한 과학적 연구와 진보를 가로막지 않도록 잘 관리해 나가는 것이 우리 정치하는 사람들이 할 몫"이라며 "제도를 바로 만들고 올바르게 운영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자의 할 일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민주사회"**
노 대통령은 이날 기고문에서 <PD수첩>의 12개 광고주 가운데 11개 광고주가 광고계약을 취소한 것과, 이번 사태에 대한 여론이 '비뚤어진 애국주의'로 흘러가고 있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했다.
노 대통령은 "항의의 글, 전화쯤이야 있을 수도 있는 일이고 그 정도는 기자와 언론사의 양심과 용기로 버틸 일이지만 광고가 취소되는 지경에 이르면 이것은 이미 도를 넘은 것"이라며 "저항을 용서하지 않는 사회적 공포가 형성된 것이며 이는 이후에도 많은 기자들로 하여금 취재와 보도에 주눅 들게 하는 금기로 작용할 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각자에게 자기의 몫이 있고 기자들은 기자들이 할 일이 있다"며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이다. 서로 다른 생각이 용납되고 견제와 균형을 이룰 때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PD수첩> 보도 자체에 대해선 "나도 짜증스럽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취재의 계기나 방법에 관하여도 이런저런 의심을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연구과정의 윤리에 관하여 경각심을 환기시키는 방법이 꼭 이렇게 가혹해야 할 필요까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기영 보좌관이 '기자들이 협박한다'며 대책 의논해왔다"**
노 대통령은 또 이번 사태에 대한 첫 보고 등 그간의 경위를 밝히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줄기세포에 관하여 MBC <PD수첩>에서 취재를 한다는 보고가 있었고 처음 취재방향은 연구 자체가 허위라는 것이었다"며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이 나서서 뭐라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어서 경과를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또 박기영 보좌관과 이번 사태에 대해 의논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과학기술보좌관이 MBC <PD수첩>에서 난자기증 문제를 취재하는데, 그 과정에서 기자들의 태도가 위압적이고 협박까지 하는 경우가 있어서 연구원들이 고통과 불안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보고를 하면서 대책을 의논해왔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취재의 동기와 방법에 관하여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면서 "물론 호의적인 이야기는 아니었다"고 밝혀, 박 보좌관이 이 보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전달했음을 시사했다.
***"이번 계기로 윤리기준 정비하면 보람 있을 것"**
노 대통령은 "그 이후 노성일 원장의 기자회견, MBC의 보도가 있었고, 그에 이어 황우석 박사의 기자회견에서 진지한 해명과 공직사퇴 선언이 있었다"며 "이 과정이 고통스럽고 힘들기는 하지만,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윤리기준을 정비하고 다시는 이런 혼란을 겪지 않게 된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른 보람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긍정적 견해를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이번 사태가 <PD수첩>에 대한 집단적 '마타도어'로 번지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 뒤 <한겨레>의 '<피디수첩>에 사이버 뭇매…'일그러진 애국주의' 번진다'는 기사를 소개했다. 노 대통령은 이 기사에 대해 "걱정이 되던 차에 반가운 기사 하나를 발견하고 다소 마음이 놓인다"며 "'아! 그래도 우리 사회에 비판적 지성이 살아 있구나.' 나는 이런 기사에서 미래를 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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