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대체로 비이성적인 사회라는 것은 이미 식상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도 실상은 점잖은 표현일 뿐이다. 친미 반북의 광기는 이미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되어 있고, 여기에 더해 환경 파괴에 앞장서는 개발과 경제 성장의 광기, 세계 최고라며 미디어 난개발을 부추기는 IT 광기, 또 과학과 기술에 대한 무조건적 믿음에서 비롯되는 황우석 광기…. 이런 것들은 우리 사회의 비이성적 면모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들이다.
'황우석 광기'는 MBC <PD수첩>에 대한 일부 누리꾼(네티즌)들의 극렬한 반응에서도 볼 수 있고 이를 이용해 <PD수첩> 죽이기에 나서는 일부 신문들의 얄팍한 태도에서도 찾을 수 있으며, 또 여론이 나쁘다며 해당 프로그램에 광고를 하지 않겠다는 일부 기업들의 양태에서도 드러난다. 강정구 교수에게서 배운 동국대생들의 취업에 불이익을 주겠다는 대한상공회의소 김상렬 부회장의 발언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정말 왜 이러는가? 줄기세포 연구를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하되 제대로 하라는 것인데 이런 문제를 제기한 <PD수첩>이 난도질 당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이 문제를 외국 언론에서 제기했다면 정말 어쩔 뻔 했는가?
이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버리는 단순한 신드롬이 아니다. 이는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집단적 광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푸코 같은 학자가 제기하는 매우 복잡한 논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광기란 감각적 인식의 혼란, 자기 정체성 결핍, 정신 착란, 이성적 사고 능력 마비 등등으로 나타나는 질병으로 정의된다. 황우석 광기에 대한 <PD수첩>의 문제제기에 일부 네티즌이나 신문사나 기업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이 광기의 근원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의 진단이 가능하겠지만 그 중의 하나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경제 성장 제일의 개발주의'이다. 경제 성장 제일의 개발주의라는 말은 쉽게 풀이하면 '돈이 최고다'라는 뜻이다. 우리 자신과 후손을 잡아먹는 일인 환경 파괴 문제도, 생명윤리라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도 돈의 위력 앞에는 무릎을 꿇는다.
<PD수첩>이 국가 이익을 배신했다는 말도 풀어보면 왜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다는 연구를 망치려는가, 이런 지적이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PD수첩>이 연구를 하지 말라고, 돈을 벌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고 제대로 연구하고, 제대로 벌라고 한 것인데도 거의 정신 착란 수준의 반응들이 나오고 그것이 대체적인 여론인 것처럼 운위되고 급기야는 프로그램 광고 중단까지도 이야기되고 있다. 인식의 혼란이요 이성적 사고능력이 마비된 광기의 전형적 증상들이다.
누가 이를 바로잡겠는가? 흔한 이야기지만 사회의 중요한 의제는 대체로 언론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를 덮고 있는 광기의 상당한 책임은 우리 사회의 언론에 있고, 역설적으로 이를 건강하게 바로잡을 상당한 책무 역시 우리 사회의 언론에 있다. 황우석 광기를 만들어 낸 책임도 또 이 광기를 치유할 책임도 많은 부분 우리 언론에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언론에 이 같은 책임을 질 역량이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비관적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양식을 갖춘 언론인이 우리의 신문과 방송에 전혀 없지는 않을 터이니 그들에게 책임 있는 역할을 주문한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