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 김모(29. 남) 씨. 2000년 6월 철원 지역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한 김 씨는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영화표를 나눠준다'는 말을 듣고 헌혈차에 헌혈 하러 갔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말라리아 지역 군 부대에서도 헌혈했는데…"**
헌혈하기 전에 신상 정보를 적고 뒷면의 '문진사항'을 기입해야 했다. '1. 최근 3년 사이에 말라리아(학질)에 걸린 적이 있다.', '2. 최근 3년 사이에 말라리아 유행지역에 거주한 적이 있다.', '3. 최근 1년 사이에 말라리아 유행지역으로 여행을 한 적이 있다.', '4. 최근 1개월 사이에 오한, 고열, 발한이 반복적으로 나타난 적이 있다.' 해당 사항에 체크하라는 것이었다.
김 씨는 간호사에게 "저는 1번 빼고 모두 해당하는데요. 철원에서 군 생활 하다가 전역한 지 3개월 됐거든요"라고 말했고, 간호사는 "죄송하지만 지금은 헌혈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다시 오세요"라고 정중하게 헌혈을 거절했다. 김 씨는 다시 "부대에서도 헌혈을 했는데, 무슨 소립니까? 헌혈증 보여드릴까요?"라고 항의해봤지만, 대답은 '안 된다'였다.
김 씨는 의아했다. '철원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도 한두 번 헌혈버스가 와서 내무반에서 단체로 헌혈을 했었는데, 사회에서는 안 받아 준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군 생활 하는 동안 정기적으로 알약 5개 짜리 말라리아 예방약을 복용했고, 후임병 중에는 말라리아에 걸려 후송을 간 녀석도 있었다. 게다가 김 씨가 전남 상무대에 파견가 있을 때 철원, 연천 등에서 온 교육생들은 단체헌혈 대상에서 제외시켜 헌혈을 하지 못 했었다. 그런데 정작 철원 부대에서는 버젓이 단체 헌혈이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전염병 감염 혈액 1206명에게 수혈**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감염자의 혈액으로 만든 주사제가 시중에 유통된 것으로 밝혀져 파문이 인데 이어 이번에는 말라리아 등 법정 전염병에 감염된 환자들의 헌혈 혈액이 다른 환자에게 수혈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은 9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서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2003년부터 올해 6월 말까지 법정 전염병에 걸린 뒤 완치되지 않은 환자 549명이 헌혈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들이 헌혈한 혈액은 수혈용 제제로 만들어져 모두 1206명에게 수혈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들 549명은 결핵·볼거리·세균성 이질·쓰쓰가무시병 등 모두 13개 질환 병력이 있어 헌혈을 하거나 받아서는 안되는 상태였다.
특히 말라이아의 경우 혈액 항체 검사를 하는 지역에서도 수혈된 것으로 드러나 혈액 검사의 허점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발병 후 3년이 지나지 않은 말라리아 환자 38명도 헌혈을 했고 이 피는 22명에게 수혈됐다.
말라리아는 1998∼2001년 4명이 수혈로 감염된 바 있다. 이에 휴전선 일부지역 등 말라리아 위험지역에서 헌혈된 혈액은 수혈용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2001년부터 서울·경기·강원 등 일부 말라리아 발생지역에서 헌혈된 혈액에 대해선 반드시 항체검사를 실시해 오염 여부를 확인하고 있으나 허점이 드러난 것이다.
또 결핵에 걸린 환자의 혈액도 모두 622명에게 수혈됐으며, 유행선이하선염(볼거리·485명), 쓰쓰가무시병 오염 혈액(35명) 등 부적격 혈액이 모두 1206명에게 수혈됐다.
결핵 환자의 경우도 완치 후 3년간 채혈이 금지돼 있으나 이번 조사에서 전체 549명 중 49%인 270명이 결핵환자인 것으로 나타났고, 이들이 수혈한 피는 모두 622명에게 수혈됐다.
앞서 언급했던 '형식적인 문진 절차'도 큰 문제인 것으로 지적됐다. 헌혈자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병력을 통보하지 않는 이상 전염병 감염 여부에 대한 조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법정 전염병은 국가가 관리하는 질병인데도 질병관리본부가 환자의 명단을 한국적십자사 혈액원에 통보하는 절차마저 갖춰져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져, 혈액 검사와 관리체계에 대한 대수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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