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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혈액사업, 적십자사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기고] 한때의 백혈병 환자가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

건강세상네트워크 강주성 공동대표가 이번 대한적십자사의 에이즈 오염 혈액 유통과 관련해 긴급 기고를 보내왔다.

국민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에서 강 대표는 "혈액사업 쇄신을 감당하기에 지금의 적십자사는 여러 가지 한계를 노출해 왔다"며 "특히 이번 사고에서 보이듯이 잘못을 떳떳하게 인정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적십자사의 부도덕함을 상징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혈액사업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적십자사에서 혈액사업을 떼어내 국립혈액원을 만드는 것과 같은 강도 높은 개혁밖에 없다"며 "적십자사라는 조직에는 희망이 없다"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2000년 골수 이식을 받기 전까지는 수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백혈병 환자였으며 최근 수년간 혈액사업 개혁에 앞장서 왔다. <편집자>

***"진실을 이야기하라. 이 거짓말장이 적십자사야"**

이번에 또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 혈액 채혈 및 수혈과 관련한 기사는 다들 보셨지요? 이번의 사고는 겉에서 보면 예전의 사고와 동일하게 보이지만 사실 내용으로 보면 좀 다른 건입니다. 이번의 사고를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 헌혈자가 올해 4월 20일에 인천혈액원에서 헌혈을 했는데 혈액검사(이 때의 혈액검사법은 올해 2월 1일부로 새로 도입된 NAT, 즉 핵산증폭검사법이었습니다)를 해보니까 HIV 양성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 헌혈자가 혹시 예전에도 헌혈을 했던 기록이 있나 해서 조회를 해보니까 작년 12월 1일에도 헌혈을 했던 기록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때의 검사기록을 보니 당시의 혈액검사는 '음성'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이때 검사는 EIA, 즉 효소면역검사법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검사법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는 검사법이지만 NAT 검사법이 EIA 검사법보다 훨씬 더 정밀한 검사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적십자사는 처음 검사했을 때 '덜 정밀한' 효소면역검사법으로 검사를 했기 때문에 판정이 잘못 나왔다고 이야기하면서 올해부터는 첨단 검사법인 NAT(핵산증폭검사)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앞으로는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는 아직 핵산증폭검사가 도입되지 않았던 시기입니다. 그 후 금년 4월에 같은 헌혈자가 헌혈했는데 에이즈가 양성이었습니다. 이에 동 헌혈자가 2004년 12월 헌혈한 혈액의 검체를 핵산 증폭검사로 다시 검사한 결과 양성판정이 나와 불행한 일이 발생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9월 5일, 에이즈감염혈액 수혈 및 제제 유통과 관련한 적십자사 해명자료)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적십자사의 심각한 도덕적 문제가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12월 1일에 헌혈한 혈액의 검체를 4월에 다시 검사했을 때 적십자사는 NAT(핵산증폭검사)만 한 것처럼 국민들에게 선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이번에 해당 검체에 대한 검사는 NAT와 EIA 두 가지 검사를 동시에 실시한 것입니다. 결과는 그 두 가지 검사 모두 양성으로 나왔습니다. 그게 무슨 문제냐고요?

처음 효소면역검사법에 의해 검사한 당시의 혈액 검체는 냉동으로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에 몇 개월이 지난 후 다시 검사해도 같은 검사법에 의한 것이면 같은 검사결과가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적십자사는 이 두 가지 검사를 시행했음에도 한 가지 검사만 실시한 것처럼 부분적으로 사실을 은폐합니다. 아울러 지금의 검사법은 첨단의 검사법, 그리고 이전의 검사법은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검사법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었다는 투로 이야기하면서 어떤 검사방법이든 그것은 '과학적 한계이자 인간적 한계'라고 국민들을 호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검사방법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이지요. 아직 인간이 만들어낸 검사법으로는 100% 완벽한 것이 없으니까요.

특히 금년 2월부터 핵산 증폭 검사라는 최신 검사법을 도입해 좀 더 안전한 혈액을 공급하고 있습니다만 이것도 100% 완벽하지는 못합니다. 미국의 경우에 이 핵산 증폭검사를 실시해도 에이즈의 경우 190만 명에 대한 수혈에서 1명의 빈도로 수혈에 의한 에이즈 감염이 발생합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환경이라면 1년에 1~2명의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가 수혈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현대의학의 한계입니다.(9월 5일, 적십자사 해명자료)

그러나 당시의 혈액이 혈액학에서 이야기하듯이 잠복기(window priod)여서 어떤 검사 방법을 쓰더라도 음성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면, 4개월이 지난 후 같은 검사법으로 검사해도 마찬가지로 음성이 나와야 하는데 문제는 같은 검사법에서의 결과가 양성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양성이 나왔다고 하는 것은 12월 1일 최초의 혈액도 잠복기가 아니라 활성기였다는 뜻입니다.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이야기를 하라"**

이것은 결국 당시에 잠복기도 아닌 감염 혈액을 적십자사가 잘못 검사(과학적 한계가 아닌!)해서 생긴 문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최초 헌혈을 했을 당시의 혈액검사에서 '누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검사 상의 '실수'를 한 것입니다. 우리는 적십자사가 자신들의 이 중차대한 '실수'를 은폐하려는 행위를 눈앞에서 직접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제 나온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의 관련 해명자료를 다시 한번 볼까요?

"2005년 4월 25일, 수혈 및 분획용으로 출고된 과거 헌혈혈액의 냉동보관검체에 대한 추가 핵산증폭검사를 실시한 결과 양성으로 판정되었음. 이에 대한적십자사는 (…) 위의 상항과 관련, 고의적으로 은폐한 바 없음을 알려드림. 대한적십자사는 올 2월부터 기존의 혈액 검사법 외에도 최신 선진 혈액 검사법인 핵산증폭검사(NAT) 검사법을 도입, 모든 헌혈 혈액에 대해 혈액검사를 실시하는 등 혈액 안정성을 대폭 강화한 만큼 더 이상의 수혈 감염사고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사료됨. (9월 5일, 적십자사 해명자료)

국민과 언론들은 혈액학자가 아닙니다. 전문적인 혈액용어를 알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굳이 알 필요도 없습니다. 의료와 마찬가지로 혈액 문제도 이런 정보의 비대칭성의 문제 때문에 소위 비도덕적인 일부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놀음에 국민이나 환자들이 우롱당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사건에는 이런 문제만이 아니라 그간 안전한 혈액을 공급하겠다고 하면서 '앞으로 그동안 소홀했던 채혈 시의 문진을 강화하겠다'고 했던 정부와 적십자사의 약속이 모두 국민들에게는 기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문진 방법과 과정이 허술했기 때문에 감염자가 자신의 감염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지만 계속 헌혈을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늦더라도 제도적으로 미비하고 허술한 것들은 고쳐나가고 보완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을 은폐하려고 하거나 축소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도덕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적십자사는 아니다"**

올해 초, 정부가 내놓은 안은 혈액사업을 적십자사가 계속한다는 것을 전제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저희는 이런 안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했습니다. 지금까지 줄곧 혈액관리 문제가 적십자사의 오랜 독점적 폐해로 야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안은 독점적 지위를 흔들지 않고 오히려 막대한 돈만 적십자사에 퍼다 주면서 독점을 강화하고 있는 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으로 해보고 잘못하면 그때 독립법인으로 변화시켜나가겠다고 하는 안도 역시 현재의 상황을 매우 안이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03년 부실한 혈액관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이후, 그 과정에서 보여준 적십자사의 태도와 자세 그리고 대응들을 볼 때, 적십자사의 도덕적 해이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보고, 이런 적십자사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직접 담당하는 혈액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혈액이 부족하다면서 대국민 홍보를 하는 적십자사가 주 5일제 시행을 하면서 혈액수급에 대한 대책도 없이 휴일에는 헌혈의 집을 운영(부분적으로만 한다)하지 않는가 하면 대국민 봉사기관이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면서도 뇌물 수수 등의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는 것이 현재 적십자사의 도덕적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적십자사가 앞으로도 혈액관리사업을 계속 해야 하는지 회의를 갖게 됐고, 이에 적십자사가 혈액사업을 즉각 정부에(국민에게) 반납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 왔습니다.

***"국립혈액원을 신설하고 국가가 나서라"**

다른 많은 나라들도 이런 혈액사고를 겪으면서 제도가 발전해 왔습니다. 프랑스도 그랬고, 일본도 그랬습니다. 일본은 몇백 명이 혈액제제에 의해 에이즈에 감염되면서 약을 공급한 일본 녹십자사가 파산했고, 그 이후 일본 정부는 혈액사업에 국가 차원에서 적극 개입하고 매년 막대한 돈을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요? 적십자사의 사람 몇 명이 그만두면 조직이 바로 혁신적으로 바뀌겠습니까? 아마도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저는 현재의 적십자사 혈액사업본부를 적십자사법 개정을 통해 완전히 분리시키고, 그것을 국립혈액원으로 개칭한 뒤, 적십자사 혈액사업 책임자들을 모두 물갈이하고 이중삼중의 감시체계를 작동시키라고 일관되게 요구해 왔습니다. 아울러 위에서 아래로부터 교육을 강화해 조직 전체의 체질을 변화시키지 않는 한, 현재 적십자사 혈액사업부의 근본적인 변화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혈액은 그 자체가 생명이고, 혈액 문제는 전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전기나 물처럼 사회의 공공재로 보고, 혈액사업에 대한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에 따른 강력한 통제와 함께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망가지기 전에 혈액사업에서 손을 떼라"**

같은 상황이 다시 반복되었는데 이를 그저 덮어두고 가면, 이번에는 교통사고 환자였다고 하지만 어떻든 수혈 후에 바로 사망한 환자처럼 우리도 언제 어떻게 같은 피해자가 될지 모를 것입니다. 우리 단체에도 이미 10명 이상의 사람들이 교통사고 후 수혈과정에서 또는 출산과정에서 수혈 받고 각종 질병에 감염되었다는 신고를 해 오고 있습니다. 누가 이런 부실한 혈액관리 시스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이번에 국민들이 강제로 적십자사로 하여금 혈액사업에서 손을 떼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정부가 먼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적십자사 게시판에 국민들이 써놓은 온갖 욕들을 보면서 도대체 국민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으란 말입니다. 국민 여러분, 이도 저도 안되면 적십자사를 해체하게 해주십시오. 우리가 적십자사에서 어떤 희망을 읽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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