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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력, '빛에 빚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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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달력, '빛에 빚지다'

[박점규의 동행]<12> 기륭에서 현대차까지 비정규직 눈물을 앵글에 담은 사진가들

지난 7월 20~21일 '하늘 감옥'에 매달려 280일을 절규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희망버스와 희망열차를 탄 4000여 명이 현대차 울산공장을 다녀왔습니다. 그 뒤 하루 만에 세상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언론은 '폭력' 버스, '혼란' 버스, '술판' 버스 등의 원색적인 단어를 사용해가며 희망버스를 비난했고, 단 한 개의 쇠파이프도 없었던 희망버스에 대해 "쇠파이프 든 2500명, 펜스 뜯고 강제 진입"이라는 거짓 기사가 쏟아졌습니다.

현대차가 고소장을 제출하자마자 검찰과 경찰은 53명을 동원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렸고, 700명이 넘는 경찰이 노동자를 잡으러 다녔습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검경 등 관계기관은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불법 폭력 행위자는 끝까지 추적해 엄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7월 20일 현대차 희망버스에서 용역경비가 경찰 간부에게 소화기를 던지는 사진. ⓒ정택용
희망버스 참가자 중 20명이 넘는 시민이 쇠파이프와 낫으로 무장한 용역 경비들이 던진 소화기와 돌을 맞고 머리가 20센티미터 이상 찢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했고, 경상을 입은 사람들까지 포함하면 100명이 넘게 다쳤다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현대차 재벌의 돈과 광고, 권력 앞에서 거짓과 왜곡이 진실로 둔갑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희망버스 기획단에 사진 한 장이 왔습니다. 용역 경비가 경찰 간부에게 소화기를 던져 경찰이 부상당하는 장면이 연속으로 찍힌 사진이었습니다. 사진을 본 순간,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희망버스 기획단과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사진가들이 건네준 자료를 근거로 현대차 정몽구 회장, 윤갑한 사장, 보안운영팀장 등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이에 대해 합동수사본부는 "민주노총이 고소한 내용에 대해서도 사측의 고소와 형평이 맞도록 엄정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경찰은 한 장의 사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대차를 조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희망버스 왜곡보도와 한 장의 사진

이 사진을 찍은 주인공이 정택용(37) 사진가입니다. 현대차 용역 경비대가 뿌린 소화기 때문에 숨쉬기가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는 현장을 담기 위해 맨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때 정복을 입고 현장을 지휘하던 중부경찰서 경비교통과장이 현대차 용역경비들에게 소화기를 던지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현대차 용역경비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욕설을 퍼부으며 소화기를 정면으로 던졌습니다. 곁에 있다가 손으로 소화기를 막은 경찰은 손이 부러졌고, 경비교통과장도 어깨에 소화기를 맞았고, 계급장도 떨어져 나갔습니다.

택용 씨는 너무 놀랐고, 잊고 있었던 카메라를 들어 연거푸 셔터를 눌렀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소화기 분말에 정신이 혼미해 있던 터라 사진은 엉망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한 장의 사진이 진실을 밝히는 빛이 되었습니다.

정택용, 그와 처음 인사를 나눈 건 2010년 가을 기륭전자 노조사무실인 컨테이너 안에서였습니다. 굴착기 위에 송경동 시인과 김소연 분회장이 농성을 하고 있었고, 공장 경비실 옥상에는 두 명의 여성 노동자가 단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인 양 편안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마치 택용 씨가 기륭 조합원인 듯 카메라를 불편하기는커녕 환한 웃음을 보여줬습니다.

기륭전자 농성장에서 살던 사진가

택용 씨는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비싼 카메라를 살 돈이 없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 회사에서 돈을 벌어 카메라를 장만하고, 사진학과에 편입해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인터넷 언론과 주간지에서 7년 동안 사진기자로 살았고, 지금은 프리랜서 사진가로 지내고 있습니다.

2008년 여름이었습니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000일이 되기 전에 해결하라며 집단 단식에 들어가고, 김소연, 유흥희 조합원이 소복을 입고 공장 경비실 옥상에서 40일이 넘는 단식을 이어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매일 옥상을 오르내리며 조합원들을 앵글에 담았습니다. 단식의 시간이 길어지고, 60일이 넘어가면서 김소연 유흥희 두 조합원의 눈빛이 점점 흐릿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단식을 중단하라고 많은 이들이 울면서 호소할 때였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는 눈물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고 셔터를 눌렀습니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그가 찍은 사진을 언론에 보냈고, 기륭은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자 노동자와 시민들의 연대의 구심이 되었습니다. 그 해 그는 '민변 2008 인권사진 대상'을 받았고, 2010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1895일 헌정 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를 냈습니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공장 안에서 파업을 하고 있는 사진. ⓒ정택용

생사를 넘나드는 사람을 찍어야 하는 고통


2009년 1월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현장인 남일당에서 피 토하는 심정으로 사진을 찍던 사진가들이 머리를 맞댔습니다. 국내외에서 개인 사진전을 열고 대추리부터 강정마을까지 사진을 찍어온 노순택 작가와 국가인권위원회 사진디렉터 한금선 작가가 사진으로 조금이라도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뜻으로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가' 모임을 제안했습니다.

사진가 모임에는 <한겨레> 강재훈 선임 사진기자, 주관 사진상에서 피처스토리 대상을 받은 김흥구 사진가, <프레시안> 최형락 기자, 용산 재개발 현장과 한진중공업 파업 현장 등에서 '조재무의 움직이는 사진관'을 운영해 온 조재무 사진가 등 많은 이들이 함께했습니다.

이들은 2009년부터 매년 주제별 사진을 담은 <빛에 빚지다>라는 이름의 달력을 제작해 판매했습니다. 사진가들과 기획자, 디자이너, 시인 등 수십 명이 재능기부를 해서 만들어진 달력의 판매 수익금 전액은 연대가 가장 시급했던 용산참사 희생자 유족, 기륭전자분회, 쌍용차 해고자, 콜트콜텍 해고 노동자들에게 전달됐습니다.

이들은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달력 프로젝트 <빛에 빚지다> 다섯 번째 주제를 '노동의 자리'로 정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동을 담은 달력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송경동 시인, 기륭전자 김소연 전 분회장, 송전탑에서 296일을 싸웠던 현대차 최병승 조합원, 이광수 부산외대 교수가 시와 글을 보탰습니다.

택용 씨와 동료들은 올해 사진달력의 수익금을 10년째 인간다운 삶과 정규직 전환을 위해 자본과 싸우고 있는 현대차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전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10년 11월 15일부터 25일 동안 울산공장 점거파업을 하면서 온종일 김밥 한 줄과 비닐 이불 한 장으로 버티며 싸웠습니다.

대법원과 노동위원회에서 정규직이라고 판결받은 두 명의 노동자가 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여름까지 296일이라는 시간 동안 송전 철탑에 매달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절규했습니다. 전국에서 수많은 이들이 현대차 희망버스를 타고 응원하고 연대했습니다.

<빛에 빚지다> 2014년 달력 '노동의 자리'는 탄압과 회유와 폭력에 맞서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을 지켜온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건네는 응원가입니다.

사진달력 수익금은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2005년부터 참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싸움을 했습니다.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장 크레인에 올라 경찰 특공대에 진압당했고, 130미터가 넘는 타워크레인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도장공장 점거파업을 했고, 이랜드 노동자들은 매장을 점거했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94일 단식과 최루액이 쏟아지는 86일 굴뚝 농성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노동과 저항을 담는 사진가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2010면 11월 15일부터 현대차 울산공장 점거파업을 하고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침탈에 대비해 창틀을 용접하고 있는 사진. ⓒ이명익

2013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아닙니다. 삼성전자서비스, 케이블 비정규직, 재능교육, 대학 청소 노동자들, 콜센타와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싸움은 쉼 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동자들만이 아닙니다. 아름다운 섬 제주 강정에서, 경남 밀양에서 생명과 삶 터를 지키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들 곁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진을 찍는 사진가들이 있습니다.

국정원이 당선시킨 박근혜 대통령이 국군의 날 열병식을 보며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고 있을 때 경찰은 살려달라는 밀양 '할매'들을 짓밟고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용산 살인진압의 주범 김석기 전 경찰청장을 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하던 날, 밀양의 할매들은 쓰러져 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택용 씨와 사진가모임의 사진가들은 한걸음에 밀양으로 달려갔습니다. 사진을 찍다가 머리가 터지고 카메라가 깨져도, 노동과 생명을 지키는 현장을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아프지만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 곁에 가장 아름다운 빛이 함께 있습니다.

※ 달력의 가격은 1만3000원이며, 집단 구매도 가능합니다.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가' 홈페이지(www.choisohan.org)를 통해 10월 4일까지 달력 주문을 받고 10월 중순 배송할 예정입니다. 예약 구매하시는 분들의 이름이 달력의 한 페이지가 됩니다. 정택용 작가의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1895일 헌정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도 구매할 수 있습니다.

※ <사진위주 류가헌 流歌軒> 갤러리(www.ryugaheon.com)에서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달력 '빛에 빚지다' 전시가 열립니다. 기간은 10월 15일~10월 27일이고, 10월 19일(토) 오후 4시에는 오프닝을 겸해서 그동안 '빛에 빚지다'와 함께해 주신 분들을 위한 '최소한 사진관'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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