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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기관 원자력硏의 버티기, 죽어도 정규직은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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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책기관 원자력硏의 버티기, 죽어도 정규직은 안된다?

[박점규의 동행]<11> 10년 동안 일했는데 '소속 외 인력'

추석 연휴 기간, 경찰이 특별 방범 활동과 교통관리 단속을 하고 있는데 성남과 시흥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음주운전을 해 이들을 대기 발령하고 중징계할 방침이라는 뉴스가 보도됐습니다. 지난 6월에는 수원지방법원에서 음주운전을 한 경찰관의 판면이 정당하다는 판결이 났습니다.

일반 운전자들과 달리 법을 집행해야 하는 경찰이기 때문에 비판의 칼날이 더욱 매섭습니다. 법을 집행하는 판사, 검사, 경찰은 일반 국민들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정부와 산하 기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을 집행하는 곳이자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900만 비정규직 시대, '진짜 사장'을 찾아 싸우는 길이 '엄마 찾아 삼만리'보다 더욱 험난한 시대입니다. 온갖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비정규직을 고용하고 착취합니다. 현대자동차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3년을 훌쩍 지났지만 정몽구 회장은 꿈쩍도 안 합니다.

하지만 정부와 공공기관은 달라야 합니다. 법을 지켜야 할 정부기관이 못된 대기업을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정부가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고, 대기업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법원으로부터 불법파견을 판정받은 사업장에 대해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해 원청에 직접고용을 명령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정부 산하기관 중에서 행정기관에 의해 처음으로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대해 전국 200만 사내하청 노동자, 나아가 90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입니다.

정부 산하기관 중 처음으로 불법파견을 판정받은 연구원

ⓒ연합뉴스

대학에서 제어공학과를 전공한 황형진(36) 씨는 외환위기 구제금융사태의 여파로 취업이 어려웠지만 컴퓨터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터라 대전에서 테크하우스라는 중소 컴퓨터 전문 유지보수업체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형진 씨는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국책연구소들을 방문해 전문가용 컴퓨터와 프로그램을 유지, 보수하는 일을 했습니다. 2004년 여름, 지금은 정년퇴임을 한 한국원자력연구원 시설운영실장이 그에게 연구원에서 일해 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복잡한 고성능 컴퓨터와 어려운 프로그램 도면도 금세 파악하고 능숙하게 처리했던 형진 씨를 눈여겨봤기 때문입니다.

이력서를 내고 보름이 지나서 그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아니라 새한기술이라는 하청업체 소속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월급도 전에 다니던 회사보다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 저 회사를 돌아다니며 수리하는 일보다는 낫겠다 싶어 그냥 다니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일을 시작했고,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 되었습니다.

그 무렵 대덕연구단지의 기능직 업무에 하나둘씩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1998년 구제금융사태 직후부터 현대자동차를 필두로 정규직으로 채용해야 할 자리를 사내하청 노동자들로 채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정부 산하 국책연구원까지 사내하청 노동자를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고성능 컴퓨터 전문가가 사내하청 노동자로

연구원에 있는 항온항수기, 가스저장고, 연구 장비, 액체방사선폐기물, 비상발전기 등 고가의 고성능 설비들이 이상이 없는지 보수 정비하고 관리하는 일이 형진 씨의 주된 업무였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서 시설 안전점검과 핵물질 사찰을 나오면 정규직 직원들과 똑같이 사찰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우라늄 실효 샘플을 보고 고밀도 전자현미경을 통해 우라늄 조직에 대한 상태를 측정해 박사들에게 보고하는 일을 맡아서 했습니다. 실험용 연구 장비를 잘 다루고 업무에 뛰어나다 보니 '박사님'들이 해야 할 일까지 하게 된 겁니다. 지난해에는 우라늄 파우더를 이용해 판형 핵연료를 실험하고 생산하는 연구 작업도 했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홈페이지에 나온 인력현황을 보면 연구원에는 연구직, 기술직, 행정직, 기능직 직원 1,268명이 일하고 있고, 계약직 노동자 546명, 단시간 노동자 63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10년을 함께 일한 형진 씨와 같은 사내하청 노동자를 일컫는 '소속 외 인력'이 155명으로 나와 있습니다.

연구원에서 10년 동안 일했는데 '소속 외 인력'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고,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파업을 할 때에도 그는 고성능 설비들을 보수하고, 우라늄 데이터를 측정하는 일들에 빠져 자신이 불법파견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대기업들이 불법을 저지를 수 있겠지만 국가기관에서 법을 어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낀 것은 2007년이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실험용 연구 장비의 오퍼레이터 역할과 데이터 분석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연구원에서 그에게 2년 기간제 계약직으로 전환하라고 했습니다. 하던 업무는 그대로여서 그는 별생각 없이 그대로 따랐습니다. 2007년 6월 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정규직이라는 판결이 나오자 불법 사내하청을 기간제 계약직으로 바꿨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2년이 되기 한 달 전인 2009년 6월, 연구원에서는 그에게 다시 사내하청 업체로 가라고 했습니다. 3개 업체를 던져주더니 하나를 고르라고 했고, 싫으면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2007년 7월 1일 시행된 기간제법에 따라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고려공업검사'라는 하청업체로 가야 했습니다.

기계와 장비에 빠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고, 노동조합의 경험이 있었던 동료들도 없었습니다. 민주노총 소속이었던 정규직노조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불법파견이 뭔지, 비정규직이 뭔지도 모른 채 9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가던 의문과 불만이 스멀스멀 삐져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조금씩 눈을 돌리는 순간, 지금까지 자신이 속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2010년 7월 22일 현대차 불법파견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도 알게 됐고, 자신이 지금까지 불법파견 사내하청 노동자로 살아왔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습니다.

기계와 장비에 빠져 불법인지도 모르고 살아온 10년

세상에 눈을 뜬 그와 동료들은 지난해 8월 24일 한국원자력연구원 비정규직지회를 만들었고, 그는 부지회장을 맡았습니다. 비정규직노조는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따라 2012년 10월 말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상대로 불법파견이기 때문에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냈고, 11월 말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불법파견에 진정서를 접수했습니다.

법을 지켜야 할 정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에 대한 믿음은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연구원은 거액의 법률 비용을 들이며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사건을 맡은 '화우'라는 로펌(법률회사)과 계약해 불법파견을 은폐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조를 만들고 노동부에 진정을 넣은 조합원 13명을 올해 1월 31일과 3월 31일 두 차례에 걸쳐 해고했습니다.

국가 연구기관이 삼성과 현대차처럼 못된 재벌기업이 해 온 것을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그는 난생처음 해고자가 되었고, 동료들과 함께 천막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정규직노조는 하청노동자들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공공운수노조와 민주노총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변호사들도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나섰고, 지역 노동사회단체 사람들도 마음을 보탰습니다.

법을 지켜야 할 정부기관이 못된 대기업을 따라 하다

그는 해고자 신분으로 추석 명절을 맞았습니다. 부모님과 형제들에게는 해고 소식을 알리지 못했습니다. 고용보험센터에서 실업급여를 받아 그럭저럭 추석을 보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동료들에 비하면 그는 아직 버틸 만합니다.

추석 명절이 끝난 직후인 9월 23일 그는 충남노동지방위원회로부터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그를 부당해고한 것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먼저 해고된 두 명을 포함해 13명 모두 불법파견 판정을 받았습니다. 연구원의 '소속 외 인력'이 아니라 연구원 '소속' 직원이라는 판정입니다.

이미 7월 26일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한국원자력연구원의 3개 사내하청업체 73명의 노동자들을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하고, '파견법 위반에 따른 시정명령(직접고용명령)'을 내려 8월 23일까지 73명을 직접고용하라고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원자력연구원은 73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도 않았고, 노동조합의 교섭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연구원은 퇴직자 등이 포함돼 수용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8월 12일 대전지방법원에 행정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습니다.

불법을 바로잡아야 할 미래창조과학부와 기획재정부는 "원자력연구원의 도급계약 관계는 적법했다"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원자력연구원의 효력정지 신청을 기각해 불법파견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고용노동부의 명령이 정당하다는 것을 확인해주었습니다.

대전지방노동청은 8월 23일까지 73명을 직접고용하라는 행정명령을 거부한 한국원자력연구원에 9월 3일 1차로 5억30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습니다. 그러자 연구원은 "대전지방노동청의 직접 고용명령을 수용"하겠다며 '원자력연구시설운영직'란 새 직위를 신설해 2년짜리 기간제 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습니다.

▲7월 26일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한국원자력연구원의 3개 사내하청업체 73명의 노동자들을 불법파견이라고 판정하고, '파견법 위반에 따른 시정명령(직접고용명령)'을 내려 8월 23일까지 73명을 직접고용하라고 결정했다. ⓒ프레시안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데 2년 뒤 해고하는 계약직으로 채용한다고?

종전과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처우를 받으며 모든 법정 소송을 중단하고 2년 뒤에 자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안을 냈습니다. 불법파견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정부의 명령에 10년 넘게 일한 사람을 2년 뒤에 해고하겠다는 황당한 안을 낸 것입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동료들은 회사를 그만두기도 했고, 2년 계약직에 서명하기도 했지만 28명의 조합원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24일, 회사는 '대전고용노동청 직접고용명령 이행(안)'이라며 △고용의제자(2005년 7월 1일 이전 입사자) 무기계약직 △고용의무자 1년 계약직, 2년 평가 후 우수자 무기계약직 전환 △처우 15.1%~28.8% 인상을 내놓으며 현재 노조가 진행 중인 모든 소송을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중앙행정부처인 노동부가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명령하고 법원이 이를 정당하다고 판결했는데, 국가기관인 연구원이 불법과 편법을 동원해 정규직 전환을 거부하고, 2005년 7월 1일 이전 입사자와 이후 입사자를 분열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법을 지켜야 할 정부 기관에 훔쳐간 물건을 되돌려달라고 했더니, 훔친 물건 중에서 일부를 그것도 2년만 되돌려주고, 2년 뒤에는 모르겠다고 하는 꼴입니다. 형진 씨와 동료들은 입사연도와 무관하게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기능직과 동일하게 임금과 노동조건을 적용하며, 밀린 임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조합원들을 분열시키려는 연구원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23일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서 열린 부당해고 구제신청 심판회의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노동위원회에 조합원들의 업무내용을 담은 '시방서'라는 문서를 제출했는데, 이 문서가 위조되어 있었습니다.

'시방서' 원본에는 원청인 원자력연구원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시간 외 근무를 지시할 수 있고 휴가 등 근태를 관리하며 투입인원에 대한 승인 및 교체, 출장비 지급 등 불법파견을 판단할 수 있는 핵심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자력연구원은 이러한 내용을 삭제한 문서를 노동위원회에 제출했습니다.

원자력연구원의 사용자는 고의적인 삭제가 아니라 실무적 착오라고 했지만 문서의 개정이력이 적시되지 않는 등 문서조작이 분명하다는 것이 노동조합의 판단입니다. 불법을 은폐하기 위해 또다시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연구원에 대해 노조는 사문서위조, 노동위원회법 31조 위반, 공무집행방해 등의 혐의로 연구원을 고발하려고 합니다.

불법파견 은폐하기 위해 문서까지 위조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인력과 예산을 수반한 문제는 연구원 차원에서 해법을 찾기 힘든 상황이라서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라며 정규직 전환에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결국 박근혜 정부가 'OK' 하지 않으면 법을 지켜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불법노동에 대한 방조와 직무유기로 현대차의 불법파견이 10년 동안 시정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한국원자력연구원은 법을 집행해야 할 정부 기관에서 처음으로 불법파견이 확인됐고, 직접고용 명령이 내려졌으며, 과태료까지 부과된 곳입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2015년까지 공공부문 상시·지속적인 업무 정규직 전환"과 "불법파견 사업장 특별근로감독 실시, 원청 직접고용 행정명령"을 약속한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공약이 사기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시금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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