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무감사 자료 유출과 이재오 사무총장의 ‘5-6공 인적청산’ 발언으로 내분에 휘말린 한나라당의 계파갈등이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당무감사 자료가 공개된 29일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던 당 중진 의원들은 30일엔 작심한 듯 최병렬 대표와 이재오 총장 등 지도부를 향해 맹공을 폈다.
***하순봉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당 중진들은 이번 당무감사 자료가 지도부의 인위적인 인적쇄신을 반영한 결과라고 주장하며 지도부를 맹성토했다. 이들은 최병렬 대표의 퇴진도 요구하고 나섰다.
당무감사 자료에서 C등급으로 분류된 하순봉 의원은 “지도부가 앞장 서서 동료에게 칼질하는 게 야당이냐”며 “대표부터 책임져라”고 최병렬 대표의 퇴진을 요구했다. 그는 “중진들은 그래도 지도부 중심으로 뭉치려고 했다”면서 “중진들이 당 지도부에게 비대위가 할 일은 국민앞에 석고대죄 하라는 것이라고 한두 번 외친 것도 아닌데 우리 의견의 10분의 1이라도 받아준 적 있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하 의원은 공천 규정에 대해서도 “경선 선거인단을 당원 10%, 국민 90%로 구성할 바에야 전부 국민들로 하라”며 “지구당 위원장 사퇴해서 공천에 참여하라는 것도 의총이나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에서 한 번이라도 거론된 적 있느냐”고 지도부에 쌓였던 불만을 한꺼번에 털어놨다.
하 의원은 5.6공 의원 퇴진론에 대해서도 “민정, 민주, 공화가 한나라당의 본체”라며 “절이 싫으면 스님이 떠나라. 당 혼란을 조장하는 사람을 오히려 인적쇄신해야 한다”고 주장해 중진들의 많은 호응을 받기도 했다.
그는 “당의 주인은 우리다”며 “당이 제멋대로 굴러가고 있는데 한두 사람 마음대로는 안된다”고 말해 공천을 앞두고 중진들의 대반란을 예고했다.
***박종웅 "이것은 살생부"**
공천탈락 대상인 D등급으로 분류된 YS 대변인 박종웅 의원은 “3김 청산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정작 누구에게 공천을 받았느냐”며 “한나라당이 하나당을 키우려 하냐”며 당내 인적쇄신론에 대해 강하게 성토했다.
박 의원은 “이는 당무감사 자료가 아니라 ‘살생부’”라며 “지도부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니 오늘 전 신문에 다 퍼졌다”고 지도부의 미온적 대처를 성토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이재오 총장과 자료유출혐의를 받고 있는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1백50여명을 공천하는데 초선 위주의 공천심사위 구성은 말이 안된다”며 공심위 재구성을 요구했다.
***정형근, “민주주의 지키기 위해 밤잠 설쳤다”**
정형근 의원은 당무감사 자료에선 B등급을 받았으나, 자신이 ‘5-6공 인적쇄신’ 대상자의 대표주자로 여겨지는 데 대해선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정 의원은 특히 5-6공 인적쇄신론을 정면 제기한 소장파 남경필 의원에 대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수원지검 검사를 하면서 남 의원 아버지를 잘 알고 그 축재 과정도 잘 안다”고 남의원의 선친에 대한 인식공격을 서슴치 않은 뒤 “남경필 의원이 미국에서 오렌지족 생활을 한 것도 잘 안다”고 공세를 폈다.
정 의원은 이어 “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기 위해 밤잠을 설친 사람”이라며 “인권탄압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비록 내가 5.6공과 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지 않는다”며 “이승만 전대통령의 건국정신과, 박정희 전대통령의 위대한 산업화, 전두환 전대통령도 비판은 받지만 88올림픽 등 많은 일을 했다”고 주장했다.
***“대표 경선에서 최병렬 안밀었다고 보복하는 거냐”**
D등급으로 분류된 박원홍 의원은 언론에 공개된 당무감사 자료가 지난 대표 경선 당시 최병렬 대표를 지지하지 않은 의원들에 대한 보복성 결과라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10월 당무감사에서 90점을 넘게 받은 의원이 11월 새 총장이 취임한 뒤에 D등급으로 떨어졌다”며 “지도부의 물갈이 입김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대선 당시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노심초사 일했던 사람들 중 주요당직자가 아닌 사람들의 등급을 보라”며 “지도부가 공천과 선거를 이용해서 당을 독식하자는 것이고 사당화라는 공격을 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서울시지부장이고 최 대표의 전 지역구인 서초갑 의원인 본인이 D등급을 받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대표 경선에서 최 대표를 적극적으로 밀지 않았다고 해서 받은 성적표라고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비대위 해체, 해체하지 않을 경우 운영위 의결사항으로 해체 안건 상정 ▲이재오 총장의 즉각 해임 작성자 문책 ▲‘이회창 색깔을 당에서 몽땅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 홍준표 전략기획위원장 사퇴 ▲공리적 당 운영, 실추된 의원들의 명예 회복 조치 등을 당 지도부에 요구했다.
***영남 의원이 C, D가 많은 진위 밝혀야**
C등급으로 분류된 부산지역의 권철현 의원도 “당무감사를 통해 신비주류를 제거하고 영남을 물갈이 하려 한다는 모측의 얘기가 있다”며 “등급을 나누라고 지시한 사람은 누구며 이를 시행한 당사자는 누구냐”고 지도부 사퇴를 요구했다.
권 의원은 “대표나 총장 둘 중 한명이 책임져라”며 “사퇴하지 않을 경우 사퇴 서명작업을 받겠다”고 의원들에게 동참을 요구했다. 이에 의원들은 “하겠다”, “그래야지”라며 큰 박수로 호응했다.
권 의원은 당무 감사 자료 자체에 대해서도 “1차 당무감사 자료가 도중에 폐기되는 등 조작된 흔적이 있다”며 “기획된 작품이고 의도된 배경이 있다”며 지도부의 자료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D등급으로 분류된 부산지역의 권태망 의원도 “C, D 등급의 70%가 영남의원”이라며 “이 부분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가세했다.
***최병렬-이재오 진화에 진땀**
이재오 총장에 대해 중진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이 총장은 “총장에 취임하기 전에 시작되어 계속하게 한 당무감사일 뿐”이라며 “내가 거대한 함정에 빠진 것 같다”고 해명하기에 급급했다. 그는 “누구는 몇 점 이렇게 하지 말고, 90점, 80점 이렇게 점수 나눠서 하면 내가 보기에 편하지 않느냐고 말한 것이 전부”라며 “어떤 XX놈이 당무감사 자료에 공천과 관련한 내용을 쓰겠냐”고 해명했다.
이 총장은 “사실을 왜곡하지 말고 조직국에서 흘러간 일에 대해 사무총장이 책임지는 것이 상식”이라고 자신이 책임지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내 거취는 내가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도 아니고, 음모를 꾸미거나 부정직하게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다”고 고함을 친 뒤 “사무총장이 아니라 그 이상도 버릴 각오하고 있다”고 사퇴의향을 거듭 내비쳤다.
최병렬 대표는 의총 마무리 발언에서 “현 지도부가 아닌 사람에게 부탁해 사실관계를 조사하도록 했다”며 “오늘 내일 중으로 파악될 것이니 기다려 달라. 책임문제는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달랬으나 의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이에 따라 당 지도부의 ‘살생부’ 유출에 대한 납득할만한 책임추궁이 제시되지 않을 경우, 공천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당 내분으로 확산, 최 대표의 ‘인적 쇄신’ 추진에 크게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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