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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앞에 선 '박근혜 복지', 어디로 갈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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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앞에 선 '박근혜 복지', 어디로 갈 건가?

[편집국에서]<9> 복지 전쟁, 이제 민주당 '결기'에 주목한다

머나먼 타국 땅에서 알듯 모를듯 소심한 사표를 던진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행태는 박근혜 정부의 복지 딜레마를 빼닮았다. 모양새가 우선 그렇다. 대통령이 경질한 것도 아니고 복지정책 후퇴에 주무장관이 반발한 것도 아닌, 참 이상한 사표 행각이다. 누가 봐도 이제 박근혜 정부는 복지 포기로 길로 접어들었는데, 세상 눈치가 그걸 대놓고 고백하기 어려운 지경이라 청와대는 이래저래 속앓이 하는 모양이다.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들에게 기초연금 20만 원을 매월 지급하겠다던 공약은 없던 일이 됐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경제적 형편을 고려해 노인의 70%에게만 최고 20만 원 한도에서 차등지급 하는 방안으로 후퇴했다.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부담 공약도 환자 부담이 가장 심한 3대 비급여(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에 대한 보장안이 빠져 '먹튀 공약' 논란을 겪은 터다. 박 대통령이 26일 국무회의에서 대한 입장을 직접 밝힐 예정이다. 박 대통령이 어떤 말로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할지는 알 수 없지만, 후보 시절 "내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였다"며 올린 한국형 복지의 깃발이 이틀 후면 누더기가 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청와대

박 대통령의 '기초노령연금 2배 인상' 공약이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추진 합의가 발표된 지난해 11월 5일에 나왔다는 사실을 이 시점에서 트집 잡지는 않겠다. 복지국가 운동을 해 온 사람들조차 깜짝 놀란 이 공약에 얼마나 많은 표심이 흔들렸는지도 지금 와 따지지 않겠다. 좌파 용어였던 복지를,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시혜처럼 여겨진 복지를 시대정신으로 끌어올린 데에 먹튀 행각일지언정 박 대통령도 한 몫을 한 셈이니까. 그 덕에 복지 정책을 "방만한 퍼주기"(23일 심재철 의원)라고 하는 새누리당의 주장도 칭찬보다 욕을 먹는 것이다. 박근혜를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한 양대 공약의 파기는 속 뒤집히는 일이지만, 그로 인해 이 정부가 겪게 될 엄청난 후폭풍은 복지가 여전히 불가역적 대세라는 걸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사마귀의 저항에 수레가 멈추는 일은 없다. 무상급식으로부터 시작된 폭발적인 복지 수요는 복지국가가 무엇인지를 논리적으로 설득한 결과라기보다는 그 필요성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깨달은 결과다. 복지 정책 확대를 위해 본인의 세금 부담이 늘어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럴 의향이 있다는 응답과 없다는 응답이 48.1%로 똑같이 나온 여론조사 결과(8월 23일, SBS-TNS)는 주목할 만하다. 박근혜 정부가 내건 '증세 없는 복지'의 허구성을 간파해 복지가 입만 벌리고 있으면 저절로 떨어지는 감이 아니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뜻이다.

몇 년 사이 꾸준히 증가해 온 이 같은 증세 찬성 여론은 정치권이 세금 논쟁 지형도를 변경해야할 근거로 충분해 보인다. 박 대통령은 최근 여야 대표와의 3자 회담에서 "세출구조조정과 비과세 축소로 복지재원을 마련하도록 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국민 공감대 하에 증세도 할 수 있다"며 처음으로 증세를 언급했다. 자신의 복지 공약이 과대포장된 반면, 이에 투입되는 소요 재원을 과소평가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발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부자 감세 철회의 시금석인 법인세 인상에 완강한 반대 입장을 밝혀 증세 언급을 자가당착에 빠트렸다. 핵심적인 복지 정책이 휴지통에 들어가게 된 마당에도 재벌들에겐 경제 성장 일로매진을 위해 특권을 계속 용인해주겠다는 것이다.

재벌들의 조세 저항에 굴복한 서민 증세론은 설득력 없는 말장난이지만, 증세론의 물꼬를 박 대통령이 터준 건 민주당에겐 행운에 가깝다. 눈치 보느라 벙긋도 못한, '복지는 세금'이란 진실을 박근혜 정부가 대신 만천하에 알려준 것 아닌가. 아귀가 틀어진 박 대통령의 현실인식에 제동을 걸고 보다 담대한 세금 정치로 전선을 장악할 기회가 민주당에게 주어졌다는 얘기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지론이 아니더라도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복지는 과감하게 확대돼야 한다.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인 복지를 개선하지 않고 성장의 돌파구를 마련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제 불확실성을 이유로 곳간에 현금 250조 원을 쌓아두고 투자를 꺼리는 10대 재벌들을 바라보는 것보다 복지 확대가 훨씬 안전하고 현명한 경제 살리기 방법이라는 점을 민주당은 적극적으로 설파할 필요가 있다.

김한길 대표는 23일 강도 높은 원내투쟁을 독려하며 "수권정당으로서 이제 다른 방식으로 결기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정부의 '공약 먹튀'를 비판하는 정파적 수준으로 수권정당의 결기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재벌과 고소득층에 유리한 세제 혜택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서민층의 증세 여론을 보다 적극적으로 자극해야 한다.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표방하고 보다 많은 복지를 주장해 온 민주당이 지지층을 대변해 취할만한 결기 있는 자세란 그런 것이다. 불과 한 달 전, 정부의 세제 개편안에 '세금 폭탄'이란 엉뚱한 진단을 내린 것과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 민주당도 수레 앞 사마귀가 되지 말란 법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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