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6일 ‘SK 비자금’ 문제로 불거진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 “수사가 일방적이라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며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가 제안한 ‘대선자금 특검 실시’에 반대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4당 대표 연쇄회동’ 마지막으로 최병렬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내가 검찰 수사를 말리려고도 안 했지만 말릴 수도 없었다”며 “특검은 대통령이 결단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고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노 대통령이 전날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의 회동에서 ‘고해성사 후 대 사면’이라는 한나라당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하자, 최 대표는 이날 ‘전면적, 무제한적 특검’이라는 새로운 카드를 내놓았으나 노 대통령은 이를 사실상 거부했다.
그러나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대선자금 특검’을 국회에서 합의해 요구해올 경우 대통령이 이를 수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그런 문제를 논할 단계가 아니다”고 윤 대변인이 밝혔다.
***최 대표 “대선 특검 실시 후, 탄핵이든 국민투표든 해야”**
이날 최 대표와의 회동은 대선자금 수사, 재신임 문제 등을 비롯한 첨예한 현안 때문에 처음부터 가시돋친 설전을 주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 대표는 이날 대통령과 직접 대면한 자리에서 “탄핵, 하야”라는 말을 서슴치 않았고, 노 대통령은 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최 대표는 우선 “지난 대선비용에 여야가 큰 차이가 없다는 얘기가 있다”면서 “SK 비자금 관련 이상수 의원, 안희정씨, 최도술씨 등 여러 사건들이 수사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야당 대선자금은 다루고 이 족은 손떼고 있는 것 아니냐. 이 쪽만 깨끗한 척 보이는 거 야당탄압이라는 의견이 있다”며 검찰 수사에 불만을 표시했다.
최 대표는 “검찰수사는 피할 수도 없고 피할 힘도 없지만 형평성이 결여돼 있고 공평한 수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현 검찰로는 힘들다”며 “전면적, 무제한적 특검을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최 대표는 이어 “철저히 밝히고 이번 기회에 다 털고 책임질 것은 책임져야 한다. 고해 후 사면은 곤란하다”며 “특검을 해 수사결과가 나오면 탄핵 사유가 될 경우는 탄핵, 하야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대표는 “국민투표는 위헌 시비가 있으므로 신속히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며 “위헌이 아니라면 국민투표법을 보완, 실시하자”고 말했다.
***盧 “대선자금, 어느 쪽도 완벽하지 않지만 큰 차이는 있을 것”**
노 대통령은 최 대표가 탄핵을 언급한 것에 대해 “전면 수사를 하자는 것에 대해서는 이유가 없지만 탄핵, 하야 가정 하에 얘기하는 것은 심히 유감”이라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노 대통령은 “대선자금과 관련해 어느 쪽도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나 큰 차이는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어느 한 쪽만 책임을 묻자는 것은 아니다. 검찰 수사가 불공평하다고 생각 안했다”며 최 대표가 지적한 검찰 수사의 불공정에 대해 반박했다.
노 대통령은 또 자신이 지난 7월 정치권에 ‘대선자금 동시 공개검증’을 주장했던 것을 언급하며 “공개검증하자고 할 때 관심도 안 보이지 않았냐”며 “이제라도 각 당이 합의한다면 할 수 있는 문제고, 지금 수사에 철저히 응하면 그 과정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겠다”며 정치권이 검찰 수사에 응할 것을 당부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특검 실시 요구에 대해 “특검은 대통령이 결단할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정치권이 결단할 문제”라며 “수사를 안 하다면 모르되 특검의 요건이 되는 불공정 수사, 수사 불신 등이 있는지 먼저 생각해 보겠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정치권이 특검을 하자고 하면 마다할 수는 없고 다 털고 가자는데 동의하지만 정부조직의 최고책임자로서 특검을 문의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재신임 국민투표에 대해 최 대표가 위헌 가능성을 지적한 것에 대해 노 대통령은 “최종결정을 내리기 전에 위헌 여부 판단을 한번 해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盧 “파병, 한나라당도 제1당인만큼 소신껏 임해달라”**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와 관련 최 대표는 “파병 원칙이 확정됐는데 내용을 빨리 확정짓는 게 좋겠다”면서 “국회 조사단 돌아오면 당론으로 말할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거듭 밝혔다.
최 대표는 또 파병 결정과 관련해 “정부내 이견 문제나 신중히 결정하겠다고 하면서 그렇지 않았다는 문제제기가 있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국회 조사단이 빨리 다녀왔으면 좋겠다”면서 “신중히 결정한다는 게 깊이 생각한다는 것이지 시기상 문제를 의미한 것은 아니다”고 해명했다.
노 대통령은 또 “어쨌든 북핵이나 파병 문제 등은 게임의 전략적 소재가 돼서는 안 된다”며 “한나라당도 제 1당의 자세를 가지고 소신껏 임해달라”며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했다.
이날 최 대표와의 회동은 오후 2시부터 1시간 10분가량 진행됐으며,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 임태희 한나라당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盧 “정기국회 상황에서 개각 옳지 않다”**
앞서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박상천 민주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정기국회 상황에서 개각은 옳지 않다”며 정치권의 청와대 및 내각 개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재신임 정국의 원인이 참모들에게 있는 게 아니라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재신임 정국 하에서는 불가능하다”면서 “정기국회는 지금까지 준비해온 사람이 하는 게 순리”라고 말했다.
재신임 국민투표와 관련 박 대표는 “재신임 국민투표는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전달한 뒤 국면 해결 방법으로 책임총리제를 제시했다.
박 대표는 “측근비리나 대국회 갈등에서 현재 국면이 원인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일괄 타결하려면 총선 후 과반수 연합, 또는 다수파 연합에게 내정을 맡겨야 한다”며 책임총리제 실시를 촉구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책임총리제를 하기 위해서는 지역구도 해소가 전제돼야 한다”며 “지속적으로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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