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햇볕 정책의 전도사' 역할을 한 임동원 전 국정원장의 장남인 임원혁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 총괄간사(37)가 이라크 추가 파병 결정에 반발, 청와대에 사표를 낸 것으로 23일 알려졌다.
지난 18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급작스럽게 파병 결정을 내린 뒤 "파병을 하면 사퇴하겠다"는 청와대 참모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임씨가 처음으로 사표를 내, 다른 참모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임원혁씨 "동북아 평화 구상하는 데 한계 있다 판단해 사표 제출"**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파견,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회에서 제도개혁.총괄전문위 간사로 일해온 임원혁씨는 지난 주말 정태인 기조실장에게 "근무처로 복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는 사표 제출 사유에 대해 "청와대가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는 것을 보고, 청와대에서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구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최근 사표를 냈고, 철회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겨레신문이 24일 보도했다.
그는 "각자의 판단에 따라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라며 "내가 사표를 낸 행위가 정치적 문제로 확대 해석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해, 자신의 파병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했다.
하지만 임씨는 김대중 정부시절 햇볕정책을 진두지휘한 임동원 전국정원장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이라크 파병 결정한 대한 김대중 전대통령 및 임동원 전국정원장 등 DJ정부 인사들의 시각을 대변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기도 해, 정가에 미묘한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임원혁 누구인가**
386세대인 임원혁씨는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 경제개혁 싱크탱크였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을 나와 동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그후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며 아시아개발은행(ADB), 세계은행(WB)등 국제경제기구의 컨설턴트로 활약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해초 노무현 후보를 돕는 진영에 참여한 그는 대선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상근자문위원으로 참석해, 노무현 정부의 경제개혁 플랜을 짜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또 지난 3월 재경부 회의에 전 인수위원 자격으로 이동걸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과 함께 참석해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후부터는 공정거래 정책평가위원, 동북아 경제중심추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재벌개혁과 동북아 허브 구상 실현을 위해 진력해왔다.
그는 노무현정부 출범전에 KDI 재직시에도 상위기관인 재경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관료비판적 보고서를 작성한 강단있는 학자로도 유명했다.
한 예로 지난 2001년 11월말에는 KDI가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개발정책 변화(The Evolution of Korea's DevelopmentParadigm)> 보고서에서 대표집필자인 임원혁 연구위원은 "관료집단이 금융ㆍ기업 구조조정의 책임 떠안기를 회피하고,정치권의 눈치를 살피는 바람에 경제개혁이 지연되고 있다"며 관료집단의 무사안일을 비난했다.
그는 "관치논란 재연과 법정분쟁에 휘말릴 것을 우려한 관료집단이 기업 구조조정에 개입하는 것을 기피,대신 '은행을 통한 구조조정'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며 "그러한 정부의 방임으로 인해 대부분의 국영 금융기관들은 부실기업의 과감한 정리보다는 단기적 이익을 위해 부도유예와 워크아웃을 남발해 구조조정을 지연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금융시스템 안정을 명목으로 오히려 부실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강화했다"며 "이는 당장의 부도사태를 막으면서,멀쩡한 기업을 죽였다는 비난을 회피하는 미봉책으로 결국 관료집단의 이해와 맞아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관치금융과 금융기관에 대한 부실 감독으로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은 관료조직이 과거의 나쁜 관행을 고치기보다는 1백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덮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임원혁 연구위원은 또 인수위 시절인 지난 2월5일 내놓은 <네트워크산업 구조개편의 함정> 보고서를 통해서는 무리하게 전력ㆍ철도 산업을 민영화하면 민간 사업자가 시장 지배력을 활용해 전력ㆍ철도 요금을 큰 폭으로 인상하거나, 오히려 이면계약 등 부패가 만연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고서에서 정부는 민영화가 이뤄지면 공공부문 경영성과가 저절로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공공 요금이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된 현재 상황에서는 민간기업도 어쩔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철도부문 적자의 상당 부분은 요금이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된 데서 비롯되고 있다"며 "민간기업이 철도사업을 영위하면 요금 인상 없이도 적자가 해소될 것이라는 장밋빛 환상은 버려야 한다"고 주장해 노무현 대통령이 전력-철도 민영화 계획을 백지화하도록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파병 반대' 비서진 사퇴 이어질지 주목**
임원혁씨 사퇴 소식을 접한 청와대는 이를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미국이나 영국 등의 경우는 지난 3월 이라크전 발발당시 이에 반발해 사표를 던진 각료나 정부 관계자들이 상당수 있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번 임원혁씨 사퇴가 최초이기 때문이다.
임원혁씨 외에도 청와대 참모진들 사이에는 정부가 전투병 파병 쪽으로 최종 결론을 낼 경우 사표를 내겠다는 이들이 상당수 있어, '파병 반대' 비서진들의 사퇴 파동으로 이어질 지가 주목된다.
앞서 박주현 국민참여수석은 지난 21일 "청와대 내부에서 전투병 파병에 대해 절대 안된다는 심각한 분위기가 있고 대통령도 이같은 분위기를 알고 있다"고 청와대내 기류를 전했다.박 수석은 특히 '일부 참모진 사이에 전투병 파병시 사퇴한다는 입장도 있다'는 지적에 "참여정부의 성패에서 책임지는 자세를 갖는 게 중요하다"면서 "그러나 개인에게 진퇴의 자유도 인정해야 한다"며 일각의 사퇴 움직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청와대에서는 유인태 정무수석을 비롯해 상당수 참모진이 파병에 반대해와, 이들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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