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3일 "4당 대표들이 (재신임) 국민투표 시기를 바꾸자고 하면 바꾸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가장 중요한 것은 정기국회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라고 말해 국민투표 실시시기를 내년으로 연기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귀국 후 오는 25~26일 이틀간 자민련, 통합신당, 민주당, 한나라당 대표와 차례로 회동을 가질 예정인 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기존의 '12월15일께 국민투표 실시'라는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재신임 국민투표는 실시하되 야당에서 국민투표 시기 조정을 요청할 경우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또 'SK 비자금' 사건으로 불거진 대선자금 문제에 대해서도 "4당 대표와의 회동에서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대선자금을 둘러싼 정치권 논란도 예고했다.
***국민투표 내년 실시 시사**
싱가포르를 국빈 방문중인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숙소인 샹그릴라 호텔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출국전 '정치적 타결'을 언급한 것은 4당 대표들을 만나면 재신임 국민투표를 설득하고 그 시기에 대해 논의하겠다는 전체 문맥에서 나온 것"이라고 국민투표 실시 의지를 밝히면서 "대표들이 국민투표 시기를 바꾸자고 하면 바꾸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조정시기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정기국회를 잘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해, 올 정기국회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을 시사했다. 내년도 예산 통과일은 법상 12월2일로 잡혀있으나 대부분의 정기국회에서 예산은 12월23~24일께 통과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국민투표 실시시기를 내년이후로 늦추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4월 총선과 함께 실시하나**
노 대통령은 그러나 "재신임이라는 말은 꺼내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지만 일단 꺼내면 가능한한 약속대로 해야 한다"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재신임을 물을 것임을 시사했다.
노 대통령은 "측근비리 의혹사건이 나와서 제가 재신임 문제를 먼저 언급했지만 취임 4개월 때부터 재신임과 퇴진, 또는 이것을 시사하는 말들이 정치권, 특히 과반수 정당으로부터 흘러나왔고 시기도 빠를수록 좋다고 해서 국회일정을 감안해 12월15일을 전후해 하자고 제안했던 것"이라고 국민투표 시기를 제안한 배경을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또 "이런 분위기를 감안할 때 재신임 국민투표는 쉽게 될 줄 알았다"면서 "그런데도 (정치권에서) 안 된다고 하니 만나서 얘기하려는 것"이라고 4당 대표 연쇄 회동을 제안한 이유를 밝혔다.
정가 일각에서는 노대통령의 이같은 재신임 국민투표 실시 의지 및 실시시기 연기 의지 표명을 놓고, 노대통령이 내년 4월15일 총선때 경비 절감 차원에서 총선과 재신임 국민투표를 함께 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하지만 이럴 경우 노대통령이 간접적으로 내년 총선에 관여, 신당에 지원사격을 하는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점에서 야당들이 과연 이 제안을 수용할 것인지 여부는 미지수다.
***"대선자금, 나만 밝히면 끝나는 것 아니다"**
노 대통령은 이밖에 'SK 비자금'으로 불거진 대선자금 문제에 대해 "대선자금을 밝히라고 하는데, 나만 밝히면 다 끝나는 것이냐"면서 "이 문제도 4당대표와 의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해 지난해 대선자금의 전모를 공개할 것을 한나라당에 요구할 것임을 시사했다.
한나라당 최돈웅 의원이 SK측으로부터 1백억원을 받은 사실을 시인하고 이 돈이 한나라당 대선자금으로 쓰였을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대선 자금 문제를 공론화할 경우 한나라당은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이런 문제는 4당 대표와 함께 만나 해결해야 하는데 4당 대표들이 안 된다고 한다"면서 "4당 대표를 각각 만나 의견을 들어본 뒤 전체적으로 의견을 조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7월 '굿모닝 게이트' 사건으로 불법 대선자금 의혹이 일자 "차제에 여야 모두 지난 2002년 대선자금의 모금과 집행 내역을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고 여야가 합의하는 방식으로 철저히 검증받을 것을 제안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파병 강행의지 재차 천명**
한편 노 대통령은 이라크 추가파병과 관련, "과거 우리 파병사(史)를 봐도 '민사작전'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왔다"며 "파병 부대의 편성과 역할이 실질적 도움이 되고 이라크인과 이슬람인들을 잘 이해시키면 파병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파병 강행 의지를 재차 밝혔다.
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성과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북핵문제 해결에 있어 미국의 생각과 역할은 결정적인 것 인만큼 한미간 북핵공조는 아주 잘 맞아야 한다"며 "특히 부시 대통령이 북한 안전보장 문제를 직접 언급했고, 한미간에 공동발표문을 통해 문서로 기록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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