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0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4개항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날 합의문에는 기대를 모았던 북핵 해법 등에서 전향적 내용을 전혀 담지 않고 있으며 우리의 희망과는 달리 한-미정상 기자회견 등도 배제되고 언론 발표문도 당초 예정시간보다 3시간여 늦게 배포돼, 노대통령의 이라크 파병 결정에도 불구하고 회담 성과는 '별무성과'가 아니었냐는 평가를 낳고 있다.
***"北 핵포기 전제, 다자틀내 안전보장 제공"**
양국 정상은 20일 오전 8시반(우리시간 10시반)부터 약 한시간동안 방콕 하얏트 호텔에서 조찬을 겸한 정상회담을 갖고 북핵 문제, 이라크 재건 문제, 한미동맹조정 문제 등 양국간 현안에 대해 논의한 뒤 이같은 내용을 담은 4개항의 '한미정상회담 공동언론발표문'을 발표했다.
양국 정상은 우선 북핵 문제와 관련,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북핵 6자회담 조기개최와 구체적 진전을 이루는 게 바람직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차기 6자회담 진전 모색을 위한 수단과 방안을 공동연구키로 합의했다고 언론발표문은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특히 북한 안전보장 문제에 대해 "북한이 핵 폐기에 진전을 보인다는 것을 전제로 다자간 틀 내에서 북한에 대한 안전보장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어떤 방식으로 북한의 안전보장을 해 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시 대통령이 이날 밝힌 입장은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데 그친 것이라는 점에서 2차 6자회담 개최를 앞둔 북한과의 협상 진전 가능성을 어둡게 하고 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이에 앞서 지난 19일 태국의 탁신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불가침조약을 북한과 체결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해,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이와 유사한 부시의 입장 표명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두 정상은 그 대신 북한에 대해 지난 8월말 베이징 6자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평화회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북한측이 더이상 추가적인 상황악화 조치를 취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부시, "이라크 파병으로 한미동맹 더욱 굳건해져"**
이라크 파병과 관련해선, 노 대통령은 "한.미 관계의 중요성과 우리의 국익을 위해 이라크 추가파병을 결정하게 됐다"며 "파병 부대의 규모와 성격 및 형태와 시기 등에 대해서는 국내 여론을 지속적으로 수렴하면서 현지 조사단의 조사결과와 우리 군의 특성 및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부시 대통령은 "한국의 이라크 파병이 한.미동맹관계를 더욱 굳건히 할 것"이라며 사의를 표했다.
양국 정상은 또 미국 언론이 연일 보도하고 있는 주한민군 3분의 1 감축설과 관련, "주한미군 재배치는 한반도 안보상황을 신중히 고려해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언론발표문은 밝혔다. 하지만 '신중히 고려하겠다'는 이같은 표현은 주한미군 감축 자체를 부정한 게 아니어서, 주한미군 감축이 사실상 추진되고 있음을 시인한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부시 "내 친구인 노 대통령과 식사해 영광"**
이날 회담 장소에 먼저 나와있던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 도착하자 "오늘 미국의 친구이자 나의 친구인 노 대통령과 아침을 함께 하게 돼 영광"이라고 말하며 악수로 맞했다고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는 한국과 아주 중요하고 긴밀한 관계로, 공동목표를 갖고 있고, 세계가 보다 자유롭고, 평화롭게 되기를 원한다"면서 "한국이 이라크 지원을 해주는 것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이라크 추가파병 결정에 사의를 표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우리는 두 나라 사이에 무역이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되는 것을 원하고 또 공동목표로서 한반도가 핵무기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원한다"며 한미투자협정(BIT) 체결과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대한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과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가는 과정의 진전을 이룩하기를 기대한다"며 "오늘 조찬을 같이 하면서 핵문제 해결과정에 어떻게 진전을 이룩할지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지난 5월에 만나고 다시 이번 APEC을 계기로 만나 조찬을 함께 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그동안 한미 양국은 상호 믿음을 갖고 양국 우호관계를 발전시키고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잘 협력해 왔다"고 화답했다.
노 대통령은 "미국은 세계평화를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하고 있고, 최근 이라크에 대한 유엔 지지 결의는 매우 의미있게 생각하며 축하한다"며 "이라크 평화와 민주주의, 경제 재건에 미국이 기울인 노력과 한국의 협력에 대해 의미있는 대화를 나누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에 대해 노 대통령은 "(북핵) 6자회담을 진전시키고 2차 회담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준데 대해 감사하다"면서 "오늘 다시 만나 북핵문제 해결과 한미동맹 재조정문제에 대해 의미있는 대화가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APEC의 목적에 따라 상호교역, 투자증대, 경제협력, 안보관계협력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눌 것이고, 유익한 결론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양국 정상 직접 언론발표 성사 안 돼**
한편 이날 공동 언론발표문은 당초 예고된 시간인 오전 8시보다 3시간여 늦어진 11시15분께 각 언론에 배포됐다. 이에 따라 실무단위의 문구 조정작업에서 적지않은 진통이 있지 않았냐는 해석이 나왔다.
특히 지난 5월 노 대통령 취임 후 첫 양국정상회담에서는 회담후 두 정상이 직접 언론에 공동합의사항을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가졌으나 이번에는 성사되지 못해, 양국간 의견 불일치에 따른 진통이 있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측은 "부시 대통령은 이번 APEC 참석 계기에 한국 이외에 수개국과 정상회담을 개최했으나 공동언론 발표문을 발표하는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며 "한.미 동맹관계에 대한 미국측의 존중의 표시라고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이날 회담에는 우리측에서는 윤영관 외교장관, 한승주 주미대사, 라종일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 반기문 외교보좌관, 이수혁 외교부 차관보, 위성락 북미국장 등이 참석했으며, 미국측에서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 앤드루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 제임스 켈리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짐 모리아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등이 함께 했다.
다음은 이날 발표한 한.미 정상회담 공동언론발표문 전문이다.
***한.미 정상회담 공동 언론발표문**
1. 2003.10.20(월)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2003년도 APEC 정상회의 참석 계기에 태국 방콕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회담에서 두 정상은 한·미 양국이 그간 지난 5.14 한·미 정상공동 성명에서 천명한 포괄적이고 역동적인 동맹관계를 순조롭게 발전시켜 왔다는 점에 만족을 표하였다. 또한, 두 정상은 북핵 문제, 이라크 재건 문제, 한·미 동맹 발전 방향 등 양국간 제반 현안에 관해 폭넓고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하였다.
2. 노 대통령은 미국정부가 요청한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와 관련하여 한·미 동맹관계의 중요성과 우리의 국익 등 제반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이라크의 조속한 평화정착과 전후 재건을 지원하기 위하여 이라크 추가파병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설명하였다. 노 대통령은 파병부대의 규모와 성격 및 형태와 시기 등에 대해서는 국내여론을 지속적으로 수렴하면서 현지 조사단의 조사결과와 우리 군의 특성 및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결정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이에 대하여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이 과감하게 파병결단을 내려준데 대하여 경의와 사의를 표하고, 한국의 이라크 파병이 한·미 동맹관계를 더욱 굳건히 하고 이라크 재건과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하였다.
3. 두 정상은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시 합의한 북한 핵보유 불용과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하였다. 두 정상은 6자회담이 북한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제거하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중요하다고 평가하였다. 또한 두 정상은 차기회담을 조기에 개최하고 구체적인 진전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는데 견해를 같이하였다. 부시 대통령은 미국은 북한을 침략할 의도가 없으며, 북한이 핵무기 개발 야심을 포기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핵 폐기에 진전을 보인다는 것을 전제로, 다자틀내에서 어떻게 안전보장을 제공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설명하였다. 노 대통령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부시 대통령의 노력을 평가하였다. 두 정상은 차기회담에서 진전을 모색하기 위한 수단과 방안을 연구하기로 합의하였다. 두 정상은 또한, 북한이 여타 참가국들의 외교적 노력에 적극 호응할 것과, 상황 악화 조치를 자제할 것을 촉구하였다.
4. 두 정상은 한·미간 굳건한 동맹관계와 주한미군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한 점을 평가하였다. 두 정상은 미군 재배치는 한반도 안보상황을 신중히 고려하여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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