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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차 '돈 잔치' 협상 그늘엔 비정규직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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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현대-기아차 '돈 잔치' 협상 그늘엔 비정규직 절규

[박점규의 동행]<10> 회사보다 정규직 노조가 더 미워지면 안 되는데

추석 연휴를 앞두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졌습니다. 올해 임금과 단체협상에서 기본급 9만7000원 인상, 성과격려금 500%+850만 원, 각종 수당과 포인트 등을 따냈습니다. 노동조합은 소식지를 통해 1인당 평균 2879만 원의 임금인상 효과를 가져왔다고 설명했습니다.

현대차는 국내 공장 생산물량을 연간 174만 대 이상 유지하도록 노력하며, 신차종을 국내 공장에서 우선 생산하고 친환경 자동차 개발에 지속적인 투자를 하기로 했습니다. 3대 중증질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등 노동조건도 개선됐습니다. 조합원들은 55%의 찬성으로 잠정합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현대차의 뒤를 이어 기아자동차 노사도 9월 12일 새벽, 기본급과 성과격려금 등 올해 임금 협상을 현대차와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합의했고, 이는 13일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71%로 통과돼 조합원들은 두둑한 주머니로 추석 명절 고향을 찾게 됐습니다.

현대, 기아차 임금협상 연 2879만 원 인상

정규직 노동자들의 보너스 잔치를 슬픔과 분노로 바라보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기아차 화성공장에 다니는 김남규(36) 씨는 100일도 안 된 아들을 보지도 못하고 공장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가 7년 동안 일하고 있는 공장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자신과 동료들은 공장에서 쫓겨나거나 부랑아처럼 이 공장, 저 공장을 떠돌아다니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는 화성공장에서 부품을 포장해 수출하는 KD 공정에서 일합니다. 포르테(K3), 모닝 등 자동차의 부품을 철체나 목제 팔레트로 포장해 컨테이너에 실어 보냅니다. 이 부품들은 미국 조지아, 러시아, 중국, 슬로바키아 등 기아차 해외공장으로 수출됩니다. 해외공장이 없는 말레이시아, 에콰도르 같은 나라에서도 부품을 수입해 조립해서 판매합니다.

KD 공정에는 정규직 70명, 비정규직 125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회사는 KD 생산시설을 폐쇄하고, 신형 엔진공장을 짓는다고 했습니다. 관세 혜택과 해외시장 물량 축소로 수익성이 하락해 사업을 종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사는 KD공정에 신설될 새 엔진공장도 10만 대가량은 화성공장에서 생산되지만 기공 및 소재 등 절반은 공장 밖으로 보내 생산한다는 계획입니다. KD 공정에서 일하던 정규직 조합원들은 신설되는 엔진공장으로 보내고,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다른 공정으로 보낸다는 것입니다.

▲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생산 라인. ⓒ연합뉴스

정규직은 돈 잔치, 비정규직은 고용불안?

그러나 남규 씨는 회사의 말을 믿을 수 없습니다. 2~3년 주기로 신차가 나오기 때문에 회사는 신차가 출시될 때마다 부품 수입국과 계약을 하게 됩니다. 완성차처럼 판매에 따라 생산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계약에 따라 물량이 달라집니다.

남규 씨는 그가 일하던 7년 동안 수출 물량에 변화가 없었던 KD 공정이 갑자기 수익성이 없어서 폐쇄해야 한다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물량이 많아 서영이라는 하청회사를 통해 화성공장에서 감당하지 못하는 물량을 공장 밖에서 포장하고 있는데도 사업 전망이 없다는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는 혹시 기아차가 계열사인 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로 물량을 빼내 가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모비스는 전국 11개 공장 중에서 8개 공장이 정규직은 관리직뿐이고 생산라인은 사내하청으로 채워진 '정규직 제로 공장'입니다. 현대기아차 그룹의 생산품을 실어 나르는 글로비스는 아예 정규직 노동자는 없고 모두 특수고용 노동자들로 채워진 비정규직 회사입니다.

남규 씨와 동료들은 물량 축소를 이유로 폐쇄되는 KD 공정의 부품은 글로비스의 하청회사를 통해 포장해 글로비스가 실어 나르고, 외주화하겠다는 엔진공장의 기공 및 소재는 근처의 현대모비스나 현대위아 등 비정규직 공장으로 보내려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는 기아차 회사가 악착같이 추진하고 있는 KD와 엔진공장의 외주화는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의 핵심인 글로비스를 통해 정몽구 일가의 돈벌이와 세습을 위한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공장으로 물량 빼돌리기?

남규 씨와 동료들은 7월 초순부터 공장 안에서 이 사실을 알려왔습니다. 처음에는 정규직 노조도 KD 공장 폐쇄와 외주화에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정규직 노조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기아차 화성지회가 회사와 합의를 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9월 4일 기아차 화성지회는 노조 소식지를 통해 "KD 공장 물량 수급 불안정과 운영상황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며 회사와 협의체를 구성해 해결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회사의 주장을 받아들이되, KD 공장에서 일하는 조합원들의 고용을 보장받으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KD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9월 2일부터는 화성공장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임금교섭이 진행되고 있는 기아차 소하공장 본관까지 올라가 회사에 KD 공장 외주화에 반대하며 항의 시위를 벌였습니다. 회사 교섭위원들을 막고 소리도 지르고 애원도 했습니다.

급기야 9월 10일 화성공장 KD 공장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조합원 한 명이 제초제로 음독자살을 시도하다가 주변의 동료들이 간신히 뜯어말리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남규 씨와 동료들은 기아차 노사 간에 임금협상 합의가 이뤄지고 30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받는다는 것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10년 가까이 일해 왔던 우리의 일터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공장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녀야 하는 떠돌이 신세가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목소리에는 회사도, 정규직 노조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서글픕니다.

▲화성공장 KD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외주화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점규

하루아침에 떠돌이 신세가 되어야 할 비정규직


현대와 기아차의 임금교섭이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회사는 보수언론을 동원해 헌법에 보장된 권리인 파업을 죄악시하고, 회사의 손실을 부풀려 파업 때문에 마치 한국경제가 흔들릴 것처럼 호도하며 노조를 압박해왔습니다. 노동자들은 땀 흘려 일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며 회사와 보수언론의 협박을 이겨내고 당당하게 파업을 했고, 상당한 성과를 따냈습니다.

현대와 기아차 노동자들은 한국 노동운동을 이끌어왔습니다. 1987년 어용노조를 뚫고 민주노조를 만들 때에도, 1990년대 독재정부와 사용자들의 임금 가이드라인을 뚫고 임금인상을 쟁취할 때에도, 1997년 정리해고제를 도입하는 노동법 개악에 반대해 총파업에 나설 때에도 전국의 노동자들은 현대와 기아차를 응원했습니다.

2013년 현대차는 임금과 단체교섭에서 중소기업 정규직의 연봉에 해당하는 2879만 원의 임금인상을 끌어냈고, 고용안정과 복지증진도 이뤘습니다. 그러나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0년 넘게 싸우고 있는 핵심적인 요구인 '사내 생산공정 및 상시업무 하도급 금지 및 2013년 내 정규직 전환'이라는 요구는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이유로 조용히 철회했습니다.

정규직 활동가들에 대한 손해배상도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했다는 이유로 정규직 대의원과 조합원들에게 걸어놓은 수억, 수십억 원의 손해배상은 정규직 활동가들의 손발을 묶는 족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기아차 정규직 노조의 올해 1번 요구안은 신규채용 강행에 항의해 온몸에 시너를 끼얹고 분신했던 광주공장 사내하청 김학종 조직부장의 뜻에 따라 '사내하청 정규직화'였습니다. 그러나 사내하청 정규직 전환의 요구는 "채용기준에 적합한 인원의 일부에 대하여 신규인원 소요 시 채용을 추진한다"라는 기약 없는 약속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라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요구

현대차와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은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비하면 훨씬 낫습니다. 올해 기본급은 정규직과 똑같이 인상됐고, 격려성과급은 정규직 노동자가 받는 금액의 80% 정도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남규 씨는 더 힘든 일을 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2등 국민, 2등 노동자로 만드는 회사에 화가 납니다. 당연히 정규직으로 일해야 할 자리를 불법으로 10년 이상 사내하청 노동자로 채우고, 대법원 판결 3년이 지나도록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고,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을 매고 분신을 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회사에 분통이 터집니다.

남규 씨와 동료들은 회사보다 정규직 노조가 더 밉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2007년 비정규직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해 정규직 노조가 나서서 조합원들을 빼 가고, 비정규직이 도장 공장 점거 파업을 하자 "우리의 일터에서 나가라"며 폭력을 휘둘렀던 기억은 쉽사리 잊히지 않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의 노조가 되었지만 10%밖에 되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늘 찬밥입니다. 7년 동안 일해 왔던 KD 공장은 언제 사라질지 모릅니다. 일시금 1000만 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일터를 잃고 고용불안에 떨며 떠돌아다니는 신세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아차지부 화성지회는 9월 13일 회사와 KD 공정을 폐쇄하고, 그 부지에 엔진공장을 신설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노사는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신설라인 관련 각 종업원의 희망직무를 최대한 반영하여 현 고용을 흡수하고 고용안정을 도모한다"고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별도회의록'을 통해 "타 사내협력사의 각종 결원 충원 등의 방법으로 현 고용을 승계하여 총 고용이 유지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엔진공장에 "신규 충원이 필요할 경우 당사 신규채용 규정에 의거하여 사내협력사 종업원에게 그 기회를 우선하여 부여"한다고 합의했습니다.

125명의 비정규직 조합원들은 10년 넘게 일한 일터를 잃고 결원이 생긴 하청업체를 찾아 공장을 떠돌아다니게 됩니다. 다른 곳에 일자리가 없으면 1년을 기다려야 하고 신설되는 엔진공장의 하청업체가 신규채용을 해 주길 고대해야 합니다.

김남규 씨는 젖먹이 아이를 두고 화성공장 이곳저곳을 뛰어다녔지만 우려했던 대로 합의가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똑같은 공장에서 똑같은 자동차를 만들며 10년 넘게 함께 일한 노동자들을 외면하지 말라는 외침은 허공으로 흩어졌습니다. 정몽구 회장 일가의 부를 위해 우리의 일터를 없애지 말라는 절규는 하늘 멀리 사라졌습니다.

추석 명절, 현대와 기아차 정규직 노조의 '돈 잔치' 그늘이 하청노동자들의 가슴에 짙게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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