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말이 있다. 지극한 정성을 들이면 하늘도 감복한다는 말인데, 과연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8백리길의 3보1배에 나선 성직자들의 지극한 정성에 하늘이 감복할 것인가. 그러나 굳이 하늘을 감복시킬 필요는 없다. 새만금 사업은 인간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사진1>3보1배
***전북 부안에서 출발한 3보1배, 42일째 평택 지나**
전북 부안에서 출발한 새만금 갯벌 살리기 3보1배가 어느덧 경기도 평택까지 올라와 있었다. 42일이 걸렸다. 그 현장에 찾아가 봤다.
어버이 날이자 석가탄신일인 5월8일 평택역. 연휴끝에 다시 찾아온 휴일 햇볕은 따뜻하다 못해 따갑기까지 했다. 거리 곳곳에 가슴에 카네이션을 단 아버지 어머니들이 보였고, 길가에 걸린 연등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평택역에서 20여분 떨어진 곳에서 3보1배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시커먼 아스팔트 위에서 절을 하며 걸어가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지 않을 사람은 없다. 택시기사가 한마디 거든다.
"아, 저 사람들이 새만금 갯벌 살리기인가 뭔가 고행을 한다는 사람들이구만."
50중반쯤 돼 보이는 택시기사도 3보1배 일행을 알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3보1배 일행에게 다가갔다. 선두에서 문규현 신부, 수경 스님, 김경일 교무, 이희운 목사가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3보1배를 수행하며 전진하고 있었고, 뒤에는 50여명의 수행원과 시민들이 따르고 있었다.
매일 웹진을 통해 3보1배 소식을 듣고 있었지만, 뙤악볕 아래에서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아스팔트 위로 연신 절을 하며 전진하는 성직자들을 직접 가까이에서 보는 순간 아찔한 감동이 밀려왔다.
당초 기자는 성직자들 뒤에서 따르며 직접 세 걸음을 걷고 한 번 절하는 3보1배 고행을 체험하고자 평택에 갔었다. 그러나 그들의 고뇌에 찬 표정과 '목숨을 건 고행'에 함부로 끼어들 수 없었다. 이들의 고행은 대학생들의 '국토대장정'도 아니고, 시민사회단체들의 '집회 시위'도 아니었다. 그야말로 인간에 의한 생명 파괴로 인한 생명들에 대한 속죄였고, 생태계를 난도질하는 인간들에 대한 경고였다. 이런 고행에 '체험'은 '사치'였다.
<사진2> 휴식
***3보1배에 묵언기도까지, "바닥난 체력이 가장 큰 걱정"**
잠깐의 휴식시간에도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이들은 지난 4일 천안에서부터 '묵언 기도'도 함께 하고 있다.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안하는 것이다. 더욱 절박한 심정으로 3보1배를 하기 위해 '고행'을 한 가지 더 추가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6일 국무회의 자리에서 성직자들의 건강이 염려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김영진 농림부장관이 방문해 3보1배를 그만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에 문규현 신부의 형인 문정현 신부는 "고행에 대한 모독"이라고 질책해 돌려보냈다.
기자도 성직자들의 건강이 염려되기는 매 한가지였다. 3보1배 수행을 책임지고 있는 환경운동연합 장지영 팀장은 "이미 관절과 근육 통증은 한계에 달해 있는 상태고, 매일 청년한의사회에서 나와 밤마다 치료를 하고 있다. 그러나 40여일이 넘어가고 날이 계속 더워져 체력이 바닥난 상태라 갑자기 쓰러지시지나 않을까 매우 염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팀장은 "이 분들이 목적지인 서울에 가서도 새만금 사업이 중단되지 않으면 계속 고행을 멈추지 않겠다며 '죽을 각오'로 고행을 하시기 때문에 더 큰 걱정"이라며 "하루 빨리 무슨 소식이 들리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진3> 불신자
***"부처님도 새만금 살리기 고행에 나섰을 것"**
8일은 석가탄신일이었다. 그러나 수경 스님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고행을 했다. 수경 스님은 새만금 갯벌의 뭇 생명들이 죄 죽어나가는 판에 '부처님 오신 날'은 의미가 없을뿐더러, 부처도 이 같은 상황에서 고행을 택했을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3보1배 일행이 지나가는 동안 법복을 입은 불교신자가 수경스님을 보고 즉석에서 함께 따라나서기도 했다. 석가탄신일을 맞아 법당에 다녀오다 일행을 마주쳤다는 50대 불신자 한 사람은 일행을 보자마자 연신 눈물을 훔치며 "이를 어쩌나"를 연발했다.
3보1배 일행은 평균 50명 정도다. 이 중에 부안에서부터 수행을 함께 하는 팀은 25명 정도고 나머지는 자발적으로 참여한 일반 시민이라고 한다. 수행팀과 참여시민들을 구분하기는 매우 쉬웠다. 얼굴과 손등이 까맣게 그을린 사람들은 수행팀이고, 하얀 피부의 사람들은 휴일을 맞아 수행에 참여한 일반 시민들이라고 보면 틀림없었다.
그 중 가장 뽀얀 일가족을 찾아 봤다. 경기도 광주에서 아내와 5살난 딸과 함께 왔다는 박성호(34. 회사원)씨는 "3보1배 소식을 매일 접하다가 가까운 곳을 지난다기에 휴일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왔다"며 "신부, 스님, 목사님들의 고행이 물거품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행 중에는 민주노총 깃발도 보였다. 평택 쌍용자동차에 다닌다는 김정욱(쌍용자동차노조 대외협력부장)씨는 "환경문제는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문제이고, 게다가 새만금 갯벌은 세계5대 갯벌 중의 하나로 지구적 가치가 있는 곳"이라며 "새만금을 보존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민주노총 평택지회에서 3보1배에 함께 하자고 논의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 신형록 대표도 부안에서부터 3보1배 수행을 함께 하고 있다. 신대표는 지난 겨울 새만금 갯벌 살리기 솟대를 리어카에 끌며 부안에서 서울까지 전국유랑을 한 적이 있다.
신대표에게 한창 수확철일 갯벌에 대해서 물어봤다. 신대표는 "새만금 사업 강행 이후 해마다 갯벌이 변해 (조개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며 "백합이 생계수단이던 어머니들은 지금 횟집에 일을 나가시는 분도 있다"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사진4> 참여시민
***3보1배 성직자, 전북지역 4대 종단 성직자들**
부안에서 시작해 42일 동안 평택에 오기까지 지나온 지역민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장지영 팀장에 의하면, 전라북도에서는 3보1배 일행에게 욕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3보1배를 유심히 지켜보며 한 번 더 생각하는 것 같았고, 그중에는 눈물짓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장팀장은 지금 3보1배를 하는 네 명의 성직자 구성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문규현 신부는 전북 부안성당 주임신부이고, 수경 스님은 전북 남원 실상사 선덕스님이다. 김경일 교무는 원불교 전북 익산 문화교당 주임교무이고, 이희운 목사는 전주 나실교회 담임목사이다.
한국 4대 종단이 함께 고행을 수행하고 있으며, 모두 전북에서 활동하는 성직자들이다. 그 중 원불교는 전북을 기반으로 두고 있는 종교이고, 새만금사업을 강력히 밀어붙이던 유종근 전북지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장팀장은 덧붙였다. 전북 민심에도 변화가 있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주민들 서로 "밥지어 드리겠다"**
장팀장은 충남으로 넘어오면서부터 3보1배를 바라보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이미 방조제와 간척사업으로 피해를 많이 본 충남 주민들은 "충남지역의 방조제도 같이 허물도록 힘써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
3보1배 일행 앞에 갖가지 물품을 놓고 가는 사람들, 길가에 나와 격려해주는 사람들, 저마다 식사를 책임지겠다고 나서는 사람들 덕분에, 수행팀은 밥을 한 번도 지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장팀장과의 대화 도중에도 자기 동네를 지나갈 때 식사를 제공하겠다는 전화가 쉼없이 걸려왔다. 그러나 장팀장은 이미 5월10일까지 예약이 다 찼다며 정중하게 거절하기 여념 없었다.
차선을 하나 막고 수행하는 3보1배에 경찰의 협조는 잘 되냐고 물었다. 장팀장은 처음부터 경찰이 적극적으로 잘 통제해주고 있다고 했다. 평택에서도 4명의 경찰차와 순찰차 한 대가 3보1배 일행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었다.
장팀장은 또 천안에서 길이 막힌다고 한 운전자가 욕을 하고 지나갔는데, 나중에 다시 평택까지 찾아와 음료수를 사주고 가며 "3보1배가 이벤트가 아니라 조금도 쉬지 않고 나아가는 고행임을 깨닫고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 3보1배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정도까지 수행되는데, 끝난 지점에서 다시 시작하기 때문에 부안에서 평택까지 한 치도 그냥 건너뛴 구간이 없다고 한다.
장팀장에게 조선일보 7일자에 실린 방조제에 콘크리트 방풍벽 대신 1천억원을 더 들여 수품림을 조성하는 농림부의 친환경 관광 개발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이에 장팀장은 "새로울 것 하나 없다. 그 것은 이미 전북지역 언론에 다 실린 것이다. 지속적으로 새만금사업에 대한 언론 플레이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며 "언론이 전북지역에 얼마나 조직적으로 허황된 환상을 심어줘 왔는지 전북도민들이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배우 명계남, 예지원, 영화감독 장선우씨도 3보1배 일행을 찾아왔었다고 한다. 노사모 회장을 맡았던 명계남씨는 "면목이 없다"고 했고, 예지원씨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다 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장선우 감독은 8일 해창산에 있는 사찰의 열쇠를 받아갔다고 한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로 파헤쳐진 해창산에 가서 직접 보고 싸우겠다는 것이다.
<사진5> 현수막
***3보1배 수행단 5월말 서울 진입. 정부는 조속히 대책 내놔야**
새만금 살리기 3보1배 일행은 5월말 경 수원, 과천을 통해 서울로 들어올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의 혼잡한 도로와 탁한 공기 속에서 성직자들이 얼마나 더 고통스러울 것인지 염려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새만금 신구상 기획단을 내걸었었고, 지난 2월11일 인수위 시절 전북에 방문해 "새만금 사업이 농지조성 목적을 상실했으니 재검토하겠다"고 말한 지도 이틀 후면 꼭 3개월이 지나게 된다.
노대통령이 국무회의 자리에서 3보1배 성직자들의 건강을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이들을 설득하기 위한 대안을 하루바삐 내놓아야 할 때다. 3보1배 수행단의 건강이 이미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한계선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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