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애국주의로 무장한 폭스 뉴스의 이라크 전쟁 보도가 커다란 성공을 거두자, 케이블 방송을 중심으로한 미국내 뉴스 채널이 급격히 우경화하고 있다. 이른바 ‘폭스 효과’. MSNBC, CNN 등 미국 케이블 뉴스 채널들은 "정치적 균형을 잡겠다"는 엉뚱한 명분을 앞세워 폭스의 성공을 앞다퉈 벤치마킹하고 있다.
***MSNBC의 폭스 따라하기**
미국 뉴욕타임스 등 외신보도에 따르면, 현재‘폭스 따라하기’ 선두에는 MSNBC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제너럴일렉트릭(GE)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MSNBC는 이라크 전쟁이 끝난 직후 조 스카보로 전 공화당 의원과 라디오 토크쇼 사회자로 유명한 마이클 사비지를 영입, 보수적 논조의 대담 프로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이들은 독립적인 뉴스 매체와 헐리우드의 반전 시위를 “선동(sedition)” “반역(treason)” 등으로 묘사하며 “좌파 앞잡이들의 반미 주장을 재고해야 한다”는 등의 매카시즘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MSNBC는 스카보로와 사비지 외에도 몇 명의 보수적인 인사들을 더 영입했다.
닐 샤피로 NBC 뉴스 회장은 “정치적 균형을 더하기 위해 이들을 스카웃했다”고 밝혔고, 에릭 소렌슨 MSNBC 회장도 “정부에 이의를 제기하는 식의 주류 언론과 차별을 두기 위한 시도”라고 말했다.
MSNBC는 정규 프로그램의 화면에도 성조기와 부시의 사진을 메인 프레임으로 설정하고 있고, 반전 입장을 가진 인물이 진행하려던 프로그램도 취소했다.
***폭스의 성공 비결**
<사진: 머독>
MSNBC의 변화에 대해 보수적 매체 분석 그룹인 미디어리서치센터의 설립자 브렌트 보젤 3세는 “폭스가 하는 일, 그리고 MSNBC가 프로그램을 통해 선언한 것은 꾸준하게 애국적인 동시에 훌륭한 뉴스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환영했다.
MSNBC가 추종해 마지않는 케이블 방송 업계 1위 폭스 뉴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부시 나팔수 노릇하기’다.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이끄는 폭스 뉴스는 9.11 테러 이후 부시 미 대통령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지지하며 시청률 1위를 차지했고 아프간전쟁에 이어 이번 이라크전쟁에서도 부시의 나팔수로 활약, 전쟁 특수를 노렸던 CNN을 완벽히 압도했다. 9.11 이후 정부의 프로파간다(정치 선동) 중계자에 불과하다고 비판받던 미국 언론의 최선두에 폭스가 있었다.
실례로, 이라크에 특파된 폭스 뉴스의 한 기자는 전쟁 반대자들을 “꾀죄죄한 하층민(unwashed)”으로 묘사했고, 뉴스 앵커인 닐 카부토는 “반전 운동가들은 이라크 해방을 반대했던 자들”이라며 “역겹다”고 말할 정도였다. 존 깁슨이란 앵커는 “멍청하고 늙은 유엔”에게 이라크의 재건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폭스 뉴스에 출연하는 앵커와 평론가들은 프랑스인들을 깔보는 언사를 서슴지 않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매도했다.
이같은 폭스의 보도 태도는 자기주장만을 고집해 시청자들의 눈을 멀게 한다는 비판을 수없에 받아왔다. 그러나 9.11이후 미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애국주의의 파도를 타고 폭스 뉴스는 아직도 성장중이다. 지난 6일부터 12일 한주간 케이블 최고 청취율을 기록한 50개의 프로그램중 46개가 폭스 소속이었다. 뉴욕타임스는 “객관성이라는 전통적인 관념을 제쳐둔 새로운 종류의 저널리즘”이라고 비꼬았다.
***‘꽤나 중립적’인 CNN**
폭스의 부상으로 피해를 입은 것은 CNN이다. 91년 1차 걸프전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렸던 CNN은 이번 이라크전을 계기로 빼앗긴 선두 자리의 탈환을 별렀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전쟁 기간 동안 시청자가 4배 이상 증가하긴 했지만 폭스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제적 시야와 직접 접근’이라는 CNN의 자랑은 미군탱크에 동승해 미군의 바그다드 입성을 최초로 생중계한 폭스의 특종 앞에 무릎을 꿇었다.
국제적 뉴스 네트워크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3대 메이저 케이블 뉴스 채널 중 유일하게 메인 프레임에 성조기를 그려 넣지 않은 CNN. 뉴욕타임스는 이번 전쟁에서 드러난 폭스의 주도권은 CNN의 편집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세 방송 중에서는 그중 ‘리버럴’하다는 CNN도 폭스가 일으킨 애국주의 바람에 맞서기 힘들다는 것이다.
***"폭스는 부시의 치어리더"**
MSNBC와 CNN 외 다른 방송들도 폭스 뉴스가 몰고온 바람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앤드류 헤이워드 CBS 회장은 “언론은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한다는 중도적 전통이 있었다”며 “나는 폭스 효과가 준 혼란의 포로가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희망일 뿐인 듯 하다. 폭스 뉴스의 탄생은 2차 대전 중 뉴욕타임스마저 “우리가 쪽바리(Japs)들을 깨부쉈다”는 헤드라인을 쓸 때에도 자유주의적 보도태도를 견지하려했던 미국의 텔레비전 뉴스를 외길로 몰아세우고 있다.
이같은 변화에 대해 많은 이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헤이워드 CBS 회장은 “나는 다양한 논조의 채널들 사이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청취자들의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다”면서도 “정당한 논쟁과 언론인들의 열띤 취재 경쟁이 없어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폭스 TV를 일컬어 "부시의 치어리더"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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