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집단행동 가운데 가장 잔혹하고 비극적인 것은 전쟁이다. 전쟁은 무수한 병사들의 죽음과 부상, 어린이를 포함하여 무고한 민간인들의 살상, 가옥과 건물의 파괴, 국가 경제와 재정의 파탄 등으로 비참과 불행을 낳는다. 전쟁은 또 증오와 복수의 씨앗이 되어 또 다른 전쟁을 부르기 십상이다. 그래서 전쟁은 피해야 하는 것이다. 에라스무스의 지적처럼, "가장 불리한 평화도 가장 정의로운 전쟁보다 낫기" 때문이다.
물론 전쟁 가운데에는 불가피한 것도 있을 수 있다. 예컨데, 타국의 침공에 맞서 국가의 자주권과 민족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방어전쟁과 같은 경우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쟁은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전쟁은 흔히 부패의 산물이고 원인이다. 그러니 뚜렷한 명분도 없는 전쟁이라면 더욱더 피해야 할 것이다. 특히 아무리 그럴듯한 구실로 위장을 했다 하더라도 약소국을 유린하고 약탈하는 침략전쟁은 명분이 없고 따라서 마땅히 피해야 한다. 유엔의 동의도 없이 그리고 세계 대부분의 나라와 사람들이 격렬하게 반대하는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은 분명 피했어야 할 명분 없는 침략전쟁이다.
피할 수 있었고 피했어야 할 명분 없는 침략전쟁이라면 그에 대해 언론은 사설 등을 통해 비판하고 반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인명살상과 재산파괴 등 참상보도를 통해 그 잔혹성을 고발해야 한다. 세계의 많은 언론들은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을 침략전쟁으로 규정하고, 비판적인 의견을 게재하고, 반전 여론과 민간인 피해를 보도하고 있다.
다행히 우리 언론들 가운데에도 한겨레, 경향, 대한매일,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을 비판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들 언론은 지구촌 곳곳의 반전 움직임을 충실히 보도하고,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이라크 측의 발표와 알 자지라 방송을 비롯하여 아랍권 언론의 보도를 비중 있게 소개하고 있다. YTN도 미국 측과 아랍 측의 보도를 같은 비중으로 소개함으로써 균형 있는 보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우리 언론계를 지배하는 몇몇 대신문들은 3월 21자 사설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방관하거나 정당화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들 신문들과 일부 대방송사들은 미군 종군기자와 워싱턴 주재기자가 보내오는 미군과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 그리고 CNN 등 미국 언론의 보도에 의존하여 미국적인 시각에서 보도하고 있다. 이들 언론은 반전 뉴스는 별로 전하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미국에 유리한 편파보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언론이 사용하는 "이라크 공격"이니 "이라크 전쟁"이니 하는 용어부터가 미국적 시각이다. 이라크 측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제3자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이 전쟁은 분명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침략전쟁이다. 따라서 "이라크 공격"은 "이라크 침공"으로 그리고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대이라크 침략전쟁"으로 해야 올바르다. 이 전쟁명이 너무 길다면 적어도 "미 이라크 전쟁"으로 불러야 한다. 그런데 침략자인 미국은 온데 간데 없고 침략을 당한 나라의 이름만 붙어 있다.
이들 언론의 전쟁보도의 초점은 미군의 무기와 군사행동(작전, 공격, 진격 등)에 맞추어져 있다. 신문의 경우에는 그림으로 방송의 경우에는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3차원 영상으로 이들을 묘사한다. 그러나 미군의 무기와 군사행동에 초점을 맞추는 전쟁보도는 미국에게 유리한 미국 중심의 보도다. 게다가 그런 보도는 전쟁을 단순한 게임의 문제로 변질시킨다. 그나마 산뜻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전황을 전하는 방송은 전쟁을 무해하게 즐길 수 있는 컴퓨터 게임 정도로 보이게 한다.
하지만 전쟁은 많은 참화와 비극을 낳는 대재앙이다. 그 재앙은 인간에 의한 것이며 피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쟁보도는 이 점을 강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참상을 비롯한 전쟁의 실상에 보도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그것이 1854년 크리미아 전쟁을 취재했던 최초의 종군기자 영국 <더 타임스>의 윌리엄 하워드 러셀 이래 종군기자에 의한 전쟁보도의 면면한 전통이기도 하다. 즉, 정부나 군이나 장군이나 참전 병사의 말이 아니라 기자가 직접 눈으로 본 전쟁의 실상을 전하는 전통인 것이다.
그러나 이번 미 이라크전에 파견된 우리 대언론사의 종군기자들은 미군의 보도통제에 따르면서 미군의 전략, 작전, 진격 상황과 미군의 일상을 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 언론의 전쟁보도에서 전쟁의 잔혹한 참상을 비롯하여 전쟁의 진면목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이들 언론은 종군기자를 파견했음에도 전쟁보도에서는 전쟁의 실상을 전하는, 종군기자에 의한 전쟁보도의 참된 전통이 살아있는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쟁보도의 여하는 민심 특히 전쟁에 대한 찬반 여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오늘날 전쟁보도는 민간인에 대한 선전 심리전의 일환으로 이용된다. 전쟁보도는 다른 하나의 중요한 전선이고 작전인 것이다. 전쟁의 당사국이나 전쟁에 이해관계를 가진 나라들은 모두 매체를 선전ㆍ심리전에 이용한다. 이 점에 있어서 미국은 더 특별하다. 미 군부와 정부는 베트남전의 패배가 미 언론의 자유로운 전쟁보도로 인해 환기된 미국내의 반전여론에도 그 큰 원인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보도를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유도하고 통제하기 위해 많은 신경을 쓴다. 또 미국 언론들은 애국주의적 전통에 의해 그런 군부와 정부에 협조한다.
매체를 이용한 선전ㆍ심리전의 일환으로 미 군부와 정부는 베트남전 이후로 자신들이 관여하는 전쟁에서 철저한 보도통제를 해오고 있다. 이러한 보도통제는 그레나다 침공, 1차 이라크 침공, 아프가니스탄 침공, 2차 이라크 침공까지 그 동안의 미국이 주도한 침략전쟁에서 특히 더 심했다. 미국 군부와 정부는 보도통제를 통해 자기들에게 유리한 보도를 유도하는 것이다. 더구나 홍보기술이 발전한 미국은 전쟁보도를 심리전에 잘 활용한다. 미국은 애국적이고 협조적인 언론을 이용하여 자국민과 상대국민 그리고 세계 시민들을 상대로 효과적인 선전ㆍ심리전을 수행하는 것이다.
미국은 베트남전 때부터 민간인에 대한 피해를 주지 않고 군사적 목표만을 정확하게 타격한다는 외과적 폭격(surgical strike) 또는 정밀폭격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언제나 선전에 불과한 것이었음에도 미 언론들은 무비판적으로 충실히 전달한다. 1991년의 걸프전에서 미군이 사용한 정밀유도폭탄은 전체 폭탄 8만8천 톤의 7%에 불과했고, 무차별 폭격으로 희생된 이라크 군인과 민간인 수는 미군의 집계로도 사망 10만 명, 부상 30만 명이었다. 바그다드의 한 방공호에서만 1천6백 명의 민간인이 몰살당했다. 그러나 이런 잔혹상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은폐됐고, 방공호 오폭을 전한 언론은 후세인의 선전에 놀아난 것으로 매도되었다. 심지어 미군의 유조선 폭격으로 기름이 유출된 것도 후세인의 악마적 환경파괴로 왜곡되기도 했다.
이번의 대이라크 침략에서도 언론을 이용한 미국의 선전전은 치열하다. 이라크 침공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이란ㆍ 이라크전 때 쿠르드족에 생화학 무기를 사용하여 대량살상을 감행한 측은 이란이었다는 CIA의 조사결과가 있음에도 미 정부는 이라크의 후세인이 사용한 듯이 말하고 있다. 또 정밀폭격을 늘려 민간의 피해가 없을 것이라든가, 첫날의 폭격으로 후세인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고 지휘체계가 마비되었을 것이라든가, 이라크 정규군 1개 사단이 총 한방 쏘지 않고 집단투항 했다던가, 이라크의 한 도시에서 반후세인 폭동이 있었다던가, 방독면 등 화생방 장비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계획을 세웠다던가 하는 선전전이 행해지고 있다.
그러니 전쟁보도에서 언론들은, 특히 미 국방부의 종군기자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미군의 언론통제와 선전 심리전에 노출된 언론들은 비판적인 안목을 더 발휘해야 한다. 미군 측이 제공하는 정보의 과장이나 왜곡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또 이라크를 비롯한 아랍 측의 시각을 전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무엇보다 비판받아 마땅한 전쟁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전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비판적인 보도만을 하라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목소리만이 아닌 그 반대편의 목소리도 균형 있게 보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행히 기자를 이라크나 아랍권에 보내지 않더라도 알 자지라 방송을 비롯해서 이라크나 아랍권의 매체와 대안적인 시각을 전하는 각국의 인터넷 매체들이 있다. 우리 언론들은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나 미국 언론의 보도내용과 함께 이들 아랍권 또는 대안적 매체의 보도 내용이나 시각을 대등하게 소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보의 출처를 밝힐 때 어느 한 쪽만이 아닌 양측 모두를 밝혀야 한다. 또 "발표"니 "주장"이니 하는 정보원의 행위를 기술하는 용어에도 차별이 없어야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전쟁에 찬성하는 미 국민의 의견조사만이 아니라 그에 반대하는 세계 곳곳의 움직임도 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미군 종군기자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미군 부대에 끼어 전쟁보도를 하는 종군기자가 있는 언론들(조선, 중앙, 연합, SBS, KBS)이 미군의 선전ㆍ심리전에 이용되지 않는 길이다. 그것은 그들 언론이 미 이라크 전쟁을 보다 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하는 자세일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이들 언론이, 독일 공영방송인 ARD의 표현처럼, "미군의 치어리더가 될 것이냐, 진실한 역사를 기록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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