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미국의 양심' 노암 촘스키 교수(미 MIT)가 이라크전쟁 발발에 맞춰 20일 발표한 글, '깊은 우려(Deep Concerns)'의 전문이다. 이 글의 원문은 www.zmag.org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깊은 우려(Deep Concerns)**
이 엄혹한 상황에서 우리는 침략을 저지할 무엇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의와 자유, 인권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 끝났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당치도 않은 말이다.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되든 우리는 시급히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리고 그 문제에 관해 아무도 이렇다 할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 국방부와 중앙정보국에게 기대할 것은 없다.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구호단체들이 경고해 왔던 무시무시한 재앙이 일어날 수도 있고 비교적 양호한 결과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이라크인들의 머리카락 한올도 다치지 않게 되더라도 부끄러운 목적을 위해 힘없는 사람들을 복종시키려는 죄상을 누그러뜨릴수는 없을 것이다.
전쟁의 결과를 판단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우리가 즉시 해야 할 일은 보다 덜 재앙적인 결과가 나오도록 이라크인들에게 무엇인가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희생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는 것이다. 희생자는 단지 이번 전쟁의 희생자만이 아니라 미국이 지난 10년간 가했던 사악하고 파괴적인 경제제재의 희생자를 뜻한다. 경제제재는 이라크 민간사회를 파괴했고, 독재를 강화했으며, 이라크 사람들로 하여금 생존을 위해 후세인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했다. 수년간 지적되었듯이 경제제재는 사담 후세인이 다른 독재자들의 불행한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희망을 무너뜨렸다. 범죄자에 불과한 각국의 독재자들은 피로 얼룩진 지배의 마지막날까지 워싱턴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그 뚜렷한 예는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체스쿠다.
우선은 미국은 엄청난 양의 복구 보상금을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라크인들로 하여금 파괴된 것들을 스스로 복구하도록 해야 한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믿는 워싱턴과 크로포드목장에 있는 자(부시)들의 지시를 받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이슈들은 훨씬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것이다. 이라크 침략에 대한 반대는 유례없이 컸다. 이 때문에 부시는 미약한 백성들을 안전하게 물리치고 미군기지가 있는 한 섬에서 그의 두 심복(블레어 영국총리와 아스나르 스페인총리를 일컬음-역자)을 만나야 했다. 반전여론은 이라크 침략에 집중되었으나 시위에서 나타난 우려는 이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의 무력에 대한 두려움이 세계인들에게 점차 확산되고 있다. 저들의 손아귀에 쥐어진 파괴 기술이 점점 살인적이고 험악해지면서 평화에 대한 위협은 곧 생존에 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단지 이번 침략만이 미국 정부에 대한 두려움을 만든 것은 아니다. 침략이 가진 배후논리가 더욱 우리를 두렵게 한다. 그 배후논리는 세계를 군사력으로 지배하겠다는 것이다.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는 미국의 지배에 대한 어떤 도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공개 선언이다. 예방전쟁(preventive war, 국가간 힘의 분포가 변할 때 힘이 저하되는 나라가 더 이상의 상대적 약화를 피하기 위해 예방적 차원 벌이는 전쟁개념: 역자)은 미국 마음대로 벌일 수 있는 것이다. 선제공격(pre-emptive war)이 아니라 예방전쟁이다. 선제공격은 때때로 정당화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양자가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 상상에 의한, 또는 조작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쨌거나 미국의 공개적인 목표는 "미국의 힘, 지위, 명성"에 대한 도전을 막겠다는 것이다. 현존하거나 미래에 도래할 수 있는 도전과 도전의 징후들에 미국은 대처하겠지만 이 도전들을 압도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른 나라들을 합친 것보다도 많은 군사비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따라서 미국은 전세계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반대를 무릅쓰고 새롭고 위험한 길을 찾아 나설 것이다. 우주에서의 치명적인 무기의 개발 등과 같은.
내가 여기 인용하는 말들은 체니 부통령이나 럼즈펠드 장관, 혹은 다른 급진적 국가주의자들의 말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라. 내가 인용하는 말들은 40년전 케네디 행정부의 고위 자문으로 존경받았던 딘 애치슨의 말이다. 애치슨은 "정권 교체"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 테러가 세계를 핵전쟁으로 몰고 갈 뻔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쿠바에 대한 미국의 태도를 정당화하려 했다. 애치슨은 미국의 "힘과 지위, 명성"에 도전하는 세력에 대한 대응(특히 쿠바에 대한 테러와 경제전쟁)에서 어떤 "법적 문제"도 발생하고 있지 않다고 미 국제법학회에서 연설했다.
내가 이 문제를 끄집어낸 것은 문제의 근원이 매우 깊다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이다. 현 부시 행정부는 미국의 정책 스펙트럼 중 한쪽 극단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모험주의와 폭력 취미는 이례적일 정도로 위험하다. 그러나 (현 미국 지배층의) 정책 스펙트럼은 그다지 넓지 않으며 지금 우리가 보다 근원적인 문제들에 대처하지 않는다면 또다른 극우반동적 극단주의자들이 믿기 어려울 만큼 무시무시한 파괴와 억압의 수단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솔직히 시인했던 "제국주의적 야심"은 미국 주류기득권층을 비롯, 전 세계를 전율케 했다. 물론 과거부터 미국의 희생자였던 사람들의 공포는 더욱 큰 것이다. 그들은 침략자 미국인들의 수사학에 마음을 놓았다가 결국 고통을 받았던 역사를 너무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은 "문명화"란 이름으로 수세기에 걸쳐 고통을 받아오고 있다. 며칠전에도 세계 인구의 거의 대부분을 포괄하고 있는 비동맹운동의 수뇌가 부시 행정부를 히틀러보다 더 공격적인 정권으로 묘사했다. 그는 미국에 호의적인 사람이었고 미국의 국제 경제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미국에 의해 희생당했던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이제는 심지어 그들의 오랜 폭군들을 위해서까지 발언했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 예들은 수없이 많고 그 문제를 주의깊고 솔직하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시 행정부가 갑작스럽게 공포감을 조성했던 최근 몇 달 이전에도 이미 국제관계나 정보 전문가들은 미국의 정책이 보복적인 테러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해왔다.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제사회의 문명화된 일원이 될 것에 동의하고, 세계질서와 국제기구을 일정하게 존중하면서, 정당한 불만에 대해 관심을 쏟아 위협들을 경감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더 무시무시한 파괴 엔진을 만드는 것인데 이는 새로운 도전을 촉발할 뿐이다. 두 번째 방법은 미국인과 세계인들에게 심각한 위험이 될 수 있으며 인류의 종말까지 가져올 수 있다.
애치슨의 연설이 있기 몇달전,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수도 있었던 핵전쟁이 벌어지지 않았던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며, 오늘날 새롭게 되새겨야 한다. 위협은 심각하고 점차 고조되고 있다. 공포와 전율을 갖고 지금 워싱턴에서 일어나는 일을 바라보는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런 공포를 완화시키고 지금보다 희망적이고 건설적인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미국의 시민들이다. 미국인들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인류 역사상 가장 무시무시한 군사력이, 20년 넘게 권력을 잡고 놀랄 만한 파괴와 야만을 저지른 자들에게 이끌려 가고 있는 무방비의 적에게 가해지는 것을 보고 있는 지금 내가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깊은 우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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