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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신효순ㆍ심미선 양 사망사건의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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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고 신효순ㆍ심미선 양 사망사건의 진상

<자료> 민변 진상조사단 조사결과 중간 발표 전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회장 최병모)은 지난달 26일'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에 의뢰를 받아 이 사건에 대한 자체 진상 조사를 실시했다. 민변은 목격자들의 증언, 미군 수사결과 발표문, 현장검증 등 자료를 통해 조사를 실시했으며, 3일 기자회견을 통해 결과를 발표했다.

민변의 이석태 변호사는 "조사 기간도 짧았고 사고 차량 운전병 등 가해자를 전혀 접촉할 수 없어 극히 일부분에 한정된 조사"라면서 "법무부가 주한미군사령부에 1차적 형사재판관할권 포기를 요청할 수 있는 시한이 오는 5일로 다가와 중간 발표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음은 민변에서 발표한 조사결과문 전문이다. 편집자

***고 신효순, 심미선양 사망사건 진상조사 중간결과 발표**

***1. 진상조사 및 중간결과발표의 경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2002. 6. 26. 미군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 심미선 양 살인사건 범국민대책위원회로부터 사건의 진상조사를 의뢰받아 모임 산하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위원을 중심으로 조사단을 구성하고 조사에 착수하였다.

조사단은 대책위의 협조를 받아 미 제2사단의 조사결과발표와 사체검안서 및 사진 등의 서면자료를 검토하고 목격자 등의 증언을 청취하고 현장조사를 거친 결과, 어린 여학생들이 공무집행중인 미군의 장갑차에 압사당한 이 비극적인 사건에 관하여 1차적 형사재판관할권을 가지고 있는 미 제2사단 측이 아직까지 관련자들의 책임에 대하여 치밀한 조사를 하지 않았거나 진실을 밝히지 아니하여 사고경위에 대한 유족들의 의문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하여는 법의학자의 감정 및 사고차량을 동원한 현장검증이 필수적이고, 사고 차량 운전병 등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있어야만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법무부가 주한미군사령부에 1차적 형사재판관할권 포기를 요청할 수 있는 시한이 2002. 7. 5.로 다가왔고, 그 시한을 넘기게 되면 한국 수사기관이 이 사건을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낮아질 것이 또한 명백하다.

따라서 모임에서는 우선 중간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1차적 형사재판관할권 포기요청이 매우 시급하며 동시에 아래의 사항에 관하여 추가조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2. 진상조사 일시 및 진행**

가. 일시 : 2002. 6. 29.(토) 09:00-14:00

나. 장소 : 양주군 덕도리 56번 지방도 사건 현장

다. 조사위원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미군문제연구위원회 위원장 이석태 변호사,
위원 권정호, 이정희 변호사, 전김명훈 대외협력간사

***3. 조사자료**

가. 현장검증

나. 증언
(1) 이삼숙(최초 목격자, 피해자 심미선의 이모)
(2) 홍기식(사건 발생 직후 현장목격자, 피해자 심미선의 이모부)
(3) 고현기(사건 발생 직후 구급차로 시신을 이송한 사람)
(4) 모씨(인근 덕도주유소 직원)
(5) 교통안전문제연구소 부설 자동차사고감정원 원장 김남일

다. 자료
(1) 미 제2사단의 2002. 6. 19. 합동조사결과발표문 및 발표내용녹취록
(2) 미 제2사단의 2002. 6. 14. 현장브리핑 상황 녹취록
(3) 사체검안서 및 검안의 진술 녹취록
(4) 사건 발생 직후 현장사진
(5) 현장사진(6. 14. 유족들과 대책위에서 촬영한 것)
(6) 홍기식의 진술녹취록(대책위에서 수집)
(7) 광적파출소 경찰관 최태욱의 진술녹취록(대책위에서 수집)
(9) 의정부경찰서 조성현, 신기호의 진술녹취록(대책위에서 수집)

***4. 진상조사결과**

가. 사건 개요

이 사건은 2002. 6. 13. 09:40에서 10:00경, 경기 양주군 광적면 56번 지방도로 중 가마울에서 덕도리 삼거리 방향 언덕길에서 피해자1 신효순(여, 14세, 조양중학교 2년 재학중), 피해자2 심미선(여, 14세, 조양중학교 2년 재학중)이 갓길을 걸어가다가 훈련중인 미 제2사단 공병대대 44공병대 소속 부교 운반용 궤도차량에 충격되어 궤도바퀴에 깔려 압사당한 사건이다.

나. 사고 현장 상황

(1) 사고 지점은 경기 양주군 광적면 56번 지방도로 중 가마울에서 덕도리 삼거리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오른쪽으로 굽은 길을 돌아 야트막한 언덕으로 오르는 오르막 차로가 시작된 부분에서 약 35m 지점(언덕 정상부터는 60m 지점)의 도로 오른쪽 갓길이다. 이 곳은 편도 1개 차로의 직선도로로서, 평소 일반 차량의 통행이 잦고 빠른 속도로 주행하는 지점이다.

(2) 피해자1 신효순 쓰러진 맨 윗 지점의 도로폭은 중앙선으로부터 흰색 선 바깥 지점까지 3.23m, 피해자2 심미선이 쓰러진 맨 아래 지점의 도로폭은 3.31m이다. 이 곳 도로는 따로이 인도가 없고, 흰색 선 옆으로는 폭 30-40㎝의 아스팔트로 포장된 갓길이 있으며, 그 옆에 폭 60-70㎝ 가량의 흙길이 있고 이 곳에는 잡초가 길이 20㎝가량 무성하게 자라있으며, 흙길 옆으로는 깊이 30-40㎝ 가량의 고랑이 있어 보행이 어렵다. 반대방향의 차로 역시 이와 유사하다.

(3) 사고 지점은 마을 학생들이 인근 학교로 등하교하거나 마을 주민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통행하는 길로, 인도가 없고 보행자들은 통상 포장된 갓길로 보행한다. 따라서 이 곳을 운행하는 차량 중 대형차량은 오른쪽으로 굽은 길을 돌면서 중앙선에 접근하거나 중앙선을 침범하고, 사고 지점에 보행자가 있을 경우 계속 중앙선을 넘어 진행하거나 중앙선에 가까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4) 평소 미군차량은 훈련을 위해 이 곳을 자주 통행하였으며, 2002. 봄 경 미군장갑차가 굽은 길 주변에서 갓길을 넘어 도랑에 빠진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미군당국은 특별한 조치 없이 이 길을 다시 훈련이동장소로 사용하였고, 갓길에 보행자가 있을 경우 장갑차 등 대형차량은 대체로 중앙선을 넘어 운행하였다.


다. 사고 발생 당시의 상황

(1) 미 제2사단의 2002. 6. 19. 조사결과발표에 따르면 사고는 2002. 6. 13. 부교운반용 궤도차량(AVLM)에 의해 발생하였고, 사고 발생 당시 양주군 무근리 훈련장에서 전술평가훈련을 수행하던 미 제2사단 공병여단 44공병대 소속 7대의 차량이 덕도리-법원리간 56번 지방도로를 따라 하행하여 덕도 삼거리 부근 집결지로 이동중이었고, 차량 행렬은 컨보이 차량 1대, 장갑차량 M113 APC 1대에 뒤이은 사고 차량과 뒤따르는 공병궤도차량 3대, 컨보이 차량 1대로 이루어졌으며, 사고 차량의 폭은 3.65m, 길이는 6.7m이다.

(2) 미 제2사단의 발표에 따르면 사고 차량 진행방향 맞은 편으로는 브래들리 전투장갑차량 5대가 덕도리 집결지에서 무근리 방향으로 상행하여 방어지점인 무근리 훈련장까지 이동 중이었으며, 덕도주유소 직원의 진술에 따르면 사고 직전 장갑차 2대가 연이어 시속 약 30-40㎞정도의 빠른 속도로 사고 지점에서 약 500m가량 떨어진 덕도주유소 앞을 주행하여 지나간 직후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한다.

(3) 피해자들은 당시 만 14세로 인근 조양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고, 2002. 6. 13. 09:40-10:00경 그 다음날인 신효순의 생일과 그 날인 다른 친구의 생일을 함께 축하하기 위하여 사고 지점에서 300m 가량 떨어진 가마울 마을에서 출발하여 역시 사고 지점으로부터 300m 가량 떨어진 초가집이라는 식당으로 걸어가고 있던 중이었다.

(4) 사고 발생 당시 사고 지점 바로 윗 편 밭에서 일하고 있던 이삼숙이 길가를 보다가 언덕을 내려오는 장갑차 위에 탑승한 미군이 소리를 지르는 것을 발견하였고, 사고 지점 반대편 7, 8여m 떨어진 넓은 갓길에 장갑차를 주차하고 하차하여 마치 후진지시를 하는 듯이 팔을 머리 위로 올려 뒤로 흔드는 모습이 보여 사고 현장으로 내려오니 피해자들이 머리가 깨진 채로 길가에 쓰러져 있어서 언덕 아래 쪽 부대 입구 밭에서 일하고 있던 남편 홍기식을 부르러 내려갔고, 홍기식은 이삼숙의 소리를 듣고 수 분내에 사고 지점에 도착하니 반대편 갓길에 장갑차 1대가 정차해 있었다.

(5) 얼마 후 미군 의무차량이 와서 들것을 내려놓고 피해자들을 실으려 하다가, 홍기식이 피해자의 신원을 확인하려고 하자 계속하여 보지 못하도록 하고 시신을 판쵸 우의로 덮어놓았다. 그 후 통역관이 도착하여 홍기식이 헬멧을 벗고 하차한 사고 운전병에게 "속도를 냈느냐"고 했더니 운전병이 "오르막이라 속도를 냈다"고 말하였다.

(6) 사고 다음 날인 6. 14. 16:00경 확인된 바에 의하면 사고 지점 15m 전부터 나있는 흙갓길에는 피해자 1의 머리가 있던 지점까지 궤도바퀴 자국이 남아있는데, 아스팔트 포장이 끝난 지점부터 흙갓길 쪽으로 40-50㎝가량 궤도 자국이 나있어 궤도의 바깥 모서리 부분이 여기에 닿았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고 지점 1m 가량 앞의 갓길 아스콘 포장 끝부분이 폭 20㎝, 길이 70-80㎝가량 깨어져있어, 폭 70-80㎝가량의 궤도 바퀴가 이 지점에도 닿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라. 피해자들의 상태

(1) 피해자들은 사고 지점 흰색 실선을 중심으로 피해자1의 발과 피해자2의 머리가 겹쳐져 일렬로 누운 상태로 사망하였는데, 피해자2는 얼굴은 도로 중앙부를 향하여 완전히 엎드린 채 왼쪽 다리와 왼쪽 팔이 흰색 실선 위로 올라와 있고 양팔을 모두 머리 위로 올린 채로 왼쪽 정강이 뼈가 드러나고 왼쪽 종아리 근육이 궤도바퀴에 물린 듯 갈려나갔으며, 두개골의 우측 대부분이 갈려나갔다. 추병원 신경외과 강관수 과장의 사체검안에 따르면 피해자 2의 가슴 양측에 다발성 늑골 골절이 있었고, 골반골이 골절되었다.

피해자1은 얼굴이 갓길쪽을 향한 채 모로 누운 상태로 쓰러졌고, 다리는 피해자2의 머리 양옆으로 벌려져 갓길 중간 지점과 흰색 실선 위에 있으며 몸의 중심부는 흰색 실선 위에 있고 골반부가 파열되고 도로에 면한 머리의 좌측이 파열되어 골수가 쏟아졌으며, 피해자들 모두 주로 머리에서 출혈이 있었다. 사체검안에 따르면 역시 늑골과 골반골이 골절되었다.

(2) 피해자2 머리의 갈린 부분은 흰색 실선 바깥쪽에 있고 피해자1 머리의 파열된 부분은 흰색 실선 안쪽에 위치해있으며, 피해자 1, 2의 등에는 다리 쪽으로 흙으로 궤도 바퀴 자국이 나 있다.

(3) 이와 같은 점으로 볼 때, 사고 지점 근방에서 흙길을 통과한 장갑차가 갓길 쪽에서 도로 안쪽으로 진행하면서 흰색 실선 바깥부분에 있던 피해자 2를 충격하여 쓰러뜨리고 다리와 머리 부분을 바퀴로 휘감아 사망하게 하고, 피해자 2가 쓰러지는 것을 알고 갓길 밖으로 비켜나가려다 쓰러진 피해자1의 머리까지 일렬로 밟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유족들의 진술에 의하면 피해자들의 둔부와 배를 가로질러 넘은 바퀴자국이 있다고 하는바, 정확한 사고경위를 판단하기 위하여는 법의학자의 전문감정이 필요하다.

마. 사건 발생 이후의 처리경과

(1) 미군은 사고 직후 미군 의무요원만 호출하였을 뿐, 한국경찰에 전혀 연락하지 않은 채 40여분에서 1시간 가량 동안 방치하였다. 홍기식이 30여분 후에 인근 마을에 모두 연락하여 집에 없는 아이들이 누구인지 확인하도록 하는 동안에도 미군측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나가던 차량운전자가 10:45경 경찰에 신고하고서야 10:55경 인근 광적파출소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하여 현장사진 촬영과 거리측정 등 기초조사를 하고 의정부경찰서 사고조사계로 지원요청을 하였고, 10:45경 제보를 받은 구급차 운전자가 10:57경 현장에 도착하여 시신을 수습하고 병원으로 옮긴 후 의정부경찰서에서 현장에 도착하였다.

(2) 사건 발생 다음날인 6. 14. 17:00경 관련 사회단체에서 사건현장을 확인하였고, 미 제2사단은 같은 날 20:00경 사회단체를 배제하고 유족들만 참여시킨 채 현장브리핑을 하였으나, 도로폭이 사고 차량 폭보다 크게 그림을 그려오는 등으로 정확한 기초조사를 하지 않은 상태였다. 미 제2사단은 6. 17. 유족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로 한국군 헌병대와 재차 현장조사를 한 후 6. 19. 합동조사결과를 발표하며 지휘체계의 과실이 있다고 하였으나, 6. 28. 07:30경 미2사단 대변인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누구의 과실도 없으며 사고 운전자에 대한 조사가 종결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5. 미 제2사단의 조사결과발표에 대하여**

가. 한미군경합동조사를 실시하였다는 점

(1) 미 제2사단은 2002. 6. 19. 조사결과발표 당시 "대한민국 경찰, 대한민국 군범죄수사대 및 미 육군 안전부서와 더불어 철저한 사고조사를 실시하였다"고 하였다.

(2) 그러나 6. 13. 사건 발생 직후 미군은 미군 의무관에게만 연락하였을 뿐 한국 경찰에는 연락도 하지 않고 40분에서 1시간 가량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며, 사고 발생 후 1시간 가량 후에야 사고 지점을 지나던 차량운전자의 제보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광적파출소 경찰관은 현장사진촬영 및 거리 측정 등 기초조사를 한 것 외에는 미군이 가로막아 사고 운전병에게 접근할 수도 없었고, 그 후 한국 경찰이 합동조사에 참여하거나 미진한 점에 대하여 추가수사를 한 바 없다. 또 미 제2사단은 한국군 헌병과 6. 17. 공동조사를 실시했다고 하나, 이 사건에 대하여는 미군당국과 대한민국 일반법원이 경합적 재판권을 가지므로, 한국군 헌병이 아니라 대한민국 검찰과 경찰이 현장조사에 참여하여야 한다.

(3) 이 사건 목격자로는 사고 운전병과 선임탑승자, 반대방향으로 주행하던 브래들리 장갑차량의 탑승자 및 이삼숙과 홍기식이 있는데, 한국 경찰은 사고운전병 등에 대한 조사를 하지 못했고, 이삼숙, 홍기식에 대하여는 미군측에서도 한국 경찰에서도 참고인조사를 한 바 없어, 기본적인 조사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4) 따라서 철저한 한미군경합동조사가 실시되었다는 미 제2사단의 발표는 명백한 허위이다. 오히려 현재까지의 조사경과와 과실이 없다는 미군측의 발표는, 현행 주한미군지위협정의 규정상으로는 미군측이 한국 검찰과 경찰의 조사요구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한, 한국 수사기관이 초동수사에서부터 후속수사까지 온전한 의미의 한미합동조사를 수행할 방법조차 없다는 것을 드러내준다. 한미합동조사는 지금부터 새로이 시작되어야 한다.

나. 사고 차량 운전병이 피해자들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

(1) 미 제2사단이 6. 19. 조사결과발표 당시 제시한, 한국군 헌병이 촬영하였다는 사진자료에 의하면, 사고 차량은 부교를 들어올리는 구조물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 운전병이, 오른쪽에 선임탑승자(사진자료에서는 운전보조자로 표현함)가 승차하여 운전자가 선임탑승자의 지시를 받아 운전하도록 되어 있으며, 운전병의 위치에서는 사고 지점에 피해자들이 서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다.

(2) 그러나 위 사진 좌측의 전신주가 있는 곳에서 직선으로 도로를 통과한 곳이 사고 지점인데, 사고 현장에는 전신주로부터 7-8m 가량 아래쪽에 차량이 주차할 수 있는 넓은 갓길이 있는데 이 사진에는 이 지점이 나타나지 않아, 이 사진은 5m 이내로 사고 지점에 매우 근접하여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운전병이 피해자들을 보지 못하였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굽은 길을 돌아선 30m 전방에서도 보지 못한 것인지를 확인하여야 하는데, 이 사진으로는 그 지점에서도 볼 수 없었다고 확정할 수 없다. 근접한 거리에서는 사각지대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30m 가량의 상당한 거리가 있을 때에는 외부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시야가 확보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사고 당시는 맑고 화창한 아침이고 도로 사정상으로는 시야에 아무런 장애도 없었으며, 사고 지점이 오르막길이고 피해자1은 청색, 피해자2는 적색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차량 운전병으로서는 굽은 길을 벗어난 즉시 피해자들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3) 더구나 보도에 의하면 사고 운전병은 미군수사기관에서 "선임 탑승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얼굴을 돌렸을 때 그가 '정지'라고 고함지르는 것을 들었다. 그때 차량 우측 바로 앞에 빨간 셔츠를 입은 소녀를 보았다"고 진술하였다고 하는바, 이에 따르면 미 제2사단 측의 발표는 진실을 은폐하려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4) 따라서 운전병이 피해자들을 발견하였는지 발견하지 못하였는지, 그렇다면 차량 구조 때문인지 전방주시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한국 수사기관이 운전병을 신문하고 사고 차량을 동원하여 정확한 현장 조사를 실시하여야만 한다.

다. 선임탑승자가 운전병에게 제 때 경고할 수 없었다는 점

(1) 미 제2사단의 발표문에는 "사고 차량의 선임탑승자가 제 때에 운전병에게 경고할 수 없었다"고 하나, 그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다.

(2) 미 제2사단 헌병 사령관은 2002. 6. 19. 합동조사결과 발표에서, 선임탑승자가 도로의 굽은 길을 지난 직후 사고 지점으로부터 30m 가량 전방에서 피해자들을 발견하였고 사고 지점까지 도달하는데 약 8초가 걸렸으며, 전차장(선임탑승자)이 운전병에게 도로에 보행자가 있다고 경고하기 위해서 무전으로 호출하고, 다시 차량무전기를 통해 정지하라고 경고하였으며, 이 때까지도 운전병이 듣지 못하여 차량 인터컴을 이용하여 세 번째로 정지하라고 외쳤으나 운전병은 여전히 듣지 못했다고 하였다.

(3) 그러나 8초라면 충분히 경고를 발하고 정지할 수 있는 시간인데, 선임탑승자가 제때에 경고하지 못했다면 첫 번째 경고를 발한 것이 사고 지점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진 곳에서였는지, 세 번 경고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지 정확한 사실조사가 필요하다.

라. 운전병이 선임탑승자의 경고를 듣지 못했다는 점

(1) 미 제2사단의 발표문에는 "사고차량은 매우 소리가 요란하며, 특히 언덕을 오를 때에는 그 소음이 더욱 심각하다"고 하여 소음 때문에 운전병이 경고를 듣지 못한 것처럼 기재되어 있으나, 2사단 헌병사령관은 이와는 달리 당시 훈련으로 인해 무전교신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운전병이 듣지 못했다고 설명하고, 무선 교신이 안 된 이유에 관한 질문에 대하여 "1, 2차례 무전 교신을 시도했으나 둘만이 아니라 차량간, 훈련부대간 무전교신이 혼잡하게 들어오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그 원인을 바꾸어 설명하였다.

(2) 그러나 첫째, 궤도 차량이 언덕을 오르는 정도의 소음 때문에 전투상황에서 사용되는 장비로 무선교신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서, 이 설명이 과실을 부인하는 사고 운전병 및 선임탑승자의 진술을 그대로 신빙하여 나온 것이라면, 미군측의 조사의 정확성과 신뢰성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둘째, 장갑차 운전병과 선임탑승자는 헬멧을 착용하고 그에 장착된 장치로 수시로 무전교신하면서 도로상황을 파악하여야 하며, 부대간, 차량간 무선교신은 주파수를 달리하기 때문에 무전이 혼선되어 교신할 수 없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운전병은 선임탑승자와 교신하며 그의 지휘에 따라야 할 뿐 다른 차량간, 부대간 무전교신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며, 장갑차 운행 전에는 탑승자 간 통신장비 이상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인바, 운행 전 이를 확인하지 않고 무단히 운행하였거나, 운전병이 규정에 위반하여 헬멧을 벗고 있어서 듣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4) 따라서 사고 차량 운전병과 선임탑승자, 차량행렬인솔자가 통신장비 이상여부를 확인하였는지, 운전병이 헬멧을 착용하고 무선교신준비를 갖추고 있었는지를 다시 조사하여야 한다.

마. 제동장치를 작동한 후에도 제동거리 때문에 계속 진행했다는 점

(1) 미 제2사단 헌병사령관은 사고 차량 운전병이 브레이크를 밟은 뒤에도 차량의 중량과 속도로 인하여 어느 정도 거리를 계속해서 앞으로 이동하여 피해자들을 충격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2) 그러나 자동차사고감정원 원장 김남일의 분석에 따르면, 일반 승용차(고무 타이어가 장착되어 사고 차량보다 마찰계수가 커서 제동거리가 더 길다)가 시속 16㎞로 주행하였을 때, 그 제동거리는 1.3m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사고 차량은 언덕길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하여 바퀴가 궤도로 되어 있어 일반 승용차보다 마찰계수가 적어, 만약 시속 8-16㎞로 주행하였다는 발표가 사실이라면, 그 제동거리는 아무리 길어도 1m 이상 되지 않으며, 실제로는 그 자리에서 정지하였을 것으로 보이고, 앞서 걸어가던 피해자 1의 머리까지 압력에 견디지 못하고 파열된 점으로 보면, 최소한 피해자 1의 하반신이 깔리기까지도 제동장치를 조작하지 않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3) 그러나 사고 운전병은 사고 발생 직후 홍기식에게 "오르막이라 속도를 냈다"고 말한 바 있으므로, 미군측의 공식발표와 달리 최소한 시속 30-40㎞이상 속도를 내었을 가능성이 있고, 미군측은 6. 14. 현장조사시 사고 차량의 속도가 시속 10-15마일(16-24㎞)라고 하였으므로, 당시 사고 차량의 속도와 제동거리에 관하여 사고 운전병과 차량대열 지휘관 및 맞은 편에서 오던 장갑차 승차자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

바. 마주오던 브래들리 장갑차가 교행하지 않았다는 점

(1) 미 제2사단은 6. 14. 현장조사시 "맞은 편 장갑차는 차량 행렬의 맨 선두에 있던 차량이 가다가 되돌아온 것으로 사고 지점 도착 시간이 사고 발생 이후라서 이번 사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유족들이 선두 차량이 되돌아온 이유를 묻자 6. 19. 발표한 발표문에는 다른 부대의 장갑차이며 교행하지 않은 채 1m 떨어진 곳에서 멈추었다고 기재하고 그날 유족들의 질의에는 교행하였다고 내용을 번복하였다.

(2) 통상 대형차량이 오른쪽으로 굽은 길을 지날 때 중앙선을 침범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건 사고 차량은 굽은 길을 지난 후 사고 지점 15m 앞에서부터 흰색 실선을 지나 70-80㎝ 가량 포장된 갓길과 흙갓길을 운행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바, 사고 차량이 빠른 속도로 마주오는 장갑차 행렬과 교행하기 위하여 갓길로 진행하였다면 실제로 교행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마주오던 장갑차가 교행하였는지 여부에 관하여 재조사하여야 한다.

사. 사고 차량 앞 차량의 탑승자들이 사고 발생 현장을 목격하였다는 점

(1) 미 제2사단은 발표문에서 사고 차량 앞에서 운행 중이었던 차량에 탑재한 2명의 미군이 사고 발생 당시 현장을 목격한 반면 홍기식 등 한국인은 사건을 실제로 보지 못했다고 하여 한국인들의 증언에 신빙성과 가치가 없는 반면 미군측의 주장이 신빙성 있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2) 그러나, 사고 차량의 앞 차량이 어떤 방식으로든 이 사건의 원인을 제공하여 그 탑승자들이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일부러 돌아보지 않았다면, 이들이 피해자들이 넘어져 깔려들어가는 사고 발생 현장 자체를 목격할 수는 없다. 따라서 미 제2사단이 이들이 사고 발생 현장을 목격하였다는 주장을 유지하려면, 이들이 사고 차량과 얼마나 떨어져 진행하고 있었는지, 이들이 목격한 것이 과연 무엇인지, 어떤 이유로 뒤돌아 사고현장을 보게되었는지를 밝혀야 한다.

***6. 결론**

가. 재판권포기요청의 필요

(1) 사건 발생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미군당국의 수사는 위와 같은 많은 의문점을 남긴 채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미 제2사단 대변인은 지난 6. 28. 라디오 인터뷰를 통하여 사건 조사가 모두 끝났고 미군 누구에게도 어떠한 과실도 없으며 사고 운전병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한국검찰과 경찰은 이 사건이 공무집행중의 사건으로 그 1차적 재판권이 미군당국에 있어 한국측이 재판권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적극적인 수사를 펴지 않았으나, 그 결과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증거들이 흩어지는 반면 사고 차량 운전병과 선임탑승자, 차량 행렬 지휘관 등이 진술을 조작하거나, 특히 이와 같은 위험한 작전을 수립시행하도록 한 작전지휘계통의 과실을 입증할 자료가 멸실될 가능성이 높다.

(2) 이 사건은 그 피해정도가 심각하고 재발방지의 필요가 절실하며, 미군당국이 수시로 조사결과를 번복하고 과실이 없다고 선언하는 등 더 이상 미군당국에만 이 사건 수사를 맡겨두어서는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것은 물론 과실운전자 및 그 책임자에 대해 적절한 처벌이 가해지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대한민국 법무부는 주한미군지위협정 제22조 제3항 (다)의 규정에 따라 이 사건이 발생한 후 21일을 넘지 않는 2002. 7. 5.까지 주한미군사령부에 이 사건에 관한 1차적 형사재판관할권의 포기를 서면으로 요청하여야 한다. 또한 형사재판관할권의 귀속 문제가 확정되기 이전에라도 긴급히 아래의 점들에 대하여 한미합동수사를 진행하여야 한다.

나. 추가수사가 필요한 사항

(1) 법의학자의 전문감정 : 피해자들의 사망경위를 밝히기 위함.

(2) 현장검증 : 사고 차량 구조와 운전병의 시야범위, 제동거리를 확인하기 위함.

(3) 피의자조사 : 사고 차량 운전병, 선임탑승자, 관할 부대장, 미 2사단 작전참모 등.
- 선도차량 및 2번쨰 차량 탑승자가 사고 도로 부근에서 피해자들을 발견하였는지.
- 이들 및 선도차량에 탑승한 차량대열 인솔자는 사고방지를 위하여 어떤 조치를 취하였는지.
- 사고 차량 선임 탑승자는 피해자들을 발견하고도 왜 즉시 경고할 수 없었는지.
- 사고 차량 운전자가 당시 헬멧을 착용하고 있었는지.
- 헬멧에 장착된 무전장치는 정상적으로 작동되었는지.
- 그 주파수는 규정에 따라 맞추어져 있었는지.
- 사고 차량 운행 전 제동장치 정비점검을 하였는지.
- 사고 차량의 속도 및 제동위치.

(4) 문서자료수집 : 작전지휘계통의 과실을 입증할 미군내 문서를 증거로 확보하기 위함.
- 작전?훈련과정의 안전수칙에 관한 문서.
- 이 사건 훈련작전의 수립과정 및 지휘계통에 관한 문서.

(5) 목격자에 대한 참고인조사 : 사고전후의 정황을 분명히 하기 위함.

2002. 7. 3.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최 병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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