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12일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발의한 테러방지법(안)이 27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대통령의 재가도 받았다. 이제 남은 절차는 국회 상임위원회와 국회 본회의의 심의이다. 12월 7일 정기국회가 마감하므로 남은 일정도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시민인권운동단체는 지난 6일 정부가 이른바 ‘테러방지종합대책’을 내놓은 시점부터 정부가 마련하고자 하는 테러방지법(안)의 위험성에 주목해왔다. 그리고 지난 12일 드디어 국정원이 테러방지법(안)을 내놓자 이에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시민인권운동단체 및 법률가들이 한목소리로 테러방지법(안)이 ‘제2의 국가보안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하자 이를 의식한 국정원은 유례없이 입법예고 중에 법안을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비판을 피해가고자 했다. 또한 국가대테러대책 상임위원장이 될 국정원장과 그의 직속이 될 대테러센터장이 검찰과 군, 경찰을 지휘하게끔 만들어 놓은 최초의 법안에 대해 법무부와 국방부 등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내외의 비판을 의식하여 국정원은 처음의 법안을 입법예고기간(그것도 10일간의 짧은 기간) 중에 슬그머니 폐기하고 새로운 법안으로 대체하는 무리수까지 두었다. 입법예고는 말 그대로 입법예고이고 국민들에게 의견을 묻는 절차이다. 국민들의 비판의견이 있어 이렇게 수정했다고 밝히면 될 것을 그런 식으로 법안 대체를 해야 했을까. 떳떳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이 제2안은 몇 군데의 수정을 거쳐 드디어 국무회의를 통과하기에 이른 것이다.
2. 27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의 최종안(제3안)은 국정원이 지난 12일 처음 제출한 법안의 문제점을 다수 제거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법문(法文)상의 모호한 부분들을 상당부분 수정하였고 문제 조항을 삭제했다. 몇 가지만 간추려서 살펴보자.
(1) 우선 제2안과 제3안은 제1안이 사용한 모호한 문구들을 보다 분명하게 표현하였고 문맥도 다듬었다. 예를 들어 그냥 ‘유해성 생화학물질 또는 방사능물질 등을 사용하여 위협하거나’라고 규정했던 것을 ‘대량으로 인명을 살상하기 위한 유해성 생화학물질 또는 방사능물질의 누출 또는 살포’로 바꾸었다가 제3안에서는 이를 조금 더 손질하였다.
테러자금의 거래정지부분도 제1안에서는 대테러센터장이 곧바로 거래 정지할 수 있도록 했으나 제2안에서는 수사기관의 장이 ‘소명자료를 첨부하여’ 거래 정지를 요청하도록 바꾸었고 제3안에서는 이 부분을 아예 삭제하였다.
이제까지 유례가 없었던 ‘참고인 구인 유치’ 부분도 제2안부터 빠졌고 국가보안법상의 조문을 그대로 옮겨왔다는 비판을 받았던 구속기간연장 부분도 삭제하였다.
(2) 제2안과 제3안은 국정원이 테러방지라는 명목을 내세워 다시금 70-80년대 중앙정보부, 안기부와 같은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을 재등장하려고 한다는 의혹을 던져주고 있는 제1안을 대폭 수정하려고 하였다. 대통령 직속의 국가대테러 대책회의의 위상을 분명히 하여(심의 의결기구임을 분명히 함) 대책회의 밑의 상임위원회를 통제할 수 있도록 했고 국가대테러 대책회의 상임위원장도 국정원장이 맡는 것으로 했다가(제2안까지) 대테러 대책회의의 의장인 국무총리가 위원 중에서 지명하도록 바꾸었다.
상임위원회의 지휘아래 있는 대테러센터장의 경우 제1안에서는 상임위원장이 대통령에 제청하여 임명하도록 하여 사실상 국정원 간부가 대테러센터장이 될 것임을 암시했으나 제2안부터는 이 부분이 빠진다.
무엇보다 눈여겨볼 대목은 대테러센터의 직무부분인데 문제되었던 제1안이 밝히고 있는 ‘테러사건 수사’가 제2안부터는 빠진다.
이렇게 해서 국정원은 이 법이 만들어져도 국정원이 수사권을 남용하여 인권을 침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낸 셈이다.
(3) 군병력의 동원절차가 통합방위법의 예에 따라 수정되었다. 지난 6일에 정부의 대테러종합대책이 나올 당시부터 비상시 군이 출동하고 출동지역에서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었다.
시민인권운동단체는 이 부분에 대해 대단한 우려를 표명하였다. 계엄상황이 아닌데도 군이 출동하여 일반시민에 대해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 하는 반론이 처음부터 개진되었다.
제1안은 그런 반론에 대해 고민하기는커녕 통합방위법보다도 더 쉽게 군의 출동을 가능케 하고 있었다. 즉 대테러 대책회의가 군대의 동원을 국방부장관에게 요청할 수 있도록 법안은 규정하고 있었는데 제2안부터는 대책회의 또는 상임위원회가 대통령에게 군병력의 동원을 건의하도록 손질하였다.
3. 이밖에 지적할 부분은 많지만 요약하자면 두 번 세 번의 수정을 거쳐 테러방지법(안)은 보다 세련된 형태로 바뀌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수정을 거치면서 테러방지법(안)이 애초 시민인권단체들이 갖고 있었던 ‘본질적인’ 우려를 불식시켰는가 하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들 단체들의 판단이다. 27일 국정원 청사 앞에서의 항의집회가 그 사실을 대변해준다. 필자의 견해도 마찬가지이다.
(1) 제2안, 제3안을 거쳐 국정원의 테러범죄수사는 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수정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수정이 국정원의 수사권남용을 사실상 견제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 우려를 갖고 있다.
(2) 테러행위를 한 자에 대한 형벌부분에서 제1안, 제2안, 제3안은 모두 동일하게 그 최고형의 2분의 1까지 가중하여 처벌하도록 규정하였다. 형벌을 강화하여 ‘테러행위’를 막아보겠다는 발상인데 문제는 이처럼 형량만 높인다고 테러가 방지되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특별형법들은 대개 형법상의 형량을 가중하고 있는데 ‘형사정책연구원의 보고서’에서도 지적되고 있듯이 형량을 가중한다고 해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테러방지법(안)은 애써 눈감고 있다.
형량만 늘리면 범죄에 대한 예방효과가 있다고 믿는 권위주의적 형벌관념은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형법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임을 지적해둔다.
(3) 가장 본질적으로는 제1안, 제2안, 제3안이 거의 대동소이하게 규정하고 있는 테러의 개념정의 부분이다. 제2안을 거쳐 제3안에서도 테러의 개념이 부분적으로 수정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부분적 손질에도 불구하고 테러에 대한 개념정의는 여전히 모호하다는 점에 있다. 테러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면 기존의 형법 및 특별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행위를 지금까지의 ‘테러관행’에 비추어 정확히 따져보고 그러한 행위에 한하여 죄목을 만드는 식으로 입법이 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다.
죄목을 마구 만들어내는 것은 그 자체로도 국민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런 일을 자유주의적 법치국가가 해서는 안된다.
2번에 걸친 법안수정에서도 테러개념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데 이는 테러개념을 정확히 정의하기 어렵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입법단계에서도 이렇게 어려운데 일단 법이 만들어지면 테러범죄에 대한 수사에서 수사기관은 대단한 재량권을 갖고 이 부분을 판단할 우려가 있다. 이렇게 테러개념을 넓게 그리고 모호하게 해 놓으면 국민들의 정치적 저항 중 상당부분이 테러로 분류될 수 있다.
인도의 경우 이른바 ‘테러분열법’을 내세워 법이 폐기되기 전 10년간 7만5천명을 체포했지만 이 가운데 정식으로 기소된 사람은 1%도 채 안되더라는 기사를 최근의 언론보도를 통해 읽은 적이 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정치적 소수자들이 항의행위로 다소 거친 행동을 하게 되면 사법경찰권을 가진 대테러센터 공무원은 이들을 ‘테러’분자라 하여 잡아다가 수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되면 집회, 시위권 등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은 상당정도 위축될 수 있다. 이런 일이 불을 보듯 뻔하게 예측되는데 무턱대고 테러방지법을 만들면 안 된다.
4. 그러므로 정부는 현행 형법 및 특별형법 중 테러행위에 대처할 수 있는 ‘죄목’을 차근차근 점검해보고 그래도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그것을 범죄행위로 규율하는 식으로 입법절차를 진행하라는 시민인권운동단체들의 주장을 경청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며 월드컵을 앞두고 시간이 없는데 문제가 생기면 당신네들이 책임질 것이냐 하는 식으로 정부가 국민들을 몰아 세워서는 안된다.
정부가 입안한 테러방지법이 실제로 테러를 방지하고 위험을 감소시키며 국민들에게 보다 안전한 생활을 가져다줄 것인가 아니면 테러방지라는 명분아래 국민의 자유를 한층 더 제한하게 될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의무는 정부에게 있다. 다시 말해 안전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자유를 제한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의무, 입증책임이 있다는 얘기이다.
[테러방지법(안)]-편집자가 발췌했으며 [주]는 편집자가 붙인 것임
제2조(정의)
1. ‘테러’라 함은 정치적 종교적 이념적 또는 민족적 목적을 가진 개인이나 집단이 그 목적을 추구하거나 그 주의 또는 주장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계획적으로 행하는 다음 각목의 행위로서 국가 안보 또는 외교관계에 영향을 미치거나 중대한 사회적 불안을 야기하는 행위를 말한다.
가. 대통령이 정하는 국가요인, 각계 주요인사, 외국요인과 주한외교사절에 대한 폭행 상해 약취 체포 감금 살인 [주. ‘대통령이 정하는’ 부분 추가]
나. 국가중요시설, 대한민국 재외공관, 주한 외국정부시설 및 다중시설의 방화 폭파
다. 항공기 선박 차량 등 교통수단의 납치 폭파
라. 폭발물 총기류 그 밖의 무기에 의한 무차별한 인명살상 또는 이를 이용한 위협
마. 대량으로 사람과 동물을 살상하기 위한 유해성 생화학물질 또는 방사능물질의 누출 살포 또는 이를 이용한 위협
제5조(대테러센터) ① 대테러활동과 관련하여 다음 각호의 사항을 수행하기 위하여 국가정보원에 관계기관의 공무원으로 구성되는 대테러센터를 둔다.
1. 테러징후의 탐지 및 정보
2. 테러관련 국내외 정보의 수집 작성 및 배포
3. 대테러활동의 기획 지도 및 조정
4. 분야별 테러사건 대책본부에 대한 지원
5. 외국의 정보기관과의 테러관련 정보협력
6. 그 밖에 대책회의 및 상임위원회에서 심의 의결한 사항
[주. 초안 중 ‘테러사건의 수사’ 부분 삭제]
제15조(군병력 등의 지원) ① 대책회의 또는 상임위원회는 경찰만으로는 국가중요시설 다중이용시설 등을 테러로부터 보호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시설의 보호 및 경비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군병력 또는 향토예비군(이하 “군병력 등”이라 한다)의 지원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주. 초안은 ‘대책회의(상임위원회를 포함한다)는 ... 국방부장관에게 군병력의 동원을 요청할 수 있다’ 임]
② 대통령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한 건의에 따라 군 병력 등을 지원하고자 할 때에는 국회에 통보하여야 하며 군 병력 등을 지원한 후 국회가 군병력 등의 철수를 요청한 때에는 이에 응하여야 한다. [주. 초안에 없었던 철수 규정을 추가했음]
③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지원된 군병력 등은 시설의 보호 및 경비에 필요한 범위 안에서 불심검문 보호조치 위험발생방지 또는 범죄의 예방과 제지를 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④ 제3항의 규정에 의한 불심검문 보호조치 위험발생조치 및 범죄의 예방과 제지를 위한 조치에 관하여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3조 내지 6조, 제10조 및 제10조의 2 내지 제10조의 4의 규정을 준용한다.[주. 초안은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3조 내지 제7조에 의한 경찰관으로서의 권한과 의무를 갖는다’ 임]
제16조(사법경찰권) 대테러센터 공무원은 사법경찰리의 직무를 행할 자와 그 직무에 관한 법률 및 군사법원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사법경찰관리와 군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행한다.[주. 추가한 조항]
제21조(테러범죄의 미신고) ① 테러의 계획 또는 실행에 관한 사실을 알고 이를 관계기관에 신고함으로써 테러를 미리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신고하지 아니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다만 교통 통신의 두절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주. 초안에 없었던 ‘테러를 미리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분 추가]
제25조(정보자료의 증거능력) 외국의 정보 수사기관에서 작성 제출한 정보자료는 그 내용이 믿을만하고 정보입수자의 진술에 의하여 제공기관 입수경위 등 그 성립의 진정이 인증된 때에는 증거로 할 수 있다.[주. 초안은 ‘그 내용을 인증한 때에는 증거능력이 있다’ 임]
[주. 초안의 ‘테러자금의 거래정지’, ‘참고인의 구인 유치’, ‘구속기간의 연장’ 조항은 삭제]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