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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생각하는 노인들<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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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생각하는 노인들<上>

“하루하루 사는 게 두렵다”

“나 죽는 거 안 두려워, 사는 게 무섭지. 어디 가서 하루 한뎃잠 자면 인생 끝나는 거야.”

세 아들에게 버림받고 노숙자로 떠돌다 병원에서 죽음만 기다리는 김영철(73.가명)씨. 할머니가 죽은 후 불과 1년 사이에 김씨는 자식들과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절망감에 자살을 생각하는 노인이 됐다.

오른쪽 다리가 썩어 들어가 절단수술을 권하는 의사들에게 김씨는 한사코 수술을 거부한다. 그나마 불구가 되면 어떻게 밥을 먹고 용변을 볼지가 걱정스러운 것이다.

“의사 선생님, 제발 퇴원시켜주시오. 간병해줄 사람도 없는 데 수술을 하면 어떻게 살란 말이오?”
의사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다.

“아드님이 셋이나 되는데 무슨 걱정이세요?”라는 질문에 할아버지는 차라리 입을 다물었다.

***절망감에 자살 꿈꿔**

함께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눈을 감은 것은 지난해 추석. 김씨 할아버지는 서울 흑석동 집과 쌀가게를 처분한 돈 7억여 원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큰 아들(45)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큰 아들과의 짧은 동거는 2개월만에 끝났다.

김씨가 물려준 재산을 아들이 주식투자로 모두 날리자 평소 마찰이 잦았던 큰며느리가 “도저히 시아버지를 못 모시겠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가버렸다. 유명 사립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부장으로 일하는 큰 아들. 김씨에게 늘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던 그도 한 편이 되어주지 못했다. 결국 김씨는 추운 겨울 항공회사에서 정비사로 근무하고 있는 둘째 아들(43)네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세 며느리 중에서 가장 후덕한 둘째 며느리였지만 당뇨병을 오랫동안 앓아온 김씨를 돌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둘째 아들은 “재산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형도 안 모시는데 내가 왜 모셔야 하냐”는 불만을 은근히 내비치기도 했다. 둘째 아들과의 동거 역시 반년을 넘기지 못했다.

김씨는 차마 막내 아들(41)에게 찾아갈 수 없었다. 막노동을 하는 막내는 아들 셋 중 가장 공부도 못 시켰고 형들에 비해 사는 형편도 넉넉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막내 며느리는 지난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절대 시아버지를 모시지 않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결국 할아버지는 지난 7월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에 몰래 집을 나와 노숙자 생활을 시작했다.

김씨의 잠자리는 서울시 노량진동 한강대교 밑이었다. 끼니는 빵과 컵라면으로 때우고 먹을 물은 공원, 동사무소 정수기 등에서 떠다 먹었다. 먹는 것, 자는 것, 씻는 것도 문제였지만 김씨를 제일 괴롭힌 건 동숙하던 젊은 노숙자들의 폭력. 술에 취한 젊은 노숙자들이 술을 사달라며 김씨를 구타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 날이면 김씨는 자식들을 원망하며 울기도 했다고 한다.

김씨의 노숙자 생활은 현장에 조사 나온 동사무소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한 달만에 끝났다. 김씨의 딱한 사정을 들은 사회복지사는 그를 서울 용산의 S 노숙자 쉼터로 안내했다.

쉼터에서 지내게 된 김씨는 여기서 인생을 마치리라고 결심했다. 그래서 가출할 때 들고 나왔던 2백20만원이 든 통장도 쉼터 원장에게 맡겼으며, 평생 교회 문턱에도 가본 적 없던 그가 기독교도가 됐다. 김씨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버림받은 것이 그동안 지은 죄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남은 생 마음 편히 살다가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했다.

그러나 노숙자 쉼터에서의 생활도 녹녹치 않았다. 노숙자들의 거친 생활이 그대로 배어 있었던 것. 젊은 사람들의 폭력은 그 곳에서도 계속 됐다. 게다가 세 아들들은 아버지가 쉼터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찾아오지 않았다.

***소외와 가난이 짓밟는 노인들**

그러던 김씨는 8월 말경 오른쪽 발가락을 못에 찔려 다쳤다. 처음에는 할아버지도, 쉼터 직원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 병원을 찾지 않았다. 그러나 상처는 점점 곪아 들어갔고 당뇨병은 상처를 더욱 악화시켰다.

김씨는 상처가 난 한 달만에 병원에 입원해 상처가 난 발가락을 절단했지만 살은 계속 썩어 들어갔다. 너무 늦게 병원을 찾은 때문에 김씨는 무릎 바로 밑까지 절단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지난 한 달간의 병원 생활은 그나마 남아 있던 삶에 대한 미련마저 앗아가 버렸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도 자식들은 거의 찾아오지 않았고 노숙자 쉼터에서도 간병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김씨는 혼자서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식사와 용변을 처리해야만 했다.

오늘도 김씨는 “수술이 끝난 다음에 퇴원하면 자살하겠다” “하루라도 빨리 하나님 곁으로 돌아가겠다”고 병실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 모든 것이 일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병원에 버려진 노인들. 늙고 병든 이들은 돌아갈 곳이 없다.

친구의 병문안을 갔다가 우연히 알게된 김영철씨. 그가 겪은 지난 일 년간의 일들은 대다수의 노인들이 경험하는 ‘소외’와 ‘가난’이었다. 또 당연히 자녀들이 부양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노인 세대들과 이를 더 이상 자식된 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젊은 세대들간의 인식 차이도 엿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65살 이상 노인은 약 3백37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7.3%. 2022년쯤이면 14%를 넘어서 본격적인 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이라고 한다. 이는 곧 사회적으로 피부양층이 크게 늘고 있다는 뜻이고, 개인적으로는 돈 버는 기간에 비해 돈을 쓰고 살아야 하는 기간이 늘어난다는 의미다.

핵가족화, 고령화로 노인복지 문제는 일찍이 예고돼 왔으며 절박한 현실로 다가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사회의 노인복지 수준은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를 쫓아가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이 상태로는 병원에서 만난 김씨 할아버지의 모습이 훗날 우리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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