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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생각하는 노인들<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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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을 생각하는 노인들<中>

노인부양, 자녀만의 책임인가

“할머니, 자녀가 몇 분이세요?”
“아, 내가 자식이 어디 있어?”
“여기 호적에 이렇게 많잖아요?”
“그게 호적에만 자식이지, 자식이 아니라니까."

기초생활보장법 수급권자를 정하기 위해 조사나온 동사무소 직원과 유순애 할머니(68. 가명.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는 매번 실랑이를 벌인다. 할머니는‘부양의무자인 자녀가 있기 때문에 거택보호자로 지정받기는 힘들다’는 사회복지사의 말을 못내 받아들이지 못한다.

유 할머니는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지만 결혼해 안산에 살고 있는 딸이 할머니를 돌보는 유일한 자녀다. 알콜 중독자인 큰아들은 지난해 할머니가 허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하자 도망이라도 가듯 이사를 가버린 후 연락조차 없다. 택시운전을 하고 있는 둘째 아들도 “지들 살기 바쁘다.” 할머니에게 아들들은 ‘호적으로만 자식이지 자식이 아닌’, 오히려 복지혜택을 받을 기회를 빼앗는 존재다.

자녀가 부모의 노후를 책임지는 전통적인 가족규범이 붕괴되고 있다. 노부모가 자녀와 동거하는 비율은 90년대까지만 해도 65% 이상이었지만 2000년 들어 47%로 급격히 감소했다. 또 전문가들은 앞으로 20년안에 10%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은 ‘친족부양 우선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복지정책과 현실간의 괴리로 인해 자녀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수많은 노인들이 복지정책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고 있다.

***“기록만 자식이지...”**

지난해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남성 독거노인의 31%가 ‘자녀가 모시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혼자 살게 됐다. 70년대 초 7%에 불과하던 노인 단독세대는 전체 노인 가구의 50% 이상으로 늘었다. 도시화, 핵가족화로 독거노인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문제는 현재 노인세대는 자녀의 양육과 교육에 거의 모든 것을 투자해 정작 노후에 와서는 경제적인 여력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노후를 준비한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5%에 불과하다. 65세 이상 3백37만명 가운데 75%인 2백50만명 이상이 노후에 대한 대책을 전혀 세우지 못했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은 전체 6%에 불과한 19만여명이 지급받고 있을 뿐이며, 한달에 3만원에서 5만원 정도 지급되는 경로연금으로는 교통비도 안 되는 현실이다.

그러나 자녀 등 부양의무자가 있는 노인은 최저생계비 이하의 가구에 생계비를 지급하는 기초생활보장법의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다. 기초생활보장법은 종전의 생활보호법에서 사실상 부양이 행해지지 않는데도 수급자에서 제외되는 문제를 개선하고자 지난해 개정된 법이다.

그러나 허선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초생활보장법은 선정기준의 불합리성과 까다로움으로 인해 오히려 기존의 수급권자마저 탈락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기초생활보장법이 빈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강화에 그 근본 취지를 두고 있음에도 부양의무자 기준이 강화됨으로써 가족에게 더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방향으로 개악됐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한 빈민지역을 연구하고 있는 조문영(서울대 인류학과 석사)씨도 “공공부조법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효’라는 전통윤리에 따라 가족이 노인을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만큼은 의문시 되지 않아 왔다”고 말했다. 조씨에 따르면 저소득층 노인들의 경우 자녀들도 대부분 가난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부양이 어렵다는 것. 조씨는 “이러한 노인들의 문제를 단순히 개인적 불효의 문제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일자리 창출 등 적극적인 구제책 마련**

김성철 성산효도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 부양을 둘러싼 ‘효’에 대한 달라진 인식은 세대간의 갈등요인을 넘어서 사회불안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의 노인인구 증가속도는 일본보다도 훨씬 빨라 오는 2030년에는 생산연령 인구 3.4명이 1명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 김교수는 “사회복지기관, 자원봉사활동의 증가 등을 통한 다양한 노인부양형태의 개발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심재호 한성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인들이 최소한 경제적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이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최근 명예퇴직 등을 통해 직장을 그만둔 ‘젊은’ 노인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노인 2천3백7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5세 이상의 노인 중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29%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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