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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남북 통일'을 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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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남북 통일'을 버리자!

[장석준 칼럼] 이제는 통일의 상을 바꿔야 할 때

올해 8월 15일은 잔치 분위기가 나지 않는다. 남북 관계는 시원하게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일본에서는 평화헌법 개정을 부르짖는 자유민주당(자민당) 정권이 참의원 선거 압승으로 더욱 기세등등하다. 태풍을 몰고 올 것만 같은 짙은 먹구름이 동아시아를 뒤덮고 있다.

따지고 보면 본래 8월 15일은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게 꼭 잔칫날만은 아니다. 패전국 일본이야 그렇다 쳐도 다른 나라들에게도 이 날은 어두웠던 한 시대의 끝일뿐만 아니라 또 다른 시험의 시작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과 함께 그간 제대로 된 국민 국가를 갖지 못했던 여러 민족은 드디어 근대 국민 국가를 갖게 되었다. 그 세계사적 의미는 각별하다. 중화인민공화국을 필두로 '국민 국가의 동아시아'가 등장함으로써 비로소 인류 전체가 '국민 국가의 세계'로 진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국민 국가에 어떤 표준(standards)이 존재한다면, 동아시아에 등장한 국민 국가들은 표준에 '미달'하거나 그로부터 심각하게 '이탈'한 모양새였다. 청 제국 붕괴 이후의 항구적 내전 상태에서 벗어나 그나마 가장 견고한 국민 국가로 탈바꿈한 중국조차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수천 년간 '제국'으로 군림해온 이 나라에 '국민 국가' 중국의 등장은 완결된 답이라기보다는 새로운 물음의 시작이었다. 중국은 지금도 이 물음의 답을, 그러니까 '제국의 기억을 지닌' '국민 국가' 중국의 의미를 묻고 있다.

한반도에는 한 개가 아닌 두 개의 국가가 등장했다. 두 국가 모두 저마다 한민족 전체를 대표하며 한반도 전부를 지배하는 '국민 국가'임을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 분단 국가가 준전시 상태와 공존 상태의 긴장된 균형 속에 병존하는 독특한 국가 간 체제(이른바 '분단 체제')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결코 장기 지속할 수 없는 만성적 위기 상황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한반도의 두 국가 모두 '통일'을 국가 과제로 내세운다. 두 개의 국가를 하나로 통합해 국민 국가를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전범국 일본은 '평화헌법'을 갖게 됐다. 평화헌법이 순전히 승전국의 강요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일본 내부의 반성이 투영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후자의 입장은 야마무로 신이치의 <헌법 9조의 사상 수맥>(박동성 옮김, 동북아역사재단 펴냄, 2010년)에 잘 정리돼 있다). 하지만 어쨌든 일본국 헌법 제9조, 그 중에서도 "어떠한 전력도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 역시 인정치 않는다"는 제2항은 일본 국가가 현대 국민 국가의 핵심 요소인 상비군을 포기한다고 규정한다. 물론 일본에는 이미 자위대가 있지만, 어쨌든 헌법이 천명하는 원칙만 놓고 보면 일본은 근대 국민 국가 '일반'과는 다른 존재여야 한다.

일본 우파는 이런 상황을 바꾸길 원한다. 이들의 논거는 전형적인 근대주의다. 이들은 일본 국가도 이웃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근대 국민 국가의 핵심 요소(군대)를 갖출 권리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이 권리가 헌법으로 보장되어야만 '정상적'인 국민 국가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헌법 제9조를 개정해 일본을 '정상 국가'로 만들겠다고 한다. 근대 국민 국가의 논리로만 보면,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다. 70여 년 전의 패전 책임을 계속 거론하는 것만으로는 반박하기 쉽지 않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동아시아인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우리 시대의 요청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은 오직 근대주의의 틀을 넘어설 때에만 동아시아의 출구가 열린다는 것이다. 즉, 근대 국민 국가 그리고 그 국민 국가들 간 체제의 현실과 논리를 넘어서려고 노력할 때에만 역사의 새로운 단계를 열 수 있다.

일본 평화헌법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이것을 일본 내부의 논쟁에만 내맡긴다면, 현상 타파는 불가능하다. 상황의 급변을 바라지 않는 일본 내 여론 덕분에 개헌을 어찌어찌 피한다 하더라도 '해석 개헌'을 통해 일본의 군사력은 충분히 계속 존치, 확장될 것이다. 단순히 평화헌법 개정을 막는 수준이 아니라 이것을 실질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자면 일본에게만 국민 국가로서 '비정상'적인 상황을 요구할 게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 뭔가 '정상'으로부터 '이탈'한 국가 간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일본이 중무장하지 않고도 안전이 보장되는 질서를 만들어가야 한다. 말하자면, 평화헌법의 동아시아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꼭 일본만을 둘러싼 시험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단 현재의 분단 체제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데 지난 70여 년간 '탈분단'은 곧 '통일'이었고 국민 국가를 '완성'하는 일이었다. 적어도 이 점에서 전통적 '통일'론은 일본 우파의 개헌론과 같은 궤도 위에 있다. 둘 다 근대의 '완성'(혹은 뒤늦은 '복귀')을 추구하며 동아시아의 교착 상태에 대한 해법을 근대주의의 논리적 연장선에서 찾는다. 좀 더 근대 국민 국가의 '표준'에 가까운, 좀 더 강력해진 국민 국가들의 질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강력해진다'는 것의 핵심은 물론 전쟁 수행 능력이다.

ⓒ프레시안

이제는 이런 전통적 발상에서 과감히 전환할 때가 되었다. 평화헌법의 동아시아화와 같은 방향에서 우리 역시 탈분단의 상을 새로 그려야 하지 않을까. 내가 생각하는 것은 '국가 연합'이다. 과거에 남한 정부가 북한 측 '연방제' 안에 대한 역제안으로 '국가 연합'을 처음 꺼냈기 때문에 그간 이 구상이 지나치게 관(官)의 논리로 치부된 감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국가 연합 방안을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하나의 국민 국가를 만드는 게 아니라 복수의 국가로 이뤄진 새로운 정치체를 개척하는 방향으로 탈분단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국가 연합의 출발은 평화 체제 수립과 한반도 비핵지대화(혹은 그 프로세스의 시작)다. 그 기반 위에서 남한과 북한 두 국가가 서로 공존하며 국가 연합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측이 수정 제안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견줘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국가 연합'이라 하는 쪽이 더 맞겠다 싶다. 새 정치체의 방향이 꼭 한반도에 갇혀 있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반드시 동아시아 전체를 향해 열려야 한다.

이 방향에서 한반도 국가 연합의 다음 단계는 '통일'론의 오랜 전통에 따른 국가 '통합'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한반도 국가 연합은 오히려 동아시아 국가 연합의 출발점으로 더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될 수도 있다.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이 세 나라의 연합이 베네룩스 통일 국가가 아니라 유럽연합의 발단이 된 것처럼 말이다.

물론 현실의 유럽연합은 우리가 따라 배우기에는 문제가 많은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와는 경로를 다르게 잡더라도 동아시아도 어쨌든 이번 세기에 국민국가들의 닫힌 틀을 넘어서야 하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나는 우리의 국가 연합 모색이 일본 평화헌법의 국제화 시도와 함께 이런 시대정신의 첨단에 서길 바란다.

욕을 많이 먹을 이야기다. 남한 국가의 힘으로 북한을 '해방'시키자고 주장하는 우파는 핏대 높여 반발할 게 뻔하고, 어쩌면 전통적인 '통일'상을 버릴 수 없는 민족주의자들도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근대의 논리와 현실에 맞서는 게 일본 진보파만 마냥 홀로 짊어져야 하는 짐일 수는 없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전선에서 그 짐을 나눠 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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