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시계의 정확성에 대한 농담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고장 난 탓에 움직이지 않는 시계라 할지라도 하루에 두 번은 정확한 시간을 가리킨다는 그 농담 말이다.
사용하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의 맥락에 따라 농담은 조금씩 다른 의미를 띄게 되지만, 대체로 고장 난 시계의 비유는 '교조적'이고 '경직된' 사고를 통해 세상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이들을 향한다.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당신은 고장 난 시계처럼 언제나 똑같은 소리만 하고 있으며, 따라서 어쩌다가 그 경고가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온다 하더라도, 그것은 당신의 이론과 그 이론의 현실 적용이 옳다는 뜻은 되지 않는다는 비아냥의 맥락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우석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낸 수많은 저작 중 하나인 <나와 너의 사회과학>(김영사 펴냄)의 한 구절을 인용해보자.
사실 가장 정확한 시계는 고장 난 시계입니다. 5분 늦게 가는 시계는 단 한 번도 맞는 순간이 없지만, 고장 난 시계는 하루에 두 번은 정확하게 맞잖아요. 과학은 바로 이 고장 난 시계와 비슷할 수도 있습니다. 시계는 숫자로 이루어진 텍스트죠. 그렇지만 그 시계가 5분 늦게 간다는 것은 시계 바깥의 관계, 즉 시간을 둘러싼 일종의 콘텍스트를 통해 규정되는 거죠. 늦게 간다는 걸 알기만 하면, 5분 늦게 가는 시계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맞는 시계를 원한다면, 하루에 딱 두 번 맞는 고장 난 시계가 필요할 수도 있겠죠. (<나와 너의 사회과학>, 121쪽)
이 비유가 비유로서 정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계의 본질적 기능은 그것이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시간을 표시하는 지표를 바꾼다는 데 있다. 가령 12시 30분 같은 특정한 시간의 표상을, 어떤 표준 시간에 딱 맞게 보여주는 것은 부차적이다. 달리 말하자면, 시계는 일단 시계답게 똑딱똑딱 일정한 속도로 움직여야 하고, 그 눈금이나 숫자가 어딘가에 있는 표준시와 일치하는지 여부는 그 다음에 따져 물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 경제학자 우석훈. ⓒ프레시안(손문상) |
하지만 저 비유와 그 해석은 매우 중요하다. 시계는 고장났을지 모르지만, 저 문단을 통해 우리는, 2000년대 중반 혜성처럼 나타나, 한국 사회에 세대론이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진 우석훈이라는 논객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우석훈을 '허구한 날 토건족 타령만 하는 고장 난 시계'라고 조롱한다. 한편 어떤 이들은 우석훈이 <88만원 세대>(박권일 공저, 레디앙 펴냄)를 통해 젊은이들의 편이 되어주는 척 하면서 결과적으로는 '꼰대질'을 하고 말았다는 단평을 내놓는다. 그의 저작에 좀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미 FTA에 대한 그의 비관적 예견 중 제대로 맞은 게 하나도 없다며 혀를 찬다. 이 모든 비판들은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게 모두, 한 사람의 논의에 대한 반론이라는 것이다.
2005년 <아픈 아이들의 세대>를 그의 첫 책으로 본다면, 정치적 입장을 빼고 볼 때, 우석훈이 자료와 지식을 바탕으로 내어놓는 이야기들에는 그리 큰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그 중 하나만을 짚어서 이야기한다면, 우석훈에게 '고장 난 시계'라는 비아냥을 돌려주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 지음, 레디앙 펴냄). ⓒ레디앙 |
그러므로 고장 난 시계라는 표현은 우석훈이라는 한 사람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가 내놓는 특정한 논의들에 한정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우석훈 그 자신은, 차라리 그 고장 난 시계를 들고 시침과 초침을 숨 가쁘게 돌려가며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열성적으로 한국 사회의 수많은 논점들, 특히 '경제학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논점들을 찾아다니며, 매 순간마다 시계를 꺼내어 시간을 보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그의 비판자들은 그 시계가 고장 났다고 손가락질한다. 그 비난은, 마치 고장 난 시계가 가리키는 시간처럼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그 전체적인 광경을 통해 우리는 논객시대의 모습을 조감할 수 있다.
2.
우석훈의 이름이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얻은 것은 <88만원 세대>의 출간과 그로 인한 세대론의 유행 때문이었지만, 이른바 '진보' 진영에서 그는 이미 그 전부터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녹색평론사, 2006)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었다. 우석훈의 표현대로 "한미 FTA라는 사건은 2006년 1월 18일 갑자기 출현했다."(<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3쪽) 그 거대한 사건이 불길한 예감을 던져주고 있음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 먹구름이 단순한 비구름인지, 태풍인지, 메뚜기 떼인지 확신을 가지고 말해주는 사람이 쉽게 등장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그의 말대로 한미 FTA가 갑자기 출현한 날짜는 2006년 1월 18일이었다. 한미 FTA의 협상 출범이 선언된 것은 그해 2월 3일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지 다들 어안이 벙벙해있는 사이, 우석훈은 그해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춰서 단행본 한 권의 분량으로 한미 FTA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지 않은 채 진행되는 졸속협상이며, 정부의 주장과 달리 아무리 잘 채결한다 해도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고 들었다. 분기별로 한 권씩 저널룩 <인물과 사상>을 내고 틈틈이 단행본까지 출간하던 강준만을 연상케 하는 속도로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가 등장한 것이다.
우석훈의 예상은 매우 비관적이었다. '조심스레' 계산해 보았다고 운을 떼면서, 그는 힘찬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따라서 내 조심스러운 계산에 따르면 조금 귀찮더라도 지금 당장 '노무현호'라는 배에서 내리는 것이 개인으로서는 가장 좋은 선택이다. 대체적으로 4인 가족 기준으로 연소득이 6000만 원 이하라면 심각하게 이민을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국민소득을 1만 5천 달러로 잡고, 4인 가족으로 환산하면 그 정도가 된다. 소득의 평균점을 잡은 것인데, 현재 '노무현호'가 향하는 미래에는 이 평균 이하의 국민들에게 그렇게 희망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평균적 국민'이라 할 수 있는 '4인 가족 연소득 6000만 원' 미만의 국민들에게는 지옥이 펼쳐지게 된다. 물론 부부가 같이 벌어서 6000만 원 이상인 경우에는 조금 복잡한 계산이 필요할 것이다.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20쪽)
▲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우석훈 지음, 녹색평론사 펴냄). ⓒ녹색평론사 |
제2장, "왜 한미 FTA는 준비가 덜 되었다고 하는가"의 4절은 "미국시장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는가"이다. 5절은 "그렇다면 한국시장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6절은 "혹시 서비스업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그 내용은 제목 그대로, 협상을 추진하는 정부에게 이런 것들을 알고 있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정부에서 이것들을 알고 있다면 협상을 그렇게 추진할 리가 없다는 논조 하에 , 요조모조 짚어가며 외교통상부의 무지를 꼬집던 우석훈은, 결국 7절에서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그럼 도대체 정부가 아는 건 뭐야?" 우석훈에 따르면, 정부가 알고 있으며, 한미 FTA의 결과로 발생하게 될 일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가. 농업은 망한다
나. 월마트한테는 안 당한다
다. 한국영화 안 본다고 죽는 거 아니다
라. 병원 안 간다고 다 죽는 건 아니다
마. 공무원들한테는 별일 안 생긴다
바. 국민들은 농민 편 안 들어준다
사. 한나라당은 꼼짝할 수가 없다
아. 국민들은 벤츠를 좋아해
자. 국민들은 식품안전에 관심이 없다
차. 그래봐야 이민 갈 용기가 있는 국민은 별로 없다. (126~132쪽, 같은 책)
여기서 우석훈은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은 잘 못 하겠지만, 국민들을 상대로 하는 싸움에서는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놓는다. "진화적 게임이론으로 상황을 설명하자면 '노무현 시스템'은 외국이 아니라 국민들을 상대하는 감각기관이 기이하게 발달·진화한 시스템"(133쪽, 같은 책)이라고 우석훈은 꼬집는다. "정부는 한미 FTA와 관련하여 정부가 꼭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은 거의 모른다. 그런데 국민들과의 협상에서 이기는 방법은 너무 잘 안다"(같은 곳)는 것이 그의 총평이다.
연소득 6000만 원 이하의 국민들은 이민을 가는 편이 생존을 위한 선택이라고, 대단히 불쾌하고 소름끼치는 결론을 내려놓고 시작한 책이지만, 그 목차의 구성과 내용 면에서 나름의 골계미를 드러내고 있기도 했기에,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는 진보 진영 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렇게 쉽게 술술 읽히면서 동시에 우울하고, 노무현 정부의 일방적인 한미 FTA 추진에 대한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책은 그 후에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3.
우석훈이 낸 책은 공저를 빼고 보더라도 스무 권이 넘는다. 게다가 그 모든 책들이 단일한 주제만을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자칭 'C급 경제학자'지만, 그가 출간한 가장 최근 저작은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갓 낳은 아들을 키우며 느낀 소감을 담은 포토에세이집 <아날로그 사랑법>(상상너머 펴냄)이다. 2006년부터 2012년까지 그는 전성기의 강준만에게서나 볼 수 있었던 속도와 열정으로 다수의 저작을 출간했고, 심지어 그 중 일부를 제목을 바꿔 다시 내기도 했다.
▲ <아픈 아이들의 세대>(우석훈 지음, 뿌리와이파리 펴냄). ⓒ뿌리와이파리 |
우석훈과 함께 진보적 경제학자로 분류될 수 있는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을 지낸 정태인 교수나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과 비교해보면 우석훈의 특이점이 더욱 잘 드러난다. 우석훈은 박사학위를 지닌 학자지만,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후 청와대에 들어간 두 사람과 달리, 대기업과 총리실이라는 두 개의 관료제 조직을 모두 경험했다. 요컨대 우석훈은 기업, 정부, 외교 경험을 모두 가지고 있는, 사실상 거의 유일한 진보 인사인 셈이다.
그는 자신이 그런 엘리트들의 세계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결코 감추지 않는다. 감추는 척 하면서 드러내는 일에 익숙하다고 말하는 편이 더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가령 "굳이 비밀보장 서약이 아니더라도 협상장 혹은 협상장 바깥의 호텔 로비에서 벌어진 대화들을 공개하고 싶지는 않다. 또 내가 총리실에서 했던 일과 그 시절에 벌어진, 아직도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뒷얘기'를 공개하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국민들의 삶에 미치는 포괄적 효과가 그렇게 강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같은 책, 5쪽)라고 말하는 대목을 곱씹어보자.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해서, 진보 진영에도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 하지만 '내가 국제 협상을 해봐서 아는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아니 전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저런 대목이 나올 때, 특히 한미 FTA 같은 미증유의 파도가 몰아쳐온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독자들로서는, 얼마 전 유행어로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하다)하다며 콧방귀를 흥 뀌고 지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겪어봐서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 '당신들이 뭘 알긴 하는가?'라고 정부를 향해 되물을 수 있는 경제학자, 우석훈은 믿는 도끼 노무현에게 발등을 찍힌 것 같지만 과연 발등이 찍힌 게 맞는지 긴가민가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노무현호'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고. 부부가 같이 벌어서 한 해에 6000만 원을 채우지 못하는 이들 모두를 도탄에 빠뜨리는, 심지어 돌이킬 수도 없는 정책적 결정을 통해, 한국을 스위스가 아닌 멕시코 같은 나라로 만들고 있다고, 그는 예레미아처럼 울부짖었다.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물론 그가 이를 가는 숙적인 '골프 치러 다니는 386'들은 듣지 않았지만, 대중들은 귀를 기울였다. 우석훈의 다음 책이 뭐가 될지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88만원 세대>가 속되게 말해 '대박'을 친 것에는 이런 맥락이 있기도 했다는 것이다. <88만원 세대>를 출간할 때, 우석훈은 이미 세 권의 책을 낸 경험이 있는 저자였으며, <한미 FTA폭주를 멈춰라>를 통해 다져진 핵심적인 독자층이 이미 형성되어 있는 상태였다.
4.
너무도 많이 논의된 탓에 마치 읽은 것만 같은 착각을 주는 책이 세상에는 종종 존재한다. 아마 <88만원 세대>가 그런 책 중 대표적인 무언가일 것이다. 혹은, 읽긴 했지만 뒤이어진 논의의 맥락으로 인해, 그 책에 대한 잘못된 인상만이 머리에 남아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원고를 준비하며 <88만원 세대>를 다시 읽어 본 바 분명히 그렇다.
▲ <디버블링>(우석훈 지음, 개마고원 펴냄). ⓒ개마고원 |
책이 출간되고 여러 방향에서 논의되다가 두 사람의 공저자가 서로 입장 차이를 확인한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고, 책의 내용만을 놓고 논의를 풀어보자. 그렇다면 <88만원 세대>의 주제는 '세대 간 경쟁'이다. 즉 당시의 20대, 지금의 30대 초반까지 해당하는 젊은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경제적 자원을 그 윗세대가 독점하고 내놓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골자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극렬한 경쟁 속에서 20대가 부딪히는 근본적인 문제는 동기들끼리의 경쟁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는 이 싸움을 자신들끼리의 경쟁 즉 '세대 내 경쟁'이라고 인식하지만, 사실 그들의 싸움은 경쟁의 범위와 규칙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 무한대의 경쟁 즉 '세대 간 경쟁'에 편입되어 있다.(<88만원 세대>, 21쪽)
이른바 '세대 착취론'에 대해 수많은 이들이 다양한 방향에서 반론을 제시했다. 사회학자들은 다양한 수치 자료를 분석해 세대 간 소득 불평등보다는 세대 내 소득 불평등이 더 크고 도드라져 보임을 강조하기도 했고, 가령 당시의 나처럼 이른바 '20대 논객'으로 호명된 이들은 우석훈이 띄운 세대론이 결국 20대 대학생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더 중요한 것은 20대 노동 문제가 아니냐는 식의 반론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모든 논의들은 어떤 면에서 적절하고 또 다른 면으로 부적절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대 간 경쟁'이라는 개념이 주는 생경함을 접어두고 생각해보자. 지난날의 젊은이들보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부족하다는 우석훈의 기본적인 사태 파악 자체에는 별 무리가 없다. 특히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남들이 알아줄만한 직장에 취직하는 일에 성공한, 이른바 엘리트들의 경우 그 현상은 너무도 명백하다. 그에 대해서는 우석훈이 2011년에 쓴 다른 책에서 더 좋은 서술을 찾아볼 수 있다.
80년대 중·후반, 한국의 중산층이 처음 형성되던 시절, '스텔라 인생관'이라고 불리던 말이 있었다.
20대는 20평 아파트에 엑셀을,
30대는 30평 아파트에 프레스토를,
그리고 40대는 40평 아파트에 스텔라를.
당시에 20평 아파트에 엑셀을 몰았던 사람들이, 즉 20대들이 지금의 50대들이다. 이들은 사실상 한국 국부의 절반 이상을 가지고 있는, 한국 경제 발전의 성과를 가장 많이 받았던 사람들이다. 한국의 경제 엘리트들은, 단연 50대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금융재산 30억 원 이상을 소유한 사람들은 97퍼센트가 남성, 50퍼센트가 50대 그리고 80.7퍼센트가 서울 거주자다. 그리고 전체의 44퍼센트는 강남·서초 거주자다.(2008년 『매일경제』, 삼성생명연구소 조사) 지금의 40대는 저 모델 그대로 자신의 삶을 살았는데, 그 위로 넘어갈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이 게임에 들어선 30대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3무 세대라고도 불리는 20대는 절대다수가 빈곤층이고, 더 이상 '20평 아파트'라는, 79년 이후 시작된 이 폭탄 돌리기를 받아줄 수가 없다. 김연아 급의 절대 강자인 일부 20대를 제외하면, 한국의 빈곤한 대다수 20대에게 20평 아파트는 그것이 전세든, 월세든, 상상의 범위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평범한 20대 중 가장 성공하고 안정적인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가장 럭셔리한 거주 조건이 바로 원룸이다. 지금 우리에게 오는 경제위기의 가장 큰 모티브는 바로 이들에게서 온다. 더 이상 40대가 30대에게 아파트를 넘기고, 다시 30대가 20대에게 아파트를 넘기는 그 시스템은 돌아가지 않는다. (148쪽, <디버블링>(개마고원 펴냄))
5.
▲ 경제학자 우석훈. ⓒ프레시안(최형락) |
물론 그렇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렇다. 20대에 20평 아파트를 사고 엑셀을 끌고 다니던 오늘날의 50대가 아니라, 20대부터 50대가 되도록 죽도록 일만 하고 전세나 월세 방을 전전하는 가난한 50대가 한국 사회에는 더 많다. '세대 간 경쟁', 혹은 '세대 착취'를 이렇게 광범위하게 적용하기 시작한다면 우석훈의 논의는 당연히 허점투성이인 무언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88만원 세대>를 둘러싼 수많은 논의들이 대부분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그것은 20대 전부의 문제가 아니잖아'라던가, '과연 그들이(혹은 우리가) 20대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들이 인터넷 쇼핑몰의 팝업창처럼 계속 튀어나왔고, 특히 갑자기 불려나와 또래들의 대변인 노릇을 하게 되어버린 '20대 논객'들은,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않고 말하자면 적어도 나는, 당황했다. '20대 논객'으로 불리며,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지만 풍족한 상징자본을 획득하게 된 나는, 내가 다른 노동하는 20대들을 감히 대리하여 '우리의 세대가 윗세대로부터 착취당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지 번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카를 만하임에 따르면, 단지 나이대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전혀 다른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지닌 이들을 같은 세대로 묶을 수는 없다. 그들은 단지 같은 세대위치에 놓여있을 뿐이다. 비슷한 나이대의 구성원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모여 변별력을 지니는 세대단위를 형성하고, 복수의 세대단위들이 서로 길항할 때에야 비로소 실제 세대가 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령 1980년 초중반생이라는 세대위치가 존재한다 해서, 그때 태어난 이들이 반드시 어떤 실제 세대를 구성하라는 법은 없다. 세대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세대가 창출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세대 그 자체가 아니라 개별적인 세대단위를 구성하고 이끌어가는 힘인 것이다.
하지만 '20대 논객'들은 특정 세대단위를 넘어서 자신의 또래라는 세대위치 전부를 대변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만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랬다. <88만원 세대>의 성공에 고무되어 저자 우석훈 본인이 '20대에게 아파트를 제공해야 한다'부터 '20대 국회의원이 나와야 한다'까지, 거의 모든 사안마다 '20대'라는 접두사를 붙여 띄우고 있던 그 분위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요컨대 '20대 국회의원을 만들자고 하는 것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20대의 시급을 높이는 것보다 중요한가' 같은 질문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우석훈은 20대에게 바리케이트를 쌓고 짱돌을 던지라고 했는데, 그 짱돌의 예시로 "20대 1만 명 정도가 스타벅스에 가기를 거부하고 20대 사장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와 차를 마시겠다고 선언"(<88만원 세대>, 288쪽)하는 것이 등장했음을 새삼 환기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88만원 세대>의 후속편인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88만원 세대 새판짜기>(레디앙 펴냄)는 20대가 귀감으로 삼아야 할 혁명가로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을 제시했다. 물론 그가 말하는 것처럼 샤넬의 의상 혁명은 여성들의 인권 및 자기 표현 모두를 한 단계 끌어올린 혁신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샤넬의 삶을 "평범한 20대 중 가장 성공하고 안정적인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가장 럭셔리한 거주 조건이 바로 원룸"인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두리반에서 공연하는 헤비메탈 밴드의 기타리스트에게 신중현을 목표로 삼으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냥 하는 덕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당사자의 입장에서 들을 때, 그렇게밖에 들리지 않는다.
▲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우석훈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생각의나무 |
<88만원 세대>의 두 저자가 바로 이런 문제, 즉 어떤 세대단위가 이른바 '20대 문제'의 핵심으로 여겨져야 하는가를 놓고 서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후속편 격인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를 보면, 우석훈이 주로 염두에 두고 있는 세대단위는 굳이 말하자면 '대학생' 그룹에 더욱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문화로 혁명을 하겠다는 꿈을 꿀 수 있는 사람들을 그는 대상 독자로 삼아, 일종의 행동 매뉴얼을 작성했다.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응은 그리 열광적이지 않았다. 그 책은 <88만원 세대>와 같은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미 세대론과 관련하여 너무 많은 논쟁이 소모적으로 쏟아져 나온 다음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석훈 스스로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토끼처럼, 서둘러 다른 논의로 향하고 있었다.
6.
우석훈은 2007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자신이 쓴 단평들을 모아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생각의 나무 펴냄)를 출간했다. 아직 결과가 나오기 전이었지만, 2007년 대선의 결과가 어떨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선 직후 이라크 파병부터 시작해 대북송금특검, 탄핵,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 등 노무현 시대는 정치적 사건만 봐도 파란만장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종지부를 찍은 것이 한미 FTA 추진이었고, 우석훈이 바로 그것을 비판하면서 대중적인 인기 저자가 되기 위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는 것을 우리는 앞서 확인한 바 있다.
그러나 우석훈의 심기를 본격적으로 거스른 것은 한미 FTA만이 아니었다. <아픈 아이들의 세대>에서 서울 시내 대기의 미세먼지 문제를 지적하며 대중서를 쓰기 시작한 우석훈은 곧이어 <도마 위에 오른 밥상>(생각의 나무 펴냄)를 출간했다. 앞서 우리가 말한 온갖 엘리트 코스를 거친 후, 한국에서 녹색당을 시작하고 뿌리내리게 하겠다는 일념하에 초록정치연대의 정책실장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그 무렵의 일이다. 1968년생으로 이른바 386세대 중 어린 축에 해당하는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순탄한 길을 버린 채, 가난을 감수하며 지난한 싸움을 해나가고 있었다.
▲ <도마 위에 오른 밥상>(우석훈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생각의나무 |
우석훈은 왜 녹색당을 시작하여 자신의 한창때를 바쳤을까? 그가 강한 수사를 남발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다음 문장을 읽어보자. "노무현이 골프장으로 달려갈 때, 나는 그 이유가 우리나라에 녹색당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녹색당을 만들기 위해서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거의 다 내놓았다."(같은 책, 299쪽) 다시 한 번, 골프가 악의 축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골프장은 경제 엘리트 네트워크의 핵심이라는 사회문화적인 문제와는 별도로 생태적인 문제와 보건 문제가 걸려있는 곳"(284쪽,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농약과 제초제를 뿌리는 골프장에 온갖 병에 걸리는 캐디들이, 경제 엘리트 네트워크의 구성원들의 온갖 성폭력을 감내해가며 일하고 있다. 그 드넓은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목적이 결국 땅에 파인 조그만 구멍에 조그만 공을 집어넣기 위한 것이듯, 다소 과격하게 요약하자면, 우석훈의 수많은 책들은 결국 '골프 동맹군'을 이겨내기 위한 18홀 라운딩인 것이다. 골프채를 쥐고 놓지 않으려 하는 순간, 그는 우석훈의 적이 된다.
골프와 익숙해지면서 이해찬이나 유시민 같은 사람들이 '민중'과 멀어진 것이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골프장에서 주요한 인사와 만나고 그렇게 접대받으면서, 민중의 문화, 민중의 삶, 그리고 작은 생태계의 목소리가 들리겠는가? 광장, 시장과 뒷골목이 한국의 민중이 숨 쉬고 움직이는 곳이다. 그곳에서 움직이는 한국의 엘리트가 도대체 누가 있는가? 유시민 이해찬, 모두 민주화를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배신자들이다. 골프를 중심으로 본다면 생태계의 배신자들이고, 민중이라는 눈에서 보면 민중적 삶의 배신자들이다. (294쪽, 같은 책)
이 글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우석훈을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시계를 들고 서둘러 돌아다니는 토끼에 비유해보았다. 처음에는 그 토끼가 너무 많은 토끼 굴을 들락거리며 시계를 꺼내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그것이 다양한 방면으로 표출되고 있긴 하나, 어디까지나 그 토끼는 골프장의 바깥을 맴돌며 역습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골프 동맹으로 흘러가는 돈은 많고, 그 안에는 권력도 많다. 2010년,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것은 청와대나 국회, 아니면 대법원이나 『조선일보』 편집실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골프장에서 결정된다. 그게 한국이 부패한 진짜 이유이고, 선진국이 못 되는 이유이고, 지독할 정도의 반 생태적 국가인 이유이고, 다음 세대에게 가야 할 돈이 그들에게 못 가는 진짜 이유일 것이다. 한미 FTA에서 비정규직 도입, 그리고 토건 국가까지, 전부 골프장 동맹체가 사운을 걸고 추진한 일들이다. 그리고 한국의 경제 엘리트들에게도 골프 붐을 만든 사람은 바로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다. 누가 지배하지는, 의사결정의 작동 메커니즘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너무 뻔하지 않은가? (같은 곳)
하여 우석훈은 단언한다. "이 골프로 집중된 돈과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 그게 지금 우리가 부딪힌 거의 모든 문제의 핵심이다."(같은 곳)
7.
▲ <모피아>(우석훈 지음, 김영사 펴냄). ⓒ김영사 |
둘째, 우석훈은 자신이 대적하고자 하는 이들을 '골프 동맹'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런데 그 자신이 "토무현(인용자 주: 토목+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야당 인사가 골프 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졌고, 그렇게 기득권이 되어가고, 그렇게 부패한 것"(같은 책, 293쪽)이라고 지적하는 바와 같이, '골프 동맹'과 정면으로 대립각을 세우는 순간 우석훈이 아닌 그 누구라 할지라도, 대단히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물론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이겠으나, '골프 동맹'과 근본적으로 대립하고자 한다면, 제도권 진입은 불가능해진다.
셋째, 그의 문제의식이 '골프'로 함축된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엘리트들의 생활 및 사고방식에 밀착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요컨대 우석훈의 눈높이는 골프를 치지만 안 칠 수도 있는, 그래서 안타까운 사람들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88만원 세대>가 만들어낸 착시현상에 갇혀 있으면 그 점을 간과할 수밖에 없다. 우석훈은 "노무현 정부 때에는 골프 치지 않던 어느 공무원 실무진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 골프를 치기 시작해서, 당신 월급으로 골프 치면서 부패하지 않을 길이 있냐고, 막 뭐라고 했던"(같은 책, 288쪽) 사람이다. 골프장을 바라보며 '우리가 이러면 안 되지'라고 되뇌고 있다는 말이다.
그의 눈높이가 골프장을 드나드는 엘리트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만약 김병준이 조금만 골프를 덜 즐기는 사람이었고 조금만 더 가난한 사람들과 자신의 삶을 나누는 그런 소박한 사람이었다면 한국의 미래는 어땠을까?"(같은 책, 209쪽)라는 질문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를 C급 경제학자라고 부르는 우석훈은 또한 자신이 아웃사이더임을 여기저기서 강조하지만, 그 '아웃사이더'라는 개념의 반대편인 '인사이더'들은 거의 전부 골프장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쓴 소설 <모피아>(김영사 펴냄)의 캐릭터 구성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은행 외환운용팀장인 오지환은 이른바 '모피아'와 대립하다 직장을 잃고 대표적인 조세피난처인 케이맨 제도로 휴가를 떠난다. 그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여인을 만나고 모피아의 수장인 이현도와도 마주친 후 한국에 돌아온 그는, 바로 그 이현도가 꾸미는 경제 쿠데타 음모를 알아차리고 대한민국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 돌입한다. 속을 알 수 없는 이현도는 오지환이 청와대 경제특보가 되도록 힘을 써주고, 대통령은 오지환을 신임하여 그를 경제수석으로 임명한다. 자신을 믿어주는 대통령과, 결정적인 순간마다 도움을 주는 미모의 여인, <모피아>의 주인공은 그 둘을 모두 가진 행복한 관료이자 경제학자인 것이다. 그가 만든 세계인 <모피아>에는 골프가 나오지 않는다.
8.
▲ <조직의 재발견>(우석훈 지음, 개마고원 펴냄). ⓒ개마고원 |
왜 우석훈은 이토록 다작을 하였을까?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짚고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큰 그림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가 골프장 바깥에 서서 골프 치는 사람들을 향해 목청을 높이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했을 때 비로소 이해 가능하다. 골프장 짓는 노무현을 막기 위해 공직에서 물러나 녹색당 운동을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석훈의 마음은 아직 관공서에 있다고, 감히 짚어볼 수 있다. 모피아 일당 중 이른바 '법률녀'인 남진경의 말을 인용해보자.
"저 안에 있을 땐 쳇바퀴 돌듯 잡무나 처리하면서 사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 지금 보니 힘은 결국 저 안에서 나오더군요. 한국,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언젠가는 저도 다시 저 안으로 들어가게 되겠죠. 지금 생각해보면 저기도 묘한 매력이 있어요. 한번 몸을 담그면 나올 수가 없어요. 몸만 나오지, 영혼은 언제나 저곳에 있죠."(<모피아>, 131쪽)
물론 등장인물, 그것도 조연급 등장인물이 하는 말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되겠지만, 애초에 이 소설 자체가 나라를 위해 싸우는 관료의 영웅적 활약을 담은 것임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저 대사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한국에서 학자가 되기를 원했던 사람 중에서 다산 정약용을 한 번쯤 가슴에 품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디버블링>, 32쪽)이라는 말을 함께 놓고 보면 더욱 그렇다. 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결국은 현실에 어떻게든 개입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학자와 관리의 경계가 희미했던 조선의 전통을 염두에 둘 필요도 있겠다. 아무튼 우석훈의 마음은 아직 "저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는 "저곳"의, 어쩌면 골프장의, '바깥'에서 책을 쓰는 것이다.
여기에 본질적으로 넘기 힘든 갈등이 있다. 우석훈은 정열적으로 책을 써서 자신의 이론적 근간인 생태경제학을 서술하고, 또 한국경제가 나아가야 할 대안을 논했다. 내용이 들쑥날쑥할 때가 많고, 저자가 흥에 겨워 원고를 작성하는 탓에 내용과는 별 상관 없어 보이는 소설, 영화, 음악 등의 인용이 끝없이 삽입되지만, 아무튼 우석훈이 쓴 경제에 대한 책들은 모두 일종의 정책 제안 내지는 포트폴리오라고 이해될 수 있다.
특히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박권일 공저, 개마고원 펴냄)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나중에 <조직의 재발견>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온 그 책을 펼쳐보면 그 맥락이 확연히 드러난다.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에는 우석훈의 직장 상사이기도 했던 이계안의 추천사가 들어있는데, 거기서 이계안은 많은 독자들 가운데 우리나라 대표기업의 임직원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책 자체의 예상 독자가 그렇게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를 장악한 대한민국의 귀공자들을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가? 전통적으로 엘리트에 대한 국제적 기준은 일주일에 책 두 권을 읽는 사람들이다. 월급쟁이 출신으로 현대자동차의 CEO가 되었던 이계안 전 현대캐피탈/현대카드 회장을 비롯해 한국 경제 '영광의 30년'을 이끌던 많은 과장이나 부장들 역시 전공서적을 포함하여 일주일에 두 권씩의 책을 읽었고, 이 기준은 지금 일본을 이끄는 엘리트 그룹은 물론 하다못해 맨해튼의 증권쟁이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307쪽)
그러므로 위와 같은 문단을 읽고, '엘리트에 대한 국제적 기준이 일주일에 책 두 권이라니, 대체 그런 국제적 기준은 어디서 나온 것인가'라고 따지기 시작하면 그것은 저자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는 독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엘리트들을 향해 '책 좀 읽자'고 하는 것이 화자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국제 기준은 우석훈이 다른 곳에서 전해들은 이야기일 수도 있고, 심지어 방금 머릿속에 떠오른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엘리트들이여, 책을 읽어서 제 몫을 하라'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2012년 대선이 눈앞으로 다가오기 전까지, 우석훈은 비주류지만 '엘리트의 엘리트'로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 것이다.
9.
▲ <괴물의 탄생>(우석훈 지음, 개마고원 펴냄). ⓒ개마고원 |
심지어 그는 북한을 상대로도 책사 역할을 수행하고자 한다. "이처럼 북한에 열려 있는 두 시나리오라 할 스위스 형과 베트남 형 가운데 장기적으로 특정 국가의 위성경제가 되지 않고 독립적인 국민경제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은 스위스형 발전 모델에 있다"(142쪽)고 감히 제안할 때, 우리는 그의 약동하는 책사 본능을 만끽할 수 있다. 북한에 권한 스위스 모델을 심지어 남한에도 추천한다는 점을 놓고 보면 더욱 그렇다. "스위스는 한국과 대단히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이렇다 할 지하자원이나 에너지 자원 따위가 거의 없다는 점도, 또 국토의 70% 정도가 산이라서 '있는 건 사람밖에 없다'는 한국 교과서와 스위스 교과서의 첫 머리도 거의 비슷"(<괴물의 탄생>, 206쪽)하다는 조언을 우리는 적당히 가려서 진지하게 들어야 한다. 필자는 우석훈이 말하는 경제 모델 분석에 대해 왈가왈부할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전작들을 놓고 보건대, 그가 국민국가 단위의 경제 운영에 대해 정책적 조언을 하는 관료이고 싶어한다는 사실만큼은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것을 단순한 권력욕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남의 위에 서고 싶다는 게 아니라, 수십만 단위의 타인의 삶에 영향을 주고 싶다는 것이니 말이다. 굳이 말하자면 '제갈공명 컴플렉스' 정도의 표현을 써볼 수 있겠다. 세상의 모든 일을 알고, 그 모든 것에 대해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사람. <모피아>의 오지환은 통일 시대를 열고 "한국의 대통령과 북한의 장군이 전적으로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모피아>, 335쪽)가 된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아는 경제학자"이며 "한국 사람들은 그가 하는 말이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같은 책, 336쪽)는 그런 경제학자가 되는 것이다. 우석훈은 파리에서 공부했고 유럽에서 오래 생활했지만, 이 이상형만큼은 철저히 유교적이다.
문제는 우석훈이라는 한 사람의 위치가 결코 '내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쓰고 열심히 강연을 하며 돌아다닌다 한들, '필드' 안에서 볼 때 우석훈은 그저 바삐 돌아다니며 고장 난 시계를 열어보는 한 마리 토끼에 지나지 않는다. 요컨대 내부자들의 눈으로 볼 때 우석훈은, 책사가 되고 싶어하지만 그 누구도 써주지 않는, 그래서 대중들을 상대로 강의하고 심지어 소설까지 써서 자신의 욕망을 대리 실현하는 안타까운 분일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그는 스스로를 광대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우석훈 지음, 레디앙 펴냄). ⓒ레디앙 |
2012년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그나마도 불가능해졌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야권단일후보'의 깃발 밑에 모여든 수많은 이들 중 하나가 되었다. 자신이 그렇게 비판하던 골프 동맹들이 다시 뭉쳐서, 골프채의 헤드를 떼어낸 다음 그것을 깃대로 삼고 있음이 거의 명백해 보였음에도, C급 정치학자 우석훈은 D급의 정치라도 일단 자신이 지지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10.
이것으로 제 강의는 대략 마무리된 것 같습니다. 더불어 한국경제대안 시리즈라는 이 4권짜리 책을 마치면서, 제가 여러분들께 부탁하고 싶은 딱 한 가지는 제발이지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는 하지 마셨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경제는, 설날 덕담으로 "부자 되세요"라고 말하던 바로 그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의 어느 순간부터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망하기 시작한 바로 그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가 새로운 길을 찾는 것, 그것은 여러분들이 "부자 되세요!"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나와 너의 사회과학>, 273쪽)
IMF 외환위기는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기업들이 짊어지고 있던 터무니없이 많은 부채가, 경기 진작이라는 명분하에 개인들의 어깨 위로 신용카드를 타고 내려앉았다. 주가가 뛰고 아파트값이 춤을 추며 분양가 상한제도 폐지되었다. 민주화의 투쟁을 끝내기 위해 뽑은 '우리들의 대통령' 노무현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정치적 싸움을 벌이며 자신의 영향력을 탕진해가고 있었다. 경제가 정치를 잠식해 들어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은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하지 않고, 언젠가부터 서로 부자 되시라고 덕담을 주고받았다. 이제는 일말의 부끄러움도 머쓱함도 없어져버렸다.
▲ <나와 너의 사회과학>(우석훈 지음, 김영사 펴냄). ⓒ김영사 |
정치가 무너진 시대, 혹은 경제가 정치를 압도한 시대. 어떻게 불러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 말하자면 '재야'로 내려온 경제학자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이 함께 흐려지고 사라져갔다는 데 있다. 2012년 대선에서 설령 문재인이 승리를 거뒀다 하더라도 우석훈은 그 민주정부의 인사들이 골프장에 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그는 트위터와 팟캐스트와 기타 경로를 통해,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춰가며, 경제를 이야기했다. 올바른 정치가 살아나면 올바른 경제도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았거나, 잃지 않는 척이라도 했어야 했을 터이다.
그리고 대선이 끝났다. 반 년의 시간이 흘렀다. 아직 부동산 거품의 뇌관은 터지지 않았다. 전세 값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중이다. 디버블링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정작 박근혜는 전두환의 은닉 재산을 뒤져가며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모든 허무한 현실을 눈앞에 둔 우석훈이 DSLR을 구입해 고양이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날로그 사랑법>에서 그는
▲ <아날로그 사랑법>(우석훈 지음, 상상너머 펴냄). ⓒ상상너머 |
골프장 속에서 똘똘 뭉쳐 엘리트들이 자신들만의 폐쇄계를 이미 단단히 굳혀버린 후에도, 우석훈은 빠른 속도로 책을 써서 마구 집어던지며 '꼰대질'을 하려고 든다. 불행하게도 그것을 맞고 아파하는 것은, 원래 아픈 청춘들뿐인 것처럼 보인다. '인사이더'들에게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은 다 부질없는 광대놀음처럼 보일 것 같기도 하다. 그 범위를 얼만큼 넓게 잡건, '우리'는 패배했다. 하지만 그 폭넓은 '우리'가 설령 이겼더라도, 우석훈이나 당신과 나 같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승리했을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지는 법이 없다'고 우석훈은 입버릇처럼 되뇌며, 심지어 노무현을 쏙 빼닮은 <모피아>의 대통령도 같은 말을 하지만, 지는 법이 없는 '우리'들은 지금도 어느 한적한 필드 위에서 농약과 제초제를 가르며 퍼팅을 하고 있다. 바로 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극복할 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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