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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는 '옛 애인'? 여기서 부활시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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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는 '옛 애인'? 여기서 부활시켜라!

[프레시안 books] 신희영의 <위기의 경제학>

대학 신입생이던 첫 학기, 경제학과 학생이니만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경제학개론>을 수강 신청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담당교수는 전임교수가 아니라 시간강사였던 고 정운영 선생이었다. 돌이켜 보면 대학 4년 동안 들었던 강의 중에 가장 학습 부담이 많은 과목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듯하다.

생전 처음 듣는 수많은 경제학자들의 이름 중, 흥미롭게도 그 이후 석사, 박사 과정까지 10년을 넘게 학교를 다니면서도 다른 강의에서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이름이 바로 미하우 칼레츠키(당시에는 그냥 칼레키라고 불렀다)였다. 폴란드 출신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적 배경을 지닌 채 케임브리지에서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함께 활동한 인물, 영어로 출간된 케인스의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박만섭 옮김, 지만지 펴냄)을 읽어보고 자신의 생각이 이미 출판되어 버렸다는 좌절감에 며칠을 앓아누웠다는 인물, 희망을 품고 사회주의 조국 폴란드로 돌아갔으나 거기에서조차 제대로 꿈을 펴지 못한 인물. 케인스와 흡사한 유효수요이론을 주장하면서도 사회의 계급적 기초에 관한 통찰로 완전고용은 결국 정치적 문제임을 간명한 논리로 주장한 인물.

▲ <위기의 경제학>(신희영 지음, 이매진 펴냄). ⓒ이매진
그리고 사회주의! "사회적"이라는 말만 써도 사회주의자라고 오인받던 한국에서 마르크스나 레닌을 탐독하던 그 많은 "마르크스주의자"들. 이제는 마치 헤어진 연인들끼리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쳐도 지나가버린 (혹은 아직 간직한) "사랑"에 관해 더 이상 묻거나 확인하지 않는 것처럼, 나를 포함한 많은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조차도 사회주의에 대한 꿈을 아직 가지고 있는 것인지,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어떤 식으로 가능할지에 관해서는 선뜻 말하려 하지 않는다.

신희영의 최근 저작 <위기의 경제학>(이매진 펴냄)을 받아들었을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바로 이 두 가지 상념, 즉 아웃사이더 경제학자인 칼레츠키에 얽힌 기억, 그리고 차마 입에 담으려 하지 않는 "사회주의의 꿈" 이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400쪽이 넘는 <위기의 경제학>은 하나의 잘 짜인 저작이라기보다는 특히 미국의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논문을 쓸 때 흔히 취하곤 하는 구성, 즉 '비슷한 주제에 관한 세 가지 에세이(three essays)' 같은 느낌을 준다. 1부 '국제금융위기와 한국경제'는 2007~2008년의 미국 발 금융위기, 그리고 그것이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 관한 분석이다. 2부 '경제학의 위기와 위기의 경제학'은 미국식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경제학과 커리큘럼에서 잘 다루지 않는 경제학자들, 칼레츠키, 민스키, 리스트 등의 이론을 설명하는 부분과 "실현가능한 사회주의"에 관해 스케치하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흥미로운 주장은 미국 주택금융시장의 거품붕괴로 시작된 위기의 파급과정에서 미국의 연방준비은행과 재무부가 막대한 자금의 긴급투입 등으로 맞선 과정이 아시아나 라틴아메리카에서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그들이 주장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행동이었다는 점이다. 2부에서 첫 번째로 다루어지는 아웃사이더 경제학자가 리스트라는 점과도 관련하여, 이러한 주장은 자연스럽게 "사다리 걷어차기"(즉 보호무역으로 성장한 나라들이 성장한 다음에는 후진국에게는 자유무역을 설파하는 역설) 혹은 선진국들을 "나쁜 사마리아인"에 비유한 장하준의 주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물론 신희영은 미국의 양적 완화정책이 "자산가격의 상승을 실물 경제의 선순환구조로 연결시키지 못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 신희영의 금융위기분석에 충분히 동의한다는 점을 밝힌 상태에서 약간만 딴죽을 걸어보자면, 과연 어느 나라 정부가 그와 같은 금융시장붕괴에 직면하여 별다른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의미에서는 특히나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되는 거의 모든 정권은 케인스주의적일 수밖에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의 위기에 대해 냉철한 긴축처방으로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이데올로기 탓도 있겠으나 결국엔 "남의 일"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이러한 종류의 비판은 주류경제학의 위선적인 모습을 드러낸다는 교육적 효과는 있겠으나(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나는 이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현실적으로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면 무력한 것일 수밖에 없다.

2부에서는 칼레츠키, 민스키, 포스트 케인스주의 등 특히나 한국에서는 거의 무시되고 있는, 사실상 "비주류의 비주류"라고 할 만한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요약정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대중서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겠으나 교과서적인 소개에 머물고 있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사실 2부, 나아가 이 책 전체에서 가장 과감한 주장은 한국 경제의 진보적 개혁방향을 "실현가능한 사회주의"라는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서론('응답하라 2013')에서 요약한 바에 따르면, 그것은 "생산수단에 대한 생산자 협동조합 기업들과 규제된 주식회사적 소유가 다른 소유 형태들에 견줘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사회경제 체제"이며, "민주적으로 선출되는 정부가 다양한 시장 실패를 보완하려고 거시 조정정책이나 투자 정책 등을 실시하는 체제"라고 정의된다. 저자 자신도 예상하는 비판처럼 이렇게 특징지워지는 체제를 굳이 "사회주의"라고 부를 필요가 있을까라는 비판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신희영은 기꺼이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용된 정의만으로는 마치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 체제"라는 마르크스의 정의 못지않게 추상적이고 막연한 느낌을 준다.

오히려 신희영의 관점이 부분적으로나마 구체적이고 날카롭게 드러나는 것은 최근 한국경제의 개혁방향을 주장했던 진보적 경제학자들의 견해를 서베이하고 있는 11장 결론 부분이다. 예를 들어 장하준의 대타협론(재벌에게 경영권을 보장하되 양보를 얻어내자는)이 현실의 물질적 힘이 없으면 공허한 주장이라는 점, 철학자 김상봉이 주장하는 것처럼 노동자경영권이 확보되더라도 본인-대리인 문제, 즉 "회사의 실질적인 지배권을 두고 발생하게 될 이상적인 권력 투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 등은 매우 적절하면서도 날카로운 것들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해 가해진 엄격한 비판의 잣대를 견뎌내기에는 신희영 자신의 "실현가능한 사회주의"도 아직은 실현가능성이나 구체성의 측면에서는 취약하다고 판단된다.

손호철의 추천사를 읽어 보면 신희영은 전형적인 386세대로서 열정적인 젊은 시절을 보내고 뒤늦게 미국까지 가서 경제학을 처음부터 새로 공부하다시피 한 학자다. <위기의 경제학>은 아마도 자신의 경제학공부의 과정을 결산하면서 지금부터 나아갈 연구방향을 드러내고 있는, 신희영 개인에게는 연구자로서의 기나긴 경로에서 중간 이정표 역할을 하는 책인 듯하다. 물론 이 책이 칼레츠키의 이름조차도 들어보기 어려운 한국의 경제학도들, 나아가 한국 경제의 개혁을 고민하는 비전공자들에게도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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