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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노무현 '킹메이커' 강준만, 안철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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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DJ·노무현 '킹메이커' 강준만, 안철수에게는?

[노정태의 논객시대] '구텐베르크 은하계'에서 '하이퍼텍스트'로

(1) 고종석, 진중권, 유시민…'그들'의 시대는 왜? : 프롤로그 ☞바로가기
(2) 아르마니 탐했던 소년, '진보 교주'로 부활하다! : 딴지 총수부터 '나꼼수'까지, 김어준 ☞바로가기
(3) 은퇴한 '정치도매상', 돌아온 '지식소매상'! : 유시민과 그의 책들 ☞바로가기

1.
태초에 강준만이 있었다.

김대중 정권이 태어나기 전, 강준만이 있었다. 안티조선 운동이 첫 발을 내딛기 전에도 강준만이 있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통해 노무현이 급격히 부상하기 전에, 이미 앞날을 내다보고 '올인'한 사람 역시 강준만이었다.

단지 정치의 영역에서만 그러한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논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올리는, 다시 말해 '논객시대' 연재에서 다루게 될 논객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강준만이 창간한 "'저널룩'(Journalook: journalism+book)"(6쪽, <인물과 사상> 1권, 개마고원 펴냄)인 <인물과 사상>을 통해 각자의 입지를 확보해 나갔다. 유시민, 진중권, 고종석 등이 그 명단에 들어갈 것이다.

▲ <인물과 사상 33권>(강준만 지음, 개마고원 펴냄). ⓒ개마고원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러셀의 관계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이 아름다운 그림이라면, 러셀은 벽지와도 같다'는 비유가 있다. 강준만이 '논객시대'의 시작과 형성, 그리고 어쩌면 지금까지의 전개에 미치고 있는 영향도 바로 그와 같을 것이다. 개별적인 저작의 질, 논리, 문장력, 주제 선정, 정치적 지지, 문화적 취향 등에서 특정한 논객이 강준만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보여줄 수는 있다. 하지만 강준만의 존재를 배제하고 나면, '논객시대'를 논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심지어 우리가 여기서 살펴보게 될 또 한 사람의 강준만, 말하자면 '후기 강준만' 역시, '전기 강준만'이 대한민국의 지성계에 터뜨린 폭탄과 그 후폭풍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이해할 수 없다. 강준만은 글을 통해 세상을 바꾼 몇 안 되는 지식인이다. 하지만 세상은 결코 그가 원하던 방향을 향하지도, 선호했던 방법을 택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그 성공과 좌절의 기원 및 전개마저도 강준만의 텍스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태초에 강준만이 있었다"니, 이건 지나친 찬사가 아닌가 의문을 품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다소 과장된 표현이며, 그 배후에는 모종의 개인사적 맥락이 숨어있다. 그 내용을 잠시 풀어보도록 하자.

때는 1997년, 아직 IMF 외환위기가 발생하지는 않았던 시점이었다. 정확히 몇 월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중고책을 매매하기도 하고, 새 책을 팔기도 하며, 심지어 어떤 책은 빌려주기까지 하던 복합형 동네서점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물과 사상> 1권과 2권, 그리고 3권을 접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책의 본문에 적혀있는 온갖 '실명비판'의 내용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하지 않다기보다는, 어차피 모르는 사람들을 실컷 비판하는 내용일 뿐이므로, 중간 중간 등장하는 과격한 표현에만 눈길이 갈 뿐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요컨대 <인물과 사상>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김대중이 왜 이번에는 꼭 당선되어야 하는가' 같은 내용이 와 닿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하지만 이런 내용은 달랐다. 가령,

석학 대접을 받는 미국 지식인 이름을 한 명 대 보시라. 그리고 그 나라 도서관에 가서 컴퓨터 단말기에 그 지식인의 이름을 두들겨보라. 아니 인터넷을 이용해도 될 것이다. 그 지식인이 쓴 논문과 저서의 몇 배가 되는, 그 지식인에 관한 논문과 저서의 이름이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올 것이다. 요컨대, 비판이 있어야 석학이 나오는 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엔 그런 비판이 드물다. 아예 없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드물어도 너무 드물다. 비판이 있어야 방어를 위해서라도 자신의 이론을 더 정교하게 만들 수 있을 것 아닌가? 그런데 아예 비판이 없으니 발전이 있을 수 없다. (7쪽, <인물과 사상> 2권, 개마고원 펴냄)

평소에 '왜 이렇게 불만이 많냐', '네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기분 나빠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왔던 한 중학생이 있다고 해보자. 이렇게 시원하게 '우리는 서로 더 실명을 드러내가며 비판해야 한다'는 내용이 당당하게 선언되어 있는 책을 읽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후련함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을까?

▲ <김대중 죽이기>(강준만 지음, 개마고원 펴냄). ⓒ개마고원
이것은 단지 한 불평쟁이 청소년의 속이 시원하게 풀리는 차원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강준만은 1997년 1월부터 1년에 4권씩 <인물과 사상>을 출간하는 실험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김영삼 이데올로기>(개마고원 펴냄, 1995년), <김대중 죽이기>(개마고원 펴냄, 1995년), <전라도 죽이기>(개마고원 펴냄, 1995년) 등의 책을 통해 우리가 아는 '강준만식 글쓰기'의 원형을 확립한 상태였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고, 정치적 목적이 있는 글임을 명백하게 밝히고, 본인의 감정 상태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비속어와 과격한 비아냥 등도 서슴지 않는 그런 글쓰기 말이다.

<인물과 사상>은 이전의 시도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었다. 1997년 대선을 멀리 앞두고 쓴 세 권의 단행본과 달리, <인물과 사상>에서 강준만은 다양한 인물과 주제를 한꺼번에 다루었고,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적 결과 뿐 아니라 그러한 글쓰기를 통해 도모하는 사회적, 지적 변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명료하게 표현했다.

"은유와 직유를 비롯한 각종 수사법이 동원"되고, "완곡어법과 간접어법이 남용"되며, "지나친 추상과 관념이 판을" 치는 지식인들의 글쓰기로 인해, "우리에겐 오직 '싸잡아' 비판하는 문화만이 발달돼 있을 뿐"(11쪽, <인물과 사상> 3권, 개마고원 펴냄)이라고 강준만은 지적했다. 그 결과 "우리의 비판엔 좀처럼 실명이 거론되지 않는다."(같은 곳)

실명을 거론하는 것은 단지 자신이 비판하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든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강준만은 자신이 어떤 매체와 단행본을 통해 해당 발언을 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최대한 정확한 출처를 제시했다. 외국 문헌, 혹은 공식적으로 '학계'의 텍스트임이 명백한 책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휙휙 넘겨보고 대충 집어던지는 그런 신문, 잡지, 몇 권 팔리지도 않은 단행본들이 갑자기 강준만의 베스트셀러인 <인물과 사상> 시리즈에 인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강준만의 '실명비판'은 그러므로, 그 이전 시대의 사회적 담론이나, 집단으로 문건을 창작하고 돌려보던 386들의 문화와는 사뭇 다른 차원을 형성했다. 일단 그 비판의 화자가 '정치적 중립성'의 뒤로 숨지 않는다. '나'를 드러내야 한다. 이것은 강준만이 <김대중 죽이기>에서 "나의 고향은 목포다. 그러니 나는 문제의 그 '전라도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나의 부모님은 모두 황해도 출신이다. 그러니 나는 또 '골수 전라도'는 아닌 셈"(13쪽, <김대중 죽이기>)이라고 '커밍아웃'을 할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가 <인물과 사상>을 통해 사방팔방 논쟁을 걸기 시작하면서부터 강준만의 존재감은 더욱 도드라졌다. 우리는 어떤 지식인이 진정 '주체'로서 화자가 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명비판은 비판의 주체 뿐 아니라 객체 또한 드러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을 하는 일이니 말이다. 실명비판을 당한 사람은 순식간에 '객체'가 된다. 더 이상은 집단의 안전한 치마폭에 숨어있을 수가 없다.

여기서 본인이 당한 것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 강준만을 비판하거나, 어떤 정치적인 수단을 써서 자신을 비판한 이에게 불이익을 안겨주는 것 말이다. 많은 이들이 후자를 택했지만, 강준만은 전자의 방법을 택하는 이들에게 기꺼이 <인물과 사상>의 지면을 내어주었고, 그래서 우리는 <인물과 사상>을 통해 당시 벌어졌던 논쟁의 상당수를 복원해낼 수도 있다. 그들 중 일부가 지금까지 우리에게 '논객'으로 기억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 <노무현과 국민사기극>(강준만 지음, 개마고원 펴냄). ⓒ개마고원
실명비판이 하나의 방법론으로 등장한지 벌써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어떤 '저격'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과소평가하기 쉽다. 물론 그런 면이 클 것이다. 실명비판에 열광하는 독자들은, 오늘날의 대중들이 김구라 씨처럼 '독설'을 내뱉는 연예인에게 환호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맥락에서 강준만의 책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명비판은 어쨌건, 비판하는 자와 비판받는 자, 즉 '주체'와 '객체'를 개인 단위에서 명료하게 드러나게 만들었다. 주체와 객체로 이루어진,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근대적 세계의 문이 열린 것이다.

그러므로 태초에 강준만이 있었다. 이것은 분명 당시 언론에서 접할 수 있었던 그 어떤 칼럼들과도 달랐다. '필자는 작금의 세태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와 '나는 그에게 반대한다'는 문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다. 전자가 아니라 후자의 방식으로 말함으로써, '나', '그', '반대', 즉 '주체', '객체', '양태'라는 문장의 세 가지 구성요소가 모두 명료해지는 것이다. 근대적 세계는 결국 주체와 객체가 어떤 식으로건 상호작용하는 곳이다. '실명비판'이 갖는 진정한 힘, 혹은 그것이 제시하는 비전의 끝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3.
말하는 자가 누구인지 스스로 밝히면서, 본인이 대상으로 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자신이 얻은 정보의 출처를 밝힘으로써 타인에게도 검증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시 객관화하는 과정. 이것은 인쇄 기술이 발명되면서 서양에서 만들어진 이른바 '구텐베르크 은하계'에서, 학술적 글쓰기를 통해 주체를 형성해나가던 과정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이 오직 하나의 책, 즉 성경만을 읽고 암송하던 시대에는 이런 식으로 논의할 필요가 없었다. 다양한 책들 속에서, 본인의 발언 또한 그 다양한 책 중 하나가 되리라는 믿음 하에, 말하자면 '서지정보'로 호명될 수 있는 상대방을 대면하는 것이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존재 양식인 것이다.

이 근대적 주체는 그러나, 동시에 '전라도 사람'이며 '한국인'이다.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작동 방식에 따라 형상화된 근대적 주체가, 군사독재를 넘어서 대통령 직선제가 시작된 지 고작 10년밖에 되지 않은 한 개발도상국의 선거판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그 후보가 받아왔던 과도한 비판에 대해 항거하며, 기존 언론의 틀을 넘어서 자신만의 매체를 만들고 그것을 투쟁의 전초 기지로 삼았다. 그리고 이렇게 선포하는 것이다. "나는 이번 '97 대선의 의미는 '위선의 종언'에 있다고 생각한다."(5쪽, <인물과 사상> 4권, 개마고원 펴냄)

이 인용문에서 언뜻 드러나는 바와 같이, 강준만 본인은 자신의 방법론을 '근대적 주체'의 형성 과정으로 인지하지 않은 듯하다. 대신 그는,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치적 지향과 지지 세력을 솔직하게 밝히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그것을 그저 '위선'이라고 호명했다. 그간 한국 언론이 "두꺼운 위선의 탈을 쓰고 '킹 메이커'의 역할을 자임"(10쪽, 같은 책)해왔다고 비판할 때, 강준만의 언어 속에는 도덕적 판단과 정치적 판단이 어지럽게 혼재되어 있음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난맥상은 강준만이 스스로 천명한 "비판의 공정성 잣대"에 대한 '4가지 원칙'에 잘 드러나 있다.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강준만이 말하는 첫 번째 원칙은 "정의의 원칙"이다. 다수라고 해서 무조건 비판하거나 편들지 않고, 소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며, 다만 정의로운 쪽의 편에 선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정의는 당신의 불의이고, 당신의 정의는 나의 불의일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강준만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답이 없다. 그냥 싸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13쪽,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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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과 자존심>(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인물과사상사
그런 과정을 통해 중간에 선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애써 희망 섞인 관측을 내놓지만, '두 개의 정의가 맞서는 상황'에 대해 1997년의 강준만은 아무런 종합적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맞서 싸우지도 않는다'라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지이므로, 강준만이 어떤 결단을 내리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나의 세계관과 타인의 세계관이 서로 충돌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그냥 싸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구조적 불공정 관계에 대한 배려의 원칙"이다. "정치적인 여야 간의 갈등관계, 지역 갈등관계, 남녀 간의 갈등관계, 비장애인-장애인의 갈등관계" 속에서 "무조건 100퍼센트 약자의 편을 드는 건 아니지만, 거의 대부분 약자의 편"(같은 곳)에 서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바로 그런 이유로 똑같은 정치자금의 문제라도 나는 야당의 정치자금에 대해선 관대하다"(14쪽)는 결론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왜 이렇게 무리한 예시를 드는 것일까? 그 답은 잠시 후에 밝혀질 것이므로, 일단 강준만의 4대 원칙을 마저 살펴보자.

셋째, "언론의 공정성 보완의 원칙"이 있다. "어떤 인물에 대한 언론매체의 태도가 부당하게 적대적이라면 나는 그걸 비판하면서 그 인물의 장점만을 부각시킬 것"이라고 강준만은 선언한다. 그런데 이 글이 나온 시점은 앞서 말했듯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있던 때이므로, 언론매체가 부당하게 적대적으로 다룬 사람이 누구인지는 자명하다.

마지막으로 넷째. 이것은 한 문단을 통째로 인용해보자.

넷째. '택일적 경쟁관계에서의 특수성'의 원칙이다. 앞서 말한 원칙들은 택일적 경쟁 또는 갈등 관계에서는 상황에 따라 유보될 수 있다. 택일적 경쟁 또는 갈등 관계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선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같은 곳)

첫째, 둘째, 셋째 원칙까지만 해도 그것은 이미 '공정성'에 대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원리가 아니라, 일종의 야전 교범에 가까운 것이다. 우리 편과 너희 편의 '정의'가 충돌하면, 일단 맞붙어 싸우는 것이 첫째 원리요, 우리 편은 본래 구조적으로 불공평한 관계에 놓여있으니 좀 더 관대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공정한 것이며, 언론에 대해 부당한 비판을 많이 받기도 했으므로 장점만을 말하는 것이 또한 공정한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심지어 이 원칙 같지도 않은 원칙조차 "택일적 경쟁 또는 갈등 상황", 다시 말해 선거판에서는 "상황에 따라 유보"된다. 그것이 바로 "택일적 경쟁관계에서의 특수성"의 원칙이라는데, 아니 이런 걸 '원칙'이라고 부를 수 있긴 한 것인가? 여차하면 원칙을 지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그런 원칙이 무슨 놈의 원칙인가?

저 네 가지, 혹은 3 + 1가지의 원칙은, 결국 이런 목적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이다. <한겨레>의 시평에 '검색대상으로서의 내각제'라는 글을 쓴 임재경이라는 사람을 두고, 강준만은 다음과 같이 질타한다.

임씨는 최근 신문과 방송을 전혀 읽지도 보지도 않은 것일까? 나는 DJP연합에 대한 우려와 반대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이다. 그러나 언론의 DJP연합에 대한 우려와 반대는 그 정도를 넘어서도 훨씬 넘어섰다. 지금 선거판에선 DJP연합의 정략적 요소를 훨씬 능가하는 정치인들 간의 이합집산이 벌어져도 <한겨레>를 포함한 모든 언론이 방관자의 자세로 보도만 해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DJP 연합에 대해선 정반대였다. 임씨는 제발 게으름 피우지 말고 <한겨레>라도 제대로 읽어보기를 권한다. (8쪽, 같은 책)

'원칙'들을 적용해보자. 첫째, 정의의 원칙. '우리 편'은 DJP연합이 '정의롭다'고 볼 것이고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터이니 싸울 수밖에 없다. 둘째, 구조적 불공정 관계에 대한 배려의 원칙. 우리 편은 야당이니, 우리 편의 정략적 행위는 상대방에 비해 덜 비판받는 식으로 배려되어야 한다. 셋째, 언론의 공정성 보완의 원칙. 하다못해 <한겨레>까지 DJP연합을 비판하고 있으니 이는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넷째, '택일적 경쟁관계에서의 특수성'의 원칙. 지금 선거하는 거 안 보이는가?

당시 강준만이, 혹은 그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정권교체를 바라고 있었는지를 염두에 두고, 또 벌써 15년도 더 된 일이므로 다소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아무리 노력해도, 저 '원칙'들을 원칙이라고 불러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욱 곤란한 것은 강준만의 이러한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 순간, 그에게 '위선자'라고 지적당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강준만은 구텐베르크 은하계의 방법론대로 움직였다. 그런데 정작 그를 움직이게 하는 동인(動因)은 정치적인 목적의식이었고, 그 과정에서 동원되는 수사법은 종종 도덕주의적인 색깔을 띠었다. 1997년 1월 이후 총 네 권이 출간된 <인물과 사상>은 대선 열기를 주도하는 히트 상품이 되었고, 강준만의 그러한 활약에 힘입었던 것인지, 대한민국은 민주화 10년 만에 선거를 통한 수평적 정권교체에 성공한다. 김대중이 드디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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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살리기>(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인물과사상사 펴냄
강준만이 만들어낸, 혹은 차용한 방법론과 그것이 지향하고 있는 바는, 얼핏 보기에 서로 잘 맞지 않는 것 같지만 따로 떼어낼 수도 없는 것이었다. 김대중, 호남, 민주당에게 부당한 비판을 가하면서 정작 자신들이 여당을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뭉스럽게 감춰버리는 자들을 폭로하기 위해, 강준만은 그들의 실명을 거론해야 했다. 실명까지 거론하는 판이니 당연히 비판 대상의 출처를 명확히 해야 하며, 반론이 들어온다면 그것을 받아줘야 한다.

요컨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 없었다면 강준만으로서는 굳이 실명비판을 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실명비판을 하지 않았더라면 강준만이 최초의, 그리고 최대의 논객으로 떠올라 이후 노무현의 당선까지 특정 진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 또한 불가능했을 것이다. 구텐베르크 은하계라는 근대적 형식과, 전근대적 지역감정 혹은 그에 대한 정치적 투쟁이, 절묘하게 뒤섞인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비판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특정한 주체의 형식이 정립되었다. 물론 그 비판의 대상은 정치인, 야당이 되었지만 아직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신한국당, 그들을 비호하는 '족벌언론' 등이었다.

독일에서 유학중이던 진중권은 '조선일보를 겁내지 않는 매체'를 찾다가 <인물과 사상>에 "극우 파시스트 연구", 훗날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개마고원 펴냄)로 묶여 나오는 그 원고를 쓰기 시작했다. 과거의 논객들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이 명백해졌다. 청와대에서 일하던 최장집이 한국전쟁에 대해 쓴 논문을 <조선일보> 기자 이한우가 물고 늘어지며 색깔론 시비를 붙였다. 그 광경을 두고 강준만은 "스승의 등에 칼을 꽂았다"고 비난했는데, 그러자 이한우는 강준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그 광경을 보고 참을 수 없었던 "빠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는 같은 문구를 자신의 칼럼에 똑같이 반복하며, 에밀 졸라를 인용하여 '나를 고소하라'고 외쳤다. 이 부름에 시민사회가 화답하면서 바야흐로 '안티조선'의 움직임이 가시화되었다.

강준만이 지지하는 민주당, 그 민주당의 대선후보였던 김대중은 드디어 값진 승리를 얻었다. 동시에 강준만이 그 선거의 과정에서 제시했던 주제들 역시 나름의 생명력을 얻게 되었다. 가령 '<조선일보>는 정치 혐오를 상품화하는 신문으로, 3류 찌라시 취급을 받아야 마땅하다'와 같은 문장들이 그 속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지 않고, 객관적이며 공정한 척하는 것이야말로 큰 죄악이라는 발상, 그런 분위기를 조장함으로써 국민들이 정치를 혐오하게 하는 언론이 문제이며, 그것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진정한 민주화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은, 특히 87년 대선 결과에 대해 원죄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우리가 서로 갈라져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게 만들었지만, 지금 우리가 <조선일보>를 끊는다면 멈춰선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굴러가게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강준만은 정치적 편향성이 강하긴 해도 언론학자였다. 자신이 제시한 주제와 방법론을 활용해 점점 규모를 키워가는 '대중운동'으로서의 안티조선에 대한 강준만의 입장은 '전폭적지지' 내지는 '사상적 후원' 등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나의 구상과 무관하게, 최근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안티조선 운동은 내가 의도했던 바를 넘어선 운동이다. 물론 나는 그 운동을 뜨겁게 지지하며 그 운동 주체들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내가 그 운동의 촉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운동과 나는 실질적으론 무관하다. (11쪽, <인물과 사상> 19권, 개마고원 펴냄)

정작 강준만 본인이 의도했던 바와는 다르게, 그가 뿌린 씨앗들이 싹을 내리고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강준만은 "언론개혁을 전문으로 하는 잡지"를 만들어서 "언로(言路)의 시장(市場)에서 싸워보자"(같은 곳)는 마음을 먹고 있었지, 자기희생을 감수해가며, 가령 <조선일보>에 반대한다는 취지와 앰블럼을 담은 스티커를 제작해서 뿌리거나 하는 행위를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았다.

언론개혁운동, 혹은 '안티조선'이라는 쇠는, 이미 강준만이라는 대장장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뜨거워졌다. 반면 강준만이 "처음에 구상했던 그 방식은 실패로 돌아갔다. 정기 구독자 10만 이상을 목표로 했던 잡지는 1만을 넘어서더니 그 이후론 계속 내리막길을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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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죽이기>(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인물과사상사
21세기에 들어서자 시민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언론운동은 정치적 개혁에 대한 열망과 서서히 한 몸으로 엮여갔다. 그런데 그에 대한 강준만의 입장은 양면적이었다. 방금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그는 자신이 계획했던 언론운동, 즉 월간 <인물과 사상>을 통한 언론시장 개혁이 잘 풀려가지 않고, 그 자리를 대중적 '운동'이 차지해가는 과정을 착잡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동시에 그는, <조선일보>와 오래 전부터 가장 잘 싸워온 한 사람의 정치인에게 일찌감치 눈도장을 찍어둔 상태였다. 강준만은 노무현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을 통해 짜릿한 역전극을 거두고 대선후보가 되기 전이었던 2001년, 이미 <노무현과 국민사기극>(개마고원 펴냄)을 내놓았던 것이다.

5.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의 주제의식은 매우 간단명료하다. 깨끗한 정치인을 원한다면 깨끗한 정치인을 찍어라. 그게 노무현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남는다. 선거에 당선된 이력보다 낙선된 경험이 더 많은 노무현, 경상도 출신인데 민주당에 들어와 있는 노무현을 대체 무슨 근거로 '찍어줘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여기서 강준만이 대답을 뽑아낸 방식이 중요했다. 그는 노무현을 지지해야 할 이유를, <조선일보>의 반대와 방해로부터 귀류법적으로 도출해낸 것이다. 이 대목을 다소 길게 인용해보자.

속된 말로, 노무현은 <조선일보>에게 오래전부터 찍혔다. 왜 그랬을까? 그건 두 가지 이유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노무현의 개혁 지향성이다. 개혁 지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정치인들은 많다. 그러나 시늉으로 그런 건지 진짜로 그런 건지 잘 살펴봐야 한다. 노무현은 진짜였다. <조선일보>와 같은 신문은 진짜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런 자세의 당연한 귀결이었겠지만, 노무현이 언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았다는 게 두 번째 이유였을 것이다.

사실 내가 언론학도로서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에 주목하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노무현이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굴종적인 태도를 취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정면 도전을 한 건 내가 보기에도 참으로 '대담한' 일이었다. 다만 나는 그러한 '대담함'이 진정한 개혁으로 가는 길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그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반면, 수구 기득권 세력이 아닐지라도 "사람은 모름지기 대세를 따라야 한다"고 믿는 이른바 '주류 콤플렉스'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 '대담함'을 부정적으로 보았다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30쪽, <노무현과 국민 사기극>)


당시 노무현은 민주당의 여러 대선 주자 중 하나였지만, 그 무렵 '대세'는 이인제였고, 그 대세를 따르느냐 따르지 않느냐 정도가 정치적인 이슈였다. 강준만은 노무현이 대선 경선 과정을 통해 급부상하기 전에 일찍이 그를 낙점하고, 노무현을 위한 단행본을 쓴 것이다.

<노무현과 국민 사기극>에는 우리가 흔히 '안티조선'으로 알고 있는 주장들이 대부분 원형 그대로 들어가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기득권을 누려온 기회주의적 언론, 그 언론이 쥐락펴락하는 한국 정치, 그 속에서 유일하게 머리를 굽히지 않는 한 정치인. 그 정치인을 지지함으로써 언론 개혁을 이루고, 동시에 1987년에 못다 핀 민주주의의 꽃망울을 터뜨린다는 계획은, 강준만과 그의 독자들이 공유하게 된 세계관 속에서 대단히 '논리적'으로 결부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 논리는 약 1년 후 출간된 유시민의 책, <노무현은 왜 조선일보와 싸우는가>(개마고원 펴냄)에서 거의 같은 방식으로 되풀이된다.

논리의 얼개가 한 번 이렇게 고정되어 버린 이상, 그것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1997년 대선이 '위선과의 싸움'이었다면, 2002년 대선은 "'보혁구도'의 싸움도 아니고 '좌우구도'의 싸움도 아니다. 지역주의 싸움도 아니"며, "'KS대 상고(商高)'의 싸움도 아"니라, "자존심을 지킬 수 없게 만들었던, 일백 년 묵은 '내 마음 속 공포'와의 싸움"(16쪽, <노무현과 자존심>(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으로 새롭게 의미 부여되었다. "일백 년 묵은 '내 마음 속 공포'"를 외부 대상에 투영하여 타자화한다면, 그것이 곧 <조선일보>일 것이라고, 독자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강준만에게 있어서도, 이렇게까지 상황이 비상해진 이상, 김대중 당선 이후 지금까지 해왔(다고 본인이 주장하)던 대로 정부 비판에 무게를 두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 선거가 다가오고 있고, <조선일보>와 당당하게 맞붙던 바로 그 정치인이 대선 후보가 되었다. 요컨대 다시금 '공정성의 네 가지 원칙'이 작동해야 할 시점이었던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벌어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민주노동당이 내세운 이문옥 후보에 대하여 벌어진 이른바 '진강논쟁', 혹은 '옥석논쟁'은 바로 이 맥락을 염두에 두어야 제대로 독해 가능하다.

당시의 선거 구도를 복기해보자. 한나라당에서 나온 서울시장 후보 이명박은 여론조사 결과 이기기 어려운 지지율을 이미 확보하고 있는 상태였다. 반면 민주당에서 내세운 서울시장 후보 김민석은, 이른바 '동교동계'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을 끌어올리지 못했다. 그 와중에 출마한 민주노동당 후보 이문옥은, 지방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낸 후 그것을 '전초전'으로 삼아 대선 승리를 거머쥐어야 한다는 강준만과, 그가 적극적으로 유포한 세계관으로 정치, 언론, 사회, 역사를 해석하던 범여권 지지자들에게 눈엣가시처럼 보였을 수밖에 없다.

진중권과 강준만이 벌인 논쟁이지만, 여기서는 주제에 맞게 강준만의 경우만을 다루어보자. 앞서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강준만에게는 선거에 임함에 있어 공정함을 정의하는 4대 원칙이 있다. 정의의 원칙, 구조적 불공정 관계에 대한 비례의 원칙, 언론의 공정성 보완의 원칙, 마지막으로 '택일적 경쟁관계에서의 특수성'의 원칙. 여당의 후보 김민석과 제3당의 후보인 이문옥 중 누구를 지지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논의에 이 네 가지 원칙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 <오버하는 사회>(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인물과사상사
우선 정의의 원칙. 김민석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는 김민석이 정의로운 후보이며, 이문옥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는 이문옥 지지가 정의다. 이것은 싸워보는 수밖에 없고, 실제로 강준만과 진중권이 논쟁을 함으로써 원칙이 달성되었다. 그 다음, 구조적 불공정 관계에 대한 비례의 원칙. 구조적 불공정에 시달리고 있다면, 당연히 현재 여당인 김민석보다는 이문옥에게 무게를 실어주는 것이 옳다. 언론의 공정성 보완의 원칙. 이명박과 김민석의 경쟁 구도는 그나마 언론에서 다루어주지만, 이문옥은 아예 보도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문옥과 민주노동당의 2승 1무로, 설령 마지막 네 번째 원칙에서 지더라도 2승 1무 1패가 된다. 진중권이 이기고 강준만이 질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는 마지막 원칙, "'택일적 경쟁관계에서의 특수성'의 원칙"이 마치 트럼프 카드의 조커 패처럼 다른 모든 원칙을 여차하면 들어 엎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서울시장선거라는 '택일적 경쟁관계'는 2002년 대선이라는 또 하나의 '택일적 경쟁관계'에 영향을 줄 것이므로,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민주당이 이겨야 하고, 민주노동당은 당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구청장 선거 등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 강준만의 논리였다.

김민석은 이명박에게 큰 차이로 패배했고, 설령 이문옥의 표가 전부 김민석에게 갔다고 하더라도 졌을 수밖에 없을 상황이어서, 선거가 끝난 후 강준만은 머쓱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은 노무현의 승리로 끝났고, 그 과정에서 DJP연합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론조사를 통한 대선후보 단일화라는 새로운 형식이 도입되었다. 미리 강준만이 <김대중 죽이기> 시절부터 포석을 깔아놓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회창을 꺾어야 한다는 절박감이 그보다 더 커서였는지,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에 대해서는 DJP연합만큼의 강렬한 반발과 여론의 매도가 뒤따르지는 않았다. 노무현에 대한 강준만의 지원사격이 '자존심' 등에 맞춰진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6.
강준만은 졸지에 '킹 메이커', 그것도 두 명의 대통령을 만들어낸 킹 메이커가 되어버렸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경우가 또 달랐다. 김대중은 강력한 반대 세력이 있었지만 그만큼 튼튼한 지지 기반 역시 확보하고 있었던 반면, 민주당 내에서도 지지 세력이 없었던 노무현은 그야말로 '바람'을 타고 대통령이 되었다. 강준만은 바로 그 바람을 직접 만들어내거나 운용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기반을 제공했다고 말하는 것에는 큰 무리가 없을 터이다.

딱 거기까지였다. 대통령이 된 노무현은 자신을 따르는 핵심 세력을 이끌고 탈당하여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민주당의 입장에서 보자면 분명 배신행위였다. 그 배신행위에 대한 보복 수단으로 선택된 것은 대통령 탄핵이었다. 선거법 위반으로 대통령 탄핵안이 발의되었고, 국회에서 통과되었으며, 헌법재판소는 위법 사실이 있지만 대통령을 탄핵해야 할 만큼 중대하지는 않다는 결정을 내렸다. 입법, 사법, 행정부의 3권 분립이 완벽하게 작동한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역사와 전통의 민주당이 거의 괴멸했고, 그 난리가 벌어지기 직전 <노무현 죽이기>(인물과사상사 펴냄, 2003년)와 <노무현 살리기>(인물과사상사 펴냄, 2003년)를 출간하여 노무현을 지원하던 강준만은, 순식간에 '나의 대통령'을 잃고 말았다.

사태가 그렇게 진행되자 강준만은 급히 <오버하는 사회>(인물과사상사 펴냄, 2003년)를 출간하여 진화에 나섰다. 강준만이 보기에 민주당 분당과, 뒤이어진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투표' 발언은 모두 '오버'인데, 왜 전자에는 동의하면서 후자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며 다음과 같이 열변을 토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은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 분당과 '재신임 정국'을 연계시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 놀라운 건 민주당 분당엔 지지를 보내면서도 노 대통령의 '재신임' 발언엔 비판적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 두 가지가 어찌 분리될 수 있다는 것인가. (12쪽, <오버하는 사회>)

강준만이 보기에 이것은, 그가 <김대중 죽이기>부터 줄곧 지적해왔지만 심지어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조차 무감각한 바로 '그것'의 문제였다. 호남 차별, 혹은 그의 표현을 빌자면 "호남 혐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는 것이다.

분위기에 부화뇌동한 사람들도 있을 게다. 그러나 내가 더 주목하는 건 평소 노골적으론 발설할 수 없었거나 자신도 알게 모르게 갖고 있는 '호남 혐오' 감정을 '지역주의 청산'과 '정치개혁'을 빙자해 발산하는 경우다. 자신의 성향에 비추어 '민주화'라고 하는 가치에 정면 도전할 수는 없으니까 '민주화'를 외치는 정당에 지지를 보내기는 했지만 그게 호남 색깔이 강한 정당이라는 데에 늘 불편을 느꼈던 사람들이 '민주당 분당'에 얼씨구나 하고 지지를 보내면서 그 본색을 드러내고 나선 것이다. (같은 곳)

호남 혐오자, 그리고 "강한 가치 지향성을 가진 사람들로서 열린우리당이 내세운 명분에 공감하는 사람들"(13쪽, 같은 책)까지, 그들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동력을 민주당에서 얻은 후, 대선이 끝나자 민주당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자신들의 '비 호남당'을 만들어 떠났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을 되찾는 일이라고 강준만이 목놓아 외친지 고작 1년이 지난 후, <노무현 죽이기>와 <노무현 살리기>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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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오 상업주의>(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인물과사상사
<인물과 사상>은 2005년 1월, 통권 33권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월간지 <인물과 사상>은 현재까지 활발하게 발행 중이다. <편집자>) 강준만은 솔직하게도, 자신이 <인물과 사상>을 끝내기로 한 결정에는 "인터넷보다는 민주당 분당 이후 전개된 정치적 사태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머리말, <인물과 사상> 33권, 개마고원 펴냄)고 말하고 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른바 '개혁주의자'들의 (내가 보기에) 어두운 면을 너무 많이 보았고 너무 많이 겪었"으며, "내가 옳다고 믿는 게 이른바 '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 절대 다수의 생각과 충돌할 때엔, 나의 '퇴출'만이 유일한 해법일 것"(같은 곳)이라고, 마지막 <인물과 사상>의 머리말에서 그는 씁쓸하게 곱씹었다. 강준만이 보기에 자신은, 마치 노무현의 당선의 발판이 되었지만 버림받은 민주당과도 같은 신세였을 것이다.

실패한 것은 논객으로서의 강준만 뿐만이 아니었다. '언로의 자유시장'을 통해 언론 개혁 운동을 하고자 했던 '글쟁이', 혹은 언론학자 강준만 역시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가 만들어낸 방법론, 즉 자신이 비판하고자 하는 상대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자신의 정파적 입장을 드러내는 글쓰기는, '저널룩'보다 인터넷에 더욱 적합한 양식이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큼 글을 빨리 쓰는 강준만조차 석 달에 한 권, 1년에 네 권의 <인물과 사상>을 내는 것이 한계였지만, 인터넷에서는 언제나 실시간으로 새로운 글이 올라오고 그에 따라 피드백이 오갔다. 사람들은 강준만의 책에서 배운 논리를 인터넷에서 확대재생산하기 시작했고, 이미 노무현 당선이라는 고지에 오른 이상 강준만이라는 사다리가 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었다. 강준만 스스로가 그 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간 출판계가 자구책으로 모색해온 방향은 '실용'과 '서구 지향적 교양'인 것 같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 몇 년간 그 이전과는 달리 시사적인 이슈를 다루는 책이 대중의 호응을 얻은 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정치 분야가 그렇다. 왜 그럴까? 인터넷이 그 기능을 완전히 흡수해버렸기 때문이다. (같은 곳)

<인물과 사상>의 마지막 주제가 '인터넷 시대의 글쓰기'인 것은 그런 면에서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인터넷에서 글을 쓰고, 민주당 분당 이전에 강준만이 만들어놓은 논리 구조를 재생산하는 사람들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 분당 이후 더더욱 강준만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지난 두 차례의 대선과 달리, 2007년, 강준만은 침묵을 지켰다. 대신 그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다는 작업에 비로소 몰두하게 된다.

나는 시사적인 글은 <인물과 사상>에만 국한시키면서 그간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작업에 몰두하고 싶다. 그건 바로 사회사(社會史)요 문화사(文化史)다. 물론 나는 그 작업을 내 전공 분야라 할 언론과 대중문화 중심으로 다루겠지만, 정치·경제·사회·문화 그 어느 분야도 따로 독립돼 있는 게 아니라 상호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걸 보여 드리고 싶다.

그간 내가 몸담고 있던 언론학계에서는 언론사(言論史) 저서들이 수십여 권 출간되었다. 그런데 나는 그 저서들이 오로지 언론만 다루고 있는 걸 아쉽게 생각해 왔다. 나는 언론을 다루면서도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주요한 흐름은 물론 언론이 그것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걸 보여주는 책을 쓰고 싶었다. (5쪽, <자기 검열의 시대>(인물과사상사 펴냄), 1998년)


97년 대선에서 김대중이 승리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또한 본인이 추진하는 <인물과 사상>이 성공적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며 강준만은 큰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것이 자신의 마지막 칼럼집이 될 것이라고, <인물과 사상>을 제외한 다른 지면에는 시사 문제를 다루지 않고, 본연의 관심인 문화사와 사회사에 집중할 것이라고, 천진난만해 보이기까지 하는 어조로 언론학자 강준만은 자신의 포부를 내뱉었다. 그것이 1998년의 일이다. 그는 7년 후의 자신이 어떤 성공을 겪고, 또 얼마나 철저한 패배를 맛본 후, 비로소 꿈꿔왔던 작업을 시작하게 될지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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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소통법>(강준만 지음, 개마고원 펴냄). ⓒ개마고원
<오버하는 사회> 이후 강준만은 무지막지한 생산력을 과시하며 문화사, 사회사, 언론사 관련 서적들을 쏟아냈다. 모든 신문과 정기간행물을 확인하고 주요 논객들의 발언을 정리하여 반박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에너지가, 이제는 본의 아니게 그것 말고는 따로 할 수 있는 일도 없게 된 상태에서 몰입하게 된 문화사로 쏟아졌다.

그러나 강준만은 강준만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발언을 멈추지는 않았다. 다만 그 논조가 너무도 달라졌을 뿐이다. 명시적 당파성을 주장하던 그가, 이제는 이런 맥 빠지는 소리나 하면서 '소통'과 '상생'과 '대화'를 강조하고 있다.

민주화 투쟁 시절 이념과 인격의 충돌이 빚어질 때 '이념 우위'가 다수의견이었겠지만, 이제 그런 구도는 사라졌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은 '인격 우위'라고 할 수는 없을망정 인격이 이념 못지않게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오만한 개혁이 성공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혁의 생명은 겸손이다. 겸손해야 사람이 모이고, 소통이 가능해지고, 성공의 길로 갈 수 있다. (98쪽, <대한민국 소통법>(개마고원 펴냄))

이 책엔 그 어떤 당파성도 없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다기보다는 내가 그 어떤 당파성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당파성이 없는 게 좋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나의 초당파성은 개인적인 특수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 또한 과거에 뜨거운 당파성을 갖고 글쓰기를 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가 과도한 격정과 그에 따른 극단적 당파성에서 기인한다는 사실을 체험을 통해 절감한 이후엔 '소통'을 역설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이 책에 그 어떤 당파성이 있다면 그건 바로 소통을 강령으로 삼는 당파성일 것이다. (12쪽, <현대 정치의 겉과 속>(인물과사상사 펴냄))

인물 중심주의를 넘어서자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할 사람들에게 한 말씀 더 드리고 싶다. 정치에 참여하는 재미와 보람이 어디에 있는데, 이슈 중심으로 전환하란 말인가?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감정의 몰입까지 수반하는 재미와 보람이 우선이며, 이슈와 대의에 대한 판단은 부차적이거나 지지하는 인물의 뜻에 따를 뿐이라는 것, 바로 이게 문제라는 말이다. 계속 이런 문제를 껴안고 가겠다면 할 말은 없지만, 다른 지지자 단체도 그렇게 함으로써 소통은 불능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408쪽, <강남 좌파>(인물과사상사 펴냄))

누가 해도 김빠진 콜라처럼 들릴 수밖에 없는 이런 말을, 다른 그 누구도 아니라 강준만이 하고 있다는 것에서 오는 실망감을 잠시 접어두고, 텍스트를 좀 더 꼼꼼하게 읽어보자. 대체 여기서 강준만이 '소통'하자, '화해'하자고 말할 때, 그 메시지의 수신자는 누구인가? 현재 새누리당이 되어있는 한나라당에게도 물론 소통하자, 화해하자는 좋은 말을 할 수야 있겠지만, 그쪽이 주된 청취자가 아님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이 공허한 말들은 결국, 민주당 분당 이전의 상태를 희구하는, 돌아올 수 없는 시절을 향한 추억의 노래에 가까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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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정치의 겉과 속>(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인물과사상사
그 와중에 강준만은 2012년 대선을 맞이하여, "증오 시대의 종언"을 외치며 <안철수의 힘>(인물과사상사 펴냄)을 들고 나왔다. 안철수라면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지 않는 대화합시대를 열 수 있다고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주장했지만, 그 말을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안철수가 민주당 후보로 거론되었던 것은 그가 부산 출신의 엘리트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호남색'이 전혀 없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친노'라는 과거의 멍에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는, 대중적 인기를 지닌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안철수를 후보로 앉혀서 대선을 치르는 것과, 이미 곪을 대로 곪고 찢어질 대로 찢어진 구 민주당 계열 내부의 갈등을 수습하는 일은, 전혀 같지 않다.

강준만이라고 해서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2003년 민주당 분당 사태 이후의 강준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정치논객 강준만이 오히려 그러한 정치적 매커니즘을 더욱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심지어 책에도 써놓았다. 그의 초기작인 <김대중 죽이기>를 펼쳐보자.

호남 정치인이 영남 정치인을 도왔다고 해서 나중에 영남당을 장악하겠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그러나 영남 정치인이 호남 정치인을 도왔을 경우엔, 나중에 호남당을 장악하겠다는 게 그리 무리한 일로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왜? 호남은 고립돼 있기 때문이다. (356쪽, <김대중 죽이기>)

안철수의 귀국과 노원병 재보선 출마 이후 진행되고 있는 정치적 상황을 보면, 후기 강준만의 바람대로 화해와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대신, 부산 출신의 엘리트 안철수가 민주당 후보뿐 아니라 그 지역구의 의원이었던 노회찬의 부인 김지선까지 가볍게 누르고 당선되었을 뿐이다. 안철수는 민주당을 돕지 않고도 '호남당'을 장악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심지어 만들어지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이 민주당과 새누리당을 넘어 지지율 1위를 기록하기까지 한다. 강준만과 그가 지지하는 세력에게, '소통'을 제안할 수 있을만한 힘이 남아있긴 한 것일까.

9.
강준만은 다른 그 누구보다, '전기 강준만'과 '후기 강준만'의 소통을 주선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나는 나의 글쓰기에 대해 '상업주의'라는 비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미련함 또는 교활함에 혀를 끌끌 차"(15쪽, <인물과 사상> 19권)게 된다던, "상업주의를 비판하는 주장마저 상업주의의 힘을 빌리지 않고선 유포될 수 없다"(16쪽, 같은 책)던 전기 강준만은, 아예 <증오 상업주의>라는 책까지 낸 후기 강준만과 어떤 대화를 어떻게 주고받을 것인가.

2010년부터, 즉 2012년 대선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오르던 시점부터 강준만이 쓴 정치적 텍스트는, 거의 대부분 위와 같은 방식으로 그가 썼던 10여 년 전의 글과 가파르게 충돌한다. 이것은 마치 무기 상인이 평화운동가가 되는 모습을 보는 것과도 흡사한 그런 이상한 느낌을 준다. 물론 사람이 자신의 지난 행적을, 그것이 옳건 그르건 무조건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고수하는 것은 결코 건강한 행동이 아니겠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후기 강준만'이 좀 더 책임감 있게 '전기 강준만'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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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 좌파>(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인물과사상사
가령 우리는 강준만이 <김대중 죽이기>에서 박찬종을 비판할 때 썼던 그 논리를 고스란히 안철수를 향해 휘두를 수 있다. 기존 정치권에 대한 혐오를 자신의 인기의 동력으로 삼는다고, 엘리트에 대한 대중의 동경심에 바탕을 두고 포퓰리즘 정치를 수행한다고, 기타 등등 강준만이 박찬종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낸 화법은 거의 어김없이 안철수에게도 적용 가능하다. 물론 강준만은 "알고리즘으로 놓고 보자면, 안철수 현상은 한국형 포퓰리즘의 업보였지만, 콘텐츠로 놓고 보자면, 한국형 포퓰리즘의 원인이 된 증오 상업주의의 전면 타파"(206쪽, <증오 상업주의>)였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박찬종 역시 알고리즘으로 보자면 양김시대의 업보였지만, 콘텐츠로 보자면 양김시대의 전면 타파였다.

본인이 제2당을 지지하던 시점에는 양자 대결을 선호하고, 최대한의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대립구도를 선명하게 세우는 쪽에 방점을 두었지만, 제3당 혹은 제3후보를 지지하게 되자 증오와 갈등과 대립은 모두 넘어서야 할 일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개별적인 입장이 낳는 어떤 논리필연적인 결론이지만, 그는 단순한 논객이 아니라 학자이므로, 이 갈등을 좀 더 보편적인 차원에서 접붙여줘야 할 사회적 의무를 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0.
강준만이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다른 논객들을 실명비판하기 시작하면서, 한국 지성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강준만은 활자 매체를 보고, 인용해서, 비슷한 종류의 매체를 통해 타인들을 호명했다. 그 결과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근대적인 방식으로 의사소통하는 주체들이 대량생산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속에 담기는 내용은 전근대적이거나 혹은 탈근대적이었다. 조선말부터 이어지는 기득권 세력을 표상하는 하나의 언론사, 그 언론사에 맞서는 한 사람의 영웅, 그 영웅에게 자아를 의탁하는 나. 전근대적 자기 동일시는 탈근대적인 매체인 인터넷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고, 그들은 강준만이 김대중을 위해 만들어낸 후 노무현을 위해 갈고 닦은 논리를 무한증식했다. 그 과정에서 강준만의 실명비평이 가지고 있던 미덕, 즉 정확한 인용을 통한 상대방의 호출과 그로 인한 '주체'의 다양화는 지난 시대의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남은 것은 새된 목소리로 적대시하는 정치 세력에 대한 증오를 표출하며, 이렇게 솔직하게 내 정치색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중립'에 더욱 가깝다고 우기는, 일상을 지배하게 된 선거용 논리인 것이다. 이제는 아무도 종이신문을 읽고 그것을 인용하지 않는다. 강준만은 아직도 그렇게 하려나? 물론 지금도 이른바 '조중동'의 입김은 막강하지만, 그 힘은 그들의 판매부수 뿐 아니라 인터넷 조회 수에서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그 '조중동'이 <매일경제신문>과 더불어 종합편성채널, 즉 '종편'의 사업권을 따내면서, '나는 조선일보를 보지 않는다', 혹은 '나는 조선일보에 기고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성립하는 주체의 위상 또한 대단히 애매해졌다. 이제는 적지 않은 진보 논객들이 <조선일보>를 제외한 여타 신문에 기고하고, 을 제외한 나머지 종편에 서서히 출연한다. <조선일보>를 읽지 않고 그 신문에 기고하지 않는 것은, 한 해에 두 번씩 차례 상을 차리고 절을 하는 것만큼이나, 의식적인 차원에서만 유효하게 남은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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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의 힘>(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인물과사상사
정치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콘텐츠를 쏟아내기 위해 자신만의 구텐베르크 은하계를 만들어냈던 강준만은, 국가정보원이 출판사가 아니라 '일간베스트'나 '오늘의 유머'를 관리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대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MBC에서 30년을 근무한 손석희도 종편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진중권은 <중앙일보>에 칼럼을 쓰며, '진보도 상업주의적일 수 있지 않느냐'고 따져 묻던 강준만의 최근 저서 <증오 상업주의>는 2010년도 전북대학교 연구교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출간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만들어낸 형식의 주체들이 인터넷에서 양산되었고, 그들에 의해 자신이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강준만에게 무언가 해법을 요구하는 것은 잔인할 뿐 아니라 불필요한 행동처럼 보인다. 2003년 이전의 활동만으로도 충분히 강준만은 소진되었고, "나는 지식인은 철저히 소모되어야 한다고 믿는다"(9쪽, <인물과 사상> 6권)는 그의 말마따나, 어쩌면 그는 자신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분열된 자신의 입장을 모두 정리하지도 못한 채 '소통'과 '화합'을 외치는 강준만의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이 기여한 세상의 변화에 정작 스스로는 속하지 못한다는 것은 대단히 비극적인 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논객시대의 역사가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구텐베르크 은하계가 하이퍼텍스트와 소셜 네트워크로 산산이 바스러지고 있으며, 더 이상 '조중동'과 '한경오'를 나누어 네 편과 내 편으로 삼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이 세상 속에서도, 우리는 어떻게든 어떤 식으로든 위엄 있는 주체로 거듭나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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