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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기자·과학자의 공통 필독서!

[이명현의 '사이홀릭'] 마굴리스·푼셋의 <과학자처럼 사고하기>

지난 2011년은 내게 무척 아쉽고 안타까운 한 해였다. 온 가족이 함께 오랜 친구들을 찾아 떠나는 긴 여행이 계획되어있었다. 서로의 일정도 조율이 거의 끝난 상태였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해 오던 일을 정리하고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지난 반세기 동안 외계지적생명체 탐색(SETI)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했던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는 작업이었다. 2008년에 파리에서 열렸던 한 SETI 학회에서 이런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더니 학회에 참가한 동료들의 반응이 의외로 좋았다. 2009년 10월에 대전에서 열렸던 국제우주대회에 참가했던 SETI 과학자 몇 분과 이 작업을 구체화하기 위한 미팅을 했었다. 3년 계획으로 생존해 있는 1세대와 2세대 SETI 연구자들을 모두 인터뷰한 후 책으로 묶자는 것이었다.

2010년 초반에는 인터뷰할 대상 목록 작성을 마쳤다. 인터뷰 진행은 내가 맡기로 했다. 두 번 정도 인터뷰 여행을 할 수 있는 재원도 마련되었다. 첫 인터뷰는 2011년 3월에 이탈리아에서 세 명의 SETI 과학자들을 인터뷰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잠정적으로 '세티 아카이브(SETI Archive)'로 하기로 했었다. SETI 연구소를 방문하는 2011년의 두 번째 인터뷰 여행 일정을 잡기 위해서 조율 중이었다.

2010년 말 나는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졌고, 아쉽게도 야심차게 준비했던 2011년의 계획들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내가 과학자들을 인터뷰한 책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유학 시절 읽었던 (Alan Lightman·Robert Brawer 지음, Havard University Press 펴냄) 때문이었다. 현대 우주론을 개척하고 완성한 살아있는 27명의 천문학자와 물리학자들의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막연하게 나도 나중에 저런 책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남아있어서였을까.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이런 저런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고 진행해왔다. 한 달에 세 명을 인터뷰 하고 기사 세 편을 써서 한국천문연구원 뉴스레터에 1년 동안 연재한 적도 있었다. 힘든 작업이었지만 언젠가 작업하게 될 나의 인터뷰 책을 위한 연습이라고 생각했었다. <문더스트>(앤드루 스미스 지음, 이명현·노태복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를 번역하면서 인터뷰를 통한 책 쓰기 방식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를 가졌다. 이런 작업들의 수렴점이 세티 과학자 인터뷰 프로젝트가 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자처럼 사고하기>(린 마굴리스·에두아르도 푼셋 지음, 김선희 옮김, 이루 펴냄)는 내겐 의미가 남다른 책이다.

"이 책에 수록된 36편의 인터뷰는 독자들로 하여금 몇몇 탁월한 과학자들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주며, 그들이 어떻게 사고하고 자신의 어떻게 작업을 바라보는지 보여 준다."

▲ <과학자처럼 사고하기>(린 마굴리스·에두아르도 푼셋 엮음, 김선희 옮김, 이루 펴냄). ⓒ이루
데이비드 T. 스즈키가 추천의 글에 쓴 것처럼 이 책의 핵심은 당연히 과학자들의 이야기에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마땅히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독서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내 관심사는 애당초 이 책의 내용이 아니었다. 인터뷰어의 인터뷰 진행 방식에만 관심이 쏠려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책을 읽는 동안만은 이 책은 적어도 내게는 인터뷰 기술을 일러주는 실용서였다.

인터뷰 기사 앞에 '도입' 부분을 배치한 것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 부분은 인터뷰어 자신이 마땅히 숙지해야할 내용을 정리한 것이기도 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인터뷰하려고 하는 사람의 입에서 어떤 내용이 나올 것인지 상상할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익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한 과학자의 인터뷰에서 다른 과학자의 인터뷰로 넘어가는 동안 휴지기를 갖게 해주는 역할도 하는 것 같다.

인터뷰 기사의 끝을 일관성 있게 충분히 긴 인터뷰이의 진술로 마감하고 있는 것도 적절해 보였다. 정리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안정감이 돋보였다. 인터뷰 진행의 흐름도 시원해 보였다. "쥐는 기하학적인 형태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기하학적 장소에 가둬 놓으면 무척 우울해합니다"라고 정리를 하다가 "하지만 쥐에게는 융통성이 있지 않나요?"하면서 내용을 받아치는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질문과 정리를 적절하게 섞어서 진행하는 인터뷰 방식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 보였다. (물론 긴 녹취 원고에서 쳐내고 쳐내면서 간략한 포맷이 나온 것이겠지만.)

내가 이 책에서 특히 관심을 갖고 살펴본 부분은 인터뷰 시작 부분이었다. 인터뷰를 어떻게 어떤 말로 시작하는가 하는 것이 그 인터뷰의 분위기와 결과에도 제법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게 네 가지 정도의 패턴이 보였다.

"동물은 기계와 다르다고 말씀하시지만, 동물의 학습 과정은 매우 정교하고 때로 인간의 학습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원칙에 의해 지배된다고 해야겠죠."

"선생님은 진화의 역사에서 우리가 더 위대한 것을 향해 나아간다는 어떤 표지도 보지 못한다고, 진화에서 진보의 방향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종종 말씀하셨죠."


핵심 인터뷰 주제에 대한 인터뷰이의 평소 견해를 간략하게 정리를 하면서 자신의 질문이나 의문 내용을 살짝 가미하는 도입인 것 같다. 인터뷰의 주제뿐만 아니라 방향까지도 넌지시 제시하는 방식인 것 같다. 차분하게 이야기를 끌어내기에 좋은 도입이다.

아래와 같은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인터뷰를 시작하면 처음부터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에 대한 인터뷰를 할 때 효과적인 도입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릴라는 악명이 높지 않습니까?"

"사이코패스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그러니까 우리의 몸은 기계처럼 정신이 없다는 건가요?"

"우리가 지구 너머에서 생명을 발견한다면 우주에서 로봇을 발견할 수도 있을까요?"


아무래도 긴 호흡을 갖고 천천히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인터뷰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럴 땐 역시 일상의 이야기를 던지고 워밍업을 하면 좋을 것이다. 특히 인터뷰이의 특별한 상황을 화제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은 캘리포니아의 스탠포드 근처에 있고, 저는 바르셀로나에 있습니다. 9시간의 시차가 있네요."

"선생님 서재는 오악사카에 대한 책으로 가득 차 있네요. 그곳의 요리며 식물에 대한 책이 많습니다. 오악사카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드셨나요?"

실제 인터뷰에서는 어쨌든 인터뷰어가 첫 번째 말을 꺼냈겠지만, <과학자처럼 사고하기>에서처럼 가끔씩은 인터뷰어의 질문 대신 인터뷰이의 서술을 첫 문장으로 내세우는 것도 좋아 보였다. 너무 빤한 첫 질문을 던져야할 때 사용해 볼만한 기술이다. 폴 데이비스를 인터뷰한 글은 인터뷰어가 아닌 인터뷰이 폴 데이비스의 사설로 시작되고 있다.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시간을 여행하지만 미래로의 여행일 뿐 과거로 돌아가지는 못합니다. 과거 여행이 어려운 것은 기술의 발달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100년 안에 우리가 미래로 여행할 수 있겠느냐고 제게 묻는다면,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대답하겠습니다. 과거로 여행하는 법을 알아내는 데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인터뷰 진행에 대한 관찰이 끝나자 이번에는 '나라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이 책을 다시 보게 되었다. 물론 편집자의 정리가 주효했겠지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설명을 주어진 시간 안에 가능한 한 명확하고 간결하게 하는 특성을 갖고 있었다. 그들의 인터뷰 자체가 그렇게 진행되었는지 편집자의 마술의 손을 거쳐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명확하고 간결한 설명'이 모범답안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 할 수 있었다.

<과학자처럼 사고하기>는 인터뷰어나 인터뷰이 모두에게 모범적인 하나의 전형이 될 만한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한 특별 손님이 들려준, 매력적이지만 서로 무관한 장들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다. 남을 가르치려 드는, 이해할 수 없는 전문가들의 고결한 목록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과학적 탐구가 갖는 제한적인 성격이 열정적인 과학자들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커다란 질문의 맥락 속에서 드러난다. 우주의 본질은 무엇인가?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어떻게 생겨났고, 진화했으며 그리고 죽음이란 정말 무엇인가? 어떻게 인간의 마음은 마음의 물리적, 사회적 환경을 지각하는가? 독자들은 인터뷰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자신의 정직한 탐구에 기이할 정도로 몰입한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퍼즐의 작은 조각을 설명하려는 열의가 열성적인 대답에서 바로 느껴진다. 우리의 짧은 논평, 참고문헌, 가끔씩 등장하는 각주는 독자들이 자신의 길을 찾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과학적 탐구 결과의 잠재적 연계성은, 최소한 원칙적으로는 과학 연구가 어떻게 결국에는 일관되고 단일한 전체의 모습을 형성하는지를 보여준다. 과학은 우리에게 쉽고 보편적인 대답을 주지는 않지만, 연구는 모든 곳의 모든 사람을 위한 커다란 질문의 해답에 진실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린 마굴리스가 쓴 '서문을 겸한 감사의 글'에서 적시한 것처럼, <과학자처럼 사고하기> 독서의 핵심 중 핵심은 세상만사에 대한 과학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나는 첫 번째 독서에서 사심을 다 채웠고 이제 핵심으로 돌아가 이 책을 다시 읽으려고 한다. 독서를 즐기는 독자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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