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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도 이해하는 우주' 그럼, 이해 못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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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도 이해하는 우주' 그럼, 이해 못한 나는?!

[이명현의 '사이홀릭'] <한 권으로 충분한 우주론>

아무리 양보하려고 해도 도통 신뢰가 가지 않는 책들이 있다. '하룻밤에 읽는', '3일 만에 완성하는', '침팬지도 이해하는' 또는 '한 권으로 충분한' 따위의 수식어가 붙은 제목을 달고 있는 책들이다.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수사적 표현이라는 것은 나도 안다. 일단 관심을 끌어야 책의 진정성도 보여줄 것이 아니겠느냐는 어느 편집자의 비장함도 이해한다. '프레시안 books'도 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서평에 낚시용 제목을 다는 일이 이젠 일상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늘 궁금했다. 편집자들은 이런 제목을 붙이면 정말 책이 더 잘 팔린다고 생각하는가. 진짜 더 잘 팔리는가. 독자들은 이런 제목 때문에 실제로 책을 사는가. 인터넷 매체에서 낚시용 제목을 달면 조회 수가 높아지는 것은 명백한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조회수와 열독률이 비례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위에 언급한 종류의 책 제목과 판매량 사이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자료를 본 적은 없다. 몇몇 편집자들에게 개인적으로 물어본 결과도 신통치 않았다. 그럴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과 기대감만 있었다.

이런 현상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다루려고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대체 어떤 내용을 책에 써놓았기에 감히 그런 수사를 붙인 제목을 달았는지가 궁금했을 따름이다. 하기야 '한 권으로 충분한'이라는 말 자체가 추상적이고 받아들이는 개체마다 기준이 다를 터이니 진짜 '한 권'으로 '충분'한가 이런 논쟁은 쓸데없는 공론에 불과할 것이다. 메모리칩을 뇌에 바로 연결시켜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주입하는 세상이 온다고 한들 '충분'이라는 말을 충분히 충족시킬 수가 있겠는가.

▲ <한 권으로 충분한 우주론>(다케우치 가오루 지음, 김재호·이문숙 옮김, 전나무숲 펴냄). ⓒ전나무숲
나는 아직도 책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다 보니 아무리 엉터리 책이라도 지은이의 땀과 노력이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솔직히 '한 권으로 충분'하다느니 '침팬지도 이해'한다느니 하는 제목을 단 책을 보면 모든 것을 날로 먹으려는 심보 같아서 괜한 심술이 나곤 한다. 지은이나 독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지은이가 그런 제목을 제안했다면 그것은 책을 팔아야하는 저술 노동자의 절박함의 표시라고 생각한다.

늘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놓았을까.

진짜 하루 만에 한 권만 읽어서 무엇인가를 건져야겠다는 생각이었으면 '한 권으로 충분한'이라는 수식어 다음에 내 욕망을 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을 골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용과 체제에 대한 호기심이 앞서는 작업이니 무난한 것을 골라 읽기로 했다. 그나마 내 자신이 내용을 평가해 볼 수 있는 책을 찾다보니 <한 권으로 충분한 우주론>(다케우치 가오루 지음, 김재호·이문숙 옮김, 전나무숲 펴냄)이 눈에 들어왔다.

"과학 단행본의 편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독자와의 눈높이 맞추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과학은 어렵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늘 화두는 '어떻게 하면 과학을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것이 원래 이론적인 데다 그 배경이 되는 물리학적, 화학적 지식이 없으면 핵심 논리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과학의 대중화'라는 말에는 어느 정도 모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의 편집자의 이런 고민에 대해서 과학을 일반인들에게 전하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동감할 것이다. 나도 강연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정해진 시간이나 지면 속에 어떻게 하면 가능한 한 정확한 정보를 가장 쉽게 풀어서 녹여 넣을 것인지 늘 고민한다. 물론 아직도 명확한 해법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어디서부터 첫 이야기를 시작해야할 것인지도 늘 고민이다. 한번은 어느 여자대학교 공연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는데 주제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잡았다.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나를 초청했던 교수의 걱정도 컸다. 한 시간 동안 상대성이론 이야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거두절미 하고 상대성이론의 기본적인 내용을 깊은 설명 없이 소개하고 바로 상대성이론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현상에 초점을 맞췄다. 또 한 번은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대성이론을 강의한 적이 있었는데,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피타고라스 정리를 일반화시키는 방식으로 일반상대성이론의 기본적인 수식을 유도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강연의 목표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시도해서 성공했던 몇 안 되는 강연들이었다.

<한 권으로 충분한 우주론>에는 각 주제 별 내용의 난이도에 편차가 좀 있었다. 이는 주로 이론이나 현상을 설명하는 시작점을 어디서부터 잡았는지에 따라서 발생한 불균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위에 소개한 성격이 다른 두 강연이 한 권의 책 속에서 재현된 것 같았다. 그만큼 어려운 지점이라는 반증이기도 할 것 같다. 일본인이 쓴 책이니 일본 과학계의 업적을 소개하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선상에서 논의하기에는 좀 낯간지러운 내용을 나란히 배열한 것은 좀 아쉬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시각화를 통한 명쾌한 이해'를 가장 잘 적용한 우주론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 '어려운 과학', 특히 '우주론'과 관련해서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책과 씨름해본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일독해볼 것을 권한다. 천동설에서 최신 우주론에 이르기까지 우주와 관련한 과학적 지식을 전부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한 권으로 충분한'이라는 수식을 사용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편집자의 글에는 이 책을 펴낸 의도가 직접적으로 잘 드러나고 있다. 일단 시각화에 승부를 걸겠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실제로 적절한 그림이 적절한 곳에 인용되고 있어서 우주론의 개념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아보였다.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림은 그림일 뿐이다. 상대적으로 그림의 내용을 설명하는 본문이 빈약했다. 시각화의 목적이 개념의 이해를 돕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그림은 잘 정비된 반면 서술은 그림의 장점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듯해서 아쉬웠다.

<한 권으로 충분한 우주론>은 편집자의 의도대로 어쩌면 '한 권으로 충분한' 우주론 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현대우주론의 표준모형부터 아직은 가능성으로만 회자되고 있는 다른 우주론들까지 잘 정리해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현대우주론의 판도를 거시적으로 파악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한 권으로 충분한'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법도 하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모두 다 다루려다보니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하고 차분하게 설명하고 넘어가지는 못했던 것 같다. 마치 단답식 퀴즈를 위한 책 같았다. 내용 요약은 훌륭하게 잘 되어있었지만 이들 간의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찾기는 힘들었다.

그저 한 권의 책을 본 것에 불과하지만 '한 권으로 충분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책에서 내용을 어떤 식으로 설명하고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한 권으로 충분한 우주론>은 대중 과학책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독자들에게 권하기보다 오히려 이미 많은 대중 과학책을 읽어온 독자들에게 먼저 권하고 싶은 책이었다. 내용의 압축도가 높기 때문에 이 책 한 권으로 그 내용을 파악하고 이해하기는 무척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과학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정리 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강의 자료에 포함시킬 몇몇 자료를 발견한 것이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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