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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공룡 화석! 왜 인류 조상 화석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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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공룡 화석! 왜 인류 조상 화석은 없나?

[프레시안 books] 션 캐럴의 <진화론 산책>

어릴 때 보던 TV 시리즈 <타잔>에는 거의 매회 백인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대개 둥근 챙 모자를 쓰고 주머니가 큰 베이지색 사파리 복을 입었다. 이들은 딱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장총을 어깨에 메고 앞을 보며 걷는 사람들이고 다른 부류는 장총을 손에 쥐고 무릎을 살짝 굽힌 채 위를 쳐다보며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이다. 장총을 어깨에 멘 사람은 좋은 사람, 장총을 손에 든 사람은 나쁜 사람일 확률이 높다.

지난 여름 마다가스카르 이살루 국립공원에서 딱 이런 복장을 한 사람을 한 명 만났다. 다행히 그는 장총 대신 카메라를 메고 손에는 지팡이를 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이 독일인이 말했다.

"인생은 탐험이다. 하지만 나이 일흔이 넘고 아내와 사별한 다음에야 진짜 탐험을 하게 되었다. 이번 탐험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바로 이 사파리 복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내 마음에 '탐험'의 불을 지폈던 로빈슨 크루소도 같은 복장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무인도에 정착하게 된 로빈슨 크루소도 탐험 복장을 갖추었는데, 계획에 따라 마다가스카르에 온 나는 마실 복장이라니…. 마다가스카르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독일 노인의 말대로 인생은 탐험이다. 태어난 것부터가 그랬다. 어린 시절 뒷산과 바닷가 바위틈이 우리의 탐험지였다. 하지만 거기는 어린 우리에게도 너무 좁았고 친구가 없다면 탐험은커녕 산책할 기분도 안 나는 곳이었다. 결국 우리는 <로빈슨 크루소의 모험>과 <해저 2만 리>로 멀리 탐험을 떠났다. 아! <엄마 찾아 3만 리>도 있었다. 나이가 제법 든 다음에는 진짜로 탐험에 나설 기회를 만들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탐험심이라는 원심력보다 귀소본능이라는 구심력이 언제나 더 컸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역사를 쓰지 못했다.

▲ <진화론 산책>(션 캐럴 지음, 구세희 옮김, 살림Biz 펴냄). ⓒ살림Biz
역사를 개척한 사람들은 모두 탐험가들이었다. 그들은 비범한 경험을 통해 뛰어난 업적을 이뤄냈다. 그들은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을 가고,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보며,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 냈다. <진화론 산책>(션 캐럴 지음, 구세희 옮김, 살림Biz 펴냄)은 자신의 꿈을 좇아 머나먼 땅을 여행하고, 야생의 이국을 보고, 아름답고 희귀하며 기이한 동식물을 수집하고, 이미 멸종된 동물의 화석이나 인류의 조상을 발견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목숨을 위협하는 고난과 상상할 수 없는 고독을 이겨내며 채집 활동을 하였다. 하지만 그들이 이뤄낸 것은 생존이나 채집 그 이상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수집가에서 과학자로 탈바꿈하였다. 그들은 자연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고 그들의 대답은 인류의 세계관을 영원히 바꿔놓을 혁명에 불을 질렀다. 새로운 세계관이란 바로 '진화'다.

이 책은 진화 이론이 아니라 진화 이론을 개척한 과학자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 책을 왜 읽어야 할까? 션 캐럴은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과학자들이 자신의 업적을 향해 걸었던 고난의 길을 곁에서 따라가면서 관찰하면 과학을 더 잘 이해하고 즐길 수 있으며 기억하기 쉬워진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찰스 다윈이 아니라 알렉산더 폰 훔볼트(제1장)다. 훔볼트가 모든 과학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까닭은 탐험을 통해 거의 모든 과학 분야에 중요한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그의 탐험은 후세 자연과학자에게 영감을 불어넣으며 그들이 밟을 길을 미리 닦아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는 '미스터리 중의 미스터리', '의문 중의 의문', '생물학 궁극의 문제'라는 종의 기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훔볼트는 과학 혁명 이전의 사람이었던 것이다.

저자 션 캐럴은 냉정한 사람이다. 훔볼트를 다른 열두 명의 과학자들과 단호하게 분리하였다. 훔볼트를 제외한 나머지 과학자를 3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제1부 '이론의 발전'에는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인물인 찰스 다윈(2장)이 가장 먼저 나온다. 그리고 그와 동시대인으로 자연 선택 이론을 만든 알프레드 월레스(3장)와 그의 동료 헨리 월터 베이츠(4장)가 소개된다.

2장은 찰스 다윈의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이한중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 2003년), <비글호 항해기>(샘터 펴냄, 2006년), <종의 기원> 그리고 에이드리언 데스먼드와 제임스 무어 공저의 <다윈 평전>(김명주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2009년>의 요약본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하지만 다윈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빤한 이야기들이다.

이 책의 장점은 3장부터다. 찰스 다윈에게 편지를 보내 깜짝 놀라게 했다, 그래서 다윈이 급히 논문을 써서 공동의 이름으로 발표했다, 라고만 흔히 알고 있는 월레스의 탐험이 펼쳐진다. 월레스는 노동자 계급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그는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수집해야 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찾은 종의 다양성과 각 종의 개체 간 차이 그리고 그것을 찾은 장소에 높은 관심이 생겼다. 이것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표본을 수집하는 사람의 관심이 아니다. 월레스가 과학자로 변신하는 과정이 생생하다.

1855년 보르네오 섬에서 우기를 보내던 월레스는 종들이 마치 '가지가 많은 나무'처럼 연결돼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오래된 나뭇가지에서 새로운 잔가지가 생겨나듯 새로운 종이 오래된 종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I think'로 시작하는 찰스 다윈의 1838년 메모와 같은 것이다. 월레스는 다윈이 거의 20년 동안이나 고민만 하며 차마 세상에 내놓지 못했던 바로 그 주장을 했다. (만약에 월레스가 없었다면 다윈은 끝까지 출판의 용기를 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월레스는 '생물 지리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그는 서쪽에 있는 보르네오 섬과 동쪽에 있는 뉴기니 섬의 생물 종의 분포에서 특이한 점을 찾았다. 서쪽의 섬에는 원숭이와 호랑이 같은 열대 동식물이 있고 동쪽의 섬에는 캥거루와 쿠스쿠스처럼 주머니가 달린 유대류만 산다. 양쪽 섬 사이의 거리가 30킬로미터에 불과한데도 살고 있는 새들도 전혀 다르다. 월레스는 동부의 섬들은 뉴기니, 오스트레일리아와 한때 서로 연결돼 있었고, 서부의 섬들은 아시아 대륙의 일부였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의 발견은 훗날 '월레스 선'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내가 알게 된) 새로운 사실 하나. 월레스 역시 다윈과 마찬가지로 맬서스의 '인구론'에서 적자생존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제3장의 주인공은 헨리 월터 베이츠라는 낯선 인물이다. 베이츠는 월레스의 동료로 월레스가 아시아로 떠난 뒤에도 아마존에 남아 총 11년 동안 탐험했다. <종의 기원>을 읽은 베이츠는 자신이 수집한 나비를 생각하면서 의태(擬態) 현상이야말로 자연 선택 과정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베이츠의 연구는 다윈의 진화 이론에 강력한 힘이 되었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자연 선택을 동물의 사육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는데, 자연으로부터 풍부하고 독립적인 증거를 무궁무진하게 제공하였기 때문이다.

월레스와 베이츠는 어느 주말 다윈의 집에 모여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세 탐험가들의 토론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제1부가 자연 선택이라는 이론을 만든 탐험에 관한 이야기라면, 제2부는 이 이론을 바탕으로 특정 생물 종을 탐험하는 이야기다.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 자바로 떠난 외젠 뒤부아의 탐험(5장), 버지스 혈암에서 '캄브리아기의 폭발'이라는 현상을 발견하고 캄브리아기에 생물이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라 그 이전에도 생물이 있었다는 것을 밝힌 찰스 스코트(6장), 몽골과 고비 사막에서 오비랍토르, 벨로시랍토르를 찾아낸 로이 채프먼 앤드류스(7장)의 이야기는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보는 것 같다. 백악기와 신생대 제3기의 경계(K/T 경계)에서 공룡의 대멸종 원인을 밝힌 윌터 앨버레즈(8장)에 이르면 이제 탐험에는 물리학과 화학 그리고 우주학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9장과 10장은 다시 '잃어버린 고리'에 관한 이야기다. 9장에서는 존 오스트롬이 공룡과 조류를 이어주고, 10장에서는 닐 슈빈이 어류와 네 발 달린 척추동물을 잇는다.

제3부는 인류의 역사에 관한 비교적 잘 알려진 탐험가들의 이야기다. 진화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사람들 가운데 인류의 진화라는 주제가 나오면 열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주장 가운데 하나는 "왜 인류 조상의 화석은 없는가?"라는 것이다. 사실 무지 많다. 구하기가 정말 힘든데도 말이다. 작가 션 캐럴은 제3부의 머리말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다.

"왜 박물관 전시관과 보이지 않는 창고에 공룡 화석이 수북이 쌓여있는지 한번 생각해볼 만하다. 공룡이 남긴 뼈는 그 크기가 엄청나 찾기 쉬울뿐더러 다른 것보다 쉽게 부수지지 않고, 마지막으로 공룡은 지질학적으로 꽤 긴 시간동안 번성했던 동물이 아닌가.

원시 인류 화석을 찾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완전히 다른 문제다. 우리의 조상은 떼를 지어 드넓은 대륙을 떠돌아다니지도 않았고, 해저 깊숙한 곳에 살지도 않았다. 또한 다른 동물들처럼 그 수가 많지도 않았고 시간과 공간이라는 차원에서 훨씬 더 제한된 분포를 보였다. 몸통뼈는 두개골로부터 쉽게 분리되고, 두개골은 조그만 충격에도 산산이 부서진다."

11장은 루이스 리키와 그 가족의 탐험 이야기다. 재밌는 사실 둘. 루이스 리키는 신앙심이 매우 돈독해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선교사가 되고 취미로 조류학을 즐기려고 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그가 학업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제출한 서류는 키쿠유 부족의 말을 완벽하게 한다는 부족장의 인증서였다.

루이스 리키는 1963년 호모 하빌리스 화석을 발견하고 유명해지자 주로 강연 등의 활동을 하고 화가 출신의 아내 메리 리키가 다수의 고인류 화석을 발견한다. 루이스의 세 아들도 고인류 화석 발굴에 참여하는데 이 가운데 둘째 아들 리처드 리키는 1972년에 호모 루돌펜시스 화석을 발견한다. (<진화론 산책>의 원서는 종의 기원 발간 150주년이 되던 해인 2009년 출간되었으므로, 리처드 리키의 아내 미브 리키와 딸 루이즈 리키가 올해 호모 루돌펜시스를 새로 발견한 이야기는 당연히 안 나온다.)

12장과 13장의 탐험은 사뭇 다르다. 분자 생물학이 탐험 수단이 된다. 12장은 1954년에 특정한 연구에 대한 공로가 아니라 그 동안의 모든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 화학상을 받고, 1963년에는 핵무기 실험 금지 운동의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라이너스 폴링이 그 주인공이다. 라이너스 폴링은 다윈의 <종의 기원>과 조지 게일로드 심슨의 <진화의 의미>를 읽고 화학자에서 반핵 운동가로 진화했다. 그는 반핵 운동가로 활동하면서도 화학 연구를 진지하게 했으며, 알부민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 변화 연구를 통해 분자시계 개념을 만들었다. 이로써 그 전까지 진화 연구가들이 사용했던 화석과 방사성 동위 원소라는 시간 측정 도구에 새로운 기준이 생긴 것이다.

인간 알부민과 비교해 보면 침팬지와 고릴라 알부민이 가장 비슷했으며, 그 뒤를 이어서 긴팔원숭이, 오랑우탄, 큰긴팔원숭이 같은 아시아 영장류, 구대륙 원숭이, 신대륙 원숭이, 여우원숭이와 안경원숭이 같은 선유인원의 순서로 인간 알부민과 달라지는 결과가 나왔다. 이로써 '유인원, 인간, 구대륙 원숭이가 3000만 년 전에 동시에 공통 조상에서 갈라졌다'라는 1967년 당시 고생물학계의 이론은 폐기되었으며, 유인원은 불과 1000만 년 전에 기원했고 인간이 유인원에서 갈라진 시점은 500만 년 전으로 훨씬 더 최근이라는 생각이 등장했다.

13장의 주인공은 앨런 윌슨과 스반테 파보다. 그들은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의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을 통해 인류의 기원을 추적했다. 그 결과 아프리카의 호모에렉투스가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로 진출해 거기서 현대인으로 진화했다는 다지역 기원설이 폐기되고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호모사피엔스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아프리카 기원설이 정설로 받아지게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탐험지는 없는 것인가? 션 캐럴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라면 하나의 여정이 끝날 때, 아니면 어떤 일의 기념일이 다가올 때 그동안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무엇이 펼쳐질 것인지 잠시 생각해보는 것이 당연하다."

2001년 미국의 국립과학연구협의회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다른 행성에 존재하는 생명체를 발견하는 것이 아마도 21세기에 일어날 가장 중요한 과학적 진보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철학적으로 매우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푸하! 이제 탐험을 떠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사파리 복 구입도 어려운데 이제 우주복은 어디에 주문해야 한단 말인가!

지금까지 나온 션 캐럴의 책은 모두 세 권이다. <이보디보 : 생명의 블랙박스를 열다>(김명남 옮김, 지호 펴냄, 2007년), <한 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 이야기>(김명주 옮김, 지호 펴냄, 2008년) 그리고 이번에 나온 <진화론 산책 : 소설보다 재밌는 진화의 역사>. 세 권 모두 놓칠 수 없는 책이다. 특히 <이보디보>는 진화를 연구하는 새로운 학문인 '진화 발생 생물학'을 소개하는 최고의 책이다. 아직 션 캐럴의 책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진화론 산책>→<한 치의 의심도 없는 진화 이야기>→<이보디보>처럼 발행 연도의 역순으로 읽을 것을 권한다.

<진화론 산책>의 원제는 다. 원제보다는 번역서의 제목이 내용을 더 잘 담은 것 같다. 하지만 뭔가 부족해 보인다. <진화론 모험> 또는 <진화론 탐험>은 어땠을까? 이 책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주인공들은 자연사박물관을 제집 드나들 듯 했다. 아직 사파리 복을 구입하지 못하셨다면 자연사박물관에 오시라. 마실 복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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