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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안은 부산의 미래, 핵폭탄 피해자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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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안은 부산의 미래, 핵폭탄 피해자는 안다

[초록發光] 탈핵 운동과 원폭 피해자는 만나야 한다!

30년이 조선 왕조 500년만큼 된다는 다이내믹 한국 사회에서 한 달 전의 기억을 복기해가며 글을 쓰려니 여러 상념으로 마음이 복잡하다. 굵직한 사건들이 하루에도 몇 건씩 새로 들이닥치는 일이 반복되니 정말 중요한 뉴스도 그 이면을 살피기 전에 다음 정보들에 밀려 잊히고 있었다.

통장 잔액이 3000원 밖에 없었다던 60대 노부부가 시신 기증을 유서로 남기고 자살한 사건이 연예인의 열애설이나 이혼 소식과 나란히 뉴스 목록에 오르는 혼돈스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종종 일말의 통제 감각과 윤리적 판단력까지 잃어버리거나 유보시킨다. (당장 나부터 자주 그런 상태가 됨을 고백하련다. 뉴스 읽기를 주저하고 그저 눈에 띄는 헤드라인만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뉴스 창을 떠나버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부산에 살기 시작한 이래로 나에게 존재론적 위협으로 다가온 '고리 1호기' 폐쇄를 위한 노력들이 온갖 뉴스의 홍수 속에 끼어 가끔씩 단신 뉴스 정도로만 취급되는 상황은 당혹스러움을 넘어 절망을 느끼게 만든다.

지난주부터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는 "고닥폐(리 1호기 치고 쇄)"라는 희한한 이름의 길거리 카페가 낮 동안 열리고 있다. 전국 70여 개 단체로 구성된 '고리 1호기 폐쇄를 위한 집중 행동'의 일환으로 주중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탈핵을 외치는 사람들이 시민을 만나기 위해 노상카페를 연 것이라고 한다.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통해 오늘 카페를 어떤 단체가 지켰고, 카페에는 누가 방문했고, 모금은 얼마가 이루어졌는지 소식들이 떠돈다. 길거리 카페와 선전전의 결합은 진입 장벽이 낮고, 인증샷 놀이하기 좋고, 또 그만큼 온건하다. 바로 그 착한 세련됨 때문에 참가자들은 안전한 거리에서 즐겁게 탈핵의 목소리에 동조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

그렇지만, 우리 좀 솔직해져 보자. 탈핵을 위해, 고리 1호기 폐쇄를 위해, 우리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 맞나? 6월 29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점검 결과 발표까지 2주라는 기한을 못 박고 시작된 탈핵 카페가, 착한 논평이, 탈핵을 소재로 한 문화 행사가 '할 만큼 하고 있다'는 자기 확인의 알리바이를 축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모든 운동이 굳이 엄숙하거나 비장해질 필요는 없다.

그러함에도 노란 우산과 말간 해바라기 그림을 들고, 전기 자급률 3퍼센트 미만의 서울에서 탈핵을 노래하는 모습은 너무도 온건해서 공명(共鳴)하기 어렵다. 가슴을 뜨겁게 하지는 못해도 잠시라도 덜컹 삶의 무게와 맞닿는 진정성은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탈핵 운동이 더 많은 현장과 더 두텁게 접촉하고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핵발전소이자 애초의 설계 수명을 이미 4년 이상 넘겨버린 고리 1호기는 큰 사고 없이 지금까지 운전된 것을 순전히 "운"이라 할 만큼 문제덩어리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벌어졌던 크고 작은 핵발전소 고장 및 사고의 20퍼센트가 고리 1호기에 집중된 까닭이다. 그래서 폐쇄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고, 반핵, 탈핵 진영에서는 고리 1호기 폐쇄를 탈핵을 위한 첫 단추로 받아들이고 이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내 마음의 한 곳에서는 온건한 참여와 몇몇 국회의원들의 힘을 지렛대 삼아 '고리 1호기 폐쇄'라는 정책적 합의가 '덜컹' 이루어질까봐 약간 걱정도 된다. 더 많은 현장과 아래로부터의 운동의 힘에 근거하지 못한 '핵발전소 폐쇄 결정'은 미래세대나 지역 주민들을 위한 예방적 조처의 결과가 아니라 그저 또 다른 경제성 논리로 수렴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일방적인 안정성 주장과 핵발전소 확대 정책 기조를 봤을 때, 이러한 정책적 합의에 도달하는 것도 정말이지 경천동지할만한 진전일 것이다.)

모든 운동이 그러하듯 탈핵 운동도 더 많은 사람이 딱딱해진 가슴 빗장을 열고 윤리적 감각을 회복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옳을 터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의롭지 못한 핵으로 인한 피해를 불공정하게 감당하고 살아가고 있는 이해당사자들과의 더 많은 접촉 및 그들에 대한 윤리적 태도의 회복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해당사자들로는 핵발전소를 껴안고 살아가고 있는 지역 주민들, 핵발전소의 노동자들 그리고 핵 쓰레기의 부담을 안게 될 미래 세대가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이 세 집단 중 한국에서 탈핵의 직접 이해당사자로 탈핵 진영이 접촉해 볼 만한 집단은 현재로선 찾기 어렵다. 핵발전소 인근의 지역 주민들은 지역 발전 기금과 개별 보상이란 단물에 취해 핵 발전의 안전 강화 조처를 요구할 뿐이고, 한국에서 핵발전소들의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실태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미래 세대? 단군 이래 하루 270만 원씩 매일매일 써야 다 쓸 수 있다는 22조 원이라는 천문학적 숫자의 국민 세금을 단 4년 만에 강바닥에 처넣는 나라에서 미래 세대는 여전히 이해당사자로 거론되기 어려운 범주의 비가시적인 집단이다.

그렇다면, 탈핵 진영은 누구와 연대할 것인가? 구체적인 연대 없이 순치되어 온건한 탈핵 노래만 부르고 있어야 할까? 최근 다시 공사 재개로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 밀양의 주민들이 있고, 그리고 오늘 소개할 피폭 피해자들이 있다.

한 달 전인 5월 26일(토)에 부산 민주공원에서는 지난 2005년 35세의 나이로 타개한 원폭 2세 환우회 초대회장 故 김형률 씨의 추모제가 열렸다. <한국의 히로시마>라는 책을 쓴 일본인 이치바 준코에 의하면,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자 총 69만 명 중 조선인은 약 7만 명이나 되었다.

전체 피폭자 중 10퍼센트나 되는 비율인데, 더 주목해야할 점은 전체 피폭자 중 사망자가 약 3분의 1 정도인 반면 조선인의 경우엔 피폭자의 절반 이상의 사망하였다. 식민지 2등 국민으로서 조선인은 적절한 보상과 원호에서 오랫동안 배제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생존자 중 해방 후 귀국한 조선인들이 오랫동안 가난과 각종 질병에 고통당해왔는데, 김형률 씨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증명하듯 피폭의 후유증은 다음 세대로까지 전달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법적, 도덕적, 재정적 부담 때문에 미국과 일본은 피폭 후유증의 2세 대물림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김형률 씨는 생전에 병약한 몸을 이끌고 한국의 원폭 2세 환우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었다.

핵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관심과 무지는 군사적 이용으로서의 핵무기와 평화적 이용으로서의 핵 발전을 철저하게 분리해 왔다. (물론 이러한 분리는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 미국과 일본에서부터 유래되고 각인된 것이다.) 이러한 분리는 그에 대한 대응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핵전쟁에 반대하는 피폭 피해자 운동은 역사의 영역, 인권과 평화 운동의 틀 안에, 핵 발전에 반대하는 탈핵 운동은 대부분과 환경 운동을 위시한 시민 운동의 틀 안에서 구분된 채 이루어져 왔다. 지인들의 기억 속에서 김형률 씨 역시 생전에 "핵발전소"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7주기를 맞이한 올해의 추모제에서 김형률 씨를 추모하고 반핵에 동조하는 한일 양국의 참가자들은 "피폭 피해자들에 대한 정의가 바로 세워졌더라면 후쿠시마는 없었을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피폭자와 환우회의 고통이 제대로 기록되고 평가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현재 후쿠시마의 핵발전소 노동자와 주민과 가장 주요하게 후쿠시마의 어린이들이 그 고통의 전철을 다시금 밟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해당사자들과의 두터운 만남은 안전한 거리에서 착한 구호를 외치는 온건한 캠페인에 진실과 진정성을 가져다 줄 것이라 믿는다. 직접 피폭자와 피폭 2세 환우들에게서 지속되는 고통과 생활상의 고단함을 직접 맞닥뜨리고 핵 발전과 핵무기가 결국 같은 뿌리에 있음을 확인하게 될 때, 우리의 탈핵의 언어도 보다 진지해 질 수 있지 않을까?

생전에 김형률 씨가 지인들에게 보낼 때마다 삽입했다는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문구는 그를 추모하는 평전의 제목이 되었다. 가장 소외받는 자의 인권이야말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인권이다. 탈핵이 시민의 언어를 넘어 민주주의 일반의 언어, 인권의 언어, 평화의 언어와 교호하면서 더 넓게 퍼져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 진행하는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 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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