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와 정부 그리고 시민사회 내의 복잡한 논쟁 속에서, 이번 국회에서는 처리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도 한때 흘러나왔던 법안이다. 법안을 발의한 정부는 온실 기체를 줄이면서 동시에 녹색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법안 통과를 위해 극적인 로비를 펼친 결과이다.
정부가 되었든 혹은 국회의원이었든, 자신이 발의한 법률이 중요하지 않고 시급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당장에 우리 연구소가 법안 작업에 참여했던 조승수 의원실의 에너지복지법안은 어떤가? 이명박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에너지 빈곤층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 정도로 중요했고, 난방비 부족으로 가스 버너를 켜다가 화재 사고를 당한 장애인 가족에게는 더욱 시급한 법률이었다.
에너지 정책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보면, 에너지 복지법의 중요성이나 시급성은 배출권 거래제법보다 결코 뒤지지 않다. 그러나 이런 법률 통과에 결코 정부 관료들이 나서는 일은 없었다. 복지 확대보다는 배출권 시장을 만드는 것이 더 입맛에 맞는 일일 게다. 언론 기사를 보니, 18대 국회에서 4년 동안 발의된 1만4762건의 법안 가운데 43.9퍼센트인 6489건이 제대로 논의되지도 못하고 자동 폐기 될 것이라고 한다. 에너지 복지법도 그 중의 하나며, 배출권 거래제는 관료 막판 로비로 극적으로 부활한 것이다.
배출권 거래제는 환영할 만한 것일까? 온실 기체 감축을 위해서 탄소 배출에 가격을 부여하자는 원론적인 입장에서는 찬성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배출권 거래제가 대기라는 공유물에 대한 독점적 소유, 배출자에 대한 면죄부, 금융 자본의 투기 공간화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거나 예상된다는 점에서 반대해왔고, 국회 기후변화특위 공청회에 진술인으로 출석하여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시장주의와 관료의 적극적 로비 속에서 이런 소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최근 확인해본 국회 법안 심사 보고서에서 소수 의견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예 언급되지 않는 점이 씁쓸할 뿐이다.
여기서 배출권 거래제의 문제점을 원론적으로 다시 반복할 생각은 없다. 다만 배출권 거래제의 구체적인 설계, 운영 방식에 따라서, 가정(家庭)으로부터 대기업으로 부의 대규모 이전―강탈이라고 해야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사실 지금도 우리는 에너지와 관련하여 무수한 강탈 행위를 경험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가정의 전기 요금을 거둬 대기업에게 매년 수조 원에 달하는 사실상의 보조금을 주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동안 국가 발전과 경제 성장의 명분으로 이것이 정당화되었지만, 이제는 온실 기체 감축과 녹색 성장이란 이름으로 비슷한 강탈 행위가 정당화될지도 모른다.
우선 외국 사례를 하나 살펴보자. 한국이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기 이전까지, 국가 단위에서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한 유일한 나라는 뉴질랜드였다. (참고로 유럽의 배출권 거래제는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시행되고 있다.) 뉴질랜드는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상의 의무 감축 국가로, 배출 감축을 위한 탄소 가격 메커니즘 도입을 위해 노력해왔다. 2005년까지 탄소세 도입을 논의하다가 무산된 후, 2008년 9월에 배출권 거래제 관련 법률이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서 화석 연료에 기반을 둔 부문은 2010년 7월부터 탄소 시장에 진입하여 배출권을 거래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교토의정서에 따라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1990년대 배출 수준으로 온실 기체를 감축해야 하며, 이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에 탄소 크레디트를 구입하여 벌충해야 한다. 법안이 제정되기 전인 2008년 초반 뉴질랜드 지속 가능성 협회의 계산에 의하면, 뉴질랜드는 교토의정서의 감축 목표에서 31퍼센트를 초과했다. 전 지구적 위기라면서 온실 기체 감축을 결의했지만 오히려 온실 기체 배출을 증가시켜온 많은 선진국들의 모습 중에 하나다. 진작부터 교토의정서상의 감축 목표는 달성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욱 뜨거운 쟁점은 뉴질랜드가 목표를 초과한 배출량에 대해서 지불해야 하는 탄소 크레디트 구입 비용의 규모가 얼마나 되고 누가 부담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앞의 협회의 계산에 의하면 배출권 가격을 톤당 30달러로 가정하였을 경우(현재는 이보다 훨씬 폭락해 있지만), 뉴질랜드의 누군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13.7억 달러로 추산되었다. 누가 내는 것이 맞을까? 교과서적인 정답은 이미 존재한다. '오염자 부담 원칙'. 배출을 많이 한 사람이 그에 비례하여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뉴질랜드도 국가 경쟁력과 경제 성장을 이유로 그 부담을 엉뚱한 곳에 전가하고 있다.
뉴질랜드 정부가 설계한 배출권 거래제를 통해 2013년까지 지불될 비용은 총 44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는데, 그 대부분이 가정, 중소기업 그리고 자동차 이용자에게 돌아갈 것으로 전망되었다. 이들은 전체 비용의 90퍼센트에 해당하는 40억 달러를 부담할 예정이지만, 그들이 배출하는 온실 기체 양은 전체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반면에 대규모 산업과 농업(전체 배출량의 50퍼센트가량이다)이 부담하는 비용은 각각 2억 달러로 한정되어 있었다. 무상 할당, 탄소 집약도에 따른 할당, 탄소 시장 진입 시기의 연기 등에 소위 '전환 조치'의 결과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2009년에 뉴질랜드 의회 특별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에서 야당인 뉴질랜드 노동당은 일반 시민들이 부담한 세금으로 대규모 배출자들에 대해서 보조금을 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뉴질랜드 녹색당도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뉴질랜드 역사상 세금 납부자로부터 대규모 오염 유발자에게로 부의 이전(transfer)가 가장 크게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뉴질랜드 집권 여당인 국민당 정부와 의회는 자국 내 기업이 탄소 비용을 피해서 해외로 빠져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이러한 비판을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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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도입된 배출권 거래제에서 문제를 찾자면, 가장 심각한 것은 무상 할당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들은 배출권 거래제가 규제인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원리적으로 볼 때 정부가 온실 기체 배출자(기업)에게 무상으로 재산을 나눠주는 것과 같다. 지금까지 자유롭게 온실 기체를 배출해오던 것에 비해서 온실 기체를 측정, 보고, 검증받아야 하며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위반할 때는 벌금을 내야 한다는 점에서, 기업들이 이를 규제라고 주장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과는 멀다.
무상으로 할당되는 배출권을 탄소세와 비교해보면 얼마나 큰 특혜인지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경제연구원의 추산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배출권 거래제의 대상이 되는 사업장 수는 704개로서 총 1.58억 이산화탄소톤(tCO2)이 배출권 거래 시장에 들어오게 된다. 이 과거 배출량이 정확하게 측정된 것인지 또한 이 배출 실적을 모두 인정해줄 것인가는 또 다른 쟁점이 되겠지만, 일단 받아들이자.
국제 탄소 가격이 요동치고 있지만 가장 낮은 수준에 해당 10달러로 가정해보면, 어림잡아 1조5800억 원에 해당하는 배출권이 발생한다. 최초 시기에는 이것의 95퍼센트를 무상 할당할 예정이라고 하니, 1조5000억 원 규모의 배출권이 무상으로 기업들에게 배분되는 것이다. 반대로 톤당 10달러라는 탄소세를 도입한다고 했을 때, 704개 사업장의 기업들은 1조5000억 원을 세금으로 납부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유상 경매를 한다고 했을 경우에도 비슷한 금액을 기업이 부담해야 하며, 반대로 정부는 그 만큼의 세수를 확보하게 된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것은 그 세금을 면제해줄 뿐만 아니라, 반대로 그 만큼의 경제적인 부를 기업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배출권의 대부분은 자신들의 생산 활동을 위해서 사용하겠지만, 온실 기체 저감에 성공할 경우에 그 만큼의 남는 배출권은 곧바로 이익으로 남아 현금화될 수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그 비용/이익은 소비자나 납세자의 주머니에서 나올 것이다. 배출권 거래제 법안의 국회 통과 직후, 주식 시장에서 관련 주의 가격이 상승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배출권의 무상 할당이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부의 이전 혹은 강탈을 야기할 수 있다면, 온실 기체의 측정, 보고 및 검증 과정이라는 전문적인 영역에서 은밀하게 발생할 수 있는 부패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정부는 대상 사업장과 기업들의 온실 기체 배출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기술적, 행정적 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지만, 간단한 일만은 아니다. 지식경제부가 선호하는 에너지 구입 단계의 데이터 확보 방식으로 것인지, 아니면 환경부가 선호하는 굴뚝에서의 배출량 측정 방식으로 할 것인지 검토할 사항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측정, 보고, 검증하는 행위가 배출량 톤당 얼마씩 하는 재산권을 확정하는 일이며 대단히 전문적 행위로서 외부에서 쉽게 감독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패와 비리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기는 어렵다. 법률은 기업들의 허위 보고 시 처벌하고 벌금을 물리도록 하고 있지만, 우리의 경험상 이런 법적 장치가 항상 적절히 작동할 것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는 많지 않다. 정부와 기업과는 다른 차원에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독립적인 감시운동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장은 이러한 문제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배출권의 초기 할당 문제일 것이다. 법률의 부칙으로 배출권 거래제는 2015년부터 시행되는데, 그 때 각 사업장과 기업들에게 무상 할당되는 배출권의 규모는 앞으로 3년간, 즉 2012년부터 2014년까지의 배출 실적에 기반을 두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앞서 지적처럼 배출권을 최종적으로 현금화할 수 있는 재산으로 이해한다면, 기업들은 앞으로 3년간 배출량을 증가시켜서 보다 많은 배출권을 무상 할당받으려고 시도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기업에게 이것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온실 기체 배출량은 증가하고, 누군가 더 커진 무상할당량 만큼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점에 있기는 하겠지만.
2012년 5월, 국회 막판에 두드린 배출권 거래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는 듯하다. 이 글에서 내가 분석하고 비판한 것이 맞다면, 배출권 거래제는 기후위기의 명분으로 이루어진 또 다른 강탈 행위의 합법화이다. 적어도 하루 빨리 유상 할당으로 전환이라도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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