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단체협의회와 <프레시안>은 이명박 정부의 지난 4년간의 각 분야별 정책을 평가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난 10월 29일 학술단체협의회가 주최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내용을 토대로 각 분야의 전문가의 글이 실리고, 나중에는 책으로도 묶일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이명박 정부 4년간 2008년 광우병 위험이 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을 비롯한 크고 작은 먹을거리 대란이 끊이지 않았다. 임기 마지막인 올해도 소 값 폭락 사태로 장식하고 있다. 아마도 이명박 정부는 농업과 먹을거리의 재앙으로 가득 찬 불행한 시대로 역사에 남게 될 지도 모르겠다.
물론 불행의 씨앗은 1990년대부터 시작된 농산물 시장 개방과 농업 구조 조정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는 이명박 정부의 책임만은 아니다. 1989년 농축산물 수입 자유화 조치 이후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UR)/세계무역기구(WTO) 체제 가입으로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의 비관세 장벽이 철폐되고, 2000년대부터는 잇따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관세 장벽마저 점차 축소되었다.
국내적으로는 소위 '선택과 집중'에 따라 농지와 농기계 등 농업 자원을 소수의 정예 농가에 선별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규모화를 통해 경쟁력을 갖추도록 하는 농업 구조 조정이 강조되었다. 10만여 명의 전업농이 정예 농가로 선정되었고, 정책 자금과 농업 자원은 이들에게 집중되었다. 그 대신 절대 다수의 중소 가족농은 점차 몰락의 길을 걸어야만 했고, 그 결과 농업은 축소와 해체라는 수순을 밞게 되었고, 농촌은 공동화로 인해 피폐해지는 경로를 걸어 왔다.
신자유주의 개방 농정과 농업의 위기는 글로벌 푸드 시스템(세계 먹을거리 체제)으로의 편입과 먹을거리 위기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내 농업의 해체는 식량 자급률을 약 25퍼센트 수준까지 하락시켰고, 이로 인해 먹을거리의 약 4분의 3을 수입 먹을거리에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글로벌 푸드 시스템이 제공하는 수입 먹을거리 때문에 한국 사회의 먹을거리 위험이 크게 증가하였다. 한편, 취약한 국내 농업 생산 기반 때문에 기상 요인으로 인한 작황 불안이 가격 파동을 점점 대형화하도록 만들었다. 사회 전반의 양극화는 먹을거리의 양극화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저소득층과 빈곤층일수록 위험한 먹을거리를 더 많이 섭취함으로써 건강 불평등도 확대되고 있다
ⓒ프레시안(손문상) |
또 대북 적대 정책으로 쌀 지원을 중단하였고, 이 때문에 국내 쌀 재고량이 과잉되고 누적되면서 2009~2010년에 쌀값이 폭락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한때 쌀값이 1990년대 중반 수준까지 폭락하기도 했으며, 쌀 농가의 실질 소득이 적게는 1.5조 원에서 많게는 2.5조 원가량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쌀값을 안정시키는데 실패한 이명박 정부의 무능이 또 다시 확인되었다.
농정에 있어서 이명박 정부의 무능은 2010~2011년 구제역 대란과 2010년 하반기 채소 값 폭등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초기 방역 덕분에 비교적 적은 피해로 끝났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초기 방역에 실패함으로써 전국적으로 약 350만두의 가축이 살처분 매장당하고, 약 6조5000억 원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는 구제역 대란을 야기하였다. 또 2010년 하반기에는 채소류의 수급 예측과 생산 조정의 실패로 무, 배추 등 채소류를 중심으로 2∼3개월 사이에 농산물 가격이 약 3∼4배가량 폭등하는 채소 대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 농업과 먹을거리 대규모 사태(2008년~현재). ⓒ장경호 |
이명박 정부는 잇따른 농업과 먹을거리 대란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 채 정책적 무능과 실패를 반복해 왔다. 초기에 선제적 대응만 제대로 했더라면 대란으로 악화되지 않을 수 있었는데 항상 초기 대응에 실패하여 대형 사고를 스스로 초래하였다. 사태가 악화된 이후에야 부랴부랴 대응책 마련에 부산을 떨었지만 그나마 책임 회피성 생색내기나 땜질식 임시처방에 그쳐 사태 수습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는 농업의 생산 기반을 강화하고, 생산 조정 및 출하 조절을 통해 가격 안정과 소득 보장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뒤따라야 했지만 이 부분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의 농정은 농업과 먹을거리의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전업농보다도 더욱 소수의 주업농, 기업농, 강소농을 중점 지원하면서 전반적인 농업의 해체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또 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먹을거리의 안정적인 생산, 공급은 뒤로 하고 돈 버는 농업과 수출 농업을 강조하면서 안정적인 생산, 공급 기능은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농민과 농촌에 대한 직간접적인 지원이 축소되거나 폐지되면서 농민과 농촌의 빈곤화가 급속히 진행되었다. 2010년 현재 농가 소득은 도시 소득의 약 64퍼센트 수준에 불과하고, 농가 인구 가운데 절대 빈곤층의 비율이 약 19.6퍼센트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작년 11월 한미 FTA 국회 비준을 날치기로 강행 처리하였고, 오는 3월에 발효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쌀을 제외한 모든 농산물의 비관세 장벽은 물론 관세 장벽까지 완전히 철폐되어 농업 해체, 농민 분해, 농촌 붕괴는 더욱 가파르게 진행될 것이다. 이는 국민 먹을거리를 더욱 더 글로벌 푸드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 것이며, 먹을거리의 위험은 제어 불능의 수준으로 높아질 것이다.
지구적 식량 위기에 따른 애그플레이션(agflation)과 취약한 국내 농업 생산 기반은 대규모 가격 파동을 더욱 빈번하게 발생시킬 것이다. 먹을거리 양극화에 따른 건강 불평등은 어쩌면 치유 불능의 상태가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농업과 먹을거리의 재앙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정권 교체만이 그나마 살 길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야가 바뀌고 야당으로 정권이 교체 된다고 해서 농업과 먹을거리의 살 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정권 교체 과정에서 농업과 먹을거리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공약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이루어져야 하며, 정권 교체 후에는 실질적인 정책 집행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미 농민들은 기초 농산물 국가 수매제를 중심으로 식량 자급률 50퍼센트 실현과 먹을거리 복지라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국내 농업 생산 기반을 강화하고, 생산 조정 및 출하 조절을 통해 가격 안정과 소득 보장을 이룰 수 있는 구조와 장치를 제도적으로 마련하며, 먹을거리 양극화 해소를 위해 먹을거리 정책과 복지 정책을 적극적으로 연계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들은 기본적으로 식량 주권 혹은 먹을거리 기본권과 같은 새로운 대안의 패러다임에 기초하고 있다. 정권 교체가 농업과 먹을거리의 재앙으로부터 벗어나는 첫 걸음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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