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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없는 '초글링'? 눈이나 한 번 맞춰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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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개념 없는 '초글링'? 눈이나 한 번 맞춰 봤어요?!"

[프레시안 books 인터뷰] <다시 읽는 임석재 옛이야기> 임혜령

누구나 아는 동요, '꼬부랑 할머니'. 이 동요가 사실은 배설 공포와 쾌감에 관련된 얘기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마당에 똥을 누면 집에서 기르는 개가 와서 먹어치우던 시절, 자기가 먹을 것이 나올까 하고 제 가까이서 얼씬거리는 개가 무서워 아이는 겁을 먹고 온갖 힘을 다 쓰고 있다.

그때 할머니가 노래하듯 이야기하듯 한 대목씩 끊어 불러준다. '꼬부랑 할머니가' / '응!' / '꼬부랑 지팡이를 짚고' / '꼬부랑꼬부랑 가는데' / '응!' … 곁에 꼬부랑 쭈그리고 앉아서, 다가오는 꼬부랑 강아지를 오지 말라고 꼬부랑 지팡이를 내놓으면, 강아지는 꼬부랑 캥캥 도망가고, 아이는 꼬부랑 노래를 부르는 분위기에서, 꼬부랑 똥을, 꼬부랑하게 누면, 꼬부랑 타령으로 만사형통!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의 묘미다. 옛 시절의 원초적인 실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입말로 불러야 진짜 흥이 난다. 과거 사람들의 모습을 복원하는 데 있어 그 어떤 자료보다 생생하다. 한편으론 '착한 이는 복 받고 나쁜 이는 벌 받았대요'라는 단순명쾌한 주제 의식이, 그리고 거기서 줄줄이 딸려 나오는 지혜가 꼬이고 꼬인 서사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가슴을 탁 터뜨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더 이상 '전하지' 않았고, 구전의 맥은 끊길 뻔 했다. 그때 한 사람이 전국을 발로 뛰며 옛날이야기와 노래를 녹음하고 책으로 썼다. '1세대 민속학자'로 불리는 고(故) 임석재(1903~1998년)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처럼 익숙한 이야기부터 전라남도 강진군 도양면 영파리 뒷산에 얽힌 생소한 이야기까지, 근대 이전 한국의 민속을 수집하는데 평생을 썼다.


▲ <다시 읽는 임석재 옛이야기3-콩쥐 팥쥐>(임석재 지음, 임혜령 엮음, 갈현옥 그림, 한림출판사 펴냄). ⓒ한림출판사
그가 모은 이야기들이 <옛날이야기 선집>(전 5권)으로 나온 지 40년 만에, <다시 읽는 임석재 옛이야기>(전7권, 한림출판사 펴냄)로 재탄생했다. 원판 엮은이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그의 이야기에 눈을 반짝였던 '팬'들이 든든한 현역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임석재의 딸 임돈희(동국대학교 석좌교수), 손녀 임혜령(동화 작가), 제자 최래옥(한양대학교 명예교수)이 힘을 합쳤다.

이 가운데 아직까지 "우리 할아버지가 제일 좋은 친구였어요" 하고 말하는 임혜령을 만났다. 그는 이번 시리즈를 엮은 장본인이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 <창비 어린이> 신인 문학상으로 등단한 동화 작가이다. 물론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손녀의 진로가 할아버지의 구수한 말글에 빚을 졌다는 얘기는 하나의 동화요, 인터뷰 내내 넘칠 듯한 큼지막한 표정과 몸짓은 하나의 어린이 연극이었다.


방방곡곡, 커다란 녹음기 맨 '이야기 할아버지'

프레시안 : 임석재 선생님을 '1세대 민속학자'라고 하는데, 정확히 어떤 일을 하셨던 건가요?

임혜령 : 1920년대부터 커다랗고 무거운 릴 타입 녹음기를 들고 전국을 다니면서 다양한 이야기, 민속 관련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옛날이야기와 민요를 많이 수집하셨죠. 그런 자료를 정리해서 낸 게 <한국 구전 설화(평안북도~경상북도 편)>(전12권)입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는 각 지역 사투리가 가감 없이 들어가 있고, 말하는 이의 특성이 살아 있어요. 또 하나의 결과물이 어린이들을 위한 <옛날이야기 선집>입니다.

이렇게 민속자료를 모으고 펴낸 민속학자이기도 했지만 창작 쪽에도 뜻이 있어서 동요와 동시를 직접 쓰시기도 했어요. 전래 동화집 <팥이 영감>, 창작 동요집 <날이 샜다> 등이 있지요. 저서를 보면, 단지 자료를 채록하는 학자로서가 아니라 아이들한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고 재구성하는 작가로서의 면모가 드러나 있어요.

프레시안 :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아요. 들은 이야기 없나요?

임혜령 : 지방마다 숨은 고수 말꾼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등장하면 처음엔 서먹서먹한 거예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먼저 운을 띄웠다 합니다. "내가 옆 지방 갔다 왔는데… 이러이러한 얘기가 있더라. 여긴 뭐 재미있는 이야기 없나?" 하고. 그럼 사람들이 "나도 알아!", "여기도 있소!" 하면서 서로 하겠다고 난리였대요. 게다가 당시로선 녹음기가 드물잖아요. 몸집도 크고. 그 기계에 자신의 목소리가 녹음돼 나오는 게 사람들에겐 너무 신기했던 거예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이야기 채록에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야기들은 지방마다 지역색이 있었다기보다, 가는 곳마다 비슷한 이야기들이 조금씩 변형돼 있는 경우가 많았대요. 가령 산이 인격체로 나와서, '내가 이사를 좀 가야겠어' 하고 생각합니다. 사람들 눈에 안 띄는 시간에 옮겨야지 하고 이른 새벽에 움직이는데, 빨래 나온 아낙네한테 들키는 거예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딱 서버립니다. 이런 이야기를 '오늘날 산이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라고 풀어가는 거죠. 어느 지역에 살든지 지리적 조건들에 대한 궁금증이 비슷했나 봐요.

프레시안 : 40년 만에 다시 나온 <옛날이야기 선집> 엮은이로 참여했습니다. 계기가 있었나요?

▲ 동화작가 임혜령. ⓒ프레시안(최형락)
임혜령 :
한림출판사에서 제 원고를 봤고, 같이 일 해보자고 만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할아버지의 책을 복간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됐어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 저라고, 그래서 엮는 이로서 적격이라고 생각했나 봐요. 이렇게 좋은 옛날이야기 책이 있었는데 절판돼서 구할 수 없어서 안타까워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전 태어나서 열세 살까지 할아버지랑 함께 3대가 같이 살았어요. 서울 안암동에서 살았는데, 조선 기와집이었어요. 옛날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올 만한 환경이었죠.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의 옛날이야기를 정말 많이 읽었어요. 할아버지는 제일 좋은 친구였습니다. 그 경험은 지금 제가 동화 작가로 일하게 된 첫걸음이자 가장 큰 힘이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복간하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프레시안 : 할아버지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다른 손자·손녀 분들도 많았을 텐데 임혜령 작가만 동화 작가가 된 것도 특별하지 않나요?

임혜령 : 같이 살았다는 게 중요하죠. 다른 사촌들은 할아버지와 같이 살지 않았거든요. 열세 살 때까지는 스펀지처럼 뭐든 흡수하는 시기잖아요. 물론 같이 살았던 여동생은 글쓰기와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웃음)

할아버지가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 줄은 잘 몰랐어요. 매일 보는 우리 할아버지니까. 하지만 집에 손님이 끊이지 않았어요. 나중에서야 '대단한 분이었구나' 하고 알게 됐죠. 그분들이 가끔 과자를 사오셨는데 꼭 남겨놓고 숨겨두었다가 손님이 돌아가시면 몰래 절 불러서 과자를 챙겨주시곤 했어요. 어릴 때 엄마, 아빠는 이 썩는다고 과자를 안 사주잖아요.

우리 할아버지 캐릭터는 그야말로 '이야기 할아버지'였어요. 책이 있기도 했지만 늘 직접 들려주셨거든요. 그의 방은 제 놀이터였는데, 들어가기만 하면 "또 들려주세요, 또 들려주세요" 하면서 물고 늘어졌죠. 다 아는 얘기니까, 할아버지가 "그래서" 하고 운을 띄우면 저는 "그래서 이렇게 됐지?"라고 받아쳤어요. 교감이 정말 잘 됐던 것 같아요. 할아버지로부터 가장 크게 배운 건 그 교감 능력인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원초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옛이야기 인물들

프레시안 : 복간된 <다시 읽는 임석재 옛이야기>는 40년 전 원판과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임혜령 : 당시 시리즈는 따로 주제 선별 없이, 임의대로 번호를 매겨 1~5권으로 펴낸 것이었어요. 복간하면서는 주제를 정해 분류 작업을 했죠. 1권은 '말놀이 글놀이' 테마로, 말로 소리 내어 읽으면 노래처럼 리듬이 느껴지는 짤막한 이야기들을 엮었습니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지팡이를 짚고 꼬부랑 고개를 넘는데 강아지가 따라와서 깽깽'하는 식이죠.

2권의 테마는 꾀, 용기, 지혜입니다. 3권은 '알까, 모를까'라는 테마로,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콩쥐 팥쥐'처럼 익숙하지만 정확히 기억나지 않거나 결말이 조금 다른 이야기들을 묶었어요. 4권은 '전설의 고향'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무섭고 신비하고 기묘한 옛이야기들이고요. 5권의 테마는 말 그대로 권선징악. 6권은 김만중이나 이율곡처럼 역사 속 인물들을 둘러싼 이야기들입니다. 마지막 7권은 우리나라 방방곡곡의 전설이라든가 지명의 유래들을 담았어요.

테마를 정해 분류하기 위해 이야기 하나하나의 제목을 쪽지에 써놓고 방 안에 흩뜨려놨어요. 이야기 하나하나의 제목은 그대로거든요. 독자들한테 쉽게 다가가면서 기존 <옛이야기 선집>의 느낌도 살리고 싶었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림이 그려지더라고요. 그밖에 문장은 최대한 원판을 살리는 쪽으로 작업했습니다.

프레시안 : 누구나 우리 옛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지만 왠지 출판계에서는 홀대받고 있는 것 같아요.

임혜령 :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과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 당장 먹고사는 데 급하지 않은 옛이야기 같은 자료들은 묻히지 않았을까요? 그런 사이에 외국 문물을 마구 받아들이면서 외국 이야기들이 더 보편화되었던 거겠지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이야기야말로 '당장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전쟁 때 할아버지와 저희 아버지, 고모들이 부산까지 피난을 갔는데요. 피난처마다 아이들 읽을거리가 없었대요. 할아버지가 그걸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해서 애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종이에 손수 이야기를 썼대요. 이런 각박한 시기에 아이들이 이야기마저 잃으면 너무 슬픈 일이라고. 손으로 쓴 이야기는 너도나도 보겠다고 해서 결국 손에서 손으로 베껴서 유포됐다고 하더군요.

프레시안 : 옛이야기를 다시 읽어 보니 서사가 단순하고 명쾌합니다. 특히 주인공들이 참 본능에 충실하고 원초적이에요. <콩쥐 팥쥐>만 봐도 팥쥐가 평양감사에게 시집 간 콩쥐를 질투해서, "나가서 목욕이나 하자"며 꾀어 바로 연못에 빠트려 죽이잖아요. (웃음) 이런 인물, 서사의 특징을 어떻게 보세요?

임혜령 : 완벽하지 않죠. (웃음) 자연스럽고 본능에 충실하고, 다소 모자란 부분도 있어요. 권선징악 메시지에 충실하고 선한 역과 악한 역의 전형성은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에요. 콩쥐도 마냥 순종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팥쥐와 '베 짜기 배틀'을 펼칠 때의 적극성이라든지, 죽고 난 뒤 부활해서 팥쥐 모녀에게 복수를 도모한다든지 하는 면모가 있잖아요. 훌륭한 일만 할 것 같은데 실수도 하고 나쁜 짓도 하죠.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는 갑남을녀와 닮은 부분이 많아요. <해리 포터>는 배경의 스케일도 크고 캐릭터도 '내가 쟤처럼 될 수는 없을 거야' 같은 거리감이 있잖아요.

서사 면에서도, 낯설게 느껴질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게 아니거든요. 우리가 사극을 보면서 지금 저런 차림을 하고 저런 말투를 쓰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자연스레 빠져드는 것처럼, 지내온 시간과 공간 속에 보편성이 녹아 있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구전적인 특징이 강하잖아요.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말을 덧붙일 수 있죠. 어떻게 듣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고, 여러 갈래가 생길 수가 있어요. 그래서 특히 어린이 독자들한테 중요합니다. 자신에 경험을 반추하고, 이야기를 직접 창조해볼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참여적이고 놀 거리가 많은, 아주 매력적인 소재라고 생각해요.

ⓒ프레시안(최형락)

'애들 얘기'라고 한정짓지 말아요!

프레시안 :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복간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임혜령 : 기뻐하셨을 거라고, 주변에서 많이들 말씀하세요. 아흔을 넘겨 돌아가셨으니 장수하신 편이었기에 갑자기 슬픈 마음이 들거나 하지는 않아요. 다만 제가 어린이 문학 작가로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프레시안 : 작가로서 어떤 활동을 해 오셨나요?

임혜령 : 한림출판사에서 계속 작품을 준비해오던 차에 작년 계간지 <창비 어린이> 신인 문학상에 <여우 자전거>라는 동화로 등단했습니다. <여우 자전거>가 당선된 지 얼마 안 돼 이 시리즈를 복간했으니까, 제게는 겹경사였죠. 그 전에도 어린이 공연 기획이나 대본을 쓰는 일에 참여했고, 노랫말을 쓰거나 카피라이터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우 자전거>는 어느 날 숲속 호수 근처에 세발자전거 한 대가 등장하면서 생기는 이야기예요. 아기 동물들의 좋은 장난감이 되어 주었는데, 다른 동물들과 어울려 살지 않던 다 큰 여우는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네' 하면서 짜증을 내죠. 그런데 속으로는 궁금해서 어느 날 몰래 타 보게 됐고, 몸집이 커서 자전거를 망가뜨리게 돼요. 그러다 아이들이 몰려올 시간이 다가오자 스스로 자전거로 변신하기에 이르고, 결국 들통 나죠.

하지만 엄마 동물들은 여우를 혼내지 않고, 대신 아기 동물들하고 놀아줘야 한다고 말하죠. 여우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데, 아기 동물들하고 놀면서 그동안 몰랐던 포근함을 알게 돼요. 아기 토끼의 털이 얼마나 보드라운지, 아기 쥐의 고동소리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러면서 여우와 아기 동물들은 잘 어울려 놀게 되죠.

프레시안 : 귀여운 이야기네요. 작품 소재들은 주로 어디서 취하나요?

임혜령 : 저의 '옛날'이라고나 할까요? 심사위원들이 제 작품에 대해서 클래식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동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게, 동화 작가라면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요즘은 별로 많지 않은 일이라고 합니다. 최근 동화 시장이 약간 '생활 동화'에 편중되어 있대요. 우리 학교, 내 동생, 내 친구, 선생님… '학원 가기 싫어' 이런 일상 소재에 관한 것들이죠. 저는 동물이나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를 좀 더 좋아해서 앞으로도 동물이 많이 등장할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 : 할아버지와 살았던 어린 시절 영향이 강한 것 같아요. 그때부터 '동화 작가가 되어야지'라고 마음을 먹은 건가요?

임혜령 : 어느 시점에 그런 생각이 든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나도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라는 생각이 스며들어 온 것 같아요. 저는 한 번도 제가 글 쓰는 사람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프레시안 : '글 쓰는 사람'이라고 해도 어린이 문학 말고도 분야가 많이 있잖아요. 따로 관심 분야는 없나요?

임혜령 : 글쎄요. 아직은 어린이 문학만 해도 너무 갈 길이 멀기 때문에 다른 쪽은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저는 이쪽이 너무 즐겁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할 생각이에요.

'난 이 길을 갈 수밖에 없구나' 피부로 느낀 계기가, 제가 기획도 하고 대본과 노래 가사도 쓴 어린이 놀이극이 무대에 올랐을 때였어요. 관객 아이들이 연극에 귀를 기울이고 노래 나오면 따라 부르는 걸 보면서 이 길에 대한 확신을 확고히 다졌어요. 그 열렬한 반응들이 정말 기뻤거든요.

아이들, 처음엔 산만하죠. 그러다가도 결국엔 놀라운 집중력을 보입니다. 처음 듣는 노래인데도 절이 거듭되면 따라 부르기 시작하고요. 반응이 정말 격해요. 무서우면 "무섭다!", 우스꽝스러운 캐릭터가 등장하면 "와, 웃기게 생겼다!" 소리 지르고. (웃음) 주인공이 뭘 못 찾고 허둥대면 "저기 있잖아, 바보야!" 하고 적극적으로 알려주고.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잖아요. 그런 풍경이 옛날에 할아버지와의 교감과 겹쳐지면서 굉장히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프레시안 : 어린이를 위한 글을 쓸 때 가장 유의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임혜령 : 어린이를 위한다는 것, 그 기본 전제는 늘 깔고 있되 거기에 묶여 있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아이들은 더 넓은 세계 보고 싶어 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데, 처음부터 '아이니까' 하고 세계를 좁히거나 낮추면 생각이 막혀버리거든요. 다 아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거죠. 그걸 피하려고 유의합니다. 어린이 문학이지만 어느 연령대나 읽어도 재밌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써야 하죠.

프레시안 :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게임, 컴퓨터 같은 환경에 둘러싸여 있어서 누군가와 소통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혹은 거부하려고 하지 않나요?

ⓒ프레시안(최형락)
임혜령 :
그래도 아이들의 근본은 변하지 않았잖아요. 아이들이 예전에 비해 자극적인 걸 원하고, 말이 안 통하는 구석이 있다고들 말하는데 제가 볼 땐 아니에요. 오히려 어른들이 '아이들이 변했다'는 핑계 뒤로 숨는 게 아닌가, 아이들과 눈 맞추는 일에 소홀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프레시안 : 할아버지의 작업을 잇고 싶은 생각은 없나요? 앞으로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임혜령 : 이번에 책이 나와 뿌듯하지만 역시나 아쉬운 부분이 많아요. <옛날이야기 선집>에 있던 이야기가 다 실린 게 아니거든요. 주제와 분량을 맞추다 보니 아쉽게 버린 것들도 있는데 그것도 언젠가 내고 싶고, 그 외에도 방대한 고전 설화 텍스트를 좀 더 다듬어 작업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앞으로의 꿈이요? 그냥, 계속 글을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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