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장외에서 활약한 이들을 위해서일까, 누리꾼들 사이에서 신조어가 등장했으니 '개드립' 되시겠다. '개소리'와 '드립'를 합친 것으로 방송·연극에서 즉흥 대사를 가리키는 '애드리브'를 비꼬는 말이다.
언론에서 쓰긴 적절치 못한 단어라고 누군가는 말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말글살이에 등장했다면 권위를 인정해 줌이 합당치 않을지. 실제로 개드립은 신문의 고매한 단어들을 넘어서 '그들'의 '적절치 못한' 행동을 가장 잘 담아냈다.
올해의 단어로 '개드립'을 선정하면서, 올해의 개드립 권위자들을 모셔보겠다.
1. "이 정도면 황제의 식사가 부럽지 않지요" - 차명진
'6300원짜리 식사'를 하기 전까지 그는 그저 한 명의 국회의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식사 이후 그는 우리에게 다가와 황제가 됐다. (실제로 포털사이트 검색란에 차명진을 치면 '황제'가 함께 딸려 나온다.)
ⓒ차명진 의원 홈페이지 |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은 7월 참여연대가 주최한 '최저생계비로 한 달 나기 희망 UP 캠페인'에 참여해 쪽방촌에서 최저생계비 6300원으로 하루를 났다. 체험 후 그는 홈페이지에 착실한 후기까지 남겼다. 쌀 한 컵과 마트에서 세일하는 쌀국수, 미트볼, 참치 캔을 총 3710원에 구입해 세 끼 식사를 했고, 970원짜리 황도 한 캔을 사 독서와 함께 음미했으며, 1000원으로 이웃도 돕고 600원으로 조간신문을 샀단다. 거기서 멈춰야 했지만, 자신의 가계부가 너무도 자랑스러운 나머지 그는 이런 애드리브를 치고 만다.
"이 정도면 황제의 식사가 부럽지 않지요."
해당 글 삭제와 사과문 게재, 자유게시판 트래픽 초과, 미니홈피의 성지(聖地)화 등 '온라인 공분 3종 세트'가 이어졌다. 그리고 온라인 공분의 최종 단계인 패러디가 등장했다. 율곡 이이 대신 차명진 의원의 얼굴을 집어넣은 '6300원권 지폐'(사진)가 대표적이다. 트위터에서는 그의 진정성에 감화된 이들이 "차명진에게 황제의 삶을 지속하게 해 주자"는 운동도 벌였다.
ⓒdcinside.com |
덧붙여 민주노총이 '6300원짜리 황제의 삶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의 오버질과 개드립'이라는 논평을 내면서 이 논란엔 개드립이라는 단어의 적절성 논란까지 합세했다. 그만큼 이 사건은 개드립의 실체를 명명백백히 드러냈다고 하겠다.
2. "'자연산'만 찾더라" - 안상수 대표
ⓒ트위터리안 @marrymaryk |
군 면제 사유가 '행방불명'으로 돼있기 때문에 들러붙은 '행불 상수'라는 별명에, 연평도 현장에서 불에 검게 탄 보온병을 들고 포탄이라 주장해 '보온 상수'라는 별명을 추가했다. 그가 '보온 상수'를 즐기게 됐을 때쯤 자멸에 이르는 쐐기를 박는데, 이쯤에서 다시 들어보겠다.
"요즘 '룸(살롱)'에 가면 오히려 '자연산'을 찾는다고 하더라."
12월 22일, 중증뇌성마비 장애아동 요양시설에서 봉사활동을 마친 뒤 여기자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다 입증된 '무위자연'의 입. 보온병 사건으로 웃음거리가 된 지 한 달도 안 돼 다시 터진 '개드립'에 누리꾼들은 그의 본업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또 어떤 웃음을 줄 것인가.
3. "인간 어뢰",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 - <조선일보>, <중앙일보>
2010년은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남북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런 웃지못할 일을 놓고서도 반드시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이들이 있다. 먼저 3월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각 신문들이 사건 발생의 원인을 찾아 헤매고 있는 사이 <조선일보>가 획기적인 추측을 내놨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이다. 섭씨 3도씨, 시계 30㎝에 불과한 바다 속을 가로지르는 '인간 어뢰'다.
ⓒ조선일보 |
진지한 상상력과 구체적인 그림에 넋 잃은 이들의 오마주가 뒤따랐다. '북한 물수제비 어뢰 개념도'(사진), '북한 대롱 어뢰 개념도', '북한 골프 어뢰 개념도' 등 갖다 붙일 것은 무궁무진했다. 보온병도 포탄이 되는데 인간 어뢰라고 불가할쏘냐. 과열된 보도경쟁과 북한에 대한 적의가 낳은, '1등 신문'의 무모한 개드립이었다.
ⓒdcinside.com |
질세라. 이번엔 <중앙일보>가 나섰다. 천안함 사건 후속 조치인 '5·24 조치'가 발표된 날, 이 신문사 논설위원실에서 분노의 펜을 쥔 이가 있었다. '시시각각'이라는 코너에 기명 칼럼을 연재하고 있던 김진 논설위원이다. 이 분이 써내려간 다음과 같은 칼럼은 그의 기자 인생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지 않았을까. 읊겠다.
ⓒ중앙일보 |
'국민이 3일만 참아주면'이라는 이 칼럼은 웃음이 아닌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많은 이들이 '설마 전쟁을 하자는 거냐'며 그를 지탄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내가 선전포고하고 전쟁하자고 했는가? (비판하는 사람들은) 꼬투리 잡아서 사람을 색깔화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시사IN>인터뷰 중)라고 변호했다. 하지만 "국지전이나 전면전이 일어나면 그것은 절대로 안 되는 것일까"라는 물음이 얼마나 가벼웠는지는,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입증됐다.
이밖에도 연평도 포격 사건 직후 <조선일보> 1면 헤드라인이었던 "대한민국이 공격당했다"와 "김재규가 박정희를 저격한 것은 '발기부전' 때문"이라는 요지의 김진 논설위원의 또 다른 칼럼도 화제가 됐다. 2011년엔 어떤 자극적인 이야기들로 출근길을 설레게 할지, 기대된다.
4. "…" - 조전혁 의원
"온 세상 비춰줄 그대가 바로 희망이죠~ 희망을 노래하자 사랑을 노래하자~ 온 세상 비춰줄 그대가 바로 희망이죠~ 온 세상 비춰줄 그대가 바로 희망이죠~ 바로 당신이죠~ 라라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라~" (정두언 4집 <희망> 중)
희망이 될 뻔했다.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5월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은 지지자들에게 호소하기 위한 야외 콘서트를 기획했다. 법원이 공개를 금지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 명단을 공개하는 바람에 그가 1억50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물게 됐기 때문이다. 전교조 '저격수'로서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이들이 함께 즐기는 자리가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섭외했던 개그맨 심형섭·박준형, 가수 남궁옥분·박혜경·애프터스쿨이 불참하면서 행사는 가수 정두언(한나라당 의원)의 단독 콘서트로 15분 만에 막을 내렸다. 홀로 의리를 지킨 그는 열창과 함께 "조전혁 파이팅"을 외쳤으나 조전혁 의원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행사를 기획한 '조전혁 대책위원회' 측이 '연예인들을 불참하게 만든 특정 배후 세력이 있다'고 주장하다가 다시 뭇매를 맞았다.
ⓒ정두언 의원 미니홈피 |
어쨌든 조전혁 의원은 콘서트의 역사를 다시 썼다. 아무도 출연하지 않은 콘서트가 가장 재밌을 수 있음을 입증하면서. 결과는 좋았(?)지만 다시는 시도하지 않기를 권유한다.
5. "기왕 이렇게 된 거" "양배추 김치 올려라" "치킨 값 비싸" - 이명박 대통령
대통령은 어쩔 수 없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보도되니 세 개나 올렸다고 억울해 할 것 없다. 하시는 말씀 모두 다 참신하고 돋보였으니 후보가 적지 않았다. 이것도 많이 추린 거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마음 편히 먹어라"는 9월 22일 서울 양천구 신월동 수해 지역을 방문한 이 대통령이 수해 주민에게 위로라고 건넨 말씀이다. "(청와대 식단에) 양배추김치 올려라"라는 말은 같은 달 30일, 배춧값 폭등 사태에 대한 지시 중 하나로 등장했다. 배추가 포기당 8900원으로 값이 치솟았으니 양배추로 대체하라는 말은 마리 앙트와네트가 한 것으로 알려진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을 연상시키면서 대통령에게 '명트와네트'라는 깜찍한 별명을 선사했다. 당시 양배추 가격은 9480원이었다 한다.
ⓒhandosa.egloos.com |
치킨 업계 종사자들을 '닭살 돋게' 만드는 발언도 있었다. 최근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 관련 경과를 보고받은 이 대통령은 예의 '내가 해 봐서 아는' 경험주의를 강조하며 "2주에 한 번씩 치킨을 사먹는데 가격이 좀 비싸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짜 치킨 가격 비싸다며 발언을 옹호하는 누리꾼들도 많았는데, 관심은 2주에 한 번 치킨을 시켜 드시는 게 사실인지 여부에 간다. 철거민도, 비정규직도 해 봐서 아는 분이니 그런 줄 알아야겠지만….
ⓒ트위터리안 @seoul 74 |
한편, 트위터와 연계된 여론조사 사이트 트윗폴이 진행한 '2010년 최악의 개드립' 투표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무상 급식하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는 발언이 1위였다. 기자회견에서 무상 급식을 가리켜 "망국적 포퓰리즘"이라더니 블로그에는 한글로 풀어 썼다. 말을 어떻게 바꿔서 해도 누리꾼들은 그저 그를 '5세 훈이'로 바라 볼 뿐이다. "젊은 애들, 북한 가서 살라"는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발언은 제 딸을 위한 위대한 헌신과 맞물려 "(외교관 세습하는) 네가 가라, 북한"이라는 독설을 양산했다. 그러고 보면 다 자업자득이다.
▲ 한 대학교에 붙은 G20 정상회의 패러디 자보 ⓒ베스티즈 |
"행사날까지 국격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식후에 남은 잔반에도 나는 부끄러웠다. 변을 참아내는 마음으로 이 모든 가식적인 것을 외면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감을 매달아야겠다. 오늘밤에도 행인이 경찰에 체포된다." (@more_log)
(어이없어 실소만 나오는 일들을 진지하게 받아쳐야 할 때 우리는 홍길동이 됩니다. 웃긴 걸 웃기다 말하지 못하고 '개념 없음'에 '즐'이라고 외치지 못하는 시대, '프덕프덕'은 <프레시안> 기자들이 쓰는 '풍자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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